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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그 후의 이야기.</title>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 </link>
<description>마르세리안</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3 Apr 2006 19:04:0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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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르세리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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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그 후의 이야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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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일본 중의원 선거 분석 - 중대선거구제는 독약이다.</title>
<description>&lt;P&gt;0. 일본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실정에는 중 대 선거구제도는 쥐약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 계속해서 민주당의 압승이 예견되어 왔기 때문에 충격파가 덜하긴 하지만 자민당의 55년 체제가 종언을 내린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93년때의 연립정권 처럼 민주당도 조기에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워낙 격차가 큰데다가 민주당 내부에도 실력있는 인사들이 많아서 좀처럼 쉽게 자민당이 다시 권력을 되찾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해체를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그렇다면 자민당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무너지게 된걸까요. 대다수의 분석을 종합해 보자면 크게 4가지로 분류됩니다. &lt;/P&gt;
&lt;P&gt;1. 아소 다로 현 총리의 연이은 실수. &lt;/P&gt;
&lt;P&gt;2. 고이즈미식 개혁의 부작용&lt;/P&gt;
&lt;P&gt;3. 자민당 자체의 역량 부족&lt;/P&gt;
&lt;P&gt;4. 소선거구제도로의 변화 &lt;/P&gt;
&lt;P&gt;&lt;BR&gt;물론 민주당 내부의 역량 -&amp;nbsp; 대표 공약, 오자와 전대표의 선거 지휘, 하토야마 이치로의 역량 등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크게 보자면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잘했다기 보다는 앞서 보셨다 시피 자민당이 워낙 못해서 진 선거입니다. 하지만 자민당이 한 두번 못한 사람들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자민당 지지세력인 농촌의 노년층들은 왠만하면 지지정당을 잘 바꾸지 않는 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단순히 자민당이 못해서 졌다. 라고 보기에는 분석이 더 필요합니다. 그 분석을 위해서는 앞의 4가지 원인 중에서 단기 변수에 속하는 1번을 제외한 2.3.4번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lt;/P&gt;
&lt;P&gt;&lt;BR&gt;2. 자민당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권을 유지해 온 것에는 많은 복합적 원인이 존재합니다. 그걸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고, 기존의 언론매체들에서도 충분히 다 언급했으니 저는 다른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중 대 선거구제도입니다. 일본은 현재는 소 선거구제도(비례대표도 뽑습니다.)를 채택하고 있으나 1996년 전까지는 한 선거구 내에서 여러 명의 의원을 득표순으로 뽑는 중대선거구제도를 운영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자민당 체제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자민당은 전통적으로 농촌지역에서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창당 초기부터 사회주의적 색채를 들여와 과감한 복지정책을 펼쳤던 자민당의 색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단순히 자민당을 보수 우파, 또는 극우파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 실제로도 일본의 복지정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는 단순한 보수 우파의 기준으로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 이와 관련하여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 이유를 계보,세습정치가 아닌 자민당 내부의 사회주의 색채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둘 다 맞다고 보는 쪽입니다. - &lt;/P&gt;
&lt;P&gt;사실 복지정책의 수혜자인 확고한 농촌,노인표를 기반으로 하여 중대선거구제도 하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중대선거구, 그 중에서도 중 선거구제도는 사표를 방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기존 정당이나 권력구조를 쉽사리 바꾸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번 의원에 당선되면 다음 선거에서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존의 지명도와 조직을 극복하는 정치 신예는 정말 등장하기 어렵죠. 그것도 기존 정치인에게 유리한 중대선거구제도 하에서는 말입니다. &lt;/P&gt;
&lt;P&gt;&lt;BR&gt;3. 그런데 이런 정치지형이 1990년대 부터 폭풍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일본에 &apos;잃어버린 10년&apos; 이 닥쳐온거죠. 이로 인해 자민당에 대한 실망감을 느낀 유권자들로 인해 자민당은 잠시 정권을 연립내각(일본의 8개 정당이 연합하여 구성한 내각입니다.) 에 내어주게 됩니다. 하지만 연립내각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도 제1정당은 자민당이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도 하의 자민당의 위력은 그리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죠. 실제로도 연립내각의 분열로 인해 1년 여 만에 다시 정권은 자민당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lt;BR&gt;그렇지만 자민당의 서서한 추락은 체제 내 개혁 없이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계속된 경제침체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스캔들과 그로 인한 자민당에 대한 염증도 한 결과였습니다.중대선거구제도는 이를 잠시 지연시킬 뿐 자민당의 추락을 되돌릴 수는 없었죠. 자민당 수뇌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96년 소선거구제도로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자민당이라는 &apos;호박&apos;에 개혁이라는 &apos;줄&apos;을 그어 &apos;수박&apos;을 만들려는 시도였죠. 서서히 죽어가는 자민당을 살리기 위한 수술이었습니다만, 이걸로도 자민당의 단독 정권을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공명당과 같은 소수정당과의 위태로운 연립정권이 계속되어져 갔죠. &lt;BR&gt;그런 시기에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모리 요시로 같은 총리들이 나타났지만 이들 역시 자민당에 대한 본질적인 수술을 하기에는 미흠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나타납니다. &lt;/P&gt;
&lt;P&gt;&lt;BR&gt;4.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당대 일본의 문제와 자민당의 문제를 단순히 정리했습니다. 구태의 악습이라고요. 그리고 자신이 이를 개혁할 수 있다면서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가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의 중요한 점은 &apos;신자유주의 개혁&apos;과 &apos;소선거구제도&apos;였습니다. 당시의 아이콘, 경제문제의 해결책이었던 신자유주의 개혁을 밀어붙여 경제를 회생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구태로 몰아붙이면서 소선거구제도를 이용 낙선시켰던 겁니다. 이른바 &apos;미녀 자객&apos; &apos;고이즈미 칠드런&apos;이 이때 등장했습니다.&lt;BR&gt;소선거구제도의 위력이 일본열도에 비로소 상륙한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중대선거구제도와 달리 소선거구제도는 &apos;바람&apos;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거셉니다. 즉 기존 프리미엄이 약하고 지역기반이 없는 신인들도 &apos;이미지&apos;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죠. 이걸 극단적으로 보여준 선거가 2005년의 &apos;고이즈미 극장&apos; 이었습니다. 재미있는건 이 당시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도 득표율이 올라갔다는 겁니다. 소선거구제도 하에서 &apos;사표&apos;를 방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심리가 거대 양당화로 고착된다는 실례입니다. 그리고 자민당과 민주당의 득표율도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민당은 기존 농촌+노인표에 고이즈미의 바람표까지 몰아 싹슬이를 했습니다. 소선거구제도의 또하나 단점인 득표율의 의석화 오류였죠. &lt;/P&gt;
&lt;P&gt;&lt;BR&gt;5. 하지만 이 고이즈미의 &apos;개혁&apos;, 그리고 그로인한 2005년 선거는 단기적으로는 자민당에게 도움이 될 지언정 장기적으로 보면 치명상으로 가는 흐름이었습니다. 우선 자민당에 필적할만한 정당이었던 민주당의 존재감을 키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 자민당 세력이 투표를 해서 &apos;세력&apos;을 키울 수 있는 정당이 탄생한겁니다. 1993년 연립내각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게 된거죠. 이는 07년 참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lt;BR&gt;거기다가 신자유주의 개혁의 부작용으로 각종 복지정책들이 폐기되면서 자민당의 전통지지층인 농촌+노인표가 떨어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심각한 국가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고이즈미와 자민당 정권은 복지정책을 축소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농촌+노인표의 이탈을 막기위해 강경한 보수파정책을 내걸었죠. 이것이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서브프라임 사태로 야기되는 세계적인 경기침체까지 몰아닥쳤습니다. 이렇게 되자 자민당 정권에 실망을 느낀 농촌+노인표가 대안이 될 수 있는 민주당에 표를 던졌고, 거기에 젊은 층까지 가세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질 때는 지지층이 투표소에 나오지 않기때문에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지지층이 투표소에 안나온게 아니라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2005년 선거에 비해 투표율이 오히려 올라간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lt;/P&gt;
&lt;P&gt;&lt;BR&gt;6. 크게 본다면 자민당의 55년 장기 집권은 이미 1990년대 부터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정확히 보자면 38년 정도 되는 집권이었고. 이는 한 세대에 해당합니다. 실제로도 이정도가 한 집단의 권력 유지기간의 한계입니다. 하지만 자민당은 &apos;꼼수&apos;를 써서 이를 피해나갔습니다. 그것이 중대선거구에서 소선거구제도로의 변화,와 그로인한 과도기적인 정치 흐름. 그리고 이를 이용한 연립정권으로의 유지였죠. 그래도 점차적인 몰락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반적인 체질개선은 아니었으니까요. 어느 지역이나 전반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체질 개선작업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자민당 역시 이를 극복하지는 못했고, 결국 고이즈미라는 희대의 정치인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apos;모든 걸 다 얻고 모든 걸 다 잃는&apos; 상황까지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연장한 댓가 치고는 가혹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세상의 흐름이 그러한데. &lt;BR&gt;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자민당의 수명을 연장시켜주다가 결국은 끝장내버린 이 &apos;소선거구제도&apos;입니다. 다른 어느제도가 그러하듯이 소선거구제도 역시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건 위에서 말씀드렸죠. 여기서 제가 이 소선거구제도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선거구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중대선거구제도로 바꾸자는 논의에 호의적인 시선이 많이 쏠리기 때문입니다.&lt;/P&gt;
