+ 문제! 문제! 문제!

기본폴더 | 2012-02-0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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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하러 가지 않는 날이다.
늦잠을 자고 마루로 나왔더니 그 새 형수가 다녀갔는지 종이백이 눈에 띈다.
밥과 국이 들어 있다.
어느 정도 이상 추워지기만 하면 꼭꼭 얼어붙는 수도관 때문에 밥을 지어먹지 못하고 살까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실상 나는 일 주일 전부터 집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생활을 계속해 오고 있다.
가스 렌지가 불이 안 켜지는데 지금 내 수중에는 가스 한 통 배달시킬 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커피포트로 끓인 물로 컵라면이나 해먹을 수밖에.


  '며칠만 더 견디면 공공근로 월급이 나오니까.... '
이런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엊그제 대형사고가 터졌다.
그 전날까지는 멀쩡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전원이 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전원 단추를 아무리 눌러도 소용없다. 배터리 아이콘만 빨간색으로 깜박거릴 뿐이다.
망연자실해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밀린 전기료를 입금하지 않으면 단전 처리를 하겠단다.
바로 그 다음날에 월급이 들어오니 하루 이틀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도 소용없다. 규정은 규정이란다.
부스러지기 시작한 이, 며칠 뒤면 끊어질 전기, 먹통이 되어 버린 노트북....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형수가 두고 간 밥은 저녁용으로 그대로 두고 집을 나섰다.
정해진 지급일보다 하루 이틀 앞당겨지기도 한다는 월급이 혹시 그 새 입금되어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현금지급기 모니터에 나타난 통장 잔액은 여전히 4천7백 원에 불과하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또다시 형수에게 구원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형수네 가게로 찾아가 용건을 얘기하였다.
형수는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전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답하고, 혹시 또다른 문제는 없느냐고 물어 본다.
어차피 신세는 졌으니 가스 배달시킬 돈도 좀 부탁해 봐? 전기료랑 함께 갚으면 되잖아.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얘기를 못 꺼내고 돌아섰다.


이제 이 엄동에 전기가 끊어질 위험은 넘겼다.
가스 문제는 월급날까지만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고, 남은 것은 노트북 문제다.
이건 또 얼마나 더 내 돈을 뽑아가고서야 해결이 될까....
최악의 경우, 노트북은 새로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써왔던 글들을 되찾지 못하는 사태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난 진짜 자살해 버릴지도 모른다.
일단 노트북 회사에 연락을 취해 보고 그들의 답변 여하에 따라 대응을 해야겠다.
지금 이 글은 도서관에서 적고 있다.

+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

기본폴더 | 2012-01-2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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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공공근로 일을 나가기 시작하였다.
원래부터 조금 문제가 있던 허리가 물류업체에 다니면서 도지는 바람에 반 년 넘게 집에서 쉬느라 얼마 되지 않던 저축을 다 까먹고, 요즘은 형수에게 빌려 주었던 돈을 20만 원씩, 30만 원씩 돌려받는 것으로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다가 적은 돈이라도 다시 내 힘으로 벌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반가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것도 나는 이왕이면 여기서 일하고 싶소....하고 일순위로 적어넣었던 문화기관에 낙점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게 주어진 일은 건물 외곽을 하루에 두 차례 돌며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나 낙엽을 청소하는 일이다.
상쾌한 바깥 바람을 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리고 쓰레기를 담을 마대자루를 손에 들고 잔디밭과 금속 조각품들 사이를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일은 차라리 산책에 가깝다.
그것도 일이랍시고 허리가 아프다 싶으면 옆에서 감독하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알아서 잠깐씩 쉬어도 된다.
물류회사에서 냉장고며 에어컨 같은 것들을 나르느라 낑낑대던 때를 생각하면 이건 뭐 신선놀음이다.
좀더 다른 방식의 관계를 문화계와 맺지 못한 것이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뭐 나도 이곳에서 공공근로자에게 청소 업무 아닌 공연 기획 업무를 맡기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유치한 고백 하나 할까?
저녁에 퇴근할 때면 나는 더 가까운 길을 놔두고 꼬불꼬불한 복도를 일부러 통과하여 번쩍거리는 로비를 통해 나가곤 한다.
마치 내가 이곳에서 예술 공연을 기획하는 전문 인력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기 위해서다.
통유리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예술적인 건물이 썩 마음에 든다.
이런 우아한 공간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다.
페자재 무더기도 없고 기름때에 절은 땅도 없고 쿵쾅거리는 소음도 없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 왔던 공장 지대와는 아예 환경 자체가 다른 것이다.
명색이 문화 관련 기관이라 그런지 사무실 사람들도 모두 점잖다.
한낱 막일꾼인 내게도 정중한 대접을 잊지 않는다.
설 연휴를 앞두었던 엊그제는 퇴근하려는 나를 일부러 불러세워 구정 선물이랍시고 큼직한 치약 샴푸 세트를 하나 안겨 주기도 하였다.
그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하나씩 주는 물건이겠지만, 이곳 소속도 아닌 내게까지 신경을 써 주다니....
작은 선물 하나에 감동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무척 소박한 인간 같다.


