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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Project Sariputra</title>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 </link>
<description>永革</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05 Oct 2004 00:10:3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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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永革</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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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Project Sariputr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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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블로그를 새로 만들었습니다.</title>
<description>&lt;P&gt;미디어몹에서 블로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설치형 블로그를 만들고 싶어져서 새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전혀 글을 쓰지 않았는데 조회 수가 조금 올라와 있는 걸 보고 행여 찾아 주신 분들이 있을까 싶어 이렇게 인사 드립니다. 오픈 블로그에는 등록해 두었으니 가끔 포스팅하게 되면 몹쓸인들의 고견을 듣고 싶네요.&lt;BR&gt;&lt;BR&gt;블로그 주소는 &lt;A href=&quot;http://www.virtuepeak.net/blog&quot;&gt;www.virtuepeak.net/blog&lt;/A&gt;입니다.&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70932</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Wed, 04 Jan 2006 14:46: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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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무익한 진보-보수 담론</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사람의 정치 성향을 극좌-진보-중도-보수-수구라는 식으로 분별하는 이들을 심심찮게&amp;nbsp;본다. 도식화로 얻을 수 있는 명료한 개념 정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인간의 사상을 저처럼 하나의 선 위에 단순하게 나열하여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무엇일지 의아하다.&lt;BR&gt;&lt;BR&gt;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무엇일까.&amp;nbsp;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일은 비교적 쉽다. 지금&amp;nbsp;드는 기준도 무척 자의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자연적인 질서로 간주하면 우파, 역사 과정의 일부로 파악하면 좌파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가 진보와 보수와 일치될까. 경제적인 면 이외에 권위주의와 자유주의의 축을 추가하여 2차원의 평면에서&amp;nbsp;정치적 성향을 파악할 수도 있다. 이 사분면에서 귄위주의적 좌파는 진보인가? 자유주의적 우파는 보수인가? 물질적 토대를 중시하는 유물론적 입장에서는 권위주의와 자유주의와 관계 없이 좌파와 우파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늠할 수는 있겠다.&lt;BR&gt;&lt;BR&gt;여기서&amp;nbsp;환경보존과 생명윤리 같은&amp;nbsp;새로운 축이 더 추가된다면 어떻게 될까. 좌파 중에서도 과학 기술 개발로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 있을 수 있고 우파도 생명윤리를 존중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로 분화될 수 있다. 이밖에도 종교, 性 등 다양한 기준이 더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가치도 한 두가지 축에 대체로 포섭되며 보다 근본적인 가치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맞는 말이다.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큰 틀에서 봤을 때 더 중요한 문제를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허나 그러한 결정론적, 환원론적 사고로 인하여 인류는 얼마나 많은 세계의 모습을 알지 못하였던가.&lt;BR&gt;&lt;BR&gt;모든 이데올로기와 담론은&amp;nbsp;특정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다. 어떤 개념을 말할 때 그것의 역사적 배경에서 벗어나&amp;nbsp;몰역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류다.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진보와 보수 논쟁도&amp;nbsp;마찬가지다.&amp;nbsp;진보와 보수와 관련된 개념을 논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마치&amp;nbsp;각각의 개념이&amp;nbsp;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양 이야기한다. 진보는 어떤 것이고, 보수는 어떤 것이다. 명쾌하다. 그만큼 위험하다. 처음 듣는 용어라면 한 줄로 된 설명이 유용하겠지만, 문제는 거기서 한 발짝도 내딛지 않은 채 그 용어를 사용하는 짓이다.&lt;BR&gt;&amp;nbsp;&lt;BR&gt;나는 진보고 너는 보수다. 나는 보수고 너는 진보다. 그러한&amp;nbsp;사고 아래 가열찬 논쟁이 진행된다.&amp;nbsp;서로에게 딱지를 붙이고 상대방의 주장을&amp;nbsp;주의 깊게 듣기&amp;nbsp;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단말적으로 내뱉는데 혈안이 된다.&amp;nbsp;그러다가 진보가 무엇이니, 보수가 무엇이니 소모적인 논쟁이 시작된다. 때문에 적어도 한국에서는 진보-보수 담론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논박하는 게 아니라&amp;nbsp;서로의 세계관을 두고 말싸움을 벌이는 탓이다. 식자들의 토론도 별로 다를 것은 없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세 수입을 얻는 작가가&amp;nbsp;자기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주장을 하던 사람에게 내뱉었다는 &quot;당신 전라도 출신이지?