&lt;P&gt;7. 하지만 일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존의 정치인들이 쉽사리 도태되지 않고, 지역정당의 생존가능성이 그 어떠한 선거제도보다 높은 중대선거구제도, 특히 중선거구제도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에서는 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자민당의 &apos;38&apos;년 정권, 그리고 이를 연장한 55년 정권도 중대선거구제도, 그리고 이를 변형시키는 과정속에서 기능했습니다. 이는 기존 정치구조를 바꾸는데 중대선거구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이해시켜 줍니다. 특히 영 호남에서 기득권을 전면 장악하고 있는 우리의 제1여당, 제1야당은 중대 선거구제도가 도입된다손 치더라도 각 지역내에서 여전히 기득권을 장악하여 더 강고히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동시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서도 두 정당이 사이좋게 &apos;적대적 공존&apos;을 유지하며 의석을 싹슬이 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기존 정당들은 이를 수수방관하게 되겠지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結: 2005년 고이즈미의 바람. 그리고 지금의 하토야마의 바람이 무조건 옳은 건 아닙니다. 정국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몹시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정을 추구하겠다고 기존의 정치 비효율 구조를 그대로 인정하는 &apos;중대선거구제&apos;로의 전환은 더 위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ps) 후속작이자 본격 역사 정치 대하 장편 에세이 &apos;세상에 공짜가 없다&apos;는 지금 작업중입니다. 이번 주내에 올라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총총&lt;/P&gt;
&lt;P&gt;ps2) 저작권 위반이 안된다면 사진이라도 좀 넣었을 텐데 그러질 못해 딱딱한 글이 되는 거 같아 아쉽네요. 긴 글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38879</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Mon, 31 Aug 2009 01:28: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 안에 노무현이 있습니다.</title>
<description>&lt;P&gt;&lt;FONT face=Arial&gt;믿기 어려웠습니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눈비비며 일어나 티비 리모컨을 찾고, 인터넷 아이콘을 눌러 포털사이트를 들어갔던 모든 이들의 심경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를 지지했거나 그를 반대했거나, 그를 사랑했거나, 그를 증오했거나,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그것도 투신에 의한 서거 소식을 들으며 모든이들의 가슴속에 처음으로 피어올랐던 감정은 그러했을 것입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lt;BR&gt;&amp;nbsp;너무나 갑작스러웠기에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고, 그 죽음의 수단이 더욱더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도 당연합니다. 투신이라는 낱말이 전직 대통령, 그것도 평생 비주류의 길만 걸어온 그의 인생 앞에 가당키나 한 단어일까요. 하지만 정말로 그는 투신하여 30m 밑, 자신의 집앞에 놓여진 바위 앞에서 향년 63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거두었습니다. 지금 이순간,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당황스럽고, 낯섭니다. &lt;BR&gt;&lt;BR&gt;그렇기 때문에 그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좌절하고 안타까워하고, 울음을 멈출 줄 모릅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전경버스들에게 에워쌈을 당하면서까지 피어오르는 향불의 연기가, 봉하마을에서 울려퍼졌던 수천명의 울음소리가. 인터넷을 지배하는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이를 상징합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하지만 불과 며칠전 까지만 하더라도, 그 동정과 연민의 감정은 그를 향해 뻗어있지는 않았습니다.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억대 시계에 대한 행방을 가지고 봉하마을에 가면 주울 수 있다는 농담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졌고,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대통령이 되고, 5년동안 국가를 운영해왔던 &apos;원동력&apos;이 바로 그 &apos;도덕성&apos; 이었다는 점에서 사태는 심각했습니다. 사상 세번째의 전직대통령 소환조사를 앞두면서 그는 국민들에게 더이상 자신은 여태까지 자신이 대표해 온 가치들을 대변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버리라고도 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한 인물의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을 알리는 슬픈 징소리였지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한 인물의 죽음앞에서 쉽사리 교정될 수 있는 수준이었던 걸까요.&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렇기 때문에 지금, &apos;자신을 버리라고&apos; 말했던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앞에 일어나는 추모와 애도의 물결은 쉽사리 설명될 수 있는 그러니까 한 개인에 대한 인정에 의해 일어나는 추모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를 버렸습니다. 대선에서 버렸고, 총선에서 버렸습니다. 그의 도덕성이 지하로 추락해 내려갔을 때, 우리는 그를 위해 가지고 있던 단 하나의 &apos;끈&apos; 마저도 사정없이 잘라냈습니다. 그랬던 우리들이 지금 왜 그를 추모하고 있는건가요. 단순히 한 인물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서? 죽은자에 대한 선한 의지로? 현직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극도의 반감과 실망감이 변환되어서? 이 이유들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그를 향해 내고 있는 그 목소리들의 모든 원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 내부에 있는 &apos;무엇인가&apos;가 그의 죽음으로 촉발되었기 때문입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의 별명은 &apos;바보&apos;였습니다. 지역주의, 기득권타파, 족벌언론과의 싸움,&amp;nbsp;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꺼려하는 &apos;전깃줄위의 참새&apos; 신세를 그는 피하지 않았습니다. 불의라고 생각되는 것은 과감히 나서서 싸워나갔고, 부조리한 것들은 과감히 개혁하려고 했습니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기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미련했고, 그래서 언제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보였고, 우리는 그에게 힘을 몰아주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지요.&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대통령으로 재직하던 5년동안 그는 무던히도(?) 국민들 속을 썩여댔습니다. 대통령 직을 걸고 내기를 벌였고, 탄핵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뜬금없는 대연정 제안과 한미FTA같은 지지자들을 속터지게 만드는 정책들도 계속 추진했지요. 여기서 그것들에 대한 호불호나 개인적인 평가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밀었던 &apos;이유&apos;들이 그가 대통령이 되어간 기간동안 차츰 &apos;퇴색되어 보였다는 것&apos;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를 바보라고 불렀고, 고졸 출신의 별 볼일 없었던 낙선의원, 인권변호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apos;정의&apos;의 가치를 우리가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정의롭고 올곧은 자들이 떳떳한 나라. 이 당연한 명제를 그는 실천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를 믿었습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때 우리 안에는 &apos;그&apos;가 있었습니다. 부끄럽고 두려워 차마 밖으로 내밀지 못하던, 양심, 정의의 가치가 그때 &apos;그&apos;를 만나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러나 그것이 다만 시도로 끝나고자 했을 때, 이루어지지 못한 하나의 &apos;꿈&apos;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때, 그 가치를 이야기하던 &apos;그&apos;에 대한 비난은 피할 수 없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많은 비난을 받았고, 결국 정권을 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실망하고 그를 버렸던 것은 우리안의 &apos;그&apos;가 더이상 &apos;양심, 정의, 신념&apos;이 아니었고, 우리는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런데, 바로 그 가치가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현 정권의 무능이, 현 정권의 독선이 그 가치의 부활을 알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apos;그&apos;의 퇴임 이후, 우리는 우리안에 죽어버린 &apos;그&apos;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숨어있던 것 뿐이었다고 말입니다.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것은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밖으로 꺼내어 다시 실천할 동력과 의지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촛불 이후 우리는 그러하였습니다. &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렇기 때문에 &apos;그&apos;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apos;생명의 단절&apos;에 의한 슬픔 뿐만이 아니라. 더이상 일구어 낼 수 없는 우리 내부의 &apos;그&apos;를 위해 추모하고 있다고 봐야하는 건 아닌걸까요. 우리안의 &apos;그&apos; 이름으로 상징되었던, 그가 우리에게 더이상 자신의 이름이 그 가치로 대표될 수 없다고 하였던 그 가치들을 현실화 시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추모였던 건 아닐까요. 다시, 그의 이름이 그런 가치의 상징이 되었기에, 우리는 그를 추모하는 건 아닐까요.&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아이러니 한 것은 그가 그렇게 된 것이, 그의 죽음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몇달간 검찰의 언론플레이와 언론들의 경마장식 중계는 그를 사지로 내몰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을 빼앗아가기도 했습니다. 그가 &apos;자신을 버리라고&apos; 한 것도 그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의 죽음이 비극적으로 끝났을 때, 양심, 정의, 신념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다시 &apos;그&apos;를 마음속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양심과 정의, 그리고 신념과 동의어로 그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그 자신을 버리라 충고했지만, 그가 정작 버려진 이후. 우리는 버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lt;/FONT&gt;&lt;/P&gt;
&lt;P&gt;&lt;FONT face=Arial&gt;우리 안에 이제 노무현이 있으니까요. &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onxclick=&quot;window.open(&apos;./editor//img_view.php?name=http%3A%2F%2Fmlbpark.donga.com%2Fdata%2FfileUpload%2F200905%2F1243043732.jpg&amp;amp;w=517&amp;amp;h=345&apos;,&apos;_editor_tb&apos;,&apos;staus=no, width=517, height=345,scrollbars=no,toolbar=no,menubar=no&apos;)&quot;&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border=0 name=zb_target_resize hspace=5 alt=&quot;&quot; vspace=5 src=&quot;http://mlbpark.donga.com/data/fileUpload/200905/1243043732.jpg&quot; hand? ?CURSOR:&gt;&lt;/A&gt;&lt;/P&gt;
