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나도 문화인이 되고 싶다</title>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 </link>
<description>네스토르</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2 Aug 2004 08:52:27 +0900</pubDate>
<image>
<title>네스토르</title>
<url>http://www.mediamob.co.kr/FDS/newBlogProfile/2006/0306/nestor/me.jpg</url>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link>
<description>나도 문화인이 되고 싶다</description>
</image>

<item>
<title>없어질 때가 된 것 같은데</title>
<description>&lt;P&gt;블로그알리미는 2009년 6월 15일부로 소식이 없고.&lt;BR&gt;&lt;BR&gt;만성적인 접속장애.&lt;BR&gt;&lt;BR&gt;&lt;BR&gt;미디어몹이 초창기 단순한 블로그 사이트가 아니라,&lt;BR&gt;&lt;BR&gt;메타사이트 및 독자적인 컨텐츠까지 포함한 시사미디어가 되기 위하여&lt;BR&gt;&lt;BR&gt;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모든 시도의 중지.&lt;BR&gt;&lt;BR&gt;&lt;BR&gt;(아직도 르 지라시의 노회찬 의원 인터뷰가 생각남)&lt;BR&gt;&lt;BR&gt;&lt;BR&gt;한 때 일일 2회 대문 편집을 감행할 정도였으나&lt;BR&gt;&lt;BR&gt;지금은 월 2회쯤이 된 것 같고.&lt;BR&gt;&lt;BR&gt;(대문은 한때 오픈블로그와 연동하여&lt;BR&gt;&lt;BR&gt;타 블로그에서도 좋은 글을 가져오는 적극성이 있었으나)&lt;BR&gt;&lt;BR&gt;&lt;BR&gt;광고조차 바뀌지 않고.&lt;BR&gt;&lt;BR&gt;며칠간 접속불가 상태였어도 이를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lt;BR&gt;&lt;BR&gt;마치 종편에서 방송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르는 것과 같은.&lt;BR&gt;&lt;BR&gt;&lt;BR&gt;&lt;BR&gt;미디어몹, 왜 이렇게 시체처럼 있습니까?&lt;BR&gt;&lt;BR&gt;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보수정권이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은 이 때에,&lt;BR&gt;&lt;BR&gt;있을 거면 제대로 다시 한번 일어서든가,&lt;BR&gt;&lt;BR&gt;없어질 거면 없어져야죠.&lt;BR&gt;&lt;BR&gt;&lt;BR&gt;이미 없어지는 거야 기정사실인 것 같아 보입니다만,&lt;BR&gt;&lt;BR&gt;사용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백업할 기간을 주는 취지라고 해도&lt;BR&gt;&lt;BR&gt;그것도 어디 1, 2개월이지 1, 2년이어서야 되겠습니까?&lt;BR&gt;&lt;BR&gt;&lt;BR&gt;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분간이 안 되면,&lt;BR&gt;&lt;BR&gt;병원으로 보내 소생을 시키든지,&lt;BR&gt;&lt;BR&gt;장의로 보내 땅에 묻든지 해야죠.&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7069</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Sat, 28 Jan 2012 01:41:4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체납세금 징수 위탁법</title>
<description>&amp;nbsp;세제의 정교함은 공정성과 반비례합니다. &lt;BR&gt;&lt;BR&gt;&amp;nbsp;정말 어떻게 보면 웃기는 일이죠. 제도의 정교함은 그것의 악용을 방지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런데 유독 세제만큼은, 그것이 정교하고 세부적일수록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커지게 되는 것이 양의 동서와 시의 고금을 막론하여 역사적으로 실증된 사실입니다. &lt;BR&gt;&lt;BR&gt;&amp;nbsp;대표적으로, 조선이 개국되면서 집권세력은 세금을 공평하게 걷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연분구등법과 전분육등법을 만들어 시행했습니다. 이는 그 해의 작황에 따라, 또한 해당 토지의 토질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여하여 작황이 좋거나 토질이 우수하면 높은 세금을, 작황이나 토질이 나쁘면 낮은 세금을 매기겠다는 합리적인 조세정신의 발로였습니다. &lt;BR&gt;&lt;BR&gt;&amp;nbsp;그러나 이렇게 세금 징수 기준과 액수를 세분화하자 여기에 온갖 부정이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황을 판단하고 토질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현대와 같이 객관적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미 결함을 내포하고 시작한 제도였지요. 경국대전에 실리면서 확정된 이 법은 임진왜란 후인 인조 때 이후 징수액을 최하세율로 고정하는 영정법으로 대체됩니다. &lt;BR&gt;&lt;BR&gt;&amp;nbsp;세액을 결정하고 징수하는 데에 있어 부정이 너무 만연한데다, 임진왜란 이후 도탄에 빠진 민생고를 고려하여 일괄적으로 최하세율을 적용한 것입니다. 적어도 이 이후부터 작황이나 토질을 구실로 부정징세하는 방법은 봉쇄되었습니다. 무조건 최하세율을 받는다고 하면 여기에 부정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어집니다. &lt;BR&gt;&lt;BR&gt;&lt;BR&gt;&amp;nbsp;한편, 세제의 부정은 중간단계의 숫자와 비례합니다. &lt;BR&gt;&lt;BR&gt;&amp;nbsp;이 말인 즉슨, 국민이 낸 세금이 정부에 전달되어 그것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 과정의 단계가 많을수록 그 투명도와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lt;BR&gt;&lt;BR&gt;&amp;nbsp;공화정 로마에는 원래 따로 세금을 걷는 국가기관이 없었고, 이를 민간에 도급했습니다. 민간징세업자들은 국가에 낼 세금의 양을 경매로 입찰하고, 가장 많은 세액납부를 제시한 업자가 징수권을 따냅니다. 그러면 이 업자는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국가에 제시한 금액을 세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를 가지는 식입니다. &lt;BR&gt;&lt;BR&gt;&amp;nbsp;이론적으로, 너무 적은 금액을 제시하여 자신의 이득을 늘리려고 하면 경매 입찰이 안 될 것이고, 너무 많은 금액을 제시하면 자신의 이익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으므로 - 걷은 세금의 양이 자신의 입찰가에 못 미칠 경우 부족분을 본인이 메꾸어야 했습니다 - 합리적인 선에서 정리가 될 것 같지요. &lt;BR&gt;&lt;BR&gt;&amp;nbsp;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했을까요? 도시국가였던 로마의 판도가 이탈리아 전체로, 또한 지중해로 확대되면서 로마는 속주세를 일괄적으로 10%로 고정하고 징세업무를 국가로 이관했습니다. &lt;BR&gt;&lt;BR&gt;&amp;nbsp;징세권은 사실 엄청난 권력입니다.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금액을 써낸 업자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자신이 손해를 보거나 이익이 충분치 않을 것 같으면, 백성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내면 됩니다. 국가로서는 돈만 받으면 되니, 그 업자가 무슨 짓을 하건 사실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규모가 커지고, 또 민간 징세업자들의 그러한 부정이 만연해지자 뒤에서 편하게 돈만 받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lt;BR&gt;&lt;BR&gt;&amp;nbsp;국가가 세금을 주관하게 된 결과 도급업자가 가져가는 수수료도 사라지고, 무리한 징수도 없어졌습니다. 중간단계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lt;BR&gt;&lt;BR&gt;&lt;BR&gt;&amp;nbsp;제가 따로 세제사를 공부하거나 경제에 관심 및 소양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각하께서 야심차게 준비하신 &apos;체납세금 징수 위탁법&apos; 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amp;nbsp;&lt;BR&gt;&lt;BR&gt;&amp;nbsp;체납세금 징수 위탁법은, 해마다 체납되는 세금이 20조에 이르니 이 체납세엑 징수권을 자산관리공사로 넘겨서 이들이 체납세액을 받아내게 하자는 법입니다. 자산관리공사, 아시는 분은 아시지요? 빚 많고 제때 못갚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기업입니다. 독촉장은 항상 이들의 이름을 앞세워 날아옵니다. 자산관리공사는 이미 채무에 대한 추심기관으로서의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 노하우를 내세워서 밀린 세금도 받아내 보라는 것입니다. &lt;BR&gt;&lt;BR&gt;&amp;nbsp;우리나라, 어떤가요? 개인 서민들 빚은 우편 보내는 값도 못 건지는 한이 있어도 악착같이 독촉하고 받아내지만, 대기업이나 재벌, 큰손들 빚은 어땠나요? 외환위기 구제금융에 쓰러지는 기업 나라 돈으로 메꿔주고 갚아주고 그랬지요? 자산관리공사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서민들에게나 &apos;포도청&apos; 입니다. 그런 그들이 체납세금 징세업무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lt;BR&gt;&lt;BR&gt;&amp;nbsp;세금이 체납되는 것은 두 가지 유형입니다. &lt;BR&gt;&lt;BR&gt;&amp;nbsp;안 내는 것과 못 내는 것. &lt;BR&gt;&lt;BR&gt;&amp;nbsp;안 내는 것은, 당장 안 내어도 될만한 힘이 있기 때문에 안 내는 겁니다. 징세절차가 국세청에서 자산관리공사로 한 단계 더 늘어난다고 해서, 일부러 아까워서 안 낼 만한 힘이 있는 사람들이 어이쿠 이제는 내야되겠다 할 것 같습니까? &lt;BR&gt;&lt;BR&gt;&amp;nbsp;못 내는 것은, 없어서 못 내는 겁니다. 없어서 못 내는 사람들은 자기방어를 할 힘도 없습니다. 애초 그런 힘이 있을 돈이 있으면 세금을 냈겠죠. 하지만 자산관리공사는 빚을 받아낼때처럼 그런 사람들 옷을 벗겨 가고 쌀독의 한줌 쌀까지 퍼내 갈겁니다. &lt;BR&gt;&lt;BR&gt;&lt;BR&gt;&amp;nbsp;국회의원들이 어쩐 일로 적절한 문제제기를 했던데, 이 법안이 &apos;악성 고액 체납자&apos; 를 구체적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이 법안이 시행되면 모든 체납자가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자산관리공사는 정부기관이 아니라 공기업입니다. 공기업도 기업인 이상 공짜로 일 시킬수 없습니다. 국세청의 업무를 대행받으면 그에 따른 수수료가 지급되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지요. 그 수수료도 결국 세금일 텐데요. &lt;BR&gt;&lt;BR&gt;&amp;nbsp;문제는 그 수수료 책정의 단위가 액수보다는 건수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업무의 대행 수수료는 얼마를 걷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몇번을 걷었느냐가 문젭니다. 업무의 질이 아니라 양을 따지는 것이 훨씬 쉽거든요. 이는 모든 국가기관, 공기업, 심지어는 비혁신적인 일부 사기업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lt;BR&gt;&lt;BR&gt;&amp;nbsp;그렇다면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건수도 많지 않고 받아내기도 힘든 악성 고액 체납자보다는, 건수도 압도적으로 많고 무엇이든 받아낼 가능성이 높은 비고의성 소액 체납자가 주 대상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어차피 자산관리공사로서는 실적 채워서 수수료만 받으면 그만이니까요.&amp;nbsp;&lt;BR&gt;&lt;BR&gt;&lt;BR&gt;&amp;nbsp;결국 부자감세로 빈 세수의 구멍을, 이러한 편법으로 또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서 메꾸겠다는 꼼수의 발로였던 것입니다. 정말 끝이 없네요. 이왕 잔머리를 굴릴 것 같으면 못 알아채게 해야 되는데, 바보도 알만한 짓거리들을 국가정책이라고 내놓으면서 자기들은 매우 고급한 정책을 편다는 착각들을 하고 있으니. &lt;BR&gt;&lt;BR&gt;&lt;BR&gt;&amp;nbsp;이와중에 살펴보니, 일부 언론은 아예 민간에 위탁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정신나간 것들.</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4894</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Mon, 21 Nov 2011 14:14: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유럽에서 기독교정당이 흥한다구요?</title>
<description>&amp;nbsp;&lt;b&gt;빤스 목사&lt;/b&gt;로 유명한 전광훈 목사는 이제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것 같군요.&lt;br&gt;&lt;br&gt;&lt;br&gt;&amp;nbsp;그 분은 관심을 줄 깜냥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말 중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전광훈 목사는 창당의 변을 밝히면서, 유럽에서는 백년도 더 전부터 기독교당이 있어 잘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못하라는 법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실제로, 유럽의 정당들 중에는 정당명에 &lt;b&gt;기독교&lt;/b&gt;라는 말이 들어가는 정당이 심심찮게 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대표적으로는 현 독일연방공화국의 집권당인 &lt;b&gt;기독교 민주연합&lt;/b&gt;(CDU)과 &lt;b&gt;기독교 사회연합&lt;/b&gt;(CSU)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에도 &lt;b&gt;기독교 민주당&lt;/b&gt;(CDA)이 있고, 프랑스에도 &lt;b&gt;기독교 민주당&lt;/b&gt;(PCD)이 있으며, 이탈리아에도 지금은 당명을 바꾸었지만 과거 &lt;b&gt;기독교 민주당&lt;/b&gt;(IDC)이 있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그런데 이들 정당은, 현재 지금 우리나라의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하려 하는 짓거리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정당들입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amp;nbsp;독일의 경우, 헌법에 &lt;b&gt;독일은 기독교 국가이다&lt;/b&gt; 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보편적인 시대에 이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이는 국민이 의무적으로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는 뜻의 조항이 아닙니다 - 물론 또한, 여기서 기독교의 뜻은 우리나라에서처럼 개신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천주교를 포함합니다 -. 독일의 역사적 전통에서 기독교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연하게도, 독일에서도 종교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됩니다.&lt;br&gt;&lt;br&gt;&amp;nbsp;우리나라의 목사들은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아도 되지만, 가난해도 양심적인 극소수의 목회자들은 편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납세하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짜 좋아하면 망한다고 애들 밥 먹이는 것 때려치우라 말하는 조용기도, 빤스 목사 전광훈도, 좌충우돌 장경동도, 금란교회의 그 유명한 김홍도도 세금 한 푼 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헌법이 기독교 국가로 정의하는 독일의 목사들도 세금을 안 낼까요?