&quot;라는 말에 그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lt;BR&gt;&lt;BR&gt;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훈련은 사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허나 이분법은 유아적 사고다. 좀 더 많은 사실을 알아가게 되면&amp;nbsp;세계의 다양한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amp;nbsp;무엇도 섣불리&amp;nbsp;양분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입장이 어떠하든지 간에 합리적으로 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닫는 게 낫다. 공적 영역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7632</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Tue, 21 Jun 2005 12:08: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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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20대에 읽어야 할, 하룻밤에 읽는, 몇 가지 이야기 따위의 책 제목을 싫어한다.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 꼭 정해져 있을 법이 무어 있으며 짧은 시간 동안 어떤 분야의 책을 한 권 읽고 자족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으랴. 얄팍한 상술에서 거부감이 일어난다. 메타 북도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독서는 그 사람에게는 유의미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메타 북에서 소개된 책을 읽고는 마치 그 책을 전부 읽은 양 착각하고 정작 원전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lt;BR&gt;&lt;BR&gt;함량이 떨어지는 책들도 많았지만 책세상의 우리시대 시리즈는 30~40대의 젊은 학자들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었던 기획이었다. 그 저자들이 후배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라 해서 대번에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목차를 훑어보니 이미 읽었던 책들이 우선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읽어야겠다고 염두에 두고 있는 책들도 보였다. 나의 관심사가 그들의 관심사가 겹치는데서 오는 공명이, 별로 내키지 않는 제목과 그다지 읽고 싶지 않은 종류의 조합인 &apos;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apos;을 사서 읽게 만들었다. &lt;BR&gt;&lt;BR&gt;필자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 달랐다. 어떤 이는 경어를 쓰기도 했고, 어떤 이는 책의 소개보다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쓰는데 열중했다. 서평집은 매끄러운 비평이, 독서일기는 한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에 치중되는 편인데 한 권의 책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책에 대한 소개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특히 한 사람이 만든 메타 북은 특정 분야로 편향된 경우가 많은데, 칠십 여명의 사람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보니 다양한 도서가 선정되었다. 물론&amp;nbsp; 관심 없는 책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그런 책들의 소개도 읽으며 견문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읽었던 책을 이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알려 주었고, 읽고 싶은 책은 정말 읽을만하겠다는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문학 쪽의 경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책들이 많았는데,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으나 그 책들을 집어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lt;BR&gt;&lt;BR&gt;학문이 계속해서 전문화되어 가는 추세이지만, 개별 학문의 최근 경향 정도는 파악해두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필진이 인문 사회과학도들이다 보니 과학 책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살짝 아쉽다. 그럼에도 각 분야의 학자들이 젊은 날에 했던 고민을 읽으며 나의 고민을 키워 볼 수 있었다. 꽤 괜찮은 메타 북이 출간되었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7538</link>
<category>독서상우讀書尙友</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Mon, 20 Jun 2005 11:36:4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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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오월의 무덤</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1.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지난 주말에 모란공원에 갔었다. 12시 즈음에 도착했는데 김귀정 열사 주기를 며칠 앞둬서인지 성균관대에서 단체로 학생들이 많이 온 듯 했다. 그밖에도 묘지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의 숫자가 꽤 되어서 공원은 한산하지 않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수유리의 4.19 묘지에는 대학 새내기 때 가 보았고, 망월동의 5.18 묘지에도 한 번은 가 보았지만 모란공원은 서울 근교에 있었건만 처음이었다. 수유리와 망월동 신 묘역은 마치 계획도시처럼 너무 깨끗하게 정비되어 기계적인 관제 묘지란 기분이 심하게 들었는데, 모란공원은 망월동의 구묘역처럼 사람 냄새가 났다. 이 정도도 민주화묘역으로 지정되면서 과거에 비해 많이 다듬어졌다고 같이 간 선배가 말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문익환 목사님의 묘를 제일 먼저 찾았다. 묘 앞에 보관된 노트를 펼쳐 보니 한신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올해 5월 초에 남긴 메모가 보였다. 문 목사를 기리며, 올 해를 통일 원년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결의로 마무리되는 내용이었다. 