&lt;P&gt;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lt;/P&gt;
&lt;P&gt;&lt;FONT face=Arial&gt;&lt;/FONT&gt;&amp;nbsp;-----------------------------&lt;/P&gt;
&lt;P&gt;향후 정국에 대한 예측은 이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34090</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Sun, 24 May 2009 12:35:28 +0900</pubDate>
</item>

<item>
<title>&apos;공주&apos;의 역습</title>
<description>&lt;P&gt;&lt;STRONG&gt;단호한 태도&lt;/STRONG&gt;&lt;/P&gt;
&lt;P&gt;단호하다. 이른바 &apos;김무성 원내대표론&apos;를 일언지하로 거절한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를 표현하자면 이 단어로 설명 가능할 듯 싶다. 그토록 기다렸던 청와대와 친이계의 &apos;화해의 손짓&apos;을 그녀는 면전 앞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하다. 아무리 박 전대표가 &apos;원칙론&apos;을 강조하고, 그 연장 선상에서의 &apos;반대&apos;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걸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녀의 심중 안에는 분명히 &apos;무엇인가&apos;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길래 어제 (2009-05-10) 귀국해서도 상황개선에 대한 의지 없이 친이와의 선을 그으려고 하는 걸까. &lt;/P&gt;
&lt;P&gt;그녀의 이러한 단호한 태도는 몇 차례 목격 된 적이 있었다. 2005년의 사학법 파동때나, 18대 총선 직전 &apos;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apos; 라는 명문장을 남기며 현 대통령과 각을 지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녀가 단호한 태도를 보였을 때는 주로 수세적인 입장에 의한 방어적 차원에서 나온 경우가 많았다. 사학법 파동때도 열린우리당의 다수결 처리가 가능했었고, 18대 총선 때도 그녀는 현 대통령에 비하면 수세에 밀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를 당했고, 그녀는 자신의 위력을 다시 과시했다. 친박 무소속 후보에게 그녀가 한 것이라곤 악수를 나누는 사진 한 장 뿐이었다.&amp;nbsp; 인천공항에 그녀를 마중나왔던 수많은 인파는 역설적으로 그녀가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 얼마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상징할 수 있다. 그녀의 과거 행보를 유추해 볼 때 현재와 같은 단호한 태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때문이다. &lt;/P&gt;
&lt;P&gt;&lt;STRONG&gt;이면 1&lt;/STRONG&gt;&lt;/P&gt;
&lt;P&gt;더군다나, 청와대와 박희대 대표를 비롯한 당내 주류 세력이 그녀에게 화해의 손짓을 건넨 걸 뿌리쳤다는 사실에 이르게 되면 판단은 더욱더 복잡해 진다. &apos;어려움&apos;에 처한 대통령과 여권의 기대를 냉정하게 뿌리쳤다는 점에서 역풍이 불 것이라는 점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역풍이 소규모라고 그녀는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친이와 친박이 화해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물론 현재 이 분란의 책임이 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박 전 대표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여론은 바뀔 수 있는 법이다. 정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가 이를 모를리 없다. &lt;/P&gt;
&lt;P&gt;그렇기때문에 그녀의 이런 태도를 두고 많은 해석이 난무한다. 실질적 권력 분담없는 사실상의 &apos;얼굴마담&apos;형식의 원내대표였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분석도 있고,&amp;nbsp; 대통령과 국정운영을 같이 나누어 진다는 &apos;부담&apos;을 지기 싫었다는 분석도 있다. 어떤이들은 &apos;2인자&apos;를 용납하려 들지 않는 그녀의 &apos;용인술&apos;에서 원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친박진영의 좌장이었던 &apos;김무성&apos;을 제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lt;BR&gt;이 모든 해석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맞을 것이다. 정상적인 분석이고, 그녀의 행동이나 그녀의 발언속에 숨어져 있는 &apos;패턴&apos;을 분석할 때 대부분 드러나는 이유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녀의 이 &apos;단호한 태도&apos;를 모두 설명 할 수 있을까? 위에서 든 &apos;이유&apos;들은 &apos;종속 변수&apos;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협상을 통해 다른 &apos;패&apos;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얼굴마담이라고 하면 실권을 달라고 요구하면 되고, &apos;부담&apos;을 지고 싶지 않다면, 적절히 쓰고 버리면 그만이다. &apos;2인자&apos;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apos;김무성&apos;이 아닌 다른 이를 앉히면 그뿐이다.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apos;친박 원내대표&apos; 자체를 거절했다. 그렇다면 위에서 든 이유 이외 뭔가 &apos;중요한&apos;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한다. &lt;/P&gt;
&lt;P&gt;&lt;STRONG&gt;이면 2&lt;/STRONG&gt;&lt;/P&gt;
&lt;P&gt;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그녀는 단 한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지만, 단 한번의 발언으로 사태를 정리한 적이 있었다. 바로 &apos;우리 정치의 수치&apos;라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의 화살은 대통령의 형을 겨냥했다. 친박 무소속후보를 주저앉혔다는 의혹에 대한 반응이었다. 사실 그녀의 평소 발언 수위로 본다면 굉장히 높았다고 봐야한다. 더군다나 친박진영과 친이진영간의 &apos;가교&apos;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apos;온건파&apos;로 분류되던 대통령의 형이었다. 설령 &apos;후보사퇴&apos;를 종용했다손 치더라도 그정도의 발언까지 하면서 공격할만한 사안은 분명히 아니었다. &lt;BR&gt;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대통령의 형은 &apos;온건파&apos;였고, 친이와 친박간의 &apos;가교&apos;였다. 그런 사람이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친박무소속 후보에게 &apos;사퇴권유&apos;를 했다는 것 자체도 이상하다. 그것도 직설적으로 의견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여태까지 그가 보여왔던 행보에서 뭔가 일탈하는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lt;/P&gt;
&lt;P&gt;이 의문의 열쇠가 풀리는 지점은 5월에 있을 당협위원장 선거다. 한나라당은 5월과 6월에 걸쳐서 당협위원장을 뽑는데, 이 때 선출되는 위원장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구조적 위치에 있다. 따라서 현재 당협위원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친이계열은 이를 사수하려고 할 것이고, 친박계열은 이를 되찾으려 할 것이다. &lt;BR&gt;&apos;무리수&apos;라는 비야냥을 들어가면서 작년 총선에 낙선했던 &apos;측근&apos;을 다시 재보궐선거에 투입해 친박 무소속과 대결했던 대통령 형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었다고 봐야 하는게 옳다. 대통령의 형은 TK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여러차례 불거졌던 인사개입과 상왕논란은 이를 상징한다. 지난번에도 한번 지적한 바 있지만, 대통령이 더이상 그의 형을 제어하지 못하는 현 상황은 형이 가지는 야심을 드러내게 하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그 점에 있어서 형의 야심은 전직 대표의 &apos;영역&apos;을 건드린다. 당연히 싸움은 불궈질 수 밖에 없다.&lt;/P&gt;
&lt;P&gt;&lt;STRONG&gt;&apos;공주&apos;의 역습&lt;/STRONG&gt;&lt;/P&gt;
&lt;P&gt;작년까지. &apos;공주&apos;는 꾹꾹 눌러 참았다. 더이상 몰릴 수 없는 영역에 다다랐을 때만 간간히 반격을 했고, 또 그것이 성공했었지만, 그때는 반격에 나설 타이밍이 아니었고, 세력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때의 &apos;공주&apos;는 단기필마로 적진을 누빌 수는 있었지만 &apos;전쟁&apos;에서는 이길 수 없었다. 이미 대선후보 경선이라는 큰 &apos;전쟁&apos;에서 한번 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느정도 형의 &apos;공세&apos;는 막아내는 데 성공했고, 더 이상 방어만 할 수 없다. 그랬다간 자신이 지키는 영역을 빼앗길 수 있다. 지금이 공격을 나갈 절호의 타이밍이다. &apos;원칙&apos;과 &apos;명분&apos;을 &apos;무기&apos;로 공주는 &apos;공격&apos;을 선택했다. 그것은 감정적인 판단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이다. 선거의 결과가 그녀로 하여금 공격의 영역을 넓히게 해주었고, 위력을 강하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내년부터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영역을 확고히 하고 &apos;당&apos;을 접수하기 위해서는 &apos;당협위원장&apos;이라는 &apos;보급선&apos;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apos;전쟁&apos;에서 이긴다. &lt;/P&gt;
&lt;P&gt;바로 이 이유때문에 그녀는 &apos;단호한 태도&apos;로 &apos;거절했다.&apos; 단순히 현재 그녀의 태도가 선거 한번 이겼다고 자만해서 우쭐댄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18년 철권통치를 한 박씨왕조의 &apos;공주&apos;를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 바로, 공주의 역습은 시작되고 있다.&amp;nbsp; &lt;/P&gt;
&lt;P&gt;=================================================================================================&lt;BR&gt;사진도 좀 넣어야 하고 글 도 좀 손봐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서 일단 이것만 올립니다. 나중에 시간되면 나머지 부분도 좀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죠. &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33366</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Tue, 12 May 2009 01:22: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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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손석희와 신경민</title>
