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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정리되는 삶을 위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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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보프</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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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Mon, 03 Jan 2005 12:43:2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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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보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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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반 일리치 - 상투성과 기계에 맞서는 현인</title>
<description>&lt;BR&gt;《녹색평론》제37호 1997년 11-12월호&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lt;BR&gt;&lt;STRONG&gt;&lt;FONT size=3&gt;이반 일리치 - 상투성과 기계에 맞서는 현인&lt;/FONT&gt;&lt;/STRONG&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캠퍼스의 어느 강당, 이반 일리치는 강당을 반쯤 채운 청중속에서 그의 친구 한사람을 알아보았다. 20세기의 지도적 철학자 중의 한사람인 일리치는 막 말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연단을 훌쩍 떠나 한 조그마한 소년 ― 그의 어머니와 함께 강연장에 들어온 크리슈나라는 어린애 앞에 무릎을 꿇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한때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고, 신학과 역사와 화학 분야의 학위를 가지고 떠돌이 학자이기를 고의적으로 선택한 사람 ― 그는 수십년 동안 &apos;전문가들&apos;을 괴롭혀왔다. 그의 방법은 그 전문가들의 &apos;사회적으로 형성된 확신&apos;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 그 일리치가 소년 크리슈나의 눈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위하여 연단에서 내려온 것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이런 일은 대학의 형식적인 의전(儀典)을 흔히 거부해온 사람으로서 일리치에게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어떤 특정한 기관과도 제휴하기를 거절하면서 일리치는 매년 펜주립대학과 독일 브레멘대학의 객원교수로서 학기를 나누어 쓰고, 나머지 수개월간은 케르나바카 교외에 있는 어느 멕시코 마을에서 집필을 하면서 지낸다. 11개의 언어를 말하는 일리치는 열두권에 이르는 저서와 많은 에세이를 위하여 방대한 범위에 걸쳐 연구해왔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연구에 대하여 그 자신 거리를 유지하려고 해왔고, 그에 못지않게 그러한 연구기관에 소속됨으로써 받아들여야 하는 물리적 제약을 극력 피하려고 한다. 그 자신의 말을 빌어, 그는 &quot;입자를 쪼개는 자들, 파동 기계공들, 담론 해체론자들 및 그 동류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quot;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이러한 독립적이고 예리한 지성은 현대사회의 가장 &apos;신성한 암소들&apos;에 관계하여 행사되어 왔다. 여러 해에 걸쳐 일리치는 교육과 교통체계와 종교와 의료의 &apos;탈제도화&apos;를 주창해왔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그러한 제도들이야말로 &quot;인간 삶의 가장 좋은 것들을 가장 치명적으로 망쳐놓은 것&quot;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예를 들어, 1971년에 나온 책《학교 없는 사회를 위하여》에서 그는 의무교육의 문제를 거론한다. 그의 견해로는 의무교육은 극소수가 따지만 대다수는 잃게 되어 있는 복권(福券)을 강제로 구입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학교를 통하여 교육과 좋은 직업과 사회적 성공을 기대하기 때문에 중도에 탈락하거나 점수를 제대로 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생동안 낙인이 찍혀지는 것이다. 잔인하기는 고등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일리치는 말한다. 고등교육은 학문적 의욕을 고취하고 민주적 시민을 형성하기보다는 특권의 재생산에 더많이 겨냥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호기심을 죽이고 학생들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미국의 학교들이 &apos;현존하는 차별 형태들을 반영하고 지탱하고 강화하는&apos; 방식에 대한 일리치의 급진적 비판이 담긴《학교 없는 사회를 위하여》가 나온 지 25년이 지난 뒤 오늘날 미국의 대학에서 복합문화적 교과과정과 정전(正典)문제를 놓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현대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제도와 기관들을 폭넓게 검토하고 있는 책《공생공락을 위한 도구》(1973)에서 일리치는 기술공학의 철학과 기술공학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윤곽을 그려보인다. 일리치는 이 예외적인 책에서 다루어진 주요 주제들을 나중에 나온 여러 책들속에서 좀더 상세히 검토한다.《에너지와 평등》(1974)에서 그는 에너지의 고소비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관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관계 자체를 타락시키며, 속도에 대한 중독 ― 자동차, 비행기&amp;nbsp;― 은 사회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비인간화한다고 주장한다.《의료의 한계》(1976)는 &apos;보건&apos;과 같은 개념의 역사를 탐구하고, 어떤 한계 이상으로 &apos;건강의 의료화&apos;가 진행되면 그 실제적인 결과는 오히려 반생산적이며 사람들을 &apos;병들게&apos;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1982년에 나온 책《젠더(性)》에서 일리치는 섹시즘은 산업사회의 불가피한 조건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산업사회는 남녀간의 본래적 관계인 &apos;비대칭적 상보성&apos;을 &apos;법적으로 조작된 평등&apos;의 관계로 전환 . 타락시킴으로써, 남자들과 여자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경제적 존재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창조하였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여성은 언제나 경제적으로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일리치는 말한다.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젠더》는 &amp;nbsp;페미니스트들에게 인기가 없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lt;/FON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그의 가장 최근의 책《텍스트의 포도밭에서》(1993)는 과거를 향하여 거울을 비추고 있다. 