왠지 가슴이 텁텁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목사님 묘 앞에서 묵념을 끝내고 다들 말이 별로 없는 가운데, &quot;희정이한테 가자.&quot;는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권희정 열사를 모르는 사람을 위한 설명이 있었다. 1996년에 23살의 나이로 학내 자주화 투쟁 중 단식 농성을 벌이다 사망했다고.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굶어 죽은 줄 알 것 아니냐면서, 단식을 하던 중 심장 쇼크로 숨을 거뒀다는 말이었다. 당시 부고를 들었던 순간들을 되새겨 보면서, 최근에 추모 행사가 있었던 흔적을 뒤로 하고 전태일 열사의 묘로 향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전 열사의 묘에는 우리 일행보다 먼저 온 학생들이 있었다. 묵념을 끝낸 그들은 전태일 열사 추모곡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들이 참배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선배들은 90년대 초반의 험난했던 기억을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젊은 학생들 앞에서 민망하다며 말을 아꼈다. 저들은 모종의 다짐을 굳게 하기 위해 이 곳에 왔을텐데, 어떤 사람들은 가열찼던 과거를 농치는 양 말할 수 있었다.&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face=돋움체&gt;2.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최근에는 연락이 잦지 않았던 선배가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는 부고를 엊그제 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오랜만에 만나 내가 저녁을 사기로 했던 터라 당최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빈소로 가서 분향을 하고 나올 때까지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비록 지금 연락이 끊긴 상태지만, 시간이 얼마쯤 지나고 다시 안부를 물으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안일한 기분 속에서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자살에 관한 많은 담론들이 머리 속에서 싹 지워져 버린 듯 하다. 개별적인 자살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뒤르껨의 주장도, 자살이야말로 유일한 실존적인 문제라는 까뮈의 말도 마음에 전혀 와 닿지가 않는다. 사후세계가 있어 자살이라는 선택에 대해 죽고나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면 자살을 직접 선택했던 사람들도 아마 썩 괜찮은 기분은 아니었을 게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가볍다. 모든 것이 가볍다. 선배의 죽음이 내 삶에 지니는 의미도, 자살과 죽음에 관해 떠들어 대는 다른 사람들의 말도. 머리 속은 더 구체적인 생각이 진행되지 않아 하얀 종이와도 같고, 죽음의 무게도 결코 무겁지 않고 백지장과 같다. 어떻게 이토록 가벼운 죽음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떠드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다.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뒤따르는 이들의 정신세계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더더욱 도저히 알 바 없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욕망만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뜰 댈 뿐. 금번 주말에 예정대로 친구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3를 디지털 상영관에서 보러 갈 것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지난 주말에 목도했던 무덤에서 느꼈던 감정의 수위와 이틀 전에 장례식장에서 느낀 감정의 수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5330</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Fri, 27 May 2005 10:09: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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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 학생 운동의 쇠락</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작년의 대통령 탄핵 사태 덕에 탄핵이란 단어는 꽤나 친숙한 낱말이 되었다. 올해도 탄핵이란 용어를 언론에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대상이다. 고대 총학 탄핵 사건은 일반학생과 학생운동세력이 서로 얼마나 많이 유리되어 있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운동권에 대한 반감은 대학생들 사이에 이미 공공연하여 학생운동의 메카라는 고대에서도 2002년도에 비운동권이라는 타이틀만을 앞세운 집단이 총학생회를 장악한 바 있다. 총학 없는 평화고대란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정체성은 정말로 평화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소위 그러한 &apos;반권&apos;의 연장선에서 운동권이 자기네가 속한 집단의 깃발을 들고 설치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지금이야 학생운동과 학생회를 떼어 놓는 일을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학생운동이 처음부터 학생회와 결합되어 있지는 않았다. 85년에 학생회가 부활하기 이전에 학생운동은 언더써클이 주도했었다. 비공식 조직의 사람들이 동아리나 대학 언론 등의 공식 조직에 들어가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통해 학생들을 조직하여 운동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학생회가 합법화되자 언더써클이 해체되고 지하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전면으로 나서 과, 학회를 비롯해 학생회로 진출했다. 기존의 방법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접근하기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는 사회의 부조리가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 있어서 사회문제에 별 관심 없는 학생들까지도 어쩔 수 없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따라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90년대에 들어서자 일반학생과 학생회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학생회 깃발을 들고 나서 봐야 대다수 학생들은 처절한 정도로 무관심하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적어졌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가 그만큼 형식적으로는 안정되었다는 증거이다. 