<description>&lt;IMG border=0 src=&quot;http://clubfile.imbc.com/files/img_file/club_file/37/mbc/top_img/00683310_2.jpg&quot; width=287 height=180&gt;&lt;BR&gt;&lt;BR&gt;&lt;BR&gt;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lt;A title=&quot;[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119412]로 이동합니다.&quot; href=&quot;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119412&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c8056a&gt;신경민 앵커의 하차소식&lt;/FONT&gt;&lt;/A&gt;을 들으면서 나는 손석희를 생각하고 있었다.&amp;nbsp;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신경민이라는 사람을 단순히 mbc뉴스데스크의 앵커로만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출근길의 라디오 프로그램들 중에서 근 10년째 최고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손석희의 시선집중뒤에는 신경민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apos;뉴스의 광장&apos;이 있었다. 나는&amp;nbsp;시선집중도 듣고, 뉴스의 광장도 듣는 편이었지만. 때로는 모든 이들이 좋아했던 손석희의 시선집중보다는 신경민의 뉴스의 광장을 더 좋아했다. 아니 내 취향은 시선집중 보다는 뉴스의 광장에 더 쏠려있었다.&lt;BR&gt;&lt;BR&gt;손석희의 시선집중은 말 그대로 &apos;집중&apos;이었다. 논란이 되는 뉴스를 선별하여, 그것에 대해 손석희가 집중적으로 따지거나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건 둘 간의 진검승부다. 그렇지만 승패는 가려지지 않는다. 손석희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에 의거하여 이것이 옳다.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손석희는 판단을 청취자에게 맡긴다. 내가 옳은 것인가. 남이 옳은 것인가. 따라서 손석희는 때로는 청취자를 대리하는 검객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청취자의 반대편에서 검을 교환하는 &apos;적수&apos;가 되기도 한다.&amp;nbsp;따라서 사안에&amp;nbsp;따라. 손석희는 계속하여 변한다. 김명민이 그랬던 것처럼 손석희는&amp;nbsp;계속 존재하지 않는다.&amp;nbsp;그래서 그는 중립을 지킬 수 있고,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진행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amp;nbsp;상황에 따라 논란의 핵심을&amp;nbsp;짚어낼 줄 아는 그의 태도 때문에.&lt;BR&gt;&lt;BR&gt;그렇게 펼쳐진 &apos;집중&apos;뒤, 신경민은 자신의 &apos;광장&apos; 앞에서 기준을 제시한다. 신경민의 뉴스에서 우리는 흔히 그의 육성을 접할 수 있다. 손석희가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대신에 신경민은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 &apos;기준&apos; 앞에서 옳고, 그른 것, 합당하고 합당하지 않는 것이 구분된다. 그 기준에 대한 판단 역시 청취자의 몫이었지만, 신경민이 가지고 있던 &apos;색깔&apos; 이 명확했음은 분명하다. &lt;BR&gt;나는 그런 신경민이 좋았다. 그의 목소리에서, 그의 태도에서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해 판단하는 오만한 사람의 품격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가 제시하는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엘리트의 숨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lt;BR&gt;&lt;BR&gt;&lt;BR&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cfile3.uf.tistory.com/image/11793A0F49E2CB00C9260C&quot; width=320 height=240&gt;&lt;BR&gt;&lt;BR&gt;&lt;BR&gt;&lt;BR&gt;그래서 그가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를 맡는 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기대를 하고 있기도 했고, 우려를 하기도 했다.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이 한국 사회. 때로는 기준이 정해지더라도 사안에 따라, 상대에 따라, 굽혀지거나 매서워 지는 그 기준이 보편화된 이 사회에 신경민이라는 존재는 바른 치유약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기대했다. 그리고 이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 풍토 안에서, 무조건 중립을&lt;SPAN style=&quot;WIDTH: 1px; FLOAT: right; HEIGHT: 1px&quot; id=callbacknestmachiavellitistorycom651781&gt;&lt;EMBED id=bootstrappermachiavellitistorycom651781 height=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 src=http://machiavell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nil_profile=tistory&amp;amp;nil_type=copied_pos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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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31764</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Mon, 13 Apr 2009 19:51: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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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 비루한 시대를 살아가며</title>
<description>&lt;P&gt;언제부터인가 비루하다. 라는 말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사전을 뒤적거려 뜻을 찾아보니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고 더럽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lt;BR&gt;왜 이 단어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감상 그런걸 수도 있고, 뜻이 좋아서 일 수도 있고, &lt;BR&gt;어쩌면 이 시대를 표현하는 단어로 &apos;비루하다&apos; 라는 말 만큼 더 정확한 말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lt;/P&gt;
&lt;P&gt;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요새들어서 역사책을 펴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에 대해서 불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난 역사라는 도구를 믿지 않는다. 아니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대를 도피하고 싶을때, 현실에서 외면하고 있을때만 역사를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 내가 그러했다.&lt;/P&gt;
&lt;P&gt;그래서 mbc의 피디가 차량 추격전을 벌이며 쫓아오는 경찰에게 체포되어 갔을 때, 나는 정몽주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ytn의 노조위원장이 나는 명예롭다며 유치장에 갖혀갈때 이건창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결국 불행히도, 나는 역사를 파고들었지만, 현실을 외면하지는 못했다. 정몽주와 이건창을 생각했기 때문에.&lt;/P&gt;
&lt;P&gt;14c말의 고려사회는 모든 것을 왕조의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지배계급의 탐학과 착취는 임계점에 도달했고, 백성들은 왜구의 칼에 맞거나, 홍건적의 창에 맞거나, 지배계급의 세금에 시달리거나 언제나 그죽음을 앞당길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 시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고려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언제나 잿빛과 검은색 터널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나섰던 젋고 치기어린 선비들은 나약했고, 외적들을 향해 칼을 내려서야 했던 장수들은 쭉정이가 갈라지듯이 서로를 반목했고, 권력에 충성했다. &lt;BR&gt;이 시대를 일컬어 우리는 무슨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는걸까. 단어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는 비루했다. 그리고 그때 정몽주가 있었다.&lt;/P&gt;
&lt;P&gt;나는 정몽주만한 관료를 내가 알고 있는 역사상의 순간에서 단 한번도 마주치지 못한다. 그것은 그 비루한 시대 정몽주가 남긴 자취들이 광영스럽고 찬란했으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순간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지배층의 일원이 아니었던 그는 지배계급의 책임을 다했고, 귀족이 아니었던 그는 귀족의 의무를 다했다. 문인출신으로 창끝한번 쥐지 않았지만 이성계의 종사관으로 전쟁터를 누볐고, 문장으로 시대를 풍미했지만, 외교관으로 명나라와 일본의 신뢰를 얻었다. 적군에게 끌려간 백성들을 구해내기 위해 적진에 뛰어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고, 무인도에 표류해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도 다시 배를 타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국가의 힘이 부족하여 백성들을 구해내지 못하면 자신의 사재를 털었고, 그것이 부족하면 모금 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그는 정몽주였다.&lt;/P&gt;
&lt;P&gt;단 한번도 권력의 중심자리에 서지 못했고, 지방 향리층의 아들이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다. 자금도, 군사력도 충분하지 않았던 정몽주는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의 반대편에 서있던 정도전은 정몽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apos;도덕의 으뜸&apos; 이라고. 단순히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피살당해 충신이 된 것은 아니었다. &lt;/P&gt;
&lt;P&gt;하지만 나는 그의 이러한 길때문에 정몽주를 추억하고, 기념하는 것만은 아니다. 고려의 멸망이 임박했을때, 정몽주는 충분히 이성계의 오른팔이 될 수 있었다. 이성계 진영의 대다수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그의 생각은 일치했으며, 또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동료들이기도 했다. 이성계의 최측근이었던 정도전과는 형,아우 하는 사이었다. 이성계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개인적으로 결코 싫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몽주는 이성계와 반대편에 섰었다. 왜였을까. 나는 정몽주라는 사람이 가졌던 생각의 모든 면을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일정의 편린은 읽어낼 수 있다. 왕조의 교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피를 수반한다. 이성계의 즉위이후 이루어졌던 왕씨들에 대한 숙청이 이를 상징한다. 정몽주는 이를 우려한 건 아닐까? 생애의 대부분을 전투와 함께했고, 백성들이 거쳐야 할 고통을 느꼈던 정몽주는 이를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소수의 희생은 다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정도전과 정몽주의 생각 중 누가 더 옳고 그르다고 나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정몽주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단순히 왕조를 지키자는 시대착오적인 고루한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기득권의 유지를 원하던 기존 권문세가들과 혁명을 통해 세상을 뒤집으려 했던 신진사대부간의 대결에서 정몽주는 이 두 길을 모두 걷지 않으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피살당했다. 하지만 이 길이 옳지 않았다고 단언할 어느 증거 또한 없다. 나는 이때문에 정몽주를 추억한다. &lt;/P&gt;
&lt;P&gt;이건창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몽주가 죽은 500여년 뒤의 사람이다. 조선의 마지막 문장가라고 불리는 청강 김택영은 조선을 대표하는 문학가로는 전기에는 김시습, 후기에는 이건창뿐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는 대단한 인물이다. 한 왕조가 멸망할때 언제나 등장하는 위대한 천재에 해당하는 이를 들자면 나는 단연코 이건창을 든다. &lt;BR&gt;이건창의 할아버지는 병인양요로 강화도에 프랑스군이 처들어왔을때, 자신이 비록 벼슬아치는 아니지만, 선비로서 이를 책임져야 한다며 자살했다. 이건창의 나이 15살때였는데, 할아버지는 이건창에게 &apos;너는 평생 이 모습을 잊을 수 없다.&apos; 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건창은 평생 이 말을 실천한다. &lt;BR&gt;15살의 나이에 흥선대원군의 배려로 과거에 급제한 이후 이건창은 평생을 권력의 중심부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지방 외직과 암행어사를 주로 전전했다. 강직하고 꼿꼿했던 그의 성품때문이었다. 불의와 부정을 용납하지 않았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다. 세도가였던 조병식을 탄핵해 유배를 갔을때의 나이가 23살이었다. 고종은 지방관리들의 부임때 부정부패의 소문이 들려오면 이건창을 내려보내겠다는 위협을 가했다. &lt;/P&gt;
&lt;P&gt;이런 그는 개화에 긍정적이었다. 다만 김옥균이나 박영효같이 급진적인 개화론자도, 김윤식이나 어윤중같은 온건적인 개화론자도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국가의 국격을 생각했다. 드라마 명성왕후에서 흥선대원군역을 맡았던 유동근의 대사중에 이런게 있다. &apos;서구 열강들이 이나라 조선을 삼킬때 조금이라도 주저거리게 해야 하지 않은가.&apos; 이건창은 이렇게 행동한 인물이다. 국가의 국격이 올바르게 세운 이후에 개화를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lt;/P&gt;
