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넬로피(Penelope)

내 영화 | 2008-11-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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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괜찮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겨우 돼지코가지구 그 난리를 친단 말이야?'라며 폄하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듀나의 영화평점을 영화 보기전에 먼저 보아서 그런 선입견이 굳혀져있었는데 영화를 본 순간 납득이되고 이 사건의 요점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들을 수 있게되었다.

첫째로, 집사가 그 마녀였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집사 제임스는 영화 내내, 아니 150년여간 계속 그들을 모시며 페넬로피 대에 이르러서는 선을 본 도련님들을 붇잡는 운동화 신는 역을 맡아왔다. 이게 그들을(윌험가를) 결국은 끝없는 정신적 고통 속으로 몰아가는 게 아니라면 무엇이겠냔 말이다. 이런 존재가 있어줌으로써 더욱 그들은 상류집단 속에 속하지 못하는 괴물 페넬로피를 (집) 속으로 가둬두고 내내 (자신들이)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마녀는 그들의(윌험가의) 딸을 돼지코로 만들어서 그들이 괴로워할 것에 끝을 낸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직접 집사가 되어줌으로써 그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영화 끝에서 애기들도 말해주듯이 감독은 직설적으로 이 문제의 요점은 '엄마가 방조했다'라는 것이고 그 엄마도 '자기가 좀더 잘 키웠으면 네가 더 빨리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한다. 이게 포인트다. 안면기형 환자야 그들한테는 저 멀리의 문제이다. 그들은 그 이상을 기대치로 갖고 있는 거다. 정상은 물을 필요도 없는 기본 조건이고 그 이상을 자기 기대치로 갖구 있기 때문에 겨우 피넬로피의 돼지스러움을 가지고 그 극성을 떠는 것이다. 페넬로피의 얼굴은 정상에 가깝다. 정상이다. 페넬로피의 얼굴은 사실 일반인 못생긴 사람에 비하면야 괭장히 예쁘게 생겼다. 그들은 자신들의 딸이 무리없이 상류 사교계에서 어울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니 페넬로피의 엄마를 페넬로피의 아빠에게 소개 혹은 은연중에 맺어준 것이 혹시 이것도 마녀의 술수가 아닌가 깊이 의심이 우러난다. 여태까지 계속 그런 류의 여성들을 윌험가 도련님에게 맺어주고 하나님의 장난으로 자꾸 아들만 태어나다가 페넬로피대에 이르러서 마녀의 장난이 드디어 결실을 본 건 아닐까?ㅎㅎㅎ

페넬로피가 겨우 돼지코와 돼지귀의 문제만 가지고 있던 것도 그 정도여야지 그들이 더 고통을 느낄 것이기때문에 그렇게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상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되는 거다. 포기를 못하겠으니까. 거기 빼고는 정상이거든. 그니까 저주만 풀린다면야 이 고통 (사실은 자기들을 스스로 옥좨고 있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만 같거든. 윌험가를 빼놓구는 실제로 페넬로피가 가출을 하여 미디어에 자기 못난 모습을 공개하자 사람들을 페넬로피를 좋아한다. 이 사실을 보듯 윌험가 사람들은 스스로 그 암울한 고통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선을 보러 온 도련님들한테도 윌험가 사람들이 먼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구선 그들이 페넬로피를 보았을 때 공포로 도망치도록 유도했다. 그러니 에드워드가 페넬로피한테서 없는 fang(이빨)을 보고 도련님들은 감금당했다는 두려움 속에서 유리창을 깨고 달아나지.

<페넬로피>를 보면서 옛날 옛적에 보았던 <전설의 고향> 한편이 생각났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어떤 나그네가 깊은 산속 주막에 하루밤 묵게 되었다. 그에겐 괭장히 값비싸보이는 황금불쌍 하나가 있었다. 그것에 탐이나서 주막집 부부는 그 나그네를 살해하고 황금불상을 차지한다. 그 나그네가 돌아오지 않자 나그네의 약혼녀가 찾아오고 다음엔 의뢰받은 자인지 탐정인지 하나도 찾아온다. 주막집 부부는 차례로 그들을 죽인다. 세월이 흘러 그들 세명은 아이없던 그 주막집의 남매로 차례로 태어난다. 착하고 효심많고 공부잘하는 멋진 자식들. 행복한 인생을 보내며 주막집 부부는 무엇하나 바랄 게 없다. 세월이 흘러 아들 두명은 과거를 치르러가게 되고 여동생은 배웅하러 나온다. 그때 그 행복의 절정인 그때 말을 타고 있던 하들 둘과 딸은 동시에 급사를 맏는다. 행복의 절정에서 자식들 모두를 잃음으로써 주막집 부부를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묻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하늘이 내린 복수였다.

옛날에 이 <전설의 고향>을 볼 때는 이런 식의 복수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페넬로피>를 보니 이런 복수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페넬로피>에도 나왔으니까. 뭐라고 잘 매치는 못하겠는데 아무튼 <페넬로피>에 나오는 복수나 <전설의 고향>에 나왔던 복수나 뭔가 공통점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걸 이해하면 <페넬로피>를 더욱 이해하며 볼 수 있을 것 같다.

<페넬로피>는 스스로 방조한 고통 속에서 윌험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다는 건데 이런 식의 주제를 이야기하려면 이 <페넬로피>의 스토리라인으로는 연출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 환타스틱한 면과 로맨틱한 면때문에 영화가 귀여워지긴 하지만 주제가 어중더중 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한편 윌험가 사람들이 이런 식의 복수를 당한다는 게 다분히 훼어리테일(fairy tale)스러워서 어느정도 비율로 역할분담을 해야할진 잘 모르겠다.

<페넬로피>는 기대했던 것보다 페넬로피의 자립에 초점을 맞춘다. 생각했던 것보다 로망스에 초첨을 덜 맞췄다. 엄마는 그 수준이었지만 딸은 잘 컸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가짜 사랑을 분별해내고 독립한다. 스스로 저주도 푼다. (물론 저주를 푼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페넬로피>는 그 유명한 <슈렉1>의 명장면에 비하면야 급이 낮은 건 맞다.) 가짜 맥스(쟈니)가 페넬로피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것도 자기가 그들 부류인 귀족이 아니기때문이라 소심했던 것도 자연스러웠다. 자기는 페넬로피에게 자유를 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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