현재의 상황을 개탄할 필요만은 없다. 학생운동이 최고의 정점에 있었던 80년대 후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학생의 수는 10% 남짓이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학생회가 거대한 관료조직으로 기능하여 전체학생을 동원하던 시기는 지나갔다. 모든 학생이 공분할만한 사회적 거악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학생회장 선거는 각 운동 정파가 안정적인 운동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선거에 당선되면 공간과 자금이 손에 들어온다. 학생들은 선거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내는 학생회비가 사용되는 용도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관심하다. 작금의 학생운동세력은 자신의 조직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달력 행사를 통해 유입되는 새내기의 숫자는 나날이 줄어들고, 학년이 높아지면서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의 수는 늘어만 간다. 이미 과반 학생회는 무차별적으로 무너져 가고 있으며, 머지않아 단과대학과 총학생회를 지탱해낼 성원조차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지금 대학 사회에서 학생회는 사라져도 문제가 없는 조직이다. 학생회가 있건 말건 학생의 삶에는 아무런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선거 때에만 빛 좋은 개살구마냥 휘황찬란한 헛된 복지공약을 남발하는 쓸모없는 학생회는 학생들의 이익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다. 시대의 요구에 의해 학생운동의 도구로서 기능해 온 학생회는 이제 깃발을 내릴 때가 되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사실 학생들은 자치에 관심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되는 동안 자치가 무엇인지 전혀 겪어 본 적이 없는데 대학에 입학했다고 자연스럽게 자치에 대해 생각해 볼 턱이 있을 리 없고, 이는 사회인이 되어서도 크게 변화가 없다. 초중고교에 구성되어 있는 학생회는 스스로의 삶을 규정짓는 자치활동이 아니라 해마다 선거라는 제도를 한 번 체험해보는 특별활동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한국의 대학생은 대부분 부모에 기생하는 계급이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도 독립하는 서구의 대학생과는 사회에서 경제적 위치가 다르다. 등록금이라는 가장 큰 경제적 이해관계와 연관된 문제에도 대학생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탈정치화 되어 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그럼에도 학생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대표하는 기구는 필요하다. 제대로 된 학생기구는 학생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학생회를 해체하고 학생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권익을 지키게끔 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개별 학생들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고 그들이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그 안에서 임원을 선출한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학생은 어차피 스스로의 권익을 지킬 의사가 없으므로 무시하여도 상관없다. 학생회를 해체하였으므로 학생회비는 폐지되고 조합에 가입한 학생들로부터 조합비를 걷어 조합을 운영한다. 단, 학생조합은 어디까지나 학생 복지를 비롯하여 학생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해야지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학생회가 정치 투쟁에 경도되어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학생조합이 성공적으로 전체 학생들 사이에 뿌리 내리려면 그들이 혐오하는 부분에서는 철저히 벗어날 필요가 반드시 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다른 한편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생은 적게나마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들의 활동은 학생 자치활동과는 분리되어야 한다.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젊은이의 열정을 상징할 수는 있어도 운동 그 자체의 도덕성을 담지하지는 못한다. 80년대까지는 대학생들이 다른 어떤 영역보다 조직이 쉽게 세워질 수 있기 때문에 선도 투쟁을 할 수도 있었고 해야 할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앞장서서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당위가 존재하지도 않는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뜻있는 학생들이 학생이라는 정체성 아래 사회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백화점식으로 노동 문제 등에 연대하는 일보다 학벌 해체를 훨씬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일이다. 누구나 자기 밥통을 내놓는 일이 어렵다. 맑시스트 대학 교수들도 밖에서 활동하지 대학 내의 시간 강사 문제 같은 자기 밥그릇과 연관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학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부터 실천해야 한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그동안의 학생운동은 지나치게 정치 지향적이었다. 이런 성격은 곧 권력을 지향하는 경향을 낳았고, 숱한 학생 운동가들이 정치계로 투신한 까닭도 애초에 그들이 정치와 권력을&amp;nbsp;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서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뚜렷한 성찰 없이 오로지 현 정권 타도만을 허공에 외치는 자들은 실상 다른 방법으로 권력을 좇는 불나비와 흡사한 지도 모른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대학 내에서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학생은 개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동아리를 만들어 관련 시민 단체와 연대하는 방식을 취하면 될 것이다. 