&lt;P&gt;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과 태도는 모두에게서 배척받았다. 척사파에게서도, 개화파에게서도, 이건창은 평생을 유배지에 머물러야 했고, 유배가 끝난 뒤 고향 강화에서 2년여간 은둔한뒤 지병으로 숨졌다. 불과 나이 47세였다. 그의 친구였던 매천 황현은 10여년 뒤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이건창의 묘소를 방문해 &apos;자네가 나라가 이렇게 망하는 꼴을 보지 못해 다행이네&apos; 라고 읊었다고 한다. 그 뒤 매천은 합방 소식을 들은 뒤 &apos;가을 하늘밤에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글하는 자 하는 노릇이 매우 어렵구나.&apos; 라는 시를 짓고 음독 자살했다. 이건창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조선에서 글하는 자중에 이 치욕에 대해 책임지는 자 한 명이라도 없다면 그것이 더 치욕이었다.&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또한 나는 이건창과 그의 가문, 그리고 그의 친구였던 매천 황현이 그런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그를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추구했던 길은 정몽주의 길과 겹쳐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살아왔던 시기가 비루했기에 더욱더 빛이 난다. 고통스러운 그 길을 걸어나가는 그들은 단순히 그 길이 옳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했던 길에 대해서 이 길만이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 시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길을 걸어나갔다. 그것을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lt;/P&gt;
&lt;P&gt;&lt;BR&gt;다시 비루한 시대가 찾아왔고, 나는 정몽주와 이건창을 다시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비루한 시대를 견디고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래서 다시 눈을 들어 정몽주가 걸어갔던 그 길을, 이건창이 걸어갔던 그 길을 조용히 응시한다.&lt;/P&gt;
&lt;P&gt;그리고 깨달을 수 밖에 없는 건, 이 비루함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건, 시대에 번져있는 비루함에 대한 조소가 아니라.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비루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길은 아무도 해야 하는 데 하지 않은 길이고, 결국 그건 우리 내부에 비루함이 내재되어있다는 걸 의미한다. &lt;/P&gt;
&lt;P&gt;우리의 비루함을 따지기 이전에 결국 나는 &apos;내안의 비루함&apos;을 따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비루함을 극복할 단계가 되었는가. 자신이 있는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이. 내 인생을 결정지을 지도 모르겠다.&lt;BR&gt;하지만 분명한 건. 누군가는 이 비루함을 극복해야 하고,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비루한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lt;BR&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30769</link>
<category>역사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Fri, 27 Mar 2009 16:06: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용산의 적하효과</title>
<description>한 명의 학자가 어느날&amp;nbsp;냅킨에다 그린 하나의 그래프는 이후 세계를 뒤집어 놓은 경제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Trickle-Down Effect.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낙수효과, 적하효과 정도로 번역되는 이 경제 이론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부으면 넘치게 되어 바닥까지 적시듯이 고소득계층에게 
감세등의 소득 증가와 투자 선행이 이루어 지면 자연스럽게 그 &apos;부유&apos;가 중산계층 등을 비롯한 하위계층으로도 흘러들어가 자연스럽게 사회전체가 
부유해 진다는 이론이다. 1980년에 등장한 레이건 행정부가 도입했고, 뒤를 이은 부시 행정부에서 시행되었던 이 &apos;Trickle-Down 
Effect&apos;는 이후&amp;nbsp;부자들에게 감세정책이 유효하다는 주장의&amp;nbsp;실례로 자주 언급되곤 했다. &amp;nbsp;&lt;br&gt;&lt;br&gt;하지만 실제 경제상황에서 적하효과는 
이론상에 불과할뿐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레이건 행정부와 부시행정부에서의 거듭된 상위계층에 대한 감세에도 불구하고, 두 행정부때의 경제성장률은 
전임 정권과 후임 정권에 비해 낮았다. 실제로도 부시행정부는 이 낮은 경제성장률과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해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촌뜨기 
주지사 클린턴에게 패배해야 했다. &lt;br&gt;이는 고위소득계층에게 이루어지는 감세정책이 중산층에 대한 감세정책 보다 더 효과가 없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amp;nbsp;있다.&amp;nbsp;멀리가지 않아 우리나라에도 이같은 적하효과의 &apos;비현실성&apos;을 지적하는 것이 있으니. &apos;한 냥을 아쉬워 하는 사람은 거지가 
아니라 만 냥의 부자다.&apos; 라는 속담이 바로 그것이다.&lt;br&gt;&amp;nbsp;&lt;br&gt;&lt;br&gt;용산에서 불이 났고, 6명의 사람이 죽었다. 그과정에서 벌어지는 
온갖 네 탓과 니 탓의 향연들에 나는 관심을 쓰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apos;도리&apos;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의 &apos;속죄&apos;라고 생각했다. 용산을 넘어서서 전국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과, 저항이라는 이 헤어날 수 없는 양 극단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점차 극단으로 변하고, 다른 이들의 생각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제압당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에 대한 속죄만을 말하고 
싶었다.&lt;br&gt;&lt;br&gt;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그 속죄 이전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것을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lt;br&gt;&lt;br&gt;앞에서 나는 미국에서 1980년대를 거쳐 지금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apos;적하효과&apos;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현재 우리의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세력들이 이 적하효과에 의지해서 많은 정책들을 내어놓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종부세 폐지를 비롯한 많은 일들 
앞에서 굳이 나는 그것의 옳고 옳지않음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역사의 기록상에서 적하효과는 항상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만을 지적하고 
있었다.&lt;br&gt;&lt;br&gt;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건 미국의 현실이 아니냐. 한국의 현실은 따로 지켜봐야 한다. 적하효과에 대한 한국의 
실증적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amp;nbsp;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나는&amp;nbsp;용산에서 죽어간 5명의 철거민들과 1명의 경찰관에서 
나는 이미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하효과의 영향을 보고 있다.&lt;br&gt;&lt;br&gt;그것은 다름 아니라 용산에서 그들이 농성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사정에 기인한다. 용산의 재개발은 순이익만 2조원 이상이 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자연히 이 재개발에 달려드는 업체들은 대기업들의 
연합체들였다. 흔히 말하는 &apos;부자&apos;들 &apos;상위계층들&apos; 그들은 철거민들에게 소량의 보상금만 내어주었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에게&lt;span style=&quot;width: 1px; float: right; height: 1px;&quot; id=&quot;callbacknestmachiavellitistorycom579620&quot;&gt;&lt;a style=&quot;left: 0px ! important; top: 0px ! important;&quot; title=&quot;Adblock Plus로 이 객체를 차단하려면 여기를 누르십시오.&quot; class=&quot;abp-objtab-038283114066774027 visible ontop&quot; href=&quot;http://machiavell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nil_profile=tistory&amp;amp;nil_type=copied_post&quot;&gt;&lt;/a&gt;&lt;embed id=&quot;bootstrappermachiavellitistorycom579620&quot; type=&quot;application/x-shockwave-flash&quot; src=&quot;http://machiavell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nil_profile=tistory&amp;amp;nil_type=copied_post&quot; swliveconnect=&quot;true&quot; flashvars=&quot;&amp;amp;callbackId=machiavellitistorycom579620&amp;amp;host=http://machiavelli.tistory.com&amp;amp;embedCodeSrc=http%3A%2F%2Fmachiavelli.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57%26callbackId%3Dmachiavellitistorycom579620%26destDocId%3Dcallbacknestmachiavellitistorycom579620%26host%3Dhttp%3A%2F%2Fmachiavelli.tistory.com%26float%3Dleft&quot; enablecontextmenu=&quot;false&quot; wmode=&quot;transparent&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 width=&quot;1&quot; height=&quot;1&quot;&gt;&lt;/span&gt; 
용역을 불러 위협했다.&lt;br&gt;&lt;br&gt;물론 모든 철거민들이 약자고 안쓰럽다는 건 아니다. 내 주위에도 철거라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단어를 이용해 
강짜를 부리고, 도에 넘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까지 철거민의 이름으로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2조원이나 되는 막대한 개발이익중에서 단돈 천 만원이 아깝지 않았다면 이런 무리한 일을 벌였고, 철거민들이 옥상에 
올라가 화염병을 던지는 사태가 벌어졌을까.&lt;br&gt;&amp;nbsp;&lt;br&gt;어쩌면 단 돈 천만원이 아까웠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는 &apos;선례&apos;를 만들면 
안된다. 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천민주의, 거지근성등으로 이해되어지는 이 의식들은 조금만 기어오르는 걸 냅두면 나중에는 
머리끝까지 기어 오른다 라는 계급서열의 차별화가 내재되어 있고, 동시에 위를 능멸하는 풍습이라는 연산군시대부터 곱게 내려져온 철저한 
상하복종관계의 조폭적 위계질서가 내재되어 있다. &lt;br&gt;&lt;br&gt;조선시대부터 유구하게 내려져온 이 &apos;위&apos;에 대한 강인한 존재감에 대해 나는 때로 
전율한다. 논리에 밀리면 나잇값을 앞세우고, 성별을 따지며, 학연을 따지는 이 한국사회에서&amp;nbsp;&apos;위&apos;들은 언제나 강고한 수직 방벽의 맨 위에서 
어디서 감히. 라는 말들과 더불어 힘껏 눈들을 부라렸다. 그리고 &apos;아래&apos;는 그 눈에 언제나 위축당해야 했다. &lt;br&gt;&lt;br&gt;하지만 그 &apos;위&apos;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선례를 만들면 안된다는 논리도, 거지근성이라는 비야냥도, 떼법이라는 분노도, 결국은 &apos;위&apos;가 &apos;아래&apos;를 돌보지 않아 생긴 
결과라는 점을.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이다. 그 아래에 대한 돌봄이&amp;nbsp;무지한 한국 사회에서 위가&amp;nbsp;풍족해지면 아래는 저절로 그 혜택을 
입을 것이다. 라는 &apos;적하효과&apos;는 과연 실현 가능한 이론이 될 수 있을까.&lt;br&gt;&lt;br&gt;아니. 그것은 단지 물의 흐름만을 지칭할 수 있는 용어가 
될 뿐. 돈의 흐름은 지칭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용산의 철거민들에게&amp;nbsp;돈 한푼 더 쓰는 것을 &apos;선례&apos;를 만드는 일이라고 거절했던 그들에게 &apos;돈을 
나눠주면 게을러져서 안된다.&apos; 라는 논리를 기대하는 게 더 옳은 걸까. 아니면 &apos;내가 돈을 많이 써야 밑에 사람들이 풍족해 진다.&apos; 라는 논리를 
기대하는 것이 더 옳은 걸까.&amp;nbsp;&lt;br&gt;&lt;br&gt;적어도 레이건과 부시 시대는 적하효과때문에&amp;nbsp;경제성장률이 낮아졌어도, 위를 능멸하는&amp;nbsp;풍습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부자들이 곳간을 넓히려는 야심에 더하여, 아랫것들은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인면수심의 야욕까지 겹쳐진다. 이 사회에서 
