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왈가왈부曰可曰否 | 2006-01-04 14:46
스크랩 0 | 추천 0

미디어몹에서 블로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설치형 블로그를 만들고 싶어져서 새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전혀 글을 쓰지 않았는데 조회 수가 조금 올라와 있는 걸 보고 행여 찾아 주신 분들이 있을까 싶어 이렇게 인사 드립니다. 오픈 블로그에는 등록해 두었으니 가끔 포스팅하게 되면 몹쓸인들의 고견을 듣고 싶네요.

블로그 주소는 www.virtuepeak.net/blog입니다.

+ 무익한 진보-보수 담론

왈가왈부曰可曰否 | 2005-06-21 12:08
스크랩 1 | 추천 3

사람의 정치 성향을 극좌-진보-중도-보수-수구라는 식으로 분별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본다. 도식화로 얻을 수 있는 명료한 개념 정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인간의 사상을 저처럼 하나의 선 위에 단순하게 나열하여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무엇일지 의아하다.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무엇일까.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일은 비교적 쉽다. 지금 드는 기준도 무척 자의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자연적인 질서로 간주하면 우파, 역사 과정의 일부로 파악하면 좌파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가 진보와 보수와 일치될까. 경제적인 면 이외에 권위주의와 자유주의의 축을 추가하여 2차원의 평면에서 정치적 성향을 파악할 수도 있다. 이 사분면에서 귄위주의적 좌파는 진보인가? 자유주의적 우파는 보수인가? 물질적 토대를 중시하는 유물론적 입장에서는 권위주의와 자유주의와 관계 없이 좌파와 우파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늠할 수는 있겠다.

여기서 환경보존과 생명윤리 같은 새로운 축이 더 추가된다면 어떻게 될까. 좌파 중에서도 과학 기술 개발로 환경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 있을 수 있고 우파도 생명윤리를 존중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로 분화될 수 있다. 이밖에도 종교, 性 등 다양한 기준이 더 존재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가치도 한 두가지 축에 대체로 포섭되며 보다 근본적인 가치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맞는 말이다. 지엽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큰 틀에서 봤을 때 더 중요한 문제를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허나 그러한 결정론적, 환원론적 사고로 인하여 인류는 얼마나 많은 세계의 모습을 알지 못하였던가.

모든 이데올로기와 담론은 특정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다. 어떤 개념을 말할 때 그것의 역사적 배경에서 벗어나 몰역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류다.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툭하면 불거져 나오는 진보와 보수 논쟁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와 관련된 개념을 논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마치 각각의 개념이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양 이야기한다. 진보는 어떤 것이고, 보수는 어떤 것이다. 명쾌하다. 그만큼 위험하다. 처음 듣는 용어라면 한 줄로 된 설명이 유용하겠지만, 문제는 거기서 한 발짝도 내딛지 않은 채 그 용어를 사용하는 짓이다.
 
나는 진보고 너는 보수다. 나는 보수고 너는 진보다. 그러한 사고 아래 가열찬 논쟁이 진행된다. 서로에게 딱지를 붙이고 상대방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듣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단말적으로 내뱉는데 혈안이 된다. 그러다가 진보가 무엇이니, 보수가 무엇이니 소모적인 논쟁이 시작된다. 때문에 적어도 한국에서는 진보-보수 담론이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상대방의 입장을 논박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세계관을 두고 말싸움을 벌이는 탓이다. 식자들의 토론도 별로 다를 것은 없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세 수입을 얻는 작가가 자기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주장을 하던 사람에게 내뱉었다는 "당신 전라도 출신이지?"라는 말에 그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훈련은 사회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허나 이분법은 유아적 사고다. 좀 더 많은 사실을 알아가게 되면 세계의 다양한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도 섣불리 양분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입장이 어떠하든지 간에 합리적으로 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입을 닫는 게 낫다. 공적 영역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 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

독서상우讀書尙友 | 2005-06-20 11:36
스크랩 0 | 추천 2

20대에 읽어야 할, 하룻밤에 읽는, 몇 가지 이야기 따위의 책 제목을 싫어한다.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 꼭 정해져 있을 법이 무어 있으며 짧은 시간 동안 어떤 분야의 책을 한 권 읽고 자족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으랴. 얄팍한 상술에서 거부감이 일어난다. 메타 북도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다른 사람의 독서는 그 사람에게는 유의미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메타 북에서 소개된 책을 읽고는 마치 그 책을 전부 읽은 양 착각하고 정작 원전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함량이 떨어지는 책들도 많았지만 책세상의 우리시대 시리즈는 30~40대의 젊은 학자들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었던 기획이었다. 그 저자들이 후배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라 해서 대번에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목차를 훑어보니 이미 읽었던 책들이 우선 눈에 들어오고, 앞으로 읽어야겠다고 염두에 두고 있는 책들도 보였다. 나의 관심사가 그들의 관심사가 겹치는데서 오는 공명이, 별로 내키지 않는 제목과 그다지 읽고 싶지 않은 종류의 조합인 '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을 사서 읽게 만들었다.

필자마다 글을 쓰는 스타일이 달랐다. 어떤 이는 경어를 쓰기도 했고, 어떤 이는 책의 소개보다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쓰는데 열중했다. 서평집은 매끄러운 비평이, 독서일기는 한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에 치중되는 편인데 한 권의 책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책에 대한 소개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특히 한 사람이 만든 메타 북은 특정 분야로 편향된 경우가 많은데, 칠십 여명의 사람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보니 다양한 도서가 선정되었다. 물론  관심 없는 책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지만, 그런 책들의 소개도 읽으며 견문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내가 읽었던 책을 이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알려 주었고, 읽고 싶은 책은 정말 읽을만하겠다는 의욕을 북돋아 주었다. 문학 쪽의 경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책들이 많았는데,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으나 그 책들을 집어 들게 될지는 모르겠다.

학문이 계속해서 전문화되어 가는 추세이지만, 개별 학문의 최근 경향 정도는 파악해두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필진이 인문 사회과학도들이다 보니 과학 책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살짝 아쉽다. 그럼에도 각 분야의 학자들이 젊은 날에 했던 고민을 읽으며 나의 고민을 키워 볼 수 있었다. 꽤 괜찮은 메타 북이 출간되었다.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