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직장동료는 옛 운동권, 대기업 CSR 경력자, 그리고 그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안철수 이야기가
나왔다. 박원순 이야기도 나왔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땐, '두 분이 그러면 안되지...'라고 하면서도 입가엔 화색이
돋는다. 훼손되면 안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만만치 않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런 것이 깔려 있다. 사실
안철수는 잘 몰라도, 박원순의 경우는 확실히 지금까지 해놓은 업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 그가 이렇게 정계로 들어선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응원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그저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문득 노회찬의 이야기가 나왔다. 두 사람이 피식 웃더니 얼굴을 찌푸린다. 갑자기 옛 운동권이 내게 훈계를 한다. 지금까지
좌파 정당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거나 비판을 받은 적이 없다고. 그저 지금까지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이제는
미움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문득 그가 직장 상사라는 것을 까먹어버렸다.
"그래서 사회가 파시즘으로 되어가는 것이죠."
세부 논쟁이 이어졌다. 온갖 치졸한 언론플레이에 대해 내가 왜 이렇게 수세에 몰리며 대답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나는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결국 그는 내가 말한 한마디에 논쟁을 접고 물러났다.
"국참당이 변수가 아니다. 문제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다. 일심회 사건 때 당원정보가 북으로 넘어갔고, 당대회에서 관계자
징계가 부결되었다. 그에 대한 반성이 없었고,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가 없었다. 그것 하나만 있었어도, 나는 이번 통합을 찬성했을
것이다."
논리적인 토론이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을 전하고, 그 감정에 대답한다. 감정을 조직하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을 조직하는 것은
권력이다. 그 권력을 만드는 것은 민중이다. 민중은 다시 감정에 좌우된다. 악순환, 그 연결고리 속에서 우리 진보신당은 길을
잃었다. 길을 잃고 3년을 방황했다. 그리고 3년 만에 지도자들이 내어 놓은 안은 '통합'이다. 진보대통합, 야권통합 등..
반대파의 대안도 통합이다. 이들은 진보 소통합을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이 없다. 당헌을 뼈대로, 강령을 피와 살로, 당규를 피부를 삼아 만들어진 생명체로써 정당.
이 하나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은 한땀의 수고. 그것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철부지, 순혈주의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 정당은 보수적이어야 한다. 쉽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정당에는 권력에 대한
이합집산만이 남는다.
그리고 안철수를 본다. 안철수는 결국 '야권통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야권통합이 국민의 뜻이 아니다. 지금의
한나라당이 틀렸다는 것. 그에 대한 강한 반감. 그 대안으로써 '야권통합'. 그것은 하나의 안이다. 그것만이 대답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강한 대답 중 하나. 하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대답. 그것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은
결국 '안철수'의 등장으로 증명이 되었다. 안철수는 처음부터 야권통합의 흐름 밖에 있는 존재였다. 통합후보와 한나라당의 후보
모두를 합친 지지도보다 안철수의 지지도가 높다. 시간이 흐를 수록,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어찌될지 알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민심을 읽자면.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실현하는 방법은 아주 여럿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흐름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흐름은 잘 타고 가야 하고, 어떤 흐름은 피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흐름을 탈
것이고, 어떤 흐름을 피해갈 것이냐. 이건 결국 철학과 신념의 문제다. 나는 최소한 정당의 운영방식은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수 많은 사람의 신념과 이해관계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이것을 조율하는데 굉장한 에너지가 든다. 그것을 감당해야
하고, 소통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며, 구성해야 한다. 지금의 통합논의는 나의 신념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통합 논의에
반대하여왔다.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내 신념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보신당을 지지하고, 당원으로써 활동하는
이유. 그것을 핍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어제의 점심식사에서, 나는 정치적 신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권한을 위협받았다.
그러면서 망가지는 것이다. 나는 이 사회의 파시즘적인 징후가 너무 짙어져버렸다고 생각한다. 감수성이 섬세한 동료들이 프로파간다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가끔씩 우리 사회가 절망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좌파정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이 원점에 선 물음을 제대로 직시하고, 대답을 궁리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