여기서 일리치는 오늘날 우리가 글을 읽는 방식과 &apos;성(聖) 빅토르의 휴&apos;라고 하는 수도사가 800년 전에 글을 읽었던 방식을 비교하기 위하여 12세기를 탐구하고 있다. 실제로, 일리치가 펜주립대학에서 행한 강연의 주제도 &apos;휴&apos;에 관한 것이었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대부분 자신의 친구들과 몇몇 대학동료들로 이루어진 청중 앞에서 강연하면서 일리치는 &apos;책에 기초하는 배움의 장소&apos;로서의 대학이 곧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어떤 특정한 유형의 독서기술 ― 즉, 독자와 인쇄된 텍스트 그리고 그 너머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상호교류가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하였다. 12세기의 수도사 휴는 문자로 기록된 페이지를 읽으면서 기쁨을 누렸다. 그는 마치 수도원의 포도밭에서 딴 포도의 맛을 음미하듯이 글을 한줄 한줄 맛보았던 것이다. (일리치에 의하면 페이지라는 말, 또는 라틴어로 파지나(pagina)라고 하는 말은 본래 포도넝쿨이 그 위에서 자라는 시렁을 가리키는 말 에스팔리에(espalier)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휴에게는 독서행위는 지혜를 탐구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신체적인 활동이었다. 그것은 삶의 한 방식이었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이에 반해 오늘날의 독서는 &apos;하이퍼스페이스 속의 수음행위&apos; 같은 것으로 변해버렸다고 일리치는 말한다. 일리치에 의하면 감각적이고 질감이 있으며 실제로 육체성을 가진 책이 사라지면 인간적인 상호접촉의 살아있는 형식의 하나가 사라진다. 하이퍼스페이스의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일리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사 휴가 경험한 &apos;말의 향연&apos;에 관한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에 하이퍼스페이스는 우리에게 사실상 황무지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어린시절 고향에서 독일말과 프랑스말과 이탈리아말을 함께 사용한 경험에서 나오는 약간 음악적인 악센트를 가진 68세의 기품있는 남자 ― 일리치는 다음과 같은 싯구로 그의 말을 끝냄으로써 &apos;진보&apos;를 비판하였다. &quot;가장 감미로운 것들도 가장 시어빠진 것이 될 수 있다네. 백합꽃이 썩을 때 잡초보다 훨씬 나쁜 냄새를 풍긴다네.&quot; 현대기술이나 심지어 고등교육에 대한 공격의 말 한마디 없었지만 삶과 배움의 현대적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거기에 무겁게 서려있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데이비드 케일리가 엮은《이반 일리치와의 대담》(1992) 속에서 일리치는 &quot;나는 흔히 내가 전통적으로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근원적으로 소외된다는 느낌을 갖습니다&quot;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한편의 시를 위한 가장 적합한 단어가 컴퓨터의〈완전한 단어〉에 접속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고, 유전공학이 자연질서의 일부가 되어버린 시대에 일리치의 통찰은 더이상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북보다는 북소리를 내는 기계를 선호하고, 숲속에서의 산책보다는 자연을 다루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더 좋아하는 데 익숙해진 사회에서 아직도 자신의 두 발을 사용하는 사람을 끌어안는다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12세기의 수도사 &apos;휴&apos;의 이야기는 일리치의 복잡한 사고방식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여주는 고전적인 예가 된다. 과거에 일리치는 생소한 철학적 영역을 다룰 때 흔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생생한 이야기와 인물들을 난간으로 삼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리치와 그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리 호이나키 사이에 일어났던 한 이야기는 일리치의 평생에 걸친 일의 배후에 존재해온 본질적인 충동을 설명해주는 데 도움이 된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1993년에 그 자신 전에는 사제(司祭)였기도 했던 호이나키는 일리치의조언을 받아들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천킬로미터에 이르는 순례를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스페인의 도시는 9세기 이래 유럽의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주요 목적지였다. 일리치는 그러한 친구의 결정을 축하하여 자신의 벽장에서 오래된 튼튼한 보행용(步行用) 신발 한 켤레를 꺼내어서 그것을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일리치가 그 신발을 샀던 것은 1973년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살해된 날이었다. &quot;내가 아옌데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를 들었을 때 나는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우리가 서로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아옌데에게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야 한다고 하였고,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와 같은 일을 할 수는 없으며, 뿐만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apos;당신의 집무실에서 살해되는 것보다 자전거에서 살해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apos; 하고 대답했지요.&quo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일리치가 그 신발을 샀던 날,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의 임기는 종식되었다. 아옌데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머리에 총을 맞았던 것이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20년 동안 아주 드물게 사용되었던 그 신발은 호이나키에게 썩 잘 맞았다. 그러나 순례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시험하는 일이다. 