&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독일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교인 현황을 나라에서 관리합니다. 개신교 측의 경우, 천주교는 약간 다릅니다만 어쨌든, 교인으로 등록을 하면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일부가 &lt;b&gt;교회세&lt;/b&gt;로 빠져나갑니다. 십일조가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습입니다만 이를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장사를 하는 경우를 방지하고 여기에 적절한 세금을 물리고자, 국가가 교회세를 걷어 신구교에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교인이 교회에 따로 십일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lt;br&gt;&lt;br&gt;&amp;nbsp;나라에서 관수관급하는 교회세에는 세금이 물려지고, 남은 것은 교회 운영 및 목회자 임금으로 사용됩니다. 말하자면 목사들을 월급쟁이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당연히, 이 교회세는 거부할 수 있습니다. 교인 등록을 취소하면 교회세는 징수되지 않습니다. 교인들은 십일조를 하는 데에 교회나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교회 또한 십일조로 장사나 영업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이런 목사들이라면, 정치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독일의 집권정당인 기독교 민주연합에 당원등록이 되어 있는 목사는 있어도, 당직이나 공직에 있는 목사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지만 목사가 당직이나 공직에 앉게 된다면 목사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그것이 당연한 정교분리니까요. 교회세 부분에 대해서도 정교분리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최대의 권력집단이 될 수도 있는 신구교를 막론한 기독교회를 투명화시키려면 그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데에 대부분의 이성적인 독일인들은 동의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독일 기독교 민주연합은 1945년, 즉 전후에 정식으로 창당되었습니다만 그 이전에도 활동은 있었습니다. 나치가 나치를 제외한 모든 정파와 집단을 숙청할 때, 개신교와 천주교도 함께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 때에 나치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정치세력과, 나치에 탄압을 받던 기독교 조직이 손을 잡고 나치에 대한 반정부 운동을 벌인 것이 기독교 민주연합의 출발입니다. 그래서 당명에 기독교가 들어간 것이지만, 유럽 등지에서 당명에 기독교의 의미는 액면 그대로의 그리스도교라는 뜻이 아닙니다.&lt;br&gt;&lt;br&gt;&amp;nbsp;그것은 이렇게 해석되어야만 합니다. &lt;b&gt;전통적&lt;/b&gt;이라고. 기독교 자체가 그들의 역사에서 잠시도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에, 기독교라는 말은 유럽에서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뜻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lt;b&gt;역사성 있는&lt;/b&gt;, &lt;b&gt;전통적인&lt;/b&gt;, (때때로)&lt;b&gt;보수적인&lt;/b&gt; 등의 의미를 띄게 되었습니다. 독일 기독교 민주연합에서도 기독교의 도움을 받았다는 의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기독교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거나 성직자가 정치를 해야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헌법에 &lt;b&gt;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다&lt;/b&gt; 라고 되어 있는 나라에서, 기독교라는 말은 우리의 감각으로는 당명에 &lt;b&gt;민주&lt;/b&gt;나 &lt;b&gt;공화&lt;/b&gt;가 붙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이탈리아 기독교 민주당은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라는 말이 더 이상 현대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 당명에서 기독교라는 말을 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현직 목사가 나서서 교회 조직을 동원하여 정당을 만들고,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는 것이 질적으로 유럽의 &lt;b&gt;기독교&lt;/b&gt; 이름이 들어가는 정당들과 등치된다면 그것은 유럽의 정당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유럽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외치는 세력에게 정권은 커녕 그 어떤 공직도 주는 나라가 없습니다. 정교분리는 우리 시대의 상식이니까요. 유럽에서는 백년도 더 전부터 기독교 정당이 흥하고 있다구요? 목사들, 의외로 참 무식하네요.&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2460</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Thu, 08 Sep 2011 05:52:1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title>
<description>&amp;nbsp;광복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뜻깊은 날이다 보니 관련해서 글을 하나 썼었는데 수정하는 과정에서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상하는 대로 다른 곳에 썼던 주제를 재구성해서 올려 봅니다.&lt;br&gt;&lt;br&gt;&lt;br&gt;&lt;font size=&quot;4&quot;&gt;&lt;b&gt;독일의 유명인&lt;/b&gt;&lt;/font&gt;&lt;font face=&quot;Times New Roman&quot; size=&quot;4&quot;&gt;&lt;b&gt;&lt;/b&gt;&lt;/font&gt;&lt;br&gt;&lt;br&gt;&lt;br&gt;&amp;nbsp;원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한다고 하는 나라에서는 이념, 정파, 정책, 지역, 계층, 성별, 연령을 초월하여 전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 등장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굳이 상기 제도의 결함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분명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민주주의란 결코 &lt;b&gt;가장 적합한 사람&lt;/b&gt;에게 권력을 주는 제도가 아니지요. &lt;b&gt;가장 인기 있는 사람&lt;/b&gt;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그 인기는 시기와 사안에 따라 유동적인 것입니다. 민주주의 하의 정당정치는 대립과 갈등을 신사적인 수준에서 제도화해 놓은 것이니, 어느 한 진영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나와도 다른 진영으로부터는 비판을 받기 일쑤입니다.&lt;br&gt;&lt;br&gt;&amp;nbsp;그래서 오히려, 어떤 정치인이 국내에서보다 국외에서 더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인 넬슨 만델라&lt;font color=&quot;#808080&quot;&gt;Nelson Rolihlahla Mandela&lt;/font&gt;의 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인들은 그를 남아공의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국부로 여기고, 민주화와 인종차별 완화에 기여한 인물로 기억합니다. 실제로 그는 그런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남아공 국내에는 그를 여전히 원수같이 여기는 세력도 있고 그를 향한 테러도 있었습니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FDS/newBlogContent/2011/0818/nestor/%ea%b9%80%eb%8c%80%ec%a4%91%eb%a7%8c%eb%8d%b8%eb%9d%bc.jpg&quot;&gt;&lt;br&gt;&lt;/div&gt;&lt;br&gt;&lt;br&gt;&lt;br&gt;&amp;nbsp;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예는 더욱 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국내의 한국인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인지 잘 체감하지 못합니다. 김어준 총수의 말처럼, 김대중 정도의 민주화 이력이라면 다른 나라에서였다면 국부 대접을 받았을 테지만, 여전히 아직도 국내에는 그를 평생 반대했던 세력이 정부여당을 장악하고 있고 또 상당수의 사람에게 그는 여전히 &lt;b&gt;빨갱이&lt;/b&gt;로 매도되거나 조롱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맥에 세계 유명인사가 많고, 또 결국 그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국내에서 보는 김대중과 세계가 보는 김대중의 평가가 많이 달랐음을 의미합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민주주의 하의 정당정치를 하는 독일연방공화국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사에서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국민 다수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거의 없다는 점에 비해 독일에서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사람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헬무트 슈미트&lt;font color=&quot;#808080&quot;&gt;Helmut Schmidt&lt;/font&gt; 독일 전 총리입니다. 1974년부터 1982년까지 8년 동안 독일의 제 5대 총리였습니다. 헬무트 슈미트는 전 세계적으로 보다는 독일 내에서 더 큰 존경을 받는 지도자입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독일은 내각제 하의 다당제 국가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lt;b&gt;큰 틀에서 보면 양당제&lt;/b&gt;라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독일의 정당들이 이념에 따라 확실하게 구분이 될 수 있으며, 비슷한 이념을 따라 연정을 구성하는 것이 일상적인 내각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보수 진영에는 대표적으로 기독교민주연합(CDU, 이하 기민당)과 기독교사회연합(CSU, 이하 기사당)이 있는데, 두 정당은 자매정당으로 사실상 같은 정당입니다. 하지만 기사당은 바이에른&lt;font color=&quot;#808080&quot;&gt;Beyern&lt;/font&gt; 주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인데, 이는 바이에른의 지역색이 강하여 여기에는 기민당이 진출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lt;b&gt;바이에른판 기민당&lt;/b&gt;이라고도 하고, 또 양당의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덧붙여 독일 자유민주당도 보수정당입니다.&lt;br&gt;&lt;br&gt;&amp;nbsp;이에 대하여 진보 진영에서는 대표적으로, 사회민주당(SPD, 이하 사민당)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입니다. 이 이외에 원래 사회민주당 계열로서 좀 더 급진적인 사람들이 탈당하여 창당한 좌파당이 있고, 또 최근 일본 원전 사태와 맞물려 유명세 및 지지세를 타고 있는 녹색당이 있습니다. 독일은 매우 전통적인 개념의 좌우정치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이전 정부는 어느 당도 과반을 점유하지 못하여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이 대연정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했는데, 기민당-기사당 연합의 의석 수가 더 많았으므로 기민당수 앙겔라 메르켈&lt;font color=&quot;#808080&quot;&gt;Angela Dorothea Merkel&lt;/font&gt;이 총리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번 정부는 사민당이 의석을 많이 잃어 연정에서 배제되고,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자유민주당과 연립하여 보수연정을 구성, 메르켈 총리가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흔히 &lt;b&gt;흑황 연정&lt;/b&gt;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독일에도 각 정당들이 대표로 삼는 색깔이 있습니다. 기민당은 흑색, 기사당은 청색, 자민당은 황색, 사민당은 적색, 녹색당은 (당연히) 녹색 등입니다.&lt;br&gt;&lt;br&gt;&amp;nbsp;독일은 연방공화국이므로 지방정부도 중앙정부와 거의 같은 구조를 갖는데, 기사에서 흔히 이 색깔로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정권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표현하곤 합니다. &lt;b&gt;자메이카 연정&lt;/b&gt;이라고 하면 자메이카 국기의 색이 흑색, 황색, 녹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는 기민당, 자민당, 녹색당이 연립하여 세운 연정이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적녹 연정이 있었는데 이는 사민당과 녹색당이 연립한 진보 정권이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FDS/newBlogContent/2011/0818/nestor/Schmidt_01.jpg&quot;&gt;&lt;br&gt;&lt;/div&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헬무트 하인리히 발데마르 슈미트&lt;font color=&quot;#808080&quot;&gt;Helmut Heinrich Waldemar Schmidt&lt;/font&gt; / 1918&lt;br&gt;&lt;/div&gt;&lt;br&gt;&lt;br&gt;&lt;br&gt;&amp;nbsp;어쨌든 헬무트 슈미트는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현재는 &lt;b&gt;디 차이트&lt;/b&gt;&lt;font color=&quot;#808080&quot;&gt;Die Zeit&lt;/font&gt;(영어로 하면 the time) 의 공동발행자인 언론인입니다.&lt;br&gt;&lt;br&gt;&amp;nbsp;그런데 독일 내에서의 존경이라는 점에서는 이 사람에 밀릴지 몰라도, 세계인에게 더 유명하면서 세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또 다른 정치인이 있습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 사람도 사민당 총리를 지냈습니다. 헬무트 슈미트의 전임자입니다. 사실상 헬무트 슈미트의 정책은 이 사람이 총리 재직 시절 세워놓은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이제 다음에서 이야기할 사건으로 유명한, &lt;b&gt;빌리 브란트&lt;/b&gt; 전 총리입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nbsp;&lt;img src=&quot;/FDS/newBlogContent/2011/0817/nestor/brandt1.jpg&quot;&gt;&lt;br&gt;&lt;br&gt;빌리 브란트&lt;font color=&quot;#808080&quot;&gt;Willy Brandt&lt;/font&gt;, 본명 헤르베르트 에른스트 카를 프람&lt;font color=&quot;#808080&quot;&gt;Herbert Ernst Karl Frahm&lt;/font&gt; / 1913~92&lt;br&gt;&lt;br&gt;&lt;br&gt;&lt;b&gt;&lt;br&gt;&lt;/b&gt;&lt;div align=&quot;left&quot;&gt;&lt;font size=&quot;4&quot;&gt;&lt;b&gt;빌리 브란트와 바르샤바의 참회&lt;/b&gt;&lt;/font&gt;&lt;br&gt;&lt;/div&gt;&lt;br&gt;&lt;br&gt;&lt;div align=&quot;left&quot;&gt;&amp;nbsp;빌리 브란트는 독일연방공화국의 제 4대 총리이며, 전후 최초의 사민당 출신 총리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동방정책으로 유명하지만, 또 다른 유명한 사건이 있지요.