보다 포괄적인 정치 일반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정당의 학생 조직에 뛰어드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사회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다는 이유로 제 조직 지키기에만 급급한 모습은 사회 진보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태도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2000년대에 들어서 이미 많은 학생운동조직에서 학생회 중심의 운동에 문제를 제기해왔고 소위 비운동권 선본들이 여러 학교에서 당선되기도 하였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기존의 관성으로 아무리 간판을 바꿔 달고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장하고 새로운 의제를 주창해 봤자 소용이 없다. 학생회와 학생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소임을 다 했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그 성과가 이미 부족하지 않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4978</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Mon, 23 May 2005 13:34: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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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독서에 관한 명언</title>
<description>&lt;FONT face=돋움체&gt;인터넷에서 긁어 모은 이백여 명언 중 특히 염두에 두고 싶은 구절로 엄선. 그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lt;BR&gt;&lt;BR&gt;&lt;BR&gt;*독서한 사람은 비록 걱정이 있으되 뜻이 상하지 않는다. -순자[荀子, ? ~ ?] &lt;BR&gt;&lt;BR&gt;*시간이 없어서 공부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공부하지 못한다. -회남자 [淮南子] &lt;BR&gt;&lt;BR&gt;*아주 중요한 책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허버트 [1st Baron Herbert of Cherbury, Edward Herbert, 1583 ~ 1648] &lt;BR&gt;&lt;BR&gt;*반대하거나 논쟁하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내용을 그대로 믿거나 화술의 밑천으로 삼기 위해 독서하지 말라. 다만 생각하고 생활하기 위해 읽어라. -베이컨 [Francis Bacon, 1561 ~ 1626] &lt;BR&gt;&lt;BR&gt;*나는 책을 읽을 때 어려운 부분과 만났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지 않는다. 한 두 번 고쳐 생각하다가 그냥 버려둔다. 그렇지 않고 어려운 부분을 계속 고집하면 자기 자신과 시간을 모두 잃고 만다. -몽테뉴 [Michel Euquem de Montaigne, 1533 ~ 1592] &lt;BR&gt;&lt;BR&gt;*읽은 내용을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드는 것은, 먹은 음식을 몸 안에 고스란히 간수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1788 ~ 1860] &lt;BR&gt;&lt;BR&gt;*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베버 [Max Weber, 1864 ~ 1920] &lt;BR&gt;&lt;BR&gt;*우리 머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이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런 책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카프카 [Franz Kafka, 1883 ~ 1924] &lt;BR&gt;&lt;BR&gt;*책을 너무 많이 읽게 되면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는 것을 모르게 된다. -린위탕 [林語堂, 1895 ~ 1976] &lt;BR&gt;&lt;BR&gt;*소유할 수 있는 책 전부를 읽을 수 없는 한, 읽을 수 있는 만큼의 책만을 소유하면 충분하다.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 BC 4? ~ AD 65]&lt;/FONT&gt;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4388</link>
<category>독서상우讀書尙友</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Sun, 15 May 2005 14:14: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나의 스승</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스승의 날을 앞두고 학교로 날아오는 우편물에는 요즘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손으로 쓴 편지들이 섞여 있다. 의례적인 요식행위라도 이 맘 때 쯤 도착하는 제자들의 서신의 양을 보면 개별 교사들이 학생들을 얼마나 살갑게 대했는지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내 마음 속엔 두 분의 스승이 계시다. 두 분 다 고등학교 때 만난 선생님이시다. 한 분은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일반사회와 국제정치경제를 가르치셨고, 다른 한 분은 이웃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셨는데 특기적성교육의 일환으로 이뤄진 테마 특강이란 수업에서 인연이 닿았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난 이 썩을 대로 썩은 사회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군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고, 사관학교에 진학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아이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환단고기를 연구한 재야사학자들의 저작을 읽으며 언젠가 무력으로 저 고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가슴 벅찬 희망을 품고 있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돈오의 순간처럼 내 가치관이 확연하게 전복된 시점이 있지는 않았던 듯 하다. 그런 기억은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남아있지 않다. 두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아직 야물지 않았던 내 생각은 차츰 변해갔다. 