맨 첫날 호이나키는 깎아지른 산길이 아직 눈에 뒤덮여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면서, 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고사하고 그 산길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바위에 기댄 채, 이미 이 지점을 지나간 수천, 아마도 수백만의 사람들을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는 이 순례자들을 북부 스페인으로 이끌었던 신앙의 위대한 신비와 자기자신을 거기로 이끌었던 우정(友情)의 위대한 신비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호이나키는 그때 자신이 의식을 잃었던 게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그 산길로 올라가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의식이 깨어났을 때는 그가 산의 저편으로 걸어서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는지 지금까지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신비로 남아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이것은 한 켤레의 소박한 신발을 예외적으로 이용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또한 &apos;개발&apos;에 대하여 오랫동안 반대해온 일리치의 태도를 엿보게 하는 창(窓)을 제공해주고 있다. 일리치가 아옌데에게 출근시에 자전거를 이용하라고 권고했을 때, 그 권고는 칠레라는 나라의 환경과 자원에 알맞은 대안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일리치는 오랫동안 개발정책이란 기술사회의 가치를 제도화하는 것이며, 실현불가능한 프로그램을 가난한 나라들에게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칠 줄 모르게 비판해왔다. 그가 볼 때, 아옌데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면 그것은 평화봉사단과 국제통화기금 ― 개발을 선도하는 가장 악질적인 두 조직이라고 일리치가 종종 비판한 바 있는 ― 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몸짓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앞의 순례 이야기는 또한 절제, 고통의 감내, 그리고 &apos;걸음&apos;에 관해서도 말해주는 것이 있다. 물론 오늘날 이러한 것은 낡고 괴상한 개념들이 되었다. 신속한 땜질, 자구책, 그리고 욕망의 즉각적인 충족이 지배하게 된 시대에서는 &apos;순례&apos;라는 단어 자체도 시대착오적인 괴이한 것으로 들린다. 자동차를 몰고 음반가게로 가서 베네딕트 수도사의 녹음된 성가(聖歌)를 사서, 자신의 방안에서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시대에 무엇 때문에 천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걸어서 가는가? 호이나키나 일리치는 이런 질문을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순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또한 일리치의 굳센 그러나 복잡한 종교적 믿음을 잠깐 엿볼 수 있다. 일리치는 독실한 가톨릭으로 남아있지만 교회에 대한 그의 관계는 거의 언제나 긴장된 것이었다. 이 긴장은 1968년에 일리치가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페트, 즉 바티칸의 카페트로 소환되었을 때 절정에 이르렀지만, 그것은 거의 1951년 그가 사제로 서품된 그날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일리치는 1951년에서 1956년 사이 푸에르토 리코 빈민들과 지내는 경험을 통하여 미국 교회를 비판하였는데, 그것은 일리치가 보기에 교회가 소수집단에게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기 때문이었다. 그 뒤, 푸에르토 리코의 폰스에 있는 가톨릭대학의 부총장에 취임한 일리치는 그가 책임맡은 대학의 교육시스템을 겨냥하였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그러나 일리치와 로마 사이에 정말로 불화가 시작된 것은 그가 멕시코에서 국제문화자료센터를 세우고 운영하고부터였다. 스페인어 머릿글자들을 따서 CIDOC이라고 알려진 이 센터는 라틴아메리카로 향하는 미국의 사제, 수녀, 수도자들을 위한 집중적 어학교육기관이었지만 동시에 반체제 지식인과 평신도 종교활동가들의 집합장소였다. 이들은 일리치의 자극을 받아 평화봉사단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에 이르는 자원봉사 프로그램들의 바탕에 있는 기본전제를 비판적으로 파헤쳤다. 급진주의자들의 싱크탱크로 일컬어지면서 이 센터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교회가 신성하게 여기는 모든 것에 충돌하였다. &apos;성공적&apos;인 몇년 후 일리치는 로마로 소환되었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일리치는, 바티칸 안팎에서, 자기자신을 변호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해에 그는 &apos;제도로서의 교회&apos;에 소속된 &apos;피고용인&apos;의 자리를 사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apos;어머니 교회&apos;라고 일컫는, 아름다움과 진실과 깨달음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장소로서의 교회를 섬기는 미천한 하인임을 늘 자처해왔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마지막으로, 그리고 아마도 근원적으로, 저 소박한 신발에 관련된 이야기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리치는 벗들에게 깊이 헌신적인 사람이다. 그는 친구들을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 사랑을 주고, 안내를 하며, 위안을 베풀고, 공동체의 느낌을 주는 일 ― 을 다 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벗들이 삶을 회피하는 것을 도울 수는 없고, 도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리치에게 삶이란 아픔이나 고통의 감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리치의 신발은 호이나키가 순례여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순례길의 거친 자연조건이나 자신의 내면적인 고통으로부터 호이나키를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오늘날 사람들은 &quot;(사물을) 보지 않기 위하여 이미지와 영상이 만들어내는 방탕한 놀이에 굴복해버렸음&quot;을 일리치는 주목한다. 죽음을 부정하고, 현실의 모습을 일그러뜨리는 시대에 단순한 친절함이라든가 우정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인공지능과 전자공동체가 지배하는, 감각이 배제된 세계에서 ― 포옹, 입맞춤, 얼굴을 맞댄 대화 등으로 ― 감각을 일깨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아옌데가 죽고, 그가 신발을 샀던 그해 1973년에 일리치는《공생공락을 위한 도구》를 출간하였다. 그 책의 서문에서 일리치는 우정의 중요성과우정이 성립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즉 자기절제의 중요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오늘날 &quot;청빈의 개념은 타락해버렸고, 청빈이라고 하면 쓰디쓴 맛이 느껴질 뿐이다&quot;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청빈은 우정의 기초를 형성하는 &apos;절제되고 창조적인 유희&apos;의 바탕이었다. 