&lt;br&gt;&lt;br&gt;&amp;nbsp;식민지배 중 강탈한 영토가 지금도 자기 것이라며 우기는 나라가 있지만, 독일은 오히려 2차대전 패전국이라는 이유로 원래 자신의 영토였던 땅을 전국토 대비 1/4이나 빼앗긴 나라입니다. 생각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더군요. 지금도 독일 영토는 유럽의 한복판이고 또 그리 작은 편은 아니지만, 2차대전 전 독일의 영토는 지금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리고 흔히 오해하지만, 그 원래의 영토는 나치 독일이 무력으로 빼앗은 땅이 아니라 원래 독일 영토였습니다. 그 영역은 지금 폴란드의 서부 대부분이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가 폴란드에 침공하기 직전, 폴란드 정부에게 단치히&lt;font color=&quot;#808080&quot;&gt;Danzig&lt;/font&gt; 시를 할양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단치히는 발트 해에 면해있는 도시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영토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단치히는 독일의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lt;font color=&quot;#808080&quot;&gt;Mecklenburg-Vorpommern&lt;/font&gt;주의 동쪽 폴란드 국경에 있어야 하지만, 실제 현재 폴란드의 도시인 단치히는 그단스크Gdan&apos;sk라는 폴란드식 이름으로 폴란드 포모르스키&lt;font color=&quot;#808080&quot;&gt;Pomorskie&lt;/font&gt; 주의 주도입니다. 포모르스키 주는 독일과 접해있는 주가 아닙니다.&lt;br&gt;&lt;br&gt;&amp;nbsp;이 말 뜻은, 단치히 서쪽이 모두 독일 영토였다는 뜻입니다. 남의 나라 도시인 그단스크가 독일식 이름인 단치히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그 도시가 독일과의 접경도시일 뿐만 아니라 한 때는 독일에 속했던 도시였음도 아울러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폴란드 서부 영토 대부분이 독일 영토였는데, 이 영토가 폴란드로 귀속된 것은 나치 독일이 2차대전에서 패망한 뒤의 일입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FDS/newBlogContent/2011/0817/nestor/poland.jpg&quot;&gt;&lt;br&gt;&lt;br&gt;반전 표시된 것이 현재의 그단스크, 단치히&lt;br&gt;&lt;/div&gt;&lt;br&gt;&lt;br&gt;&lt;br&gt;&amp;nbsp;2차대전 종전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소련은 폴란드의 동부 영토 상당부분을 분할하여 다른 위성국가로 배치합니다. 이에 영토가 너무 줄어버린 폴란드가 반발하였는데, 이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국은 독일 영토 일부를 할양하여 폴란드에 넘길 것을 합의하지만 얼마만큼의 영토를 넘겨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소련은 무력으로 소위 &lt;b&gt;오데르&lt;/b&gt;-&lt;b&gt;나이세&lt;/b&gt;&lt;font color=&quot;#808080&quot;&gt;Oder-Neisse&lt;/font&gt;&lt;b&gt; 라인&lt;/b&gt;을 설정하여, 강제적으로 오데르-나이세 라인 동부를 폴란드에 귀속시킵니다. 이것은 현재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과 일치하는 것으로,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을 국경으로 삼은 것을 말합니다.&lt;br&gt;&lt;br&gt;&amp;nbsp;연합국이 독일을 분할하여 동서 양독이 병립하고 각자의 정부가 들어서자, 서독에서는 한동안 이 오데르-나이세 라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대한 연합국들, 특히 소련이 기정사실화한 것을 뒤집을 힘이 서독에는 없었습니다. 폴란드와 함께 같은 공산권 국가였던 동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라인을 공식적으로 인정합니다. 이 기간 동안 서독은 초대부터 3대까지 모두 기민당 출신의 보수 진영 총리가 있었는데, 그런 탓으로 서독은 오데르-나이세 라인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서독과 동구권의 관계가 악화되는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FDS/newBlogContent/2011/0818/nestor/%ec%98%a4%eb%8d%b0%eb%a5%b4.jpg&quot;&gt;&lt;br&gt;&lt;/div&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동독-폴란드 오데르 나이세 라인 국경 합의협정 기념우표 / 1950&lt;br&gt;&lt;/div&gt;&lt;br&gt;&lt;br&gt;&lt;br&gt;&amp;nbsp;기민당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lt;font color=&quot;#808080&quot;&gt;Kurt Georg Kiesinger&lt;/font&gt; 3대 총리의 뒤를 이어 4대 총리로 취임한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이라는 이름의 적극적인 화평정책을 썼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전후 독일 총리로는 최초로 1970년 12월, 폴란드를 방문합니다. 폴란드에게 있어 독일은, 우리나라에게 일본이 그렇듯이 2차대전 종전까지는 증오를 감출 수 없었던 적국이었고 그 이후 25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껄끄럽고 불편하며 불안한 이웃이었습니다.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한다고 하자, 방문 자체를 반대하는 여론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lt;br&gt;&lt;br&gt;&amp;nbsp;이 방문은 소위 &lt;b&gt;바르샤바 조약&lt;/b&gt; -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그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 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독일과 폴란드가 국경을 정식으로 합의한 조약이었습니다. 이미 25년이나 폴란드가 소련의 비호 아래 실효지배하고 있는 영토를, 독일이 공식적으로 폴란드 영토로서 인정한 것입니다. 실제 그것을 되찾을 가능성이 전무했다 해도, 역사적으로도 영토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서독 사민당 정부는 현실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인 판단을 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어차피 되찾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를 인정하고 동구권과 관계 개선을 해야 통일을 할 수 있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바르샤바 조약을 통해, 오데르 나이세 라인의 국경이 양국의 공인을 받고 국경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독일로서는 광활한 영토의 연고권을 포기하는 것이었지만, 게다가 그 영토는 어떤 나라처럼 식민지배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원래 자국의 영토였지만, 말한대로 현실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그러나 이 조약은 세계적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의 바르샤바 방문이 역사의 기억으로 남는 역사적인 사건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로, 아래의 사진입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img src=&quot;/FDS/newBlogContent/2011/0817/nestor/brandt2.jpg&quot;&gt;&lt;br&gt;&lt;br&gt;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묘역 / 1970&lt;br&gt;&amp;nbsp;&lt;br&gt;&lt;div align=&quot;left&quot;&gt;&lt;br&gt;&lt;br&gt;&amp;nbsp;이것이 &lt;b&gt;사건&lt;/b&gt;으로 불리는 것은, 전적으로 처음부터 예정된 행위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lt;br&gt;&lt;br&gt;&amp;nbsp;저 곳은 바르샤바의 게토 봉기 기념 묘역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차가운 빗물로 젖어있는 콘크리트 바닥에, 현직 독일의 총리가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빌리 브란트 총리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나치에 부역한 인물이 아니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치에 맞서 반정부 운동을 벌인 인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본명을 쓰지 못하고 빌리 브란트라는 가명을 쓰며 나치의 눈을 피해 각처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바르샤바에서 나치의 압제에 들고 일어난 희생자와 전몰자들을 기념하는 묘역에 무릎을 꿇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이것에 대하여 후일 브란트 총리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nbsp;&quot;처음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하지만 진정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는 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lt;br&gt;&lt;/div&gt;&lt;/div&gt;&lt;/div&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br&gt;&amp;nbsp;독일의 결코 숨길 수 없는 악행의 역사를 증거하는 장소에 이르러&lt;br&gt;&lt;br&gt;&amp;nbsp;나치에게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령들의 앞에 서는 순간,&lt;br&gt;&lt;br&gt;&amp;nbsp;&lt;b&gt;저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lt;/b&gt;.&lt;br&gt;&lt;br&gt;&amp;nbsp;그래서 저는 &lt;b&gt;사람이 무언가를 말로서 표현할 수 없을때 할 수 있는 행동&lt;/b&gt;을,&lt;br&gt;&lt;br&gt;&amp;nbsp;한 것 뿐입니다.&quot;&lt;br&gt;&lt;/div&gt;&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그 누구도 예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언론도, 폴란드 언론도, 당시 묘역에 모였던 폴란드 시민들도, 그리고 총리를 따라온 수행원들도. 수행원들 중에는 당시 총리가 격무와 원로에 피로하여 일시 정신을 잃고 혼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참회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무릎꿇고 있는 총리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그 뜻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피해자였던 폴란드인들은, 독일의 현직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font size=&quot;4&quot;&gt;&lt;b&gt;하지만 또 다른&lt;/b&gt;&lt;/font&gt;&lt;br&gt;&lt;br&gt;&lt;br&gt;&amp;nbsp;물론, 이 사건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선 당시 이 사건을 놓고 독일 여론이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여론조사에서 총리의 행동이 적절했느냐를 놓고 찬반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게다가 보수 진영인 기민당 측에서는 국격을 손상시키는 행위였다며 비난까지 했습니다. 한편 독일은 피해국들에 대해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2차대전을 통해 나치 독일이 건드린 나라들은 하나같이 강대국들이었고, 또한 폴란드는 사실상 그 뒤의 소련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였습니다. 만약 실제로 독일이 나치의 만행을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았다 해도, 그것을 지금 어떤 나라처럼 공공연히 드러내고 미화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쉽게 할 수는 없을 환경이었다는 것입니다. 통일을 원한다면 더욱 말이죠.&lt;br&gt;&lt;br&gt;&amp;nbsp;바르샤바 조약 이후 브란트 총리의 발언에서 그의 또 다른 속내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브란트 총리는 조약 합의 후 성명에서 &apos;&lt;b&gt;바르샤바 조약이 체결되었다고 해서, 종전 이후 현 폴란드 영토 및 동유럽 지역에서 있었던 불법적인 독일인 추방 행위까지 사후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lt;/b&gt;&apos;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lt;br&gt;&lt;br&gt;&amp;nbsp;전술한 바와 같이 폴란드는 과거 독일 영토였던 지역을 얻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치 독이링 세력을 확장한 이유도 있겠지만 동유럽 지역의 많은 곳에 독일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특히 폴란드는 원래 독일 영토였던 오데르-나이세 라인 서부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을 강제로 추방합니다. 다른 동유럽 지역에서도, 해당 인원이 나치에 부역했는가 아닌가에 상관 없이 거의 일괄적으로 독일인이 추방되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사유재산 침해와 개인신변의 위협 행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lt;br&gt;&lt;br&gt;&amp;nbsp;그럼에도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당시의 추방당한 독일인을 옹호할 수 없는 것은, 우리로서는 해방 직후 한반도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그들은 원수의 나라의 국민이었고, 그들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이익을 편취하고 조선인들을 핍박했건 그렇지 않았건, 점령국의 국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점령국의 국민으로서 피점령국에 살면서 그 권익을 하나도 누리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반도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모두 거의 도망치다시피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여기서 우리가 일본인을 일본으로 추방했다고 할 때 이후 일본 정부가 그 추방은 불법적이었다고 딴지를 건다면 우리는 기분이 어떨까요?&lt;br&gt;&lt;br&gt;&amp;nbsp;어쨌든 빌리 브란트 총리는 그 사실에 대해 불만을 표한 셈이고, 또 그 이후에도 많은 독일인들은 폴란드 및 동유럽 각국 정부를 상대로 불법 추방에 대한 소송을 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이 정도입니다. 이 정도 수준입니다. 