한 선생님은 고등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 스미스의 국부론과 리카르도의 비교우위이론을 위시로 고전경제학파의 이론과 종속이론 따위를 가르치셨고, 다른 선생님은 방과 후에 과학철학, 현대 철학의 사조, 대중문화, NGO, 환경 철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하셨다. 그 분들의 수업을 그 나이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그 분들의 수업을 들으며 80년 광주를 알 게 되었고, 한 번은 아버지와 그 이야기를 했다가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야 한다는 말은 아버지께서 늘 되뇌던 말씀이셨고, 그 무렵부터 내 정신세계는 슬그머니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벗어나기 시작했었던 모양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스승이란, 제자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거나 인격적으로 감화를 주신 분들을 지칭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스승이셨던 분은 그 두 분 뿐이다. 스승의 날이 아니어도 가끔 안부를 여쭤 보아야 할 텐데, 죄송스럽다. 고향에 내려가거든 꼭 한 번 뵙고 돌아오고 싶다. 아마 머리칼이 많이 하얗게 새셨을 것이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 color=#000000&gt;내 생이 현재 인간의 평균 수명만큼 허락된다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중등교육기관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가 받았던 가르침을 다른 이들에게도 건넬 수 있다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보람된 방법이 아닐까 싶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4252</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Fri, 13 May 2005 14:54: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들의 일그러진 교수님</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한 선배는 교수들을 &apos;교수님&apos;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싫어했다. 교수란 명칭은 어디까지나 조교수, 부교수, 교수로 이어지는 일련의 직책 중 일부일 뿐,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에 대한 존칭은 어디까지나 &apos;선생님&apos;이라는 견지에서였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고려대 어윤대 총장은 최근 이건희 회장에 대한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불거진 소동을 사과하면서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겠다고 했다. 전임 대통령의 교내 진입을 저지했던 때에도&amp;nbsp;별 입장 표명이 없었던 학교 당국이 기업 총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amp;nbsp;하였다고 설설 기는 꼴도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 불쾌했던 점은 학생을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였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대학은 더 이상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첨병이 아니다. 대학 발전을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고, 기업의 비위를 맞추는 일도 이해 못 할 바는 없다. 대학에도 시장 논리가 관철되는 것일 뿐이고, 예전에는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사실이 조금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데 지나지 않는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등록금 인상을 두고 학생들과 협상하던 학교 측에서는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금 학교가 들어서 있는 부지에 아파트를 지었으면 돈을 얼마나 벌었겠느냐면서, 학교가 등록금을 올려 수익을 올리려는 것은 당연한 행위라고. 그네들이 학교를 허물고 아파트를 짓지 않는 이유도 간명하다. 아파트 짓는 장사보다 대학 장사가 이문이 더 많이 남기 때문이다. 덤으로 교육자라는 지위도 획득할 수도 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어차피 요즘의 한국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다수 교수들은 수십 년 전에 내 놓은 연구 성과를 해마다 우려먹고 있어서, 그들이 고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인지 중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인지 가끔 혼란스럽게 만든다. 학생들도 교육을 받으러 입학했다기 보단 8학기 동안 등록금 꼬박꼬박 낸 뒤 졸업장 한 장 받아 가려고 들어 왔을 뿐이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대학은 돈이 필요하고, 학생은 졸업장이 필요하다. 누구의 말마따나 학교의 주인이 교수라면 교수와 대학을 일치시켜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학과 학생 사이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라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apos;교육&apos;이란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학생들을 사랑하셔서 과거 군부정권의 녹화사업에 협조하셨나. 교수들이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자신들을 진심으로 부끄럽게 여긴다면 껍데기에 불과한 보직을 내던질 게 아니라 밥줄인 교수 자리를 내놓을 일이다. 스스로를 &apos;교수&apos;가 아니라 &apos;선생&apos;이라고 지칭할 양심이 있다면 정녕 그러할 일이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3696</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Fri, 06 May 2005 10:33: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메워지지 않는 인식의 간극</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전통 사회에서 개인이 알 수 있었던 세계는 지극히 좁았다. 태어난 지역을 벗어날 이유가 거의 없었고, 더 넓은 지역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근대 이후,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에 힘 입어 개인의 활동 영역은 매우 확장되었다. 