일리치는 청빈은 &quot;즐거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올바른 인간관계를 파괴하거나 외면하는 것만을 배제하는 덕성&quot;이라고 한 아퀴나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정과 자기절제는 좋은 삶에 있어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그러나 일리치의 방식으로 이해되는 이러한 자기절제는 오늘날 유행하는 개념들 ― 자구책이니 자기관리니 또는 심지어 자기자신과 환경에 대한 책임감이니 하는 것들(일리치는 이 모든 것을 &apos;해방심리학&apos;이라고 부르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 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apos;지구공동체&apos;(이것은 일리치에게 모순어법의 예이다)의 &apos;지속가능한 개발&apos;을 장려하면서 모금운동을 벌이는 환경주의자에 응답하여 사람이 자동차나 원자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또, 누군가가 절제된 생활방식 ― 즉 개인적 자유가 사람들 사이의 상호의존성 속에서 실현되는 &apos;공생공락&apos;의 삶 ― 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추상적인 &apos;책임감&apos;이나 강요된 &apos;당위성&apos;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품위에 관해 말하는 사람의 편에 같이 서고 싶기 때문인 것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이러한 의미에서의 우정 개념은 그의 삶에 있어서 주된 동력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리치의 많은 저술의 지도적 원리였다. 때때로 그것은 모순된 행동으로 보이는 것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친구의 초대를 받아들여 일리치는 비행기를 탈 경우가 있는데, 비행기는 교통문제에 관한 자신의 저술에서 비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또, 마이크가 그와 청중 사이의 친밀성을 깨트리는 것을 유감스러워하면서도 그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 마이크를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그리고, 그의 한쪽 뺨에 자라고 있는 커다란 혹이 주는 고통으로 자신의 하루가 시련을 견뎌내는 시험기간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 그는 &apos;비인간적인 의료산업&apos;에 의한 진단이나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 일리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깊은 동료의식이며, 마지막 몇 문제를 설명하고자하는 충동이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팝 스타들과 문화적 &apos;우상&apos;들에 게걸든 사회에서는 지식인들도 쉽게 개인숭배에 빠져들기 쉽다. 일리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에게 헌신적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개인숭배의 분위기는 전혀 서려있지 않다. 세제르 곤쿠오글루라는 터기출신 여성은 ― 그 남편이 펜 주립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 가을의 두달은 일리치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머지 열달은 일리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지낸다고 말하였다. 세제르는 자신이 고향에서 성장할 때 익혔던 의식(儀式) 하나를 설명하였다. 어린시절,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날 때는 언제나 그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춘 다음, 그 사람의 손등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일리치를 만날 때까지 세제르는 이 관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날 오랜 기다림끝에 일리치를 만났을 때 그녀는 자기의 스승에게 전통적인 터키식 방법으로 인사를 하였다. 일리치는 이 인사법의 우아함에 깊이 매료당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차례로 세제르의 손에 입을 맞추고 그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품위있는 행동이었다.&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lt;/FON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lt;/FONT&gt;&lt;/P&gt;&lt;FONT face=바탕체 size=2&gt;
&lt;HR style=&quot;BORDER-RIGHT: silver 2px dotted; BORDER-TOP: silver 2px dotted; BORDER-LEFT: silver 2px dotted; BORDER-BOTTOM: silver 2px dotted&quot;&gt;
&lt;/FONT&gt;
&lt;P&gt;&lt;/P&gt;
&lt;P class=paratitle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편집자의 말&lt;/FONT&gt;&lt;/P&gt;
&lt;P class=para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본지는 이번호부터 오늘의 &apos;녹색운동&apos;에 크게 공헌해온 현대의 사상가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연재물을 시작한다. 그 첫 순서로 여기 소개하는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1926년 비엔나에서 출생하여 유럽 여러 곳에서 교육을 받고 가톨릭의 사제(司祭)가 되었던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진정성은 푸에르토 리코와 멕시코 등 제3세계 민중사회에서의 현장체험을 통하여 서구식 산업문명체제의 근본적 허구와 폭력성을 뿌리로부터 증언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시장경제와 산업주의라는 서구식 개발논리가 어떤 방식으로 제3세계 사회의 토착적 삶의 지혜와 기술을 깊이 훼손하고, 대다수 민중이 인간다운 존엄성을 갖고 살 수 있는 조건을 박탈하는가를 철저하게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과정에 있어서 &apos;공생공락&apos;(conviviality)이라는 개념이 일리치에게 핵심적인 열쇠였다. 경제성장과 개발, 그것을 기초로 하는 &apos;진보&apos;의 형이상학에 대하여 우리가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보다 ― 자동차 중심의 현대적 교통체계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이 ― 사람끼리의 &apos;공생공락&apos;을 처음부터 불가능하게 하는, 배타적 경쟁의 논리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리치의 주된 관심은 유럽의 옛 문화, 특히 12세기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중세 유럽문화쪽으로 기울어져왔다. 지금도 진행중인 일리치의 이 방면에서의 작업이 갖는 의미는 아마도 좀더 기다려본 뒤에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초점의 이동은 역사와 현실로부터의 퇴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문명에 대한 비판이 훨씬 더 근본적이고 깊이있는 것이 되기 위한 노력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점의 이동이라고 하지만, 일리치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예전이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근년에 이르러 그가 자주 언급하는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apos;인간다움의 근거&apos;를 훼손하는 문제는 기실 일리치의 초기 저술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리치에 의하면, 산업주의체제가 배격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빈곤이나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좀더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운 위엄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조건을 갈수록 망가뜨리기 때문인 것이다. 