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당시 난 수원의 모 대학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더랬다. 전공과는 담쌓은지 오래고 사회에 대한 관심은 좀 있어 사회과학 스터디 동아리에 처박혀서 뮝기적뮝기적 서적을 보는둥 마는둥 그렇게 빈둥빈둥 지냈는데..... 그러면서 팔뚝질 잘하는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 친구들과 거리가 아주 가까운 것도 아니었고 그저 얼굴이나 서로 익혀놓은 정도랄까. 그렇게 세월을 보냈었다.
그렇게 뮝기적 거리던 해의 끝에 -어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대학의 빅 이벤트 학생회 선거가 다가왔다. 뭐 준비들은 다들 쉬쉬 하면서 8월서부터 했었을 테지만, 하여튼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즌이 되었다. 학생회 선거의 백미인 총학생회장 후보에 등록을 한 팀은 세 팀, NL계파 둘에 PD계파+비운동권 팀이었고 예전부터 NL계파의 철옹성이라 불리던 우리 학교에서 NL계파 중 한 곳이 당선되는 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선거 기간 도중 팔뚝질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둔 탓에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투표일에 참관인이라거나, 페인트칠 등등 여러가지 잔심부름을 꽤 많이 맡아 했는데, 그 일을 하는 도중에 참 못볼 꼴을 많이 봤었다.
원래 대학의 학생회 선거라는 게 기성정치꾼들 못지않게 난잡하고 더럽다는 건 이전의 경험이나 타학교 친구들의 말을 듣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해는 유독 더러웠다.
그 이유인 즉슨 NL계파의 한 총학생회장 후보가 공약으로 경인총련의장 출마를 내세운 게 원인이었다. NL이란 조직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어디 거기가 혼자 나 출마합네라고 말이나 할 수가 있는 곳이었던가? 누군가가 그렇게 지역연합의 출마의사를 밝혔다면 적어도 그 백그라운드는 이미 구성이 끝났다고 봐야할거다. 내가 아는 NL이란 조직은 그렇다. 실제로 일개 학교 학생회 선거에 경기남부 각학교의 동계파 브레인들이 선거참모로 투입되었다.
그러니 다른 NL계파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거다.
한쪽은 무슨일이 있어도 당선되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그걸 저지해야 하는 사명감에 불타서 필사적으로 표몰이에 나섰다. 뭐 전에도 그랬었지만 각 NL계파를 지지하는 학과 학생회장들이 '투표를 시킬테니 누가 투표 안했나 투표자 명단 좀 보자' 라는 요청을 시시때때로 해 왔고, 대자보판은 야밤중에 분 돌개바람(?)에 발자국을 남긴 채 쓰러지기 일쑤였고, 총학생회장후보와 대동시킬 단과대 학생회장 후보에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후보추천서를 위조하다 적발되기도 했었다.
교내에는 '경인총련의장 출마를 공약으로 내세운 총학생회장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경기남부총련의 명의로 된 포스터가 교내에 도배질되다시피하고 이에 질세라 다른NL계파는 동계파 단일후보였던 서울캠퍼스의 총학생회장 후보가 지지유세를 다니는 등...
완전 난리부르스였다.
날짜가 좀 지나,
'경인총련의장 출마를 공약으로 내세운 총학생회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 되는 가운데, 그가 당선이 되려면 한 가지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대의원의회로 구성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다른 NL계파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거관리위원장은 표면상으로만 중립이고 다른 총학생회장 후보진영의 브레인이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선거관리위원장은 개표일에 당락이 결정된 상황에서 집계표보다 실제표가 4표 더 많다는 이유로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분노해 각목을 들고 쫓아가는 '경~~~~~~~후보'진영의 운동원들 피해 잠적, 선거결과는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NL두 계파는 당선이냐 재선거냐 둘 중 어떻게든 자기네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고 싶은데 한쪽은 득표수가 적어 실적이 없고 한쪽은 선거무효발표로 명분이 없으니, 제3후보진영이었던 PD+비운동권에게 따로따로 유혹의 손길을 뻗치게 되는데... 아무래도 2:1이면 여론이라도 형성을 할 수 있으니...
따로따로 밀사를 보낸 그들은
한쪽은 어차피 너희들은 떨어진거니 우리 편을 잡으면 대의원의장을 보장해 주겠다.
또 다른 계파는 동아리연합회 회장과 야간총학생회장 자리를 넘겨주겠다.
면서 정말 몰염치한 행각을 벌인다.
1997년 그 때, 나는 정말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더랬다.
사람을 사랑하자던 그치들에게 말이다.
선거 결과는 양쪽으로 부대낀 PD+비운동권연합팀이 어느쪽 손도 들어줄 수 없게되고 그러자 '경~~~~~~~~~~~~~~~~~후보' 진영이 대의원의장이 각목피해 잠적한 틈을 타서 '좋다 그럼 우리가 OT 등등 정비가 필요하니 총학생회 대신 준비를 하겠다' 라고 총학생회건설준비위원회던가 뭔가를 구성하더니 봄이 되자 전두환 체육관 투표마냥 과학생회장들 불러다가 총학생회 인준을 받아버린다. 그리고 경인총련의장에 출마, 당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