영토가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것도 아니고, 점령시 근대화를 시켜줬다고 말하거나 언어를 압살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엄격한 잣대로 보면 독일의 그러한 태도도 문제는 있습니다. 피해국들을 배려하는 세련된 행동은 아닙니다. 피해국들로서는, 강제 추방으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lt;br&gt;&lt;br&gt;&lt;br&gt;&amp;nbsp;독일이 과거사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사죄와 배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유럽인들은 이에 불만을 표시하고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것은 결국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전후 독일이 모든 책임을 나치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정부의 화법은 &lt;b&gt;나치의 만행을 사죄한다&lt;/b&gt;거나 &lt;b&gt;나치의 집권을 용인한 것을 반성한다&lt;/b&gt;는 식으로 정리됩니다. 즉, &lt;b&gt;독일의 만행을 사죄한다&lt;/b&gt;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나치와 독일을 분리하고 있다고 비판받는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또한 유의할 것은, 나치 독일에 의해 피해를 본 것이 비단 유대인 뿐만이 아닌데, 독일은 유대인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적극적이지만 그 이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현실적으로 &lt;b&gt;유대인의 권세&lt;/b&gt;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은 것은 바르뱌사 게토 - 유대인 강제거주 구역이죠 - 봉기 기념 묘역으로, 그는 바르샤바 폴란드인 봉기 기념 묘역도 참배했지만 그 곳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b&gt;&lt;font size=&quot;4&quot;&gt;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으나&lt;br&gt;&lt;/font&gt;&lt;/b&gt;&lt;br&gt;&lt;br&gt;&amp;nbsp;하지만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독일이 이제까지 해온 사죄방식과, 다른 유럽인들이 요구하는 사죄방식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 때문입니다.&lt;br&gt;&lt;br&gt;&amp;nbsp;일본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미화하며 왜곡하는 후안무치한 언동에 익숙해진 우리들로서는, 독일이 대내외에 열심히 사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인지됩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그런 것들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사죄 방식에 미묘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쉽게 인지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우리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진실된 사죄를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lt;b&gt;&lt;/b&gt;&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독일의 과거사 청산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나라가 세계를 보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독일에게 &lt;b&gt;나치 독일의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하라&lt;/b&gt;고 요구하는 국가나 세력은 거의 없는 반면, 여전히 일본에게 &lt;b&gt;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진심으로 사죄하라&lt;/b&gt;고 요구하는 국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lt;br&gt;&lt;br&gt;&amp;nbsp;빌리 브란트 총리의 사건 이후, 한 언론사에서는 이를 한 마디로 정리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b&gt;&lt;font size=&quot;3&quot;&gt;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으나,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lt;/font&gt;&lt;/b&gt;&lt;br&gt;&lt;/div&gt;&lt;div align=&quot;center&quot;&gt;&lt;font color=&quot;#E4E1E8&quot;&gt;&quot;&lt;/font&gt;&lt;br&gt;&lt;/div&gt;&lt;br&gt;&lt;br&gt;&amp;nbsp;이것은 바로, 진심으로부터 비롯된 제대로된 사죄가, 이후 그들을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독일은 더 이상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나라가 과거 전범 국가였음을, 수많은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죽인 학살 국가였다는 멍에를 물려주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심 어린 사죄를 표했고, 그 덕으로 세계에 정상 국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상식인들 중에서 과거의 나치 독일과 지금의 독일연방공화국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일사부재리죠. 제대로 사죄한 것에 대해, 피해국들은 더 이상 감정적으로 다른 사죄를 요구하지 않고 그들을 용서했습니다.&lt;br&gt;&lt;br&gt;&amp;nbsp;또 다른 언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div align=&quot;center&quot;&gt;&amp;nbsp;&quot;나치와 맞서 싸웠던 빌리 브란트 총리는 그 곳에서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lt;br&gt;&lt;br&gt;&amp;nbsp;하지만 그는, 정말 그 곳에 무릎을 꿇어야 하지만 용기가 없어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lt;br&gt;&amp;nbsp;&lt;br&gt;&amp;nbsp;무릎을 꿇었다.&quot;&lt;br&gt;&lt;/div&gt;&lt;br&gt;&lt;br&gt;&lt;br&gt;&amp;nbsp;전후 서독은 정부를 구성하는 데에 대하여 전범을 배제했지만, 엄격하게 평가하면 그것은 철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후 집권한 기민당 인사들 중에는 나치에 대한 단순 가담자로서 사면받은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은, 과거사 청산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보수 세력이 계속 집권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lt;br&gt;&lt;br&gt;&amp;nbsp;말했듯이 빌리 브란트는 나치 치하에서 반정부 운동을 벌였던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 자신은 나치에 대해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랬기에, 그는 무릎을 꿇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고, 자신이 반대한 일이었기에, 그것을 미화하고 합리화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뜻이었다고는 해도 전후 전범들로 정부를 도배한 일본은, 과거의 만행이 바로 그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기에 진실된 반성을 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어처구니없이 과거를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을 합리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동안 정권을 차지해 왔습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독일의 다행스러운 점은, 독일에도 과거를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책임 있는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불행한 점은, 일본에도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반성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책임 있는 자리에 앉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피해자 묘역에 무릎을 꿇었고, 역대 일본 총리의 대부분은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참배합니다. 하물며 이들의 차이는…&lt;br&gt;&lt;/div&gt;&lt;/div&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1964</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Wed, 17 Aug 2011 05:19:1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서투른 모습 보이지 않았으면</title>
<description>&amp;nbsp;과거에 저는 민주노동당원이었고,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창당되었던 2008년 3월 경 진보신당 당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가피하게 당이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볼 수 없었고 당원활동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다시 그럴만한 사정이 되고 보니, 어느새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의 합당 논의를 하고 있더군요.&lt;br&gt;&lt;br&gt;&amp;nbsp;이에 대해 비판을 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현재 민주노동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 세력에 대하여 막말에 가까운 비난도 했었지만 그것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비겁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저는 제 입장을 그렇게 정리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국민참여당이 진보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저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우리나라 보수, 별 것 없습니다. 가진 것 많고 누리는 것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이념적 네임택을 찾다가 갖다 붙인 것이 보수입니다. 그런 사상적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쉽게 정체성의 공유에 성공하곤 합니다. 자유선진당이 한나라당을 비판하곤 하는 것은 그들이 야당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서로간에 보수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고, 보수의 정체성을 놓고 서로를 검증하는 일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요.&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걱정하는 부분은, 결국 국민참여당과 유시민 대표가 자칭 민주세력이 보내는 &apos;트로이 목마&apos; 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방향으로서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폭발력이 있는 우려라 하겠습니다. 사실상, 국민참여당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민주당과 비슷하다고 여겨집니다.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 통합에 참여할 경우 진보정당의 이념적 좌표가 어쨌든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적어도 지금보다 &apos;더 왼쪽&apos; 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lt;br&gt;&lt;br&gt;&amp;nbsp;저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우리가 한나라당을 공격할 때 극우정당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정확한 의미에서 한나라당이 극우정당의 충분조건을 모두 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극우정당의 경우,&lt;br&gt;&lt;br&gt;&amp;nbsp;- 통일 문제에 대해서 : 통일 안해도 좋다. 전쟁을 불사할 수 있다. (송영선)&lt;br&gt;&amp;nbsp;- 복지 문제에 대해서 : 노숙자 밥은 먹여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 (최병렬)&lt;br&gt;&amp;nbsp;- 정치 문제에 대해서 : 대통령 등 정무직 공무원은 대졸자 이상이어야 한다. (전여옥)&lt;br&gt;&amp;nbsp;- 경제 문제에 대해서 : 야당은 경기가 나빠야 득을 본다. (홍준표)&lt;br&gt;&lt;br&gt;&amp;nbsp;이런 것들로도 볼 수는 있는데, 한나라당은 초지일관이 안 되는 정당이어서 극우정당이 되고싶어도 되지 못합니다. 전쟁도 불사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정권인 이명박 정부도 어쨌든 북한과 대화는 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상식이니까요. 이 상식을 넘어야만 극우정당이 됩니다. 황우여 원내대표가 이번에는 영유아 무상보육을 천명했고, 전여옥 여사... 아니 의원의 발언이 나간 뒤 한나라당에서는 학력 차별의 &apos;오해&apos; 소지가 있었던 발언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홍 의원, 야당때 어땠는지 몰라도 여당 대표 된 이후에는 &apos;국민주로 국민에게 재산증식의 기회를 주자&apos; 라고 나팔을 불고 계십니다.&lt;br&gt;&lt;br&gt;&amp;nbsp;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소위 중도라 하는, 그 집단의 성격과 성향과 행동양식을 구분지을수도 가름할 수도 없는 불분명한 유권자 층이 대한민국에는 유독 많습니다. 어차피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좌우에서 각자의 표를 안고, 가운데 표를 갖고 싸우는 것이 맞기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가운데 &apos;허리&apos; 가 굵습니다. 원래 정치적인 신념이 비교적 구체화되어 있는 유권자는 저번에 클린턴을 찍었는데 그 다음 부시를 찍는다든가 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인단의 숫자가 아닌 실득표율이 항상 박빙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lt;br&gt;&lt;br&gt;&amp;nbsp;포퓰리즘, 포퓰리즘 하는데 그래도 이 단어 자체가 시작부터 우리가 쓰는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apos;인기영합주의&apos; 라는 뜻이 아니었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본래는 포퓰리스트라 하면 민의를 잘 구현하는 정치인을 의미했습니다. 그렇다곤 해도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이나, 민의를 잘 구현하는 정치인이나, 사실 표현을 이래저래 바꾼 것일 뿐 그 두 가지의 차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어쨌든 요즘 우리가 쓰는 의미대로, 정치인들을 포퓰리스트로 만드는 건 본질적으로는 한국 유권자 층에 &apos;불분명한 중도&apos; 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lt;br&gt;&lt;br&gt;&amp;nbsp;우리나라 정당과 정치인에 소신이 없다, 정책이 없다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은 계약직이고, 국민과의 계약에 성공하지 못한 정치인은 백수가 되고 정당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을 튼튼하게 지지해주는 지지층이 있어야 정치인도 소신을 지킬 수 있고 정당은 정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 10을 놓고 보면, 그런 고정 지지층을 한나라당은 3, 민주당은 2 정도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 확실한 진보성향 유권자를 1이라고 본다 해도, 피아식별이 불가한 &apos;불분명한 중도&apos; 가 4나 됩니다.