심화되는 산업기술문명 속에서 이제 가장 큰 재앙은 인간이 기계나 로봇의 처지로 격하(格下)되어간다는 사실인 것이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face=바탕체&gt;&amp;nbsp;&amp;nbsp;그러나 최근의 일리치의 발언이 주는 큰 매력은 ― 그리고 어쩌면 상당한 어려움은 ― 그러한 생각이 투박한 사회과학의 언어가 아니라 극히 섬세한 말투로 전달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떤 기성의 학문적 . 사상적 틀도 단호히 거부하고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파헤쳐온 일리치는 본질적으로 극히 부드럽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보인다. 여기에 옮겨싣는 글의 출전은 Utne Reader 1995년 1-2월호이며, 필자 마릴린 스넬(Marilyn Snell)은 그 잡지의 부편집인이다.&lt;/FONT&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jhvof/blog.aspx?id=187732</link>
<category>이반 일리치</category>

<author>보프</author>
<pubDate>Tue, 11 Dec 2007 10:55: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5월 그 날</title>
<description>&lt;FONT color=#a77a20&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quot; color=#000000&gt;5.18 백일장에서 대상 받은 작품입니다.&lt;/FONT&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STRONG&gt;그 날&lt;BR&gt;&lt;BR&gt;&lt;/STRONG&gt;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lt;BR&gt;&lt;BR&gt;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lt;BR&gt;&lt;BR&gt;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lt;BR&gt;&lt;BR&gt;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lt;BR&gt;&lt;BR&gt;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lt;BR&gt;&lt;BR&gt;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lt;/FONT&gt; &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원문은 &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09603&quot;&gt;여기에&lt;/A&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jhvof/blog.aspx?id=150635</link>
<category>내가 사는 모습</category>
<category>518</category><category>광주</category><category>그날</category><category>백일장</category>
<author>보프</author>
<pubDate>Mon, 14 May 2007 13:25:0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종부세 세금폭탄?</title>
<description>&lt;A href=&quot;/urijeri/blog.aspx?ID=138886&quot;&gt;원문보기&lt;/A&gt;&lt;BR&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apos;굴림&apos;;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종부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네요.. 종부세 대상자가 2006년에 비해 48% 증가한 50만 5000명 선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종부세 세수도 약 68%정도 늘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작년 맹위를 떨쳤던 종부세 세금폭탄론도 다시 급부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폭탄 현실화 되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lt;/SPAN&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정말 세금폭탄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만발하고 있는 형상이네요. 봄꽃보다 폭탄꽃이 먼져 피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일부언론에서는 많이 오른 지역을 중심으로 몇평 아파트의 경우 작년에 얼마에서 올해는 얼마라는 식의 자극적인 보도만 일삼고 있습니다. 작년에 얼마 남겼는지를 알려주면 참 재밌을 텐데요.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그래도 문제가 많다니 뭐가 문제인지 찬찬히, 하지만 간단히 살펴볼까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작년에 비해 종부세 대상자가 크게 늘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당연하지요. 종부세의 공시가격은 2007년 1월 1일 기준입니다. 작년에 집값 무지 올랐다고 정부에 대해 온갖 욕을 다 해댔는데, 그게 이번에 반영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상자가 느는 겁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세수는 왜 그리 확 늘어났는지 죽을 맛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작년 종부세 도입할 때 과세표준적용율이 70%였습니다. 해마다 10%씩 늘리기로 해서 올해는 80%입니다. 6억원 이상 초과분을 80%로 계산해서 세금을 매긴다는 거지요. 작년에 비해 표준적용율이 올랐으니 세수가 느는 것은 당연하구요. 이미 작년에 발표한 내용입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그러니 대상자가 늘고 서민까지 피해를 본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땡! 대상가구가 48%늘었다니까 서민들에게까지 피해가 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작년 대상자가 전체가구수의 1.3%정도였고, 지금 엄청 많이 늘어난 것이 대한민국 전체 가구수의 2.1%입니다.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안정이 된다면 내년부터는 크게 대상자가 늘지 않을 거구요. 집값이 또 오르게 된다면 대상자가 느는 것은 당연하지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그래도 6억원이 갓 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피해가 크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그런 소리 마세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올 종부세 대상자 중 100만원 이하의 소액을 내는 사람이 전체 종부세 대상자의 42%입니다. 대상자의 반 정도는 100만원도 안 되는 소액을 내기 때문에 큰 부담이 아니라는 거죠. 6억원 갓 넘는 분들은 수십만원만 내면 됩니다. 개인 주택분만을 보면 작년 23만2000가구에서 올해 38만1000가구로 늘어나는 데, 이 가운데 94%가 서울 강남 등 ‘버블세븐’으로 알려진 수도권 지역이라네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1가구 1주택의 경우 피해가 너무 많다. 수십년 살았는데 이사 가야 한다는 것이냐? 