농땡이치지 않고 열심히 일해 줄 작정이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돈값을 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6개월로 정해진 고용 기한이 끝나도 어차피 이곳은 새로운 공공근로자를 받아야 할 판이니 착실한 일꾼으로 인정받으면 재계약도 가능할지 모른다.
지금 이 일이 내 처지에 얻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일자리인 건 확실하다.
일주일에 나흘 근무이니 글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교통비까지 합하여 한달에 70만 원이 못 되는 박한 보수가 다소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런데ㅡ
그 동안 수입도 없이 집에서 쉬느라 이런저런 공과금들이 20만 원도 넘게 밀려 있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 위에 아랫니 하나가 부스러지기 시작하여 월급이 나오면 치과부터 다녀와야 할 판이다.
이래저래 사는 일이 참 녹록치가 않다.

+ 폰 새로 샀다!

일상 | 2012-01-1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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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의 전원이 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반 년 전의 일이다.
A/S 센터에 들고 갔더니 16만 원을 내라고 하였다.
나한테 16만 원은 거금이다.
어차피 아침에 깨워 주는 알람 기능 말고는 거의 실제적인 효용이 없던 물건이라 수리를 포기하였고, 그런데도 폰 사용료는 매달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을 두어 달 뒤에야 깨닫고는 아예 번호를 폐지해 버렸다.
이번에 새 일자리를 구하면서 아무래도 폰이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공짜폰을 장만하기로 하였다.
나 원, 언제부터 휴대폰이 없으면 어딘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었는지....


삼성 제품은 싫다니까 휴대폰 가게 아가씨들이 내놓은 것이 엘지 폰들이었다.
하나는 흰색이고, 또 하나는 검은색에 금박 장식이 박혀 있었다.
둘 다 내 눈에는 촌스럽기만 한 물건들이었다.
파란색은 없단다.(난 다이어리나 디카처럼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은 파란색을 선호한다.)
그나마 조금 덜 촌스러워 보이는 흰색 폰을 집어들자 아가씨들은 검은색이 훨씬 낫다며 극구 만류를 한다.
검정색 폰이 좀더 처치 곤란한 물건인 모양이었다.
어지간하면 그녀들이 원하는 쪽으로 해주고 싶지만 난 검은색은 질색이다.
검은색 스웨터에 검은색 바지로 색을 통일시킨 옷차림은 언제고 내가 꼭 하고 다니고픈 패션이지만, 옷가지를 제외하고는 난 내 주변에 검은색 물건을 두고 싶지 않다.
그러다가ㅡ 검정색 폰의 사용설명서 글자가 큼직큼직한 것을 보고 마지막 순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지난번 폰도 사용설명서 글자가 너무 잘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던 탓에 결국 사용법을 알아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라모(그러면) 이걸로 하께예."
마이클 잭슨의 무대 의상 같은 검정색 폰을 선택하여 아가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가게를 나왔다.
벨 소리로 'Billy Jean'이라도 다운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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