&lt;br&gt;&lt;br&gt;&amp;nbsp;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희망버스를 타지 못하거나,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연일 복지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바로 이 4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 진보정당들은 타 기성 정당에 비해 근본주의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고정 지지층 1 이상의 세력이 되기 힘듭니다.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의 정체성에 어긋나는 정책을 내놓고, 민주당이 자꾸 보수화하는 것이 바로 이 4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 대일본제국 만세를 외쳐도 그들을 변함 없이 지지해주는 세력이 4, 혹은 5에 이르렀다면 그들은 순수한 극우정당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lt;br&gt;&lt;br&gt;&amp;nbsp;(물론, 지지할 정당이 없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을 정도, 정치가 술자리에서 씹히는 안주거리에 불과할 정도로 저질스러운 수준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건 이미 서로간 악순환에 접어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엉망이어서 무관심, 관심 안 받으니 더 엉망, 반복)&lt;br&gt;&lt;br&gt;&lt;br&gt;&amp;nbsp;국민참여당이 참여함으로써 통합 진보정당의 좌표가 오른쪽으로 움직일 경우, 민주당과의 접점도 생길 수 있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인터뷰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면서도 &apos;어쨌든 그들이 우리(양 진보정당)와 가장 가까운 동맹군이라는 것은 사실이다&apos;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서로간 감정적인 문제는 있을지라도 정체성이나 노선에서 전혀 다른 길을 갈 수 없는 정당입니다.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에게 민주당은 &apos;친구의 친구&apos; 였는데, 친구와 결혼하면서 친구의 친구가 그냥 친구가 되는 셈입니다.&lt;br&gt;&lt;br&gt;&amp;nbsp;조승수 대표를 포함한 진보신당 내 주류를 차지하는 &apos;국민참여당 반대파&apos; 에게는, 다수파의 횡포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가 있습니다. 진보신당 연대회의의 창당은 기본적으로 민주노동당 민족자주계의 횡포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국회의원 10명짜리, 교섭단체 반쪽짜리밖에 안 되는 작은 정당에서도 소위 민중민주계는 &apos;다수의 횡포&apos; 에 견디다 못해 살림을 따로 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통합을 말하는 민주당은 국회의원이 87명에 이르는 정당이며, 전국적으로 탄탄한 동원조직을 가진 정당입니다.&lt;br&gt;&lt;br&gt;&amp;nbsp;여기에 국회의원 1명짜리, 혹은 합쳐봐야 창조한국당까지 포함한다 해도 9명짜리 정당이 87명짜리 정당과 한 집을 쓰게 된다고 하면 겁부터 집어먹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경우 민주적 절차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횡포의 근거를 주게 되는 일이 될 뿐입니다. 히틀러와 나치 정부도 완벽하게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완벽한 민주적 정통성을 획득한 상태로 출발했고, 지난 대선 직후 구성되었던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도 완벽하게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격침되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작은 정당들이 작으나마 밖에서 따로 당을 유지하려 하는 것은, 소 꼬리보다는 닭 머리가 되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고, 어쨌든 따로 있어야 하나의 몫으로 대접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상임이사국이니 초월적인 강대국이니 하는 부분을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유엔에서 미국도 나라 &apos;하나&apos; 고, 지극히 가난하여 선거를 치를 비용조차 대지 못하는 동티모르도 나라 &apos;하나&apos; 입니다. 어차피 세력상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할 바에야, 최소한 명목상의 &apos;앉을 의자&apos; 라도 보장받으려면 밖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도 하기는 어렵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이런저런 사정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최근까지의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일견 비겁해 보이는 언행을 보여온 것은 사실입니다. - 혹은 정치적으로 노련한 유시민 대표의 수사에 말려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 처음, 조승수 대표는 유시민 대표와 국민참여당에 대하여 FTA로 상징되는 참여정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을 요구했습니다. 노무현의 소울 메이트라 하는 유시민 대표가 설마 참여정부의 정책을 부정하면서까지 진보정당 통합에 참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판단에 의한 발언이었겠지요. 그런데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이던 유시민 대표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요구에 덜컥 응해버리고 맙니다.&lt;br&gt;&lt;br&gt;&amp;nbsp;진보신당 쪽으로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을 상황이 되었는데, 진보교연을 중심으로 이에 다시 비토하는 의견이 개진됩니다. &apos;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반성이 아니라 조직적인 성찰이다&apos;, &apos;말 한마디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다&apos; 라는 논리였습니다. 그 정도로 방어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였던 국면은 국민참여당이 진보정당 통합 참여 당내 추진기구를 발족시키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정한 진보정당 통합 조건에 모두 동의한다는 의사를 의결하면서 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조직적으로 엎드리진 못할 것이라고 보고 던졌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돌아온 것입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국민참여당은 점점 노골적으로 다가오고, 이 와중에 민주노동당은 적극적으로 그들을 끌어들이려 하니, 진보신당과 조승수 대표로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apos;야당 통합의총&apos; 같은, 정치적으로 매끄럽지도 않고 결과적으로는 치졸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제안이 섣부르게 나온 것이겠지요. 그 정도로 여유를 잃었다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한편 평정을 지키지 못하고 나온 &apos;수사&apos; 에 적지 않게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lt;br&gt;&lt;br&gt;&amp;nbsp;당이 다른 의원들이 모인 통합 의원총회란 우리나라 정치사에 있어본 적이 없었던 일로, 각자 다른 당 의결구조가 온존하는 상황에서 법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유효성이나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야 5당 중 의석이 없는 정당은 국민참여당 뿐이라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해결하고자 야 5당이 뭉치려고 모인 자리에서, 말 그대로 &apos;너희 국민참여당은 빠져라&apos; 라고 맞대놓고 말한 셈입니다. 섣불리 국민참여당을 배제하려 하다가 상식 밖의 실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의 통합도 하기 전에 국민참여당에 추파를 보내는 것은 통합을 저해시키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진보신당으로 보았을 때는 국민참여당의 참가가 장차 민주당과의 통합의 &apos;제1보&apos; 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은 어떤 경우 현실화할 수도 있습니다.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결별하며 나왔을 때, 격려도 받았지만 비난도 받았습니다. 상징만 빼앗기고 내팽개쳐질 수 있다는 근본적인 공포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진보신당이 이 이상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 합니다.&lt;br&gt;&lt;br&gt;&amp;nbsp;집권하기 위해서는 뭉쳐야 한다든가, 순수주의가 당세 확장에 도움이 안된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정체성이나 정책도 때에 따라서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언제든지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국민참여당이 그 대상이 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과민하게 반응하고 너무 절박하게 여기다가 서투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전혀 득이 될 것이 없습니다.&lt;br&gt;&lt;br&gt;&amp;nbsp;더 이상 당내 계보에 대한 것도, 정책의 구조에 대한 것도, 정당의 나아갈 길에 대한 것도 생각하기에는 버거워진 지친 당원에게, 적어도 당의 대표가 치졸한 모습으로 수치심을 주시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진보신당 당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어 하는 작은 소망만이라도 지키고 싶습니다. &quot;국회의원 없는 너네는 빠져라&quot;, 그래봐야 우리도 국회의원은 대표 한 분 뿐입니다. 동네 아이들이 골목길에 줄 긋고 &quot;여기는 우리땅, 넘어오지 마라&quot; 하는 수준의 발언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1621</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Sun, 07 Aug 2011 22:57:3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세종에 대한 이야기들</title>
<description>&amp;nbsp;한그루님이 세종대의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법인 &lt;STRONG&gt;금부민고법&lt;/STRONG&gt;禁府民告法을 언급하셨는데요. 아무래도 너무 황당한 법이다 보니 저도 이전에 관심을 갖고 파본 적이 있었습니다. 세종&lt;STRONG&gt;대왕&lt;/STRONG&gt;이 역사에 남을 현군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현군의 치세 하에 저런 어처구니 없는 법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제가 기억하기로 저 법안의 입법을 주도한 사람은 당시 예조판서인 허조라는 사람인데, 예조라면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교육과학기술부, 외교통상부에 해당한다고 위키백과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더군요. 그런 곳에서 백성들의 송사에 관련한 사법적 부분에 개입할 권한이 있나 하는 의아함도 들었지만, 어쨌든 이 예조판서 허조가 금부민고법을 입법하려 하자 총리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의정부에서 반대했다고 합니다.&lt;BR&gt;&lt;BR&gt;&amp;nbsp;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황당한 법이니까요. &lt;STRONG&gt;백성이 관청이나 수령을 고발할 수 없다&lt;/STRONG&gt;니요. 저런 법을 만들어 두면 지방 수령들이 가렴주구를 행할 것이 틀림 없다는 비판에 허조는, &apos;수령의 일은 만인이 보고 있으므로 그들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apos; 라고 반박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반박이지만 세종은 그럴듯하다고 여기셨는지 이 법을 재가했습니다. 바로 전국적으로 시행이 되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물론 이 시대의 향촌 상황을 알아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까지, 한반도에는 한 번도 정확한 의미에서의 중앙집권 국가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지방은 항상 토호라 불리는 호족들이 장악하고 있었지요.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은 지방 호족을 축출하고 중앙집권을 관철하고자 전국을 부목군현 체제로 정비하고 여기 모두에 수령을 파견합니다. 부윤(부사), 목사, 군수, 현감(현령)이라는 이름의 관선 지사 및 시장들이 일제히 파견된 겁니다.&lt;BR&gt;&lt;BR&gt;&amp;nbsp;하지만 호족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리 없었고, 곧 각처에서는 중앙에서 파견한 수령과 지방 호족들이 힘겨루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이래서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령은 수령이라고 받들어야 하고, 호족은 호족이라고 받들어야 하니까요. 어느 한 쪽이 얼른 실권을 잡아버리는 편이 좋습니다. 태종은 유향소가 호족들의 거점이 된다고 판단하고 전국의 유향소를 모조리 없애버립니다.&lt;BR&gt;&lt;BR&gt;&amp;nbsp;지방 권력기관을 잃어버린 호족들은, 애초 무장투쟁이나 불법적 저항을 할 물리적인 힘이 없었기 때문에 투쟁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수령들의 행정을 꼬투리삼아 그것을 상급 관가에 고발하는 방법으로 지방 행정을 마비시켜 실권을 장악하려 한 것입니다. 이렇듯 향촌에서 행정기관의 권위가 서지 않자 세종대에 아예 관가에 대한 소송을 금지시켜 정부의 중앙집권 정책에 훼방을 놓는 기도 자체를 금지하려 한 것이, 이 법이 나오게 된 배경이기는 합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하지만 그런 배경이 있었다 해도, 실제 백성들이 수령을 고소할 수 없게 되자 곧바로 지방 수령들의 가렴주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관선 지사 비슷하다고 했지만 이 시대의 수령은 지방의 사법, 행정, 치안을 장악하는 전권을 쥐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들이 백성들을 수탈하기 시작하면 그 결과는 참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한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여기 저기서 이 어처구니 없는 법을 견딜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민란의 조짐까지 일자 조정에서도 이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젊은 간관들의 주도로 금부민고법의 폐해가 제기되자 허조는 한 발 물러납니다. -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법안은 허조 혼자서 밀어붙인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유명한 정승인 맹사성도 함께 주도한 법이라는 것입니다. 