이사도 양도세 빼고나면 갈 수도 없다.&lt;/SPAN&gt; &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수십년 좋은 지역에 살면서 이득 보았으면 세금 좀 내셔도 됩니다. 그간 오른 집값 계산도 해 보시구요. 좋은 지역에서 온갖 혜택은 다 누리고 집값 이득도 수억~수십억 일텐데 그냥 쬐끔 내시거나 이제 다른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양도세는 1가구 1주택의 경우 이익분의 7%밖에 안 되는 데 뭔 말씀인지. 이런 말이야말로 이익에는 슬그머니 눈감고 손해에는 쌍심지를 켜는 거 아닌가 생각이 되네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연금생활자나 노인들의 경우는 문제가 많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65세 이상의 종부세 대상자 중 연 3000만원이하의 생활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이미 조사되었다고 하네요.&lt;/SPAN&gt; 여기에 금융자산은 고스란히 빠져 있습니다. 종부세 대상자들이 금융자산이 없지는 않을거고..&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부동산만 가지고 그러니 형평성에 맞지 않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이미 선진국의 여러 나라가 보유세를 현실화하고 있어요. 더구나 우리나라 같이 재산의 80% 가까이를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부동산의 세제합리화가 무진장 합리적인거랍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그 세금 모아서 정부 잘못한 거 메꾸려고 별짓을 다하는 구나.&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종부세의 대다수는 지방재정을 위해 사용됩니다. 2조 9000억 중에서 지방재정감소분을 보전해 주는 것이 약 1조 2000억 되구요.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깎아준 부동산 관련 세금 취득·등록세 등의 인하 분 몇천억을 빼고 나면 전액 지자체의 일반재원이나 교육/복지에 활용한다는 데 어쩌죠?&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문제 - 그래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여러 상황 고려해서 완화해야 하는 거 아니냐?&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답 - 정말 너무 하네요. 겨우 안정되어 가는 부동산 가격 올리고 싶으면 계속 흔들어 대세요. 그리고 세금에 대한 형평성 문제 다시는 거론 안 할 거면 흔들어 대시구요. 월급쟁이가 봉이니 어쩌니 그런 소리 말이죠.&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예를 하나 들고 끝내려구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연합신문의 기사 중 한 부분입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공시가격이 6억원에서 9억2천만원으로 오른 목동7단지 34평형 주민들은 전년엔 148만8천원의 종합부동산세를 냈지만 올해는 198.4% 오른 444만원을 내야 할 처지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정확히 말하자면 작년에는 종부세를 내지 않았습니다. 재산세만 냈구요. 그리고 위의 금액은 교육세, 농특세 등 부가세가 붙은 금액입니다. 2006년 재산세는 정확히 124만원이구요. 그리고 올해 2007년 종부세를 재산세 포함해서 정확히 계산해보면 378만원이네요. 나머지는 또 농특세 등 부가세가 붙은 걸꺼구요.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pos;굴림&apos;&quot;&gt;집값이 50%가 넘게 뛰어서 3억 2000만원이나 한 해에 이득을 얻었는데, 254만원 더 내는 걸 안 내려고 한다는 게 이해가 되나요? 이게 종부세 많이 올랐다고 신문에서 뽑아 놓는 케이스입니다. 종부세와 재산세 구분도 못하는 사람들이 말이죠^^.&lt;/SPAN&gt; &lt;/P&gt;&lt;/SPAN&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jhvof/blog.aspx?id=138968</link>
<category>펌 글</category>
<category>종부세</category><category>종합부동산세</category>
<author>보프</author>
<pubDate>Fri, 16 Mar 2007 13:18:2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쿠바에서 진행된 기적의 의료</title>
<description>&lt;STRONG&gt;&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60070315163715&amp;amp;s_menu=사회&quot;&gt;프레시안 원문보기&lt;/A&gt;&lt;BR&gt;&lt;BR&gt;허리케인이 남긴 아름다운 만남&lt;BR&gt;&lt;/STRONG&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외곽지역을 지나다 보면, 해군기지를 개조한 &apos;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apos;을 찾을 수 있다. 건물에서 바라보면 넓은 운동장 끝에 펼쳐진 해변이 장관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1998년 중미와 카리브해 주변에 큰 허리케인이 있었고, 이 허리케인으로 인해 인근 국가에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쿠바는 즉각 주변 국가에 의료원조팀을 파견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하지만 각국의 의료취약지역이 의외로 광범위했다. 게다가 쿠바 의료진이 철수할 경우 이 지역들에서 발생 가능한 의료공백을 메우기도 어려워 보였다. 이에 쿠바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의 문을 열게 됐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apos;연대성, 통합성, 인도주의&apos;를 표방하며 남미의 의료취약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의사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남미의 다양한 국가 학생들이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프리카와 미국의 학생들도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음식, 교복, 교과서, 생활비 등 대부분을 쿠바 정부에서 부담하고 있으며, 현재 28개국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쿠바 자국의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 순수한 국제적 지원활동의 하나다. 체제가 다른 나라의 학생들을 배척하지도 않는다. 빈곤과 건강 악화 위협에 노출된 국가의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입학을 허가한다.&lt;BR&gt;&amp;nbsp;&amp;nbsp; 