개인이 알 수 있는 세계의 폭도 엄청나게 넓어졌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오늘날 사람이 다른 대상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는 일은 거개가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직접 경험하여 얻는 일은 세상에 대한 정보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근대 국가의 공교육은 문맹율을 급격히 떨어트려 기초적인 문자 독해 능력을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보급했고 신문과 방송은 매일 새로운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자신의 고유한 의견이라 굳게 믿는 생각들도 결국 타인이 생산해 낸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반복 습득하며 형성된 경우가 많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유년 시절에 굳어진 개인의 세계관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걸리는 일과 마주해야 변화의 조짐을 볼 수 있다. 사회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었던 민주화 이전 시절에는 그나마 머리가 덜 굳은 대학 초년 때 여태 몰랐던 세계의 실상에 충격을 받던 방법이 유효했다. 허나 조중동과 수구꼴통세력이란 단어만 염불처럼 외우면 진보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 될 정도로 소위 &apos;진보&apos;에 대한 레토릭이 실상보다 과잉되어 난무하는 요즘에는 과거의 충격 요법이 먹히지 않는다. 이제 대학의 학과 구별은 의미가 없고 오로지 고시합격반과 대기업취업반만이 존재할 뿐이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박정희의 공과 과를 나름의 저울로 재어 본 뒤 그래도 공이 더 많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때 별다른 잘 못 없이 열심히 세상을 살아 온 사람들이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강압적인 권력에 희생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감히 그런 말을 하지 못한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가혹한 조건 밑에서 노동하며 부당한 대우를 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노동 문제에 있어 자본에 상당히 너그럽다. 기성 언론이 퍼붓는 노동 혐오 세례에 중독되면 직접 자본의 철퇴에 얻어맞기 전까지 자신이 혐오하는 쪽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한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인간이 지닌 이성의 힘을 신뢰하여 스스로 이성적으로 무장하고 세상의 다른 이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성을 일깨우면 그들도&amp;nbsp;언젠가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이성이란 그렇게 신뢰 받을만한 존재가 아니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이제 자신이 처한 사회구조적 환경에 대한 인식 없이 남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뱉어내는 사람들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그들을 비난하려거나 비판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동질한 생각을 지닐 수도 없거니와, 어떠한 종류의 생각으로 통일된 세상이건 간에 그런 세상은 실로 끔찍하기까지 하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결국 세상은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계속 부딪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답답해하는 일은 자신을 갉아 먹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의 부조리에 처음 분노한 이들은 시간이 지난 후 아무리 발버둥쳐도 꿈쩍 않는 부조리에 절망한 뒤 체제에 순응하곤 한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만이 끔찍한 현실을 인정한 뒤에도 시지프처럼 계속 바위를 밀어 올린다. 나도 그렇게, 바위를 밀어 올려 보고플 뿐이다. 그 작업이 언젠가 끝나리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3488</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Wed, 04 May 2005 11:14:49 +0900</pubDate>
</item>

<item>
<title>7인의 사무라이와 철거촌</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돋움체&gt;1.&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씨네21 창간10주년 기념 영화제를 하길래 어떤 영화들을 상영하는지 목록을 살펴보다 &apos;7인의 사무라이&apos;가 눈에 들어왔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름과 함께 간혹 듣곤 했던 그 제목. 장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액션. 평을 보니 반지의 제왕 등 요즘 영화에서 보이는 CG 액션 말고, 마지막 장면을 찍다 스탭이 한 명 사고로 죽을 정도였다는 진짜 액션을 볼 수 있다나.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표를 한 장 예매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영화는 길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200분이 넘는 상영시간이 지난 뒤 버스나 지하철로 귀가할 수 있을런지 잠시 계산까지 해보았다. 극장 입구에는 영화 상영 중 10분간 휴식시간이 있다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3시간에 육박하는 영화를 볼 때면 늘 오줌보가 마려웠던 경험을 떠올리며, 주최 측의 놀라운 배려라 생각했으나 정확한 짐작은 아니었다. 필름 자체에 休息이란 글자가 찍혀 들어 있었으니.. 장시간의 영화가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될 때 상하로&amp;nbsp;쪼개어지는 경우는 보았어도 영화 자체를 도중에 분할하여 편집한 경우는 처음 경험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그렇게 길었는데도 별로 지루한 줄을 몰랐다. 보통 주인공이 여럿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한 두 인물만 두드러지고 나머지 인물들은 묻혀지기 다반사인데, 러닝타임이 긴 덕인지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 개개의 면모가 충분히 묘사되었다. 