적하효과가 실증된다는 논리는 그래서 공허해 질 수 밖에 없다.&amp;nbsp;누구는 용산의 참사에서 이 시대의 구조화된 공권력에 대한 폭력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지만, 나는 용산의 참사에서 헤어날 수 없는 이 사회의 경제적 문제를 생각한다.&amp;nbsp;그것이 내가 말하고자 했던 용산의 
&apos;적하효과&apos; 이다.&amp;nbsp;한국사회에서 1년동안 벌어졌던 문제들은 이미 양동이를 차고 흘러 넘쳐서 우리 앞에 등장했다. &amp;nbsp;&lt;br&gt;&lt;br&gt;&lt;br&gt;ps) 
그렇다고 하여 용산의 철거민들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개발단체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또한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 사이의 어느 
순간에 서있을 뿐이다.&amp;nbsp;&lt;br&gt;&lt;br&gt;ps2)&amp;nbsp;원래 이 글은 신뢰에 대해 논하고자 했던 3부작 시리즈의 맨 처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때문에 여의치 않아 따로 독립적으로 올린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신뢰에 대한 시리즈를 조만간 올린다는 뜻이다..&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font color=&quot;#ffffff&quot;&gt;요새 들어서 왜 이리 글쓰기 귀찮아지고, 써도 제대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이상해졌다...&lt;/font&gt;&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27738</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Tue, 03 Feb 2009 01:30:55 +0900</pubDate>
</item>

<item>
<title>덤블도어&apos;는&apos; 없다.</title>
<description>&lt;P&gt;&lt;A href=&quot;http://machiavelli.tistory.com/50&quot;&gt;덤블도어 &apos;는&apos; 없다.&lt;/A&gt;&lt;BR&gt;&lt;BR&gt;&lt;BR&gt;&lt;BR&gt;어쩔 수 없네요. 이쪽으로 옮길려고 해봤더니 소스가 다 짤립니다.. 어쩔 수 없이 링크로 대신합니다. 죄송...&lt;BR&gt;&lt;BR&gt;&lt;BR&gt;조횟수 올릴려고 이러는 거 아님 ㅎ&lt;BR&gt;&lt;BR&gt;ps) 수정했습니다. 음냐리님 감사합니다. ㅎ&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26911</link>
<category>영화 드라마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Mon, 19 Jan 2009 00:08:11 +0900</pubDate>
</item>

<item>
<title>본질은 같다.</title>
<description>&lt;P class=ph&gt;&lt;BR&gt;&lt;SPAN&gt;&lt;FONT color=#c2c2c2&gt;&lt;STRONG&gt;&lt;BR&gt;&lt;BR&gt;&lt;/STRONG&gt;&lt;FONT color=#000000&gt;현재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쏠려있는가.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잇는 관심의 1순위를 꼽아보자면 단연 오늘 구속된 인터넷 경제논객 &apos;미네르바&apos;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apos;우리&apos;의 범위를 확장시켜, 전세계인이라고 한다면, 단연코 지금 전 세계의 관심은 2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공습이다.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유엔의 결의는 무력함을 드러나는 도구로밖에 기능하지 않는다. 이과정에서 세계의 비난은 팔레스타인보다는 이스라엘에 집중된다. 하지만 정작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이번 공격에 대해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가자지구 접경지역에 소풍구경나오듯 전쟁구경을 나온 사람들 마저 있을 지경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싸늘한. 더 나아가서 분노에 가까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이 공격에 환호하고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이 의문이 생성되는 건 자연스럽다.&lt;/FONT&gt;&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ph&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이스라엘은 이 전쟁의 정당성을 자국에 대한 안보에서 찾고 있다. 최종목표로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무장정치조직 &apos;하마스&apos;의 완전궤멸을 노리는 이스라엘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가자지구의 완전 소멸을 노리는 것이나 진배없다. 현재 가자지구의 정치,행정,군사조직은 거의 다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으므로, 하마스의 궤멸은 가자지구의 궤멸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가자지구의 존립이 이스라엘의 안보환경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킬 정도로 큰 존재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가자지구에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대다수가 유엔등과 같은 국제기구의 봉사 및 원조에 의해 생활을 영위한다. 이과정에서 하마스가 아무리 테러활동에 기인한 행보를 보인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안보환경에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나 하마스의 존재자체를 자국의 안보환경에 대한 큰 위협으로 보는걸까.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ph&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본질적으로 이문제는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하나의 이론과 결부시킬 수 밖에 없게 다. 바로 &apos;시오니즘&apos;이다. 20c 초반부터 확산된 시오니즘은 결국 이스라엘의 건국에서 중요한 이론적 근거로 작용했다. 이 이론을 간단히 요약해서 소개해보자면, &apos;선민민족&apos;인 유대인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살았던 공간에서 국가를 만들어 나가고 영위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극심한 이기주의라고 밖에 생각되지만. 무려 2000년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정체성을 지켜야 했던 유대인으로서는 이런식으로라도 자신들을 지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현실로 둔갑되었을 때다. 이스라엘의 &apos;시오니즘&apos;은 필연적으로 그 지역을 살아가는 아랍인들에 대한 완전한 희생을 전제로한다.&amp;nbsp; 이 점에 있어서 아랍인들이 강력한 반발을 하는 것은 당연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반발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 애시당초 20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국가를 성립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였지만, 이를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과정에서도 이스라엘은 필연적으로 소통과 통합, 연대와 화해대신 전투와 억압으로 해결해 나갔다. 시오니즘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서.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ph&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이러한 강압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의 뒤에 초강대국 &apos;미국&apos;이 버티고 있었기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미국의 정치인들이 유대인들의 로비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lt;SPAN id=callbacknestmachiavellitistorycom487754 style=&quot;FLOAT: right; WIDTH: 1px; HEIGHT: 1px&quot;&gt;&lt;EMBED id=bootstrappermachiavellitistorycom487754 src=http://machiavell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nil_profile=tistory&amp;amp;nil_type=copied_post width=1 height=1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wLiveConnect=&quot;true&quot; FlashVars=&quot;&amp;amp;callbackId=machiavellitistorycom487754&amp;amp;host=http://machiavelli.tistory.com&amp;amp;embedCodeSrc=http%3A%2F%2Fmachiavelli.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48%26callbackId%3Dmachiavellitistorycom487754%26destDocId%3Dcallbacknestmachiavellitistorycom487754%26host%3Dhttp%3A%2F%2Fmachiavelli.tistory.com%26float%3Dleft&quot; EnableContextMenu=&quot;false&quot; wmode=&quot;transparent&quot; allowscriptaccess=&quot;always&quot;&gt;&lt;/SPAN&gt; 말한다면 2차 세계대전때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이후 미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apos;이점&apos;을 등뒤에 업고 자신들의 시오니즘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자지구, 그리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apos;안보&apos;에 심대한 위협이 되는 이유도 어느정도는 설명 가능해 진다. 바로 이스라엘의 &apos;시오니즘&apos;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성립시키는 이념과, 지금까지 지탱해왔던 논리에 조금이라도 생채기를 내는 것 자체를 위협으로 보고 대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굳이 인정할 필요가 없기도 하고- 미국이 있으니까- 더 본질적으로는 인정할 필요성자체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의 구조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에.&lt;BR&gt;&lt;BR&gt;&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ph&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그런데 여기서 다시 &apos;우리&apos;의 범위를 줄여서 한국의 관심사안으로 돌려보자. 이스라엘이 보이고 있는 행위가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인걸까. 바로 미네르바에 대한 이야기다. &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ph&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지난번에도 한번 지적했었지만 미네르바에 대해서 나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마치 무장정치조직 하마스에 대해서 비판적인 태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하마스가 성장한 것이 이스라엘의 강압적인 태도에 대한 반항이듯이, 미네르바가 얼치기적인 태도를 보였음에도 인터넷 상에서 &apos;경제 대통령&apos; 이라고 추앙받았던 것도 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신뢰상실과 불신, 더 나아가서 정부 태도에 대한 저항과 연결되는 것도 마찬가지다.&lt;BR&gt;그리고 지금 현정부와 대통령이 보이는 태도도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태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한평생 성공가도만 달렸던 우리의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의 책임을 다른 쪽에서 찾는 그와 정권은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아 자신들의 결정을 정당화하려 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apos;선민민족&apos;인 것이다. 더럽고 불결한 계급 밑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대드는 꼴을 그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lt;BR&gt;미네르바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구속당하고, 죄인 취급을 받는 건, 그가 정부에 대항했고, 대통령에게 대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렇게 되도록 상황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현 정부가 미네르바를 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책임을 모두 미네르바에게 덮어 씌우려고 한다. 미네르바 본인에게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순간. 현 정부와 대통령에게는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이 간단한 사실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lt;/FONT&gt;&lt;/SPAN&gt;&lt;/P&gt;