&lt;TABLE class=article_copy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3px; PADDING-LEFT: 8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400&gt;&lt;IMG height=300 hspace=0 src=&quot;http://www.pressian.com/images/2007/03/15/60070315163715.jpg&quot; width=400 border=1 name=img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8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400&gt;&lt;RIMGCAPTION&gt;▲ 쿠바 아바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의 모습 ⓒ인권오름&lt;/RIMGCAPTIO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amp;nbsp;&lt;B&gt;자발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의료를 선택한 의사들&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매년 새 학기에 모집할 인원을 쿠바 정부에서는 각 정부 혹은 진보적 정당, 사회단체 등에 알린다. 그러면 각국의 진보적 정당이나 사회단체, 좌파정부 등에서는 자국의 학생들을 선발해 쿠바로 보낸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쿠바 정부에서 정한 입학기준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25세 이하의 가난한 가정의 학생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 이곳의 학생들은 대부분은 졸업 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는 의료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산골짜기 오지에서의 진료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무료로 교육시켜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에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진료하려는 학생이 있느냐는 질문에, 학교 홍보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quot;물론 그런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스로 산골짜기를 찾아갑니다. 이것은 우리가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apos;도덕적 의무&apos;입니다.&quot; 라고 대답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교과과정에 철학이나 인권, 빈곤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지는 않다. 그러나 의료 행위는 &apos;돈벌이&apos;가 아닌 &apos;환자의 건강&apos;이 목적이라는 상식적인 덕목을 강조할 뿐이라고 설명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최근 베네수엘라에서도 &apos;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apos;이 문을 열었다. 10년, 20년이 지난 후 이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간 의사들이 남미의 곳곳에서 의료 활동을 펼칠 미래를 상상해보자. 치료받을 돈이 없다고 해서, 병원이 너무 먼 곳에 있다고 해서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gt;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FTA와 다른 무역협정을 맺다&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한미자유무역협정 협상의 타결이 임박했다고 한다. 기업의 이익이 증대되어야 국가의 발전이 있고, 그래야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개선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가 대세라고, 우리도 빠르게 대세에 편승해야 한다고 말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하지만 지금 소개할 남미 국가들은 오히려 반대 방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06년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정부는 무역협정의 또 다른 모습인 &apos;민중무역협정&apos;을 체결했다.(참조 : &lt;A href=&quot;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amp;amp;id=370&quot; target=_new&gt;&quot;자유무역협정이 아닌 민중무역협정을!&quot;&lt;/A&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기업에 이득이 되는 상품 관세 철폐가 아니라, 민중들이 &apos;필요&apos;로 하는 것을 개방한다. 쿠바와 볼리비아는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에는 쿠바와 같은 발달된 의료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볼리비아는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필요로 하는 광물과 농산물, 농축산 가공품을 낮은 관세로 제공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자국의 기존 자산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고 자원을 보존하며, 상호 혜택이 되는 방향으로 협정을 맺는 것이다. 큰 이득을 남기기 위해 경쟁력 있는 몇몇 산업을 개방하며 국가의 필수 산업은 위기에 빠트리는 &apos;자유무역협정&apos;과는 다른 모습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쿠바가 볼리비아 정부에 취할 조취의 내용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높은 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볼리비아 시민들에게 쿠바 정부는 무료 안과수술을 제공하고 다양한 의료기술 장비와 의료 인력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3년 전부터 이어진 쿠바와 베네수엘라 간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다.&lt;BR&gt;&amp;nbsp;&amp;nbsp; 
&lt;TABLE class=article_copy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3px; PADDING-LEFT: 8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400&gt;&lt;IMG height=300 hspace=0 src=&quot;http://www.pressian.com/images/2007/03/15/60070315163715[1].jpg&quot; width=400 border=1 name=img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8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400&gt;&lt;RIMGCAPTION&gt;▲ &apos;기적의 작전&apos;, 수술을 받기 위해 버스에 오르고 있는 사람들ⓒ인권오름 &lt;/RIMGCAPTIO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amp;nbsp;&lt;B&gt;50만 명의 눈을 뜨게 한 &apos;기적의 작전&apos;&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apos;기적의 작전(Misi&amp;oacute;n Milagro)&apos;은 라틴아메리카의 높은 문맹률을 개선하기 위해서 쿠바정부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의 공동노력에 의해 시작되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높은 문맹률을 개선하기 위해 차베스 정권은 집권 이후 광범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했다. 하지만 녹내장, 백내장 등과 같은 안과 질환으로 인해 교육자체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적지 않음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쿠바의 의료기술을 통해 양국 간에 &apos;기적의 수술&apos; 혹은 &apos;기적의 작전&apos;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1차 &apos;기적의 작전&apos; 기간은 2004년 7월에서 12월까지 6개월이었다. 