황희와 함께 명신으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맹사성이죠 - 하지만 그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허조는 이런 논리를 폈습니다.&lt;BR&gt;&lt;BR&gt;&amp;nbsp;현재 조관造官 - 어사 파견 제도 - 을 하면서도 수령에 대한 고소도 허가하는 것은 지방 행정관들을 이중으로 관리하는 모순이니, 수령에 대한 고소를 허가할 것 같으면 조관도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금부민고법은 폐지되었지만 조관 제도도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또한 여기에도 단서 조항이 붙었는데, 수령에 대한 고소를 접수는 하되 이를 심리하여 수령을 치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속 조치가 없는 고소가 무슨 소용일까요?&lt;BR&gt;&lt;BR&gt;&lt;BR&gt;&amp;nbsp;이것 이외에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군이라 생각하는 세종대의 상식 밖의 일들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lt;BR&gt;&lt;BR&gt;&amp;nbsp;황희는 세종대의 청백리 정승으로 유명하지만, 요즘에는 황희가 부정축재 등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비교적 알려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교의 나라인 조선에서 관리가 부정축재 혐의를 받는다면,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받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냐는 것이지요. 부정축재 혐의로 간관의 탄핵을 받으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리고 탄핵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사임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lt;BR&gt;&lt;BR&gt;&amp;nbsp;황희가 우의정 시절, 사위를 통해 전답을 수수하고 이권을 보아준 일이 들통이 나 대간으로부터 탄핵을 받았습니다. 한 나라의 재상이 부정축재 혐의로 탄핵을 받았으면 물러나는 것이 관례인데, 황희는 사임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대간의 탄핵이 온전히 사실로 드러나자, 세종은 어쩔 수 없이 황희를 우의정에서 파직시켰습니다. 자기가 사직서를 쓴 것도 아니고 왕으로부터 부패혐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파면을 당한 것이 황희입니다.&lt;BR&gt;&lt;BR&gt;&amp;nbsp;그런데 그 후 7개월여만에, 세종은 황희를 좌의정으로 복직시킵니다. 우의정과 좌의정, 영의정은 모두 정1품의 재상이지만 서열을 따지자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순입니다. 이건 말하자면 부정축재가 드러난 부총리를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경질했다가, 채 1년도 지나기 전에 국무총리로 재기용한 셈입니다. 그것도 청렴을 귀히 여긴다는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그 조선에서도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이 황희에 대한 개인적인 신임만으로 이런 인사를 행했습니다. 능력만 있다면 도덕성은 좀 떨어져도 상관없다, 이거 누구랑 비슷한데요.&lt;BR&gt;&lt;BR&gt;&amp;nbsp;일이 이걸로 끝났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텐데 그렇지가 않네요. 부패로 파직된 관리는 영구히 매장되는 것이 당연했던 조선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간관들이 이를 그냥 보고 넘길 리가 없었습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서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서 해당 인사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답니다. 이에 세종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의 이미지처럼 너그러이 젊은 대간들을 타이르면서 자신의 인사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설득했을까요?&lt;BR&gt;&lt;BR&gt;&amp;nbsp;삼사의 대간을 모조리 파직시켰다고 합니다. 이유는 &lt;STRONG&gt;너희가 뭔데&lt;/STRONG&gt;.&lt;BR&gt;&lt;BR&gt;&lt;BR&gt;&amp;nbsp;세종이 &apos;입 바른 말&apos; 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또 다른 사건에서도 볼 수 있는 면입니다. 세종대에는 유정현이라는 정승이 있었는데, 태종 당시 세자였던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옥사로 몰아 죽이는 것에 일조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장인을 죽이는 데에 가담한 사람이니 세종이라고 좋은 감정이 있지는 않았겠지요. 하지만 세종은 즉위한 뒤에도 유정현의 과거를 묻지 않고 그대로 유임을 시킵니다.&lt;BR&gt;&lt;BR&gt;&amp;nbsp;유정현이 이에 감격했는지, 어느날 세종과의 술자리에서 세종이 술을 따라주자 그의 앞에 넙죽 엎드렸습니다. 그 때 그는 영의정이었다고 해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그 자리죠. 일국의 재상이, 왕이 술 따라준다고 그 앞에 낼름 꿇어앉아 절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술자리인데. 논어에서도 &apos;지나친 공경은 예가 아니다&apos; 라고 했거든요. 이를 안 삼사의 간관들이 유정현의 행실을 문제삼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첨하는 신하라는 거였어요.&lt;BR&gt;&lt;BR&gt;&amp;nbsp;하기사 유정현으로서는 세종이 즉위했을 때 자기는 제 자리 부지 못하리라고 체념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의외로 세종이 자기를 그냥 내버려 두니 그것이 너무 고마워서, 감격해서 그랬을지도 모르죠. 혹은 앞으로도 잘 봐달라는 제스처였을 수도 있고. 어쨌든 일국의 재상으로서 적절한 처신이 아니었다는 건 확실합니다. 간관들의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세종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간관들의 명분을 치하하면서 대신의 체면도 살려주는 용인술을 보여줬을까요?&lt;BR&gt;&lt;BR&gt;&amp;nbsp;삼사의 대간을 모조리 파직시켰다고 합니다. 이유는 &lt;STRONG&gt;함부로 내 대신을 건드리지 마라&lt;/STRONG&gt;.&lt;BR&gt;&lt;BR&gt;&lt;BR&gt;&amp;nbsp;문자 창제나 음악과 같은 문화적인 부분 외에, 세종도 권력이라는 부분에서는 여느 왕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거지요. 금부민고법같은 것을 시행한 건 무리를 해서라도 중앙집권을 완성시키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던 거고, 대간들이 자신이 임명한 대신들을 탄핵하면 그 사유도 따져보지 않고 그것을 인사권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여 모조리 쫓아내 버렸던 거고. 저런 사건들 이후 대간들은 세종의 인사권을 문제삼거나 대신을 탄핵하는 일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하면 잘리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세종도 그런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하나도 없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육식을 좋아해서 편식만 하다보니 고혈압, 당뇨, 백내장이 있었고, 여색을 탐해 자식을 22명이나 두었는데 성병도 있었고… 같은 이야기는 인신공격이겠죠?</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1533</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Sat, 06 Aug 2011 07:04:3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는 꼼수다</title>
<description>&amp;nbsp; 김어준 총수, 정봉주 &lt;STRONG&gt;전&lt;/STRONG&gt; 의원, 김용민 &lt;STRONG&gt;전&lt;/STRONG&gt; 교수의 &lt;STRONG&gt;나는 꼼수다&lt;/STRONG&gt;를 즐겨 듣고 있습니다.&lt;BR&gt;&lt;BR&gt;&amp;nbsp; 처음에는 본 척도 하지 않던 기성 언론들도, 그들이 예상 외로 인기를 끌자 기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어쨌든 정봉주 의원이 이렇게 말을 잘 하는 사람인지도 처음 알았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한편으로는 좀 씁슬하기도 합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저는 이명박 대통령 지지자 혹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이런 비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quot;너희들은 툭 하면 잡혀간다 잡혀간다 하는데 그러는 너희들 중 실제로 잡혀간 사람이 누구냐?&lt;BR&gt;&lt;BR&gt;&amp;nbsp;전가의 보도로 들먹거리는 미네르바는 말 그대로 미네르바 하나 뿐이지 않느냐? &lt;BR&gt;&lt;BR&gt;&amp;nbsp;너희중 정권의 압력을 받고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인신적인 구속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 &lt;BR&gt;&lt;BR&gt;&amp;nbsp;왜 있지도 않는 사실을 가지고 현실을 호도하느냐?&quot;&lt;BR&gt;&lt;BR&gt;&lt;BR&gt;&amp;nbsp;그 때 별로 답을 하고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몹쓸 습성을 가진 것은 그 쪽 정치인이나 지지자들이나 매한가지여서 말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요지는 이렇습니다. 실제로, 높으신 분들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유명인사들 이외에 일반인들 수준에서 그런 압력이나 탄압을 받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건 할 수 있었는데도 안한 것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어서 안 한 거지요. 저도, 제 주변인들도, 별로 넓지 않은 제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명박 정권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lt;BR&gt;&lt;BR&gt;&amp;nbsp;그러나 중요한 건 국민들이 &lt;STRONG&gt;그런 느낌을 받았다&lt;/STRONG&gt;는 겁니다. 말 잘못 하면 잡혀갈 수도 있다, 신변에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느낌을 평범한 사람들이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거지요. 실제로 정부의 국민에 대한 탄압은 구체화된 실현으로도 성립되지만 이런 낌새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납니다.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자유를 인식하는 상황이, 최소한은 참여정부, 넓게는 문민정부 이전으로 되돌아가 버렸다는 겁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amp;nbsp;자기검열은 이런 분위기를 먹고 자랍니다. 사실 하고싶은 말 해 버려도 정부가 관심조차 갖지 않을 보통 사람들도, 인터넷에 글 하나 쓰는데도 껄끄러운 느낌을 받거나 어딘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한나라당 지지자의 비난처럼 피해망상이나 현실인식의 왜곡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디로부터 왔나요? 이명박 정부가 미네르바 잡아가두고, 쥐벽서 잡아가두고, 김제동 하차시키고, 김미화 압력넣고, 그런 &lt;STRONG&gt;탄압&lt;/STRONG&gt;으로부터 비롯된 거 아닌가요?&lt;BR&gt;&lt;BR&gt;&amp;nbsp;&lt;STRONG&gt;나는 꼼수다&lt;/STRONG&gt;, 사실 대단한 방송 아닙니다. 그들도 김구라의 시사대담을 언급했지만 이전에는 더 적나라하고 더 직접적이고 더 과격한 이야기를 방송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공중파는 공중파 나름대로의 기준과 선이 있겠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뭐 그런게 있나요. 김어준 총수, 정봉주 의원, 김용민 교수가 웃음 섞어 말하는 것도 별 게 없습니다. 그들도 말 중간중간에 &lt;STRONG&gt;이것은 추정이다&lt;/STRONG&gt;, &lt;STRONG&gt;소설이다&lt;/STRONG&gt; 하는데 그것은 자기방어가 아니라 조롱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조롱이 통한다는 것 자체가 우울한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lt;BR&gt;&lt;BR&gt;&lt;BR&gt;&amp;nbsp;기자님들이 그럴듯하게 분석해 놓았듯이, 기성의 매체들이 이 정권 들어 &lt;STRONG&gt;말할 수 있는 수위&lt;/STRONG&gt;의 상한선에 큰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이 실체가 있는 압력이든, 자기검열이든 말입니다. 기성 방송을 듣는 사람들은 짜증스러웠겠지요. 뻔히 눈에 보이는 것도 차마 이야기하지 못해서 빙빙 둘러가는 행테가 말입니다. &lt;STRONG&gt;나는 꼼수다&lt;/STRONG&gt;가 그것을 넘었다는 것인데, 이명박 정권 이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대단한 것도 아니건만 사람들이 이 정도도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불행은 아닐지요.&lt;BR&gt;&lt;BR&gt;&lt;BR&gt;&amp;nbsp;세계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의 평가에서 대한민국이 &lt;STRONG&gt;언론 자유국가&lt;/STRONG&gt;에서 &lt;STRONG&gt;부분적 언론 자유국가&lt;/STRONG&gt;로 강등되었다지요?&lt;BR&gt;&lt;BR&gt;&lt;BR&gt;&amp;nbsp;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직장을 잃고, 고문을 당했을까요? 도덕성이 별거냐, 경제만 살리면 되지, 내 지갑 좀 두둑하게 해줄 것 같은 사람 뽑아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을까요, 당시 그 사람 찍었던 분들은? 자유를 돈 받고 팔았다 하면 그건 틀린 말입니다. 돈도 못 받았잖아요. 꼼수는 그 사람만 부렸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 찍으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꼼수였어요.&amp;nbsp;&lt;BR&gt;&lt;BR&gt;&lt;BR&gt;&amp;nbsp;&lt;STRONG&gt;우리는&lt;/STRONG&gt; 꼼수다.&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1476</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Fri, 05 Aug 2011 04:55: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먹이를 주지 마시오</title>
<description>&amp;nbsp;가장 이상적인 건 이런 것이었겠지요.&lt;br&gt;&lt;br&gt;&amp;nbsp;일본 의원들이 입국합니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 이들은 일본인으로서 한국의 
영토에, 한국의 실정법에 의해 입국 절차를 밟게 되니 이야기는 끝난 것입니다. 이들의 입국만큼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해주는 일이 없습니다. 어쨌든 이들이 공항을 나서면, 항의하는 인파는 커녕 취재기자 한 명 없이 보내주는 겁니다. 