&lt;P class=ph&gt;&lt;SPAN&gt;&lt;FONT color=#000000&gt;아니 간과하고 있다기 보다는 무시하고 있다는게 더 옳을지도 모른다. 이미 행정부를 장악했고, 입법부의 절반을 훨씬 넘기는 172석의 공룡정당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구의 눈치를 보고, 누구의 간섭을 받으면서 일을 추진해야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한국의 지도층중 대다수가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심정적 동의를 보내는 현 상황에서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뻔뻔해 져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법에 대한 태도도, 그리고 국민들의 입을 막으려 하는 태도도 &lt;/FONT&gt;&lt;/SPAN&gt;&lt;/P&gt;&lt;SPAN&gt;&lt;FONT color=#c2c2c2&gt;
&lt;P class=ph&gt;&lt;FONT color=#000000&gt;결국 본질은 같다. 물론 현 정부는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물과 식량을 끊지도 않는다. 인간을 극한 상태로 몰아넣지도 않는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시오니즘이라는 도구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도구로 세상을 장악하려 하는 이스라엘의 오만한 태도와. 현 정부가 현제 시국을 바라보는 태도는 본질적으로 같다.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힘으로 세계에서 울려퍼지는 비난의 대합창을 무시할 수 있는 베짱을 가진 이스라엘은, 과반수의 여당과 행정부접수라는 과정을 거쳐 국민과의 소통을 명박산성으로 막아버리고, 법으로 제한하려 하는 현 정부의 태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lt;/FONT&gt;&lt;/P&gt;
&lt;P class=ph&gt;&lt;FONT color=#000000&gt;결국 본질은 같다.&lt;/FONT&gt;&lt;/P&gt;&lt;/FONT&gt;&lt;/SPAN&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26362</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Sun, 11 Jan 2009 02:31:0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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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도대체 왜?</title>
<description>&lt;P&gt;결국 이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일까? 대통령과 여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mb개혁법안에 대한 이야기다. 한미 fta는 그래도 억지로나마 이해해 줄수라도 있다. 어찌되었던 간에 통상과 무역에 관계되는 정책이기 때문에. 그들이 주장하는 &apos;위급한 경제위기 속에 시급히 처리해야 할 개혁법안&apos; 이라는 논리에 일부나마 성립될 수라도 있다.- 그 논리의 적합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fta동의안은 &apos;경제위기&apos;라는 논리에 해당하기라도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재벌의 방송진출을 열어주고, 사이버공간의 자율성에 제한을 두며, 집회 시위 참가자에 대한 제약을 활성화 시키고,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시킨다는 법안들이 어떻게 mb개혁법안이 되며 더 나아가서 경제살리기와 연관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는 도저히 의문이 아니 들래야 아니 들수가 없다. 아니 무슨 동네 노인정배 고스톱도 아니고. 무작정 mb개혁법안이라는 이름 하나로 &apos;퉁치고&apos; 넘어가면 모든게 깔끔하게 해결될거라고 생각한 건가? &lt;BR&gt;&lt;BR&gt;그렇다면 의문은 더욱더 증폭된다. 국민을 바보 천치로 아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갈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위와같은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저항, 그리고 압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적당히 숨겨서 들어간다면 이해는 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지금인걸까?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코앞에 닥친 형국에서 자진해서 이런 분란을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apos;하나로 단결해도&apos; 모자랄 상황에서 국론 분열이 일어날 것이 분명한 법안들을 일괄패키지로 묶어 퉁치고 밀어부치려고 하는 저의는 도대체 뭘까? 나는 도저히 이 의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lt;BR&gt;&lt;BR&gt;&lt;/P&gt;
&lt;P&gt;이 의문에 대한 가장 일리 있는 해석은 김종배 시사평론가의 몫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 강공모드를 &apos;내년을 위한 포석&apos;이라고 해석했다. 2010년 중간선거에 정권의 명운이 걸려있는 입장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시기는 내년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미리 걸리적 거리는 문제들을 치워야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일을 벌인다는 해석이다. 말하저면 내년의 &apos;속도전&apos;을 위한 정지작업인 셈이다. &lt;BR&gt;&lt;BR&gt;합리적이다. 김종배 평론가의 해석은 사실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사실상 현 정부의 마지막 기회는 내년이다. 내년도 올해와 같이 지지부진하게 끝난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되고. 2010년과 2011년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소멸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거기다가 자칫 잘못해서 2012년에 정권이 다시 교체 된다면? 분명히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현 정부가 지금 이렇게 이른바 &apos;mb개혁&apos;을 밀어붙이는 이유다. &lt;BR&gt;&lt;BR&gt;&lt;/P&gt;
&lt;P&gt;하지만 또다른 의문이 고개를 든다. 속도전을 하겠다는 것도, 그로인한 정지작업을 하겠다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그들이 내거는 mb입법은 너무나 강도가 세다. 국정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집회,시위에 제한을 두며, 방송들에 재갈을 물리고, 인터넷에 제약을 두는 그들의 법안은 분명히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법안들이다. 속도전을 하기 위한 정지작업 치고는 너무나 세다. 고속도로위에 차들이 달리기 위해서는 아스팔트만 깔면 된다. 굳이 벽을 세우고. 일방통행 차선을 긋고, 휴게소를 없애버릴 필요까지는 없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내년에 그들이 추진하게 될 &apos;&apos;속도전&apos;에 엄청난 방해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올해의 강력모드가 2009년의 약화로 이어지고, 2010년의 몰락으로 가시화될 수도 있단 얘기다. &lt;BR&gt;&lt;BR&gt;더군다나. 굳이 지금 이라는 시점 선택에서도 의문이 든다. 내년을 위해서 지금 하는 정지작업이라지만. 한나라당의 172석은 내년에 무너지지 않는다. 4월에 재보선이 있는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5석 정도가 바뀔 뿐이다. 한미 fta야 연내 처리가 목표여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국정원 강화가. 방송법 처리가. 사이버 공간 제약이. 집회 시위 탄압이 그렇게 까지 시급하게 처리해야할 사안인가? 그렇다고 쳐도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은 &apos;조급증&apos;으로 밖에 읽혀지지 않는다. 전략상으로도 이는 좋은 전술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횡포로 읽혀져서 여론의 역풍이 단단히 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으려 한다. 25일로 협상시한을 못박고, 쟁점법안과 한미fta의 연내 처리를 공언하고 있다. &lt;BR&gt;&lt;BR&gt;결국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아니 더욱더 증폭된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렇게 조급해 하는 건가. &lt;BR&gt;&lt;BR&gt;&lt;/P&gt;
&lt;P&gt;다시 김종배 평론가의 &apos;분석&apos;을 곱씹어 보자. 2009년을 위한 &apos;정지작업&apos; 이라는 분석을. 여기서 방점은 2009년에 찍혀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조급해 하는 이유에도 2009년에 있지 않을까?&lt;BR&gt;한국은행의 내년도 경제성장률 예측은 2.0% 내외다. 그리고 한국은행의 금융조사국장은 이 수치를 발표하면서 2.0%보다 내려갈 수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경제연구소들은 사실상 내년도 한국의 gdp를 1% 중반대로 보고 있다. 이러한 예측에서 현실화 되는 지적은 적어도 내년에 한국이 헤쳐나갈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이 중국의 경착륙이 반영되지 않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측이 1%중반이므로. 만약 중국의 경착률이 현실화 된다면, 한국은 미증유의 경제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 &lt;BR&gt;&lt;BR&gt;&lt;/P&gt;
&lt;P&gt;이러한 우울한 예측은 나도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내년. 2009년의 대한민국은 카오스적인 상황이 들이닥칠 가능성이 전례없이 높다. 그리고 그 가능성 앞에서 신뢰를 쌓아야할 정부는 이미 국민으로부터 강한 불신을 받고 있다. 시장은 더이상 재정부장관의 말을 신뢰하지 않으며,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1년도 안되서 20%대로 추락하고, 반등할 기미 마저 보이지 않는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호질기의.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만 부린다 라는 뜻이 선택된 가운데 많은 이들은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아집, 독선을 넘어서서 똥고집과 머릿속에 든 삽 한자루로 희화화 시키기 시작했다. &lt;BR&gt;&lt;BR&gt;더군다나. 정부는 실낱같이 남아있는 사회복지 예산망도 동결 내지 삭감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내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 분명한 실업자에 대한 대책은 미비하고. 악화되는 고용에 대한 대책은 고작해야 라디오 연설에서 &apos;더 낮은 일자리를 찾아보라&apos; 라는 여유로운 권유들 뿐이다. 청년 인턴이라는 생색을 내면서 정부는 공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가속화 하고 있고, 이 과정을 거쳐서 도대체 몇 만명이나 되는 실업자와 고용패배자들이 거리로 나앉게 될지. 그리고 정부의 보호망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겨울을 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경제위기의 한파속에서 정부와 여당은 부유층들에 대한 지원대책만 쏟아낸다. 적하효과라는 80년대 레이건의 거대한 실패로 증명된 이론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면서. 그 안에서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찣겨져 나갈 뿐이다. &lt;BR&gt;&lt;BR&gt;늘어난 것은 4대강에 울려퍼질 새벽종들과. 삽자루들. 그리고 강부자의 이대로라는 구호들 뿐이다. &lt;BR&gt;&lt;BR&gt;&lt;/P&gt;
&lt;P&gt;이러한 2009년의 예측속에서 과연 국민들은. 그리고 시민들은 과연 그대로 정부가 하라는대로 있을까? 정정길 대통령 실장은 사석에서 &apos;3~4월에 있을 경제위기때문에 내년 5월이 걱정된다.&apos; 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보수논객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는 내년 5,6월이 그대로 간단히 넘어갈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나도 이러한 전망들에 동감한다.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날까 말까 하는 판에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그리고 들이닥칠 내년의 경제위기를 곱씹어 보면 2009년 화염병이 등장할꺼라는 예측은 예측이 아니라 확신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취할 입장은 명확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거듭된 논리의 확장성 앞에서 신뢰를 회복할 어떠한 정당성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정부가 취할 조치도 당연해 질 수 밖에 없다. &lt;BR&gt;&lt;BR&gt;의문은 여기서 해결된다. 그들의 조급성이. 그들의 강경함이. 그들의 무도함이. 그리고 그들의 끔찍함이. 나는 이러한 예측들 앞에서 전율할 뿐이다. &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24694</link>
