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나 더 조아려야 하나...

satyagraha | 2006-11-08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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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달, 일 때문에 제주에 들렀다.
내내 빠듯하던 일정이 마지막 날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어 버렸고
일행 몇몇과 함께 서귀포시에서 진행된 농민들의 삼보일배에 참가했다.

1-1.
솔직히 삼보일배를 할 마음은 없었다.
마지막 날 일정 펑크를 확인하고,
비행기 시간까지 상당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관광이나 할 요량으로 국장과 함께 숙소에 비치된 팜플렛을 이것저것 들춰보고 있을 때,
일행 중 한명이 제주에서 농민들이 하는 한미FTA 반대 삼보일배에 참가하겠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몇 가지 사연을 들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긴 했지만,
재미교포이고 (또한 혼혈인) 그녀가
한국의 농민들과 함께 삼보일배를 하겠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게만 느껴졌다.

어찌되었건 그녀와 친한 다른 일행이 참가 의사를 밝혔고,
국장과 동기 한 명이 거부하고 나자
나는 떠밀리다시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2.
10월 25일, 제주 서귀포 시에서 또 한 번의 삼보일배가 있었다.
징과 북소리에 맞춰 '한.미.FTA.결.사.반.대.'를 외치며,
전국에서 모여든 농민들과 함께 
남도의 뙤약볕 아래 3시간 가까이를 걷고, 걷고, 조아렸다.

면테이프로 무릎 부분을 동여맨 바지에 종아리와 오금을 쓸리면서도,
반대편 차선으로 달리는 차들이 뿜어내는 탁한 가스를 들이키면서도
사람들은 한 배, 한 배 절실히 기원했다.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소금기 맺힌 윗도리를 털며 잠시 쉬는 시간,
뒤에 앉은 50줄의 농민이 말했다.

"이만하면 하늘도 들어줄 때도 되지 않았소. 정성이 부족하요..."

서울로 돌아오는 중에도 그 농민의 넋두리 같던 말이 떠나질 않았다.
이만하면...그래, 이만하면...

3.
그러나 서울로 돌아와 확인한 제주의 상황은 암담했다.
농민들의 조아림에, 그 한맺힌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서슬 퍼런 정권의 폭력적 진압뿐이었다.

이미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제대로 재미를 봤던 대로 경찰은,
한미FTA 협상장으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컨테이너 박스와 콘크리트 구조물로 원천 봉쇄했다.

우리가 제주에 있을 때에도
출입증 비표가 없는 차량은 어김없이 검문 대상이었고,
경찰의 도로 봉쇄로 버스 노선이 매일 바뀌어야 했다.

6억의 수송비와 10억의 도시락 값으로 전국에서 긁어모은 전경들은
길이 막혀 바다를 헤엄쳐 협상장으로 향하려던 시위대들을 바다에 가두고,
방파제로 올라온 맨몸의 시위대를 향해 무참히 방패와 곤봉을 휘둘렀다.

농민 집회 중에는 수많은 전경들이
방송차량 위에 있던 사회자와 차량 운전자에게 몰려들어 집단 구타를 가했다.
군화발에 짓밟혀 병원으로 실려 갔던 남도의 농민은 서귀포 경찰서 앞에서
자신이 왜 맞아야 하냐며 울부짖었다.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사진출처 : 민중의소리 김철수기자>


4.
얼마나 더 조아려야 하나? 얼마나 더 맞아야 하나?

포스코와 정권의 탄압 속에서 싸우던 포항의 늙은 노동자가
경찰 폭력에 목숨을 잃었던게 지난 9월 이었다.

한겨울에 뼛속까지 얼릴듯 한 물대포를 맞으며 싸우던 두 농민이
경찰 폭력에 목숨을 잃었던게 지난 겨울이었다.

정말 이만하면, 그래도 조금은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늙은 농민이 남도에서 던진 그 물음에
나는, 당신은, 그리고 이 사회는 무슨 대답을 가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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