그들이 울릉도를 가서도, 그리고 &apos;관광차&apos; 독도를 방문할 수 있다 해도 일체의 무관심으로 대응해주는 거지요. 결과적으로 그들은 
평화적으로 이웃나라에 입국하여 평화적으로 이웃나라의 도서를 관광하고 평화적으로 귀국하게 되는 그림.&lt;br&gt;&lt;br&gt;&amp;nbsp;하지만 전체주의
 국가라면 모를까, 그런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당장 &apos;열혈&apos; 시민단체들이 달려들테고 기자들도 벌떼처럼 모여들었겠지요. 항의표시를 
하는 몇몇 사람들이 먹거리를 투척하면서 공항이 난장판이 되었던데, 그거 다 본인들이 스스로 치우고 가셔야 합니다. 공항 직원들은 
실제로 나라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퍼포먼스, 개인적 울분이나 푸는 행위에 대한 뒤치닥거리 해주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공장소에서 행패를 부린 셈이 되었으니 처벌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제가 화가 난 이유는, 일본에서도 아무 관심이 없는 이번 일에 왜 이렇게 민관이 함께 나서서 과민반응을 하고 있냐는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일
본에서는 대다수 국민들이 이번에 일본 국회의원들이 한국을 방문한 사실조차 모릅니다.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인 &apos;2ch&apos;의 반응을 
긁어다 기사화하는 신문사들도 있던데 아연할 따름입니다. 거기 질이 어떤가 하면 우리나라로 치면 DC와 급을 맞추거나 그보다 
못하거나 그런 수준입니다. 일본의 여론을 대표하는 곳도 아니고 일본의 인터넷 여론을 대표하는 곳도 아니라 이 말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여론을 보여주겠다며 DC의 글과 덧글을 긁어 가져가 기사로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lt;br&gt;&lt;br&gt;&amp;nbsp;대다수의 공중파 방송에서도
 의원들의 입국을 중요하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신문에서 기사의 중요도가 &apos;몇 단이냐&apos; 로 결정된다면, 방송에서 기사의 중요도는 
&apos;몇 번째냐&apos; 로 결정되지요. 대다수의 방송사 뉴스가 이 사건을 후반부나 맨 마지막에 짤막하게 보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들로서는 일본 정부도 탐탁찮아 하고 자민당에서도 안 가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좌충우돌하는 &apos;깨는&apos; 의원들의 돌출행동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어딜 가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는 정치인들은 있는 법이고, 그들은 자국 국민으로부터도 냉소 이상의 것을 받지 
못합니다.&lt;br&gt;&lt;br&gt;&lt;br&gt;&amp;nbsp;일본의 조선일보라 할 수 있는 산케이 신문이 이번 사건과 맞물려, 원래는 연례 행사처럼 하는 
&apos;독도는 누구 땅이냐&apos; 라는 여론조사에서 일본 학생들이 그것을 &apos;일본 땅이다&apos; 라고 답한 비율이 10%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으로서도 일견 득 될 것이 없어 보이는 그런 여론조사를 발표하여 기사화한 것은 물론, &quot;이것 봐라, 개판이다. 앞으로 더 
다케시마 교육에 힘써라&quot; 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어쨌든 우익들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일본인들의 
정치적 이슈에 대한 무관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또 다른 인터뷰에서 일본 학생들이 &quot;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quot; 라고 말하는 장면을 내보내며 일본 우익의 교과서 왜곡이나 역사 왜곡 교육을 비판하는 논조도 있지만 
그것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말했다시피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침탈 기도는 일본인들의 일치되고 강한 신념과 믿음에 근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이 학교에서 그런 내용을 배우냐 아니냐가 여기에서 중요한 변수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정치인들은
 일본인들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에 관심이 없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독도
 침탈 기도를 벌여 왔습니다.&lt;br&gt;&lt;br&gt;&amp;nbsp;(또한 덧붙여 개인적으로, 저는 교과서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결정짓는다고 생각 
안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다른 예를 들면, 만약 교과서가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신념과 정의,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 등을 부여할
 영향력이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독재국가로 남아있었을 겁니다. 누군가는 유신헌법을 공부하고도 그 법으로 사람들을 판결할 수 
없다며 변호사가 되었고, 독재정권이 만든 교과서로 공부하고도 그 정권에 들고 일어난 고등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교과서의 영향력은 그
 정도가 아닐까요?)&lt;br&gt;&lt;br&gt;&lt;br&gt;&amp;nbsp;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일간 민감한 문제가 터지면 언론사나 기자들이 괴롭힌다며 짜증을 
호소하던 어머니도 요근래에는 그런 말을 안 합니다. 전공도 아니고 관심도 없는 사람의 의견을 듣겠다며 귀찮게 굴면 외신기자를 불러
 &apos;너희들의 행태&apos; 를 고발하겠다고 한 엄포가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독어독문 전공의 대학 교수인 어머니는 재일교포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교육을 받으며 일본에서 자란 일본인인데, 일본 기자들에게는 어머니가 그저 &apos;한국인 지식인&apos; 으로만 보여 항상 민감한 
시기마다 코멘트를 해달라고 귀찮게 굴곤 했습니다.&lt;br&gt;
&lt;br&gt;
&amp;nbsp;&lt;br&gt;
&amp;nbsp;정부 편을 드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일본 의원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대로 갈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입국을 금지하고 격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의 트위터까지 긁어 기사를 만드는 국내 언론의 치졸함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조리 기사화되고 그들의 트위터까지 기사로 &apos;중계&apos; 를 해 주고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물난리에 전국이 난리에다, 이 와중에도 주민투표 하겠다며 나서는 분까지 있는데 이런 코메디같은 사건이 정치면 탑을
 차지해야 합니까? 그들이 식사로 비빔밥을 먹었다는 것이 기사거리가 될 정도의 일일까요?&lt;br&gt;
&lt;br&gt;
&lt;br&gt;
&amp;nbsp;&quot;먹이를 주지 마시오&quot; 라는 말이 있지요?</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1351</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Mon, 01 Aug 2011 18:34: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구조 자체가 다르네요</title>
<description>&lt;P&gt;&amp;nbsp;급한 일만 처리하고 금방 올 줄 알았던 일본행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또 몇 개월 방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글 이어 쓰기엔 이미 &lt;STRONG&gt;소재의 적시성&lt;/STRONG&gt;이라는 버스가 떠나 버렸군요.&lt;BR&gt;&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나이브한 관점에서, 현재 &lt;STRONG&gt;분열&lt;/STRONG&gt;되어 있다 하는 야권이 쉽사리 통합되지 않는 데에 답답함을 느끼는 유권자도 있을 겁니다. 애초 &lt;STRONG&gt;분열&lt;/STRONG&gt;이라는 말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동질성을 공통으로 내세울 수 있는 무엇들이 갈라져 있을 때에나 쓰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분열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분열이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를 &lt;STRONG&gt;야권 분열&lt;/STRONG&gt;이라 하는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lt;BR&gt;&lt;BR&gt;&amp;nbsp;각설하고,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제 기억으로 고려대학교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lt;BR&gt;&lt;BR&gt;&amp;nbsp;&quot;현재 정치인들 중에는, 한나라당에 있든 민주당에 있든 상관없는(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quot;&amp;nbsp;&lt;BR&gt;&lt;BR&gt;&amp;nbsp;맞는 말입니다. 또한 이런 말도 했습니다.&amp;nbsp;&lt;BR&gt;&lt;BR&gt;&amp;nbsp;&quot;사람 일이라는 것이, 무 자르듯 칼같이 되는 것은 아니다.&quot; &lt;BR&gt;&lt;BR&gt;&amp;nbsp;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같은 정치적 노선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동질성을 확인하면서 공동의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시민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정당도 사람이 모여 만드는 것이라 그것이 생각처럼 원칙과 기준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amp;nbsp;이념이 달라도, 하나의 당 테두리 내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게 옳다는 긍정론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현실론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특히 정치에서만 한정짓지 않더라도, 인간이 만드는 집단은 공통선을 추구할때보다는 공통악에 반대할 때 더 쉽게 뭉치고 더 강하게 뭉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나라당이라는 정당이 한국 정치사에서 사라져야 할, 최소한 견제받아야 할, 도덕성도 일관성도 과거에 대한 반성도 없는 정당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세력은 하나의 정당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반복하지만 긍정론이 아니라 현실론입니다.&lt;BR&gt;&lt;BR&gt;&amp;nbsp;하지만 또다른 현실도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최근 발언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희 대표는 야권 통합에 대하여 이념이나 정책, 가치관에 무게를 싣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현재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참여당 통합 비토세력의 비판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언급하지만 저는 국민참여당의 진보정당 통합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입장을 정리해보지는 않았습니다.&lt;BR&gt;&lt;BR&gt;&amp;nbsp;이정희 대표는 노선에 앞서 구조를 말했습니다. 노선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만, 구조의 차이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성당원으로 당원민주주의를 하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은 전체적인 구조가 같으므로 통합을 할 수 있지만, 당원민주주의가 전혀 되지 않고 계파와 종이당원으로 운영되는 민주당은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통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에 반대한다는 하드웨어 하나만을 가지고 조립을 하기에는, 오퍼레이팅 시스템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겁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amp;nbsp;물론 이정희 대표는 구조가 같다는 것에 국민참여당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이 또한 그가 그동안 보여왔던 국민참여당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다시 한번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안 된다는 것에 방점이 찍히기보다는 국민참여당이 된다는 것에 무게가 있는 것으로도 볼 여지는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일단 국민참여당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정희 대표의 속내가 어떤가, 국민참여당의 진보정당&amp;nbsp;&lt;STRONG&gt;참여&lt;/STRONG&gt;는 바람직한가 아닌가, 혹은 진보신당의 입장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lt;BR&gt;&lt;BR&gt;&lt;BR&gt;&lt;BR&gt;&amp;nbsp;의도가 어떠했건, 이정희 대표가 매우 중요한 것을 말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민주당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야당이고, 한나라당과 함께 나란히 놓여지는 기득권이어서, 한나라당을 이긴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고는 여겨 왔습니다. 하지만 대 한나라당 전선에 대하여 통합이나 연대의 필요성은 강조되어 왔어도, 그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딱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lt;BR&gt;&lt;BR&gt;&amp;nbsp;오로지 누구를 반대하고 누구를 견제하기 위해서 뭉쳐야 한다는 논리는 많은 경우 헛점과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민주당과의 공동전선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면서도, 노선의 차이나 그들의 보수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확실한 반대의 이유는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치는 적보다 친구가 많아야 이기는 분야이고, 이겨야 정책을 관철할 수 있는 승부이기도 합니다. 