<category>정치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Wed, 24 Dec 2008 00:40: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곳에 왕이 있었다.</title>
<description>&lt;P&gt;바람이 불어왔다. 왕은 그 바람을 느꼈다. 매년 불어오지만, 그리고 매년 춥지만, 올해는 이상하게도 더 추웠다.&lt;/P&gt;
&lt;P&gt;시렸다. 왕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저 멀리 북쪽에서 부터 날라와 얼굴을 긁고 지나가는 이 바람이 미웠다. &lt;/P&gt;
&lt;P&gt;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꿈이었을까. 나도 남들 처럼 밥 먹고 자고 책 보고 여유 부리며 그렇게 살 수는 없었던 걸까. 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그가 태어났을 때 그는 왕이 될 꿈 조차 꾸어서는 안됐다. 하지만 그는 왕이 되었다. 원하지도 않았다. 그 어렸을 때 어두웠고 어두웠던 방안 에서 진저리 치면서 무서움을 품었을 때 언제 누군가의 칼날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때, 그때 왕은 소망했었다. 왕이라면 지긋 지긋 하다고.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를 그리며 그는 간절하게 되뇌었었다. 두려움에 떠는 이 시간. 이 시간이 퍼져나가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면, 제발 그 두려움만 잊게 해달라고. 그렇게 해준다면 자신은 왕족이 아니어도 좋다고.&lt;/P&gt;
&lt;P&gt;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다시 햇살을 보았을 때, 그때 왕좌는 비어있었고, 피묻은 칼은 그에게 왕이 되기를 강요했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되었다.&lt;/P&gt;
&lt;P&gt;왕은 거기까지 생각했다. 바람속에 섞여 들어가는 말냄새가. 흙 냄새가 왕의 생각을 방해했다. 왕은 고개를 돌려 자기 옆에서 휘날리는 깃발을 쳐다 보았다. 바람은 깃발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 바람을 따라 왕은 고개를 돌렸다. 거기게 그들이 있었다. &lt;/P&gt;
&lt;P&gt;문득 몇 년전을 생각한다. 왕위에 오르자 마자 그는 도성을 벗어나야 했다. 그리고 거기서 수없이 목격 한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 하는 것. 왕은 그제서야 자신에게 평범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깨달음 때문에 지금 자기는 여기에 서있다. &lt;/P&gt;
&lt;P&gt;지켜낼 수 있을까? 그 평범함을. 왕의 얼굴은 다시 시려왔다. 왕은 돌아다 본다. 자신을 지키는 군사들. 그리고 장군들 그들은 왕을 바라본다. 왕이 다시 고개를 들린다. 그곳에 그들이 있다. 왕은 올라와 내려오는 동안 아무 말도, 아무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화살의 거리는 그들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지만. 어차피 그들을 쏠 병사도 없다. 왕은 입술을 사려물었다. 다시 깃발을 본다. 바람은 계속 해서 불고, 왕은 끊임 없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한다는 듯이. 왕의 입술이 열렸다. &lt;/P&gt;
&lt;P&gt;&quot;모든 성문을 굳게 닫아라.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 설령 짐의 지시가 있는다 치더라도 성문은 열지 않는다. 같이 산다면 같이 살고 같이 죽는 다면 같이 죽는다.&quot;&lt;/P&gt;
&lt;P&gt;왕은 생각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lt;/P&gt;
&lt;P&gt;&lt;BR&gt;한때 드라마 작가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극 작가를 꿈꿨었다. 그 꿈은 아직 놓고 있지 않지만 실현되지 않을 꿈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작가가 된다면 꼭 쓰고 싶을 장면 두 개는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조선 중기.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한 아들, 소현세자가 아비가 기다린 그 궁으로 들어가던 장면이 하나다. 소현세자는 아비가 자신이 죽이려 한다는 것을 몰랐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궁으로 들어갔다. 그 때 그의 표정은, 그의 행동은, 그의 말은 어땠을까. 가끔씩 그 장면을 상상해 보곤 한다. &lt;BR&gt;다른 하나는 고려때의 일이다. 거란군 1만여명이 개경앞에 진을 치고 왕을 압박했을 때, 그때 개경 도성안에는 병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왕은 모든 도성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농성 준비를 시작했다. 거란군은 왕이 살던 궁궐의 가장 가까운 지점에 병력을 배치했다. 분명 그때 왕은 거란군과 마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왕의 이름은 고려 8대 현종이다. &lt;/P&gt;
&lt;P&gt;현종은 애시당초 왕위계승자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다른 배우자가 있었고, 둘은 사통, 즉 몰래 만나서 현종을 낳았다. 이를 안 당시의 국왕 성종은 둘을 유배 보냈다. 어미는 현종을 낳다가 죽었고, 아비는 현종의 나이 3살때 귀양지에서 죽었다. 태어나자 마자 어미와 이별했던 어린 아이는 성종의 용포 안에서 컸고, 성종은 그를 왕족으로 대우하라고 했다. 그런 그의 신변이 변한 건 성종이 죽고, 목종이 즉위하면서 부터이다. 고려 초기의 거듭된 왕족간의 내분으로 왕족들은 대부분 죽었고, 남은 사람은 목종과 당시 대량원군이라고 불렸던 훗날의 현종뿐이었다.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을 죽이려 했고, 대량원군은 승려들의 도움을 받아 토굴속에서 연명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그때 대량원군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그의 가슴속에 야망이라는 단어는 과연 존재했었을까. &lt;/P&gt;
&lt;P&gt;그가 토굴 밖으로 나온 것은 반란이 일어나 강조가 목종을 죽이고 그를 왕위에 올리면서 이다. 그리고 그가 왕위에 오르자 마자 거란의 성종은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다. 그를 왕위에 올린 강조는 병력을 이끌고 나가 성종에게 패했고, 허리가 잘려 죽었다. 현종으로 이름이 바뀐 그는 개경을 버리고 도망가야 했다. 나라가 세워진지는 이제 고작 80여년이었고, 견훤과 궁예의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신생국가 고려는 현종의 대에서 끝났을 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마음놓고 후원자가 사라진 현종을 공격했고, 그는 도망가면서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그를 호위하는 군사는 불과 십여명이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lt;/P&gt;
&lt;P&gt;그가 다시 도성으로 돌아왔을 때 남은 건 찢겨지고 불태워진 도성이었고, 궁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현종이 된 왕은 묵묵히 도성을 수리했고, 거란과 맞서 싸운 병사들을 격려하고 보상금을 나누어 주었다. 국가 재정은 거덜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거란은 계속해서 칩입해 들어왔고, 왕과 신료들은 이를 극복해 내야 했다. 군대가 언제든지 창칼을 돌려세워 개경에 진입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왕은 유능하고 똑똑하고 야심이 있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북방으로 보냈다. 이 위기의 순간 왕의 육성을 우리는 기록에서 접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왕이 무슨 생각으로 이 위기의 순간들을 헤쳐나갔는지. 중간에는 급료 지불에 화가 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를 진압한 왕은 역적의 무리들을 방면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거란이 쳐들어 왔다. 유능하고 베짱 좋은 강감찬이 나가 거란을 무찔렀다. 하지만 거란의 군대는 계속해서 밀고 내려왔고, 왕은 모든 군사를 강감찬에게 맡겼다. 그리고 거란은 강감찬의 추적을 피해 개경 도성 코앞 까지 진출했다. &lt;/P&gt;
&lt;P&gt;그때, 현종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저 멀리 가물 가물하게 도열해 있는 거란군의 진영을 그는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1월의 겨울 하늘. 낮은 짧고 밤은 길다. 거란군은 분명 밤을 틈타 야습하려 할 것이고, 도성 내에 군사는 없었다. 현종의 생각을 나는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느낄 뿐이다. &lt;/P&gt;
&lt;P&gt;그의 일생은 단 한번도 평탄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였기에 평범한 삶은 그가 무엇보다고 꿈꾸었던 삶의 궤적이었을 것이다. 기록은 그가 시를 짓고 서예를 하는 걸 좋아했다고 전해준다. 이는 그가 평화로운 삶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위기의 순간. 평화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거기서 거란군에게 항복했었더라면, 분명 그 자신의 일신은 행복하고 평화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은 병사를 모두 끌어 모아 거란군의 칩입에 맞섰다. 강감찬이 언제 자신들을 구원해 줄지도 모르는 그 위기의 순간, 그는 결심했다. 개경을 수비하기로. 거란군은 고려의 결연한 항전 태세를 보고 다시 길을 잡아 북상했고, 그들을 추격하던 강감찬에게 따라 잡혀 귀주에서 몰살당했다. 이때의 전투를 한국 역사상 3대 대첩 중에 하나로 꼽히는 귀주대첩이다. 이 전투는 유일하게 다른 대첩들과 달리 전형적인 회전식의 전투이다. &lt;/P&gt;
&lt;P&gt;현종에게 평화란, 자신의 평화이기 이전에, 다른 이들에게도 나뉘어 지는 평화였다. 분명히 생각컨대, 토굴속에서 목숨을 부지해 나가던 어린 대량원군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왕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경을 벗어나 숱한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 도망을 갔을 때, 그의 심경에 무엇인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아비의 패배로 심양까지 끌려가면서 조선의 백성들도 같이 끌려갔던 것을 보았던 소현세자처럼 그때 현종도 분명 무엇인가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소현세자가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했던 행동 처럼, 현종도 그 때를 전후해서 지도층의 책임의식이라는 종류에 눈을 떴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확신한다.&lt;/P&gt;
&lt;P&gt;그래서 그 때, 거란군이 다시 개경 앞에 서있었을때 모든 중신들이 중과부적이라고 도망가자고 했었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현종이 수성을 고집하고 남은 병사들을 모조리 불러 모아 성벽 앞에서 거란군을 내려다 보았을 때의 심정을 나는 느낄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평범한 삶을 깨뜨리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신이 평범한 삶을 누구보다고 갈망했기에 현종은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았을 것이고, 그 평범한 삶을 지켜내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왕이 될 꿈도 꾸지 못했던 그는 거기서 부터 왕이 되었다.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건 그 어떤 행동 보다도 어렵다. 현종은 바로 그것을 해냈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평범하게 살게 해주는 것도 해냈다.&amp;nbsp; 고려 후기의 대학자 이제현은 그런 현종의 삶을 두고 이런 말을 남겼다. &lt;/P&gt;
&lt;P&gt;&quot;나는 현종의 삶에서 아무런 흠집도 찾아낼 수 없다.&quot;&lt;/P&gt;
&lt;P&gt;그래서 나는 그때 거란군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 현종의 모습을 계속해서 눈에 담는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꼭 찍어 주길 바라면서. 오늘 밤. 까닭없이 그가 생각 나는 건 그때, 현종이 내려다 보는 모습들이 미칠듯이 그리워서 인지도 모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machiavell/blog.aspx?id=222591</link>
<category>역사 이야기</category>

<author>마르세리안</author>
<pubDate>Tue, 18 Nov 2008 00:52:3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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