농민도 몇 명은 꽤 강한 인상을 남겼고. 거기에다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으리란&amp;nbsp;예상과 달리, 중간 중간 해학과 기지가 넘쳐흘러 사람들은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다만 액션은 성에 차지 않았다. 암암리에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근래의 영화 중 라스트 사무라이와 자토이치 정도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50년의 세월을 감안하려 해도, 그 시절의 다른 영화를 본 것도 없으니 동시대의 영화와 비교할 수도 없었다. 대단한 액션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하니까 그런가보다 여길 수밖에. 어찌되었건 마지막에 1951년 작이란 글귀가 떴을 때, 반세기 전의 영화를 이리 졸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로 충분히 걸작이라 부를 만 하다 싶었다.&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face=돋움체&gt;2.&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영화를 보던 중 어느 부분에선가, 불현듯 전국시대에 도적 떼로부터 위협받는 산간의 한 마을의 처지와 몇 년 전의 그 철거촌이 머리 속에서 교차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대개의 철거촌이 그러하듯 산기슭에 자리잡은 그 마을에는 보기에 그리 깔끔하지 못한 집들이 삐죽삐죽 늘어서 있었다.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는 용역깡패들이 접근하는지 정찰하기 위해 세운 감시탑이 서 있었다. 오뉴월에 그곳에 올라섰을 때에도 꽤 서늘한 바람과 맞부딫혀야 했고, 해가 지면 추위는 한층 심해졌다. 주민들은 교대로 24시간 그곳을 지켰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그 철거촌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건설업체는 보상을 노리는 집주인들과 합심하여 거주민들에게 어떤 주거 대책 없이 집을 비우라고 요구했다. 철거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소유한 자산으로는 서울 시내 어디에서도 몸을 뉘일 집을 찾을 수 없어 이곳에 모여든 처지였다. 만약 여기서 쫓겨난 뒤 다른 철거촌에라도 갈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몇 푼 안 되는 보상금으로는 일반적인 집의 두어 달 월삯도 나오지 않았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지리한 협상 끝에 건설업체들이 의례적으로 취하는 조치가 여기도 행해졌다. 회사에 일당 몇 만원으로 고용된 용역깡패들은 시시때때로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을 위협하고 물건과 건물을 훼손했으며 빈 집도 아닌 집 창문에 똥을 들이붓기도 했다. 깡패들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았겠지만 건설업체는 철거민에게 굴복했다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인근 지역 학교의 학생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마음껏 두들겨 패는 깡패들도 학생들은 쉬이 건드리지 못했다. 학생들은 주민들과 함께 야간 순찰을 돌았고 바리케이드 뒤에서 대책 본부를 지키며 마을의 상황을 알리는 대자보를 썼다. 가끔 깡패들과 함께 올라온 경찰들이 학생과 주민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압하면 깡패들이 주먹을 날리는 일도 생겼다. 듣자니 인근 경찰서장에게 회사가 뇌물을 먹인 듯 했다. 다른 철거촌에선 없다가 이곳에서 새롭게 벌어지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자 학생들은 농촌으로 현장 활동을 떠났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 깡패들은 마을에 들이닥쳤고 경찰들은 지도부를 연행해 갔다. 영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왔을 때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다시 마을로 가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다른 계파의 철거촌 연대와도 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난 학생 운동이란 걸 더 생각치 않게 되었다.&lt;/FONT&gt;&lt;/P&gt;
&lt;P&gt;&lt;BR&gt;&lt;FONT face=돋움체&gt;3.&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농민들이 전투에서 패한 뒤 쫓기는 사무라이들을 죽이고 노획한&amp;nbsp;무구들을 7인의 사무라이가 보게 된 순간이었다. 그 마을을 지켜주러 온 7인의 사무라이 중 한 사람은 지금 이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라 말한다. 그러자 농민이면서 사무라이 행세를 하던 인물이 울부짖는다. 농민들이 이렇다고. 겉으로는 울고불고 질질 짜면서 죽니 사니 말을 해도 챙길 건 다 챙긴다고. 헛간을 뒤지고 마루 밑을 뜯으면 없는 게 없다고... &lt;BR&gt;&lt;BR&gt;&lt;/FONT&gt;&lt;FONT face=돋움체&gt;그 때 내가 함께 한 학생들은 7인의 사무라이처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과 몇 달을 함께 했다. 7인의 사무라이는 농민들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끼고도 마을에 남았으나 학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물론 내가 알 수 없었던 진실도 많을 것이고 현실과 영화는 다르기에 학생들이 끝까지 남아 있었다 해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돋움체&gt;영화의 마지막에 농민들이 그처럼 흥겹게 모내기를 하지 못했으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터이다. 좋은 영화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언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지나치게 현실과 닮은 모습이었을까. 오늘도 이 땅 어디에선가는 그때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수 백 년 전과 수 십 년 전과 수 년 전과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진보를 확신하지 못하는 까닭은 도처에 널려 있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sariputra/blog.aspx?id=42831</link>
<category>왈가왈부曰可曰否</category>

<author>永革</author>
<pubDate>Tue, 26 Apr 2005 12:16:2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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