차이에 집중하다 항상 주변세력으로 남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는 반론에 근본주의나 순수성만을 방패로 삼기에는 한나라당이 너무 강력했고 이명박 정부는 너무 막 나가고 있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그렇지만 구조가 다르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하고싶어도 실제로 할 수가 없다는 것 말입니다. 지금 민주당과, 민주당 외 나머지 3개 정당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하고싶은지 어떤지는 둘째 문제로 하더라도, 통합은 하고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호환이 전혀 안 되는데 답이 있나요. 게다가 아무리 저 쪽이 힘이 있다고 해도, 누가 봐도 민주주의라는 기본적인 표준조차 지키지 못하는 구버전으로 &lt;STRONG&gt;롤백&lt;/STRONG&gt;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lt;BR&gt;&lt;BR&gt;&lt;BR&gt;&lt;BR&gt;&amp;nbsp;오히려 통합 협상을 한 번 해볼만 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통합 성사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기회로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를 대내외에 확실히 알리게 되는 기회로 삼아보자는 의미에서. 그들은 어쨌든 제1야당이고, 제1야당의 수준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정치수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과 통합이나 연대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민주당 또한 구조에 변화가 있어야 그것이 한국 정치에 좋은 일입니다. 놔두면 천년 만년 저럴 사람들에게, 변화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것도 진일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71177</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Thu, 28 Jul 2011 08:00: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재난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3)</title>
<description>&amp;nbsp;일본에서 천재지변시 편의시설에 대한 약탈이 적은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높은 시민의식과 준법정신의 발로라고도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그러한 약탈 행위에 대한 처벌이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lt;BR&gt;&lt;BR&gt;&amp;nbsp;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범죄 행위에 대해 일본 형법이 타국에 비해 가중 처벌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례에 대한 그들의 공식적인 처벌조항 또한 보편적인 수준에서 머무릅니다. 다만 여기서의 처벌이란 단순히 사법적인 처벌만이 아니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우선, 우리나라가 이미 CCTV 왕국으로 어지간한 도시에서는 사각지대가 없을 정도로 CCTV 도배가 되어있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는 이미 우리나라보다 10년 이상 앞서있는 일입니다. 불특정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에는 반드시 감시용 카메라가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지진이 났다고 해서, 그렇게나 많은 그 모든 CCTV가 일괄적으로 모조리 먹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lt;BR&gt;&lt;BR&gt;&amp;nbsp;오히려, 일본에서는 일시적으로 전원 공급이 차단되어도 별 무리가 없는 설비가 되어 있는&amp;nbsp;CCTV가 많이 보급되어 있습니다. CCTV 판독이 필요해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오히려 재난시에 더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lt;BR&gt;&lt;BR&gt;&amp;nbsp;일본에서도 천재지변시 편의시설에 대한 약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적발된 많은 사례가 CCTV를 통한 것이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그리고 적발된 사례에 대해서는 사법처리에 덧붙여 사형(私刑) 집행이 시작됩니다. 고베 대지진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유사한 범죄에 대하여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해당자의 신원을 공개해버리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해당자는 물론 해당자의 가족들의 사회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이 온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생존형 사례와 악의적 범죄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lt;BR&gt;&lt;BR&gt;&amp;nbsp;본인, 혹은 가족이어서 직장을 잃거나 퇴학처분을 받거나 이지메를 당하거나 하는 일들은 일본에서는 기사거리는 커녕 그게 무슨 문제가 되며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기는 한 것이냐는 반응이 돌아오는 일입니다.&lt;BR&gt;&lt;BR&gt;&amp;nbsp;고베 대지진 때에도 약탈 행위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어떤 상황에서도 후일 발각될 일이 없으리라는 점이 확실한 지역에서만 이루어 졌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적발된 사례도 있었는데,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 취재진들은 그것을 굳이 기사화하지도 신고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세계의 눈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굳이 알려 봐야 나라에 득 될 것이 없다는, 애국심이라면 애국심이라 할 태도에 의해 범죄가 은폐된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직접적인 피해로 이재민이 된 사람들이 정부의 생계조치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냥 좋은 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평도 포격 도발이 있었을 때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와 정부를 상대로 신속한 조치와 보상이 없음을 질타했고 정부당국은 당국대로 피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끼어들어 일을 크게 만든다고 맞서는 등 마찰이 있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이같은 상황은 정부가 직접적인 가해자도 아닌데 정부에게 항의하는 피해자들이 과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로 복구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업무태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에 대한 리액션은 피해 당사자와 지원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낳고, 어떤 조치가 더 나은 것인지를 협의하게 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 자칫 침해되거나 방기될 수 있을 국민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환기시키는 부차적인 효과도 있게 됩니다.&lt;BR&gt;&lt;BR&gt;&amp;nbsp;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고베는 신속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복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이재민들이 처해 있던 상황까지 호평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일본 정부는 특히 목조촌 주민들에 대한 차후 보상대책을 제대로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복구 후 원 거주지역 복귀에 대하여 재건축에 대한 부대비용을 요구하는 등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좀 더 기본적인 것, 즉 대피처나 임시 거처소에서 이재민들에게 제공했던 생존에 필요한 조건들 또한 같은 메뉴의 음식이 일주일 이상 제공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무성의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lt;BR&gt;&lt;BR&gt;&amp;nbsp;그러나 이에 대해 항의한 사례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별로 있지도 않았고, 있었다 해도 누군들 나서 공식화 해주지도 않았습니다.&lt;BR&gt;&lt;BR&gt;&amp;nbsp;일본을 비하하는 말로 일본인들이 재난 등 국가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보다 어려운 상황에 순응해버리는 패배주의 운운하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 정도로 일본인들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국가의 국민들에 비해 국가에 순종적이고, 재난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생존책을 찾아 난국을 타개하기보다는 주어지는대로 가만히 있는 편이 더 많다는 것도 사실입니다.&amp;nbsp;그 &apos;주어지는 것&apos; 이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하다 해도 말입니다.&lt;BR&gt;&lt;BR&gt;&amp;nbsp;저는 이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일본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lt;BR&gt;&lt;BR&gt;&amp;nbsp;언론이 나서서 적극적이고 반항적인 사례보다 소극적이고 순응하는 사례만을 부각시켜 기사화하고 이를 국민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이면서, 남들도 조용히 있는데 나라고 나서서 뭐하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일어난 재난에 대해서도 가급적 그것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경향에 익숙해지다 보면, 정말 눈앞에서 거대한 재난이 발생해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기 보다는 그러려니 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집니다. 일본의 경우는 이것이 심합니다. 바로 자신이 당한 일도 남의 일처럼 생각해 버린다는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lt;BR&gt;&amp;nbsp;이번 지진 및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있어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lt;BR&gt;&lt;BR&gt;&amp;nbsp;초반 언론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본인들은 아직도 &apos;좀 무섭네&apos; 하는 정도로 끝납니다. 원전 사태 없이 지진만 났다면 이는 더 심했을 것입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apos;내 일 아니니까 상관 없어&apos; 라는 태도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들의 남일 같은 태도란 심각한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인지능력이 결여된 결과인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상황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포장하는 데에는 일본 정부도 열심입니다. 원전 파손 초기 근처에 사태파악을 위한 조사단도 파견하지 못했던 일본 정부는 일이 터진 당일에 자신들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대국민 발표를 했습니다. 미국 및 프랑스의 기술 협조도 멋지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건 어쨌든 제 판단으로는 자신감에 찬 호기를 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아무리 집권당이 바뀌어도 국민을 상대로 허세를 부리는 습관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거겠지요.&lt;BR&gt;&lt;BR&gt;&amp;nbsp;이후 부작용에 대한 우려 제기는 말끔히 무시한 채 바닷물만 뿌려대는 것 이외의 조치를 하지 못하면서도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국민 및 국제사회를 기만하던 일본 정부는, 최근 인체에 대한 방사능 허용치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상식 밖의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허세를 부리고 상황을 은폐하려 해도 이미 그런 것 정도로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apos;상황 통제 불능의 기준치&apos; 라 할 수 있는 허용치를 상향조정함으로써 상황은 안전하며 자신들의 통제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입니다.&lt;BR&gt;&lt;BR&gt;&amp;nbsp;강자에 약한 국민성(개연성은 떨어지지만), 허세로 지도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정부, 조용한 것이 좋다며 국민들을 잠재우는 언론의 세박자가 맞아 떨어져서 탄생한 작품이 &apos;재난에서도 이성적인 일본, 성숙한 시민의식, 앞장서는 정부와 뒤따르는 국민&apos; 인 것이죠.&lt;BR&gt;&lt;BR&gt;&amp;nbsp;그런데 이러한 맥락이 유지되는 가운데, 그래도 이번 원전 사태에 대해서는 예전과는 약간 다른 이상 기류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습니다.</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nestor/blog.aspx?id=267324</link>
<category>인생 뭐있어</category>

<author>네스토르</author>
<pubDate>Mon, 11 Apr 2011 14:55:24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