이 당시 베네수엘라에서 1만3천여명, 쿠바에서 1만여명의 환자가 수술을 통해 눈을 떴다. 당시에는 밤을 새워 수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그 때의 열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1차 작전 기간 동안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시력을 회복했다. 이들은 자국의 교육프로그램과 연결되어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받을 수 있었다. 이후 &apos;기적의 작전&apos;은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연대 사업에서 확장되어 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국제적 연대 사업으로 이루어졌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4차 작전 기간인 현재 하루에 120명 정도의 환자들이 수술을 받고 있다. 대다수는 백내장 환자들인데 백내장의 경우 수술 1건당 20여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지난 3차 작전 기간까지 50만 명이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이동비를 절약하고 남미 전역에서 수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에도 안과전문병원을 설립했다. 민중무역협정의 내용 중 하나로, 볼리비아에도 안과병원을 설립할 예정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쿠바에서는 미국의 오랜 경제봉쇄로 의료장비들마저 수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apos;기적의 작전&apos;을 처음 수행한 &apos;빤도 페레르(Pando Ferrer)&apos; 안과 병원에 있는 의료장비들은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안과 수술로는 최첨단 수준인 엑시머 레이저수술 장비도 준비되어 있는데, 의료장비를 수출한 미국 밖 회사들에게 미국이 압력을 넣을 가능성을 우려해 장비 관련 사진은 외부로의 유출이 차단돼 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미국 등에서 제기하는 &quot;실력도 없고, 장비도 구식인 돌팔이들이 벌이는 해프닝&quot;이라는 비난은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런 비난의 시선이 초라해 보일 정도이다.&lt;BR&gt;&amp;nbsp;&amp;nbsp; 
&lt;TABLE class=article_copy cellSpacing=0 cellPadding=0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3px; PADDING-LEFT: 8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300&gt;&lt;IMG height=225 hspace=0 src=&quot;http://www.pressian.com/images/2007/03/15/60070315163715[2].jpg&quot; width=300 border=1 name=img_resize&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8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2px; PADDING-TOP: 3px&quot; width=300&gt;&lt;RIMGCAPTION&gt;▲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에서 진지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lt;A href=&quot;http://www.elacm.sld.cu/&quot;&gt;http://www.elacm.sld.cu/&lt;/A&gt;&lt;/RIMGCAPTIO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amp;nbsp;&amp;nbsp;&lt;B&gt;미국이 아니라 쿠바에서 배워야 한다&lt;/B&gt;&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다양한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국제적 지원활동의 적지 않은 부분은 초국적 기업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최근 이라크의 극심한 의료공백 현상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10억 달러를 이라크 보건부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 이라크 민중을 위한 &apos;인도적&apos; 지원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 재건 사업은 이라크 자국기업의 참여가 배제된 채 미국과 유럽의 몇몇 초국적 기업만이 참가하고 있다. 이는 200개가 넘는 국영기업을 사유화하고, 대다수의 산업체를 외국기업만 소유할 수 있도록 해놓은 부시 행정부의 의도 때문이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이런 상황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이라크가 안정된 이후, 국가 보건의료 시스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이라크 민중의 건강은 재건사업에 참여한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추구에 의해 희생당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상황과 비교해 보면 쿠바의 국제적 지원활동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의과대학을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성형외과, 피부과 등과 같이 돈 잘 버는 과를 선택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의사들의 윤리의식 개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다음 기사에서는 쿠바의 의료시스템이 어떻게 자발적이고 도덕적인 의사들을 양산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윤추구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apos;기적의 작전&apos;처럼, 가난하고 시력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는 상상 속에도 존재할 수 없다.&lt;BR&gt;&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차가운 신자유주의적 기획이 아니라 따뜻한 민중 중심의 기획을, 폭력적인 이윤추구의 가치가 아니라 인간의 건강을 우선하는 가치를 우리는 쿠바를 통해 배워야 한다.&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jhvof/blog.aspx?id=138953</link>
<category>펌 글</category>
<category>FTA</category><category>무상의료</category>
<author>보프</author>
<pubDate>Fri, 16 Mar 2007 11:53: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고 김남주 13주기</title>
<description>고 김남주 시인의 13주기이다.&lt;BR&gt;&lt;BR&gt;대학시절 참 많은 날을 그의 시를 읽고 울었다.&lt;BR&gt;8년전, 삼성 모 계열사 면접 자료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란에 김남주 시인을 적었던 기억도 난다.&amp;nbsp;면접관이 누구냐고 물었던 기억도..&lt;BR&gt;&lt;BR&gt;시인이라기 보다 전사로 기억되고 싶었던 그...&lt;BR&gt;&lt;BR&gt;그의 삶에 감동하고, 그의 전투적인 시에 눈물흘리고..&lt;BR&gt;그러던 어느날 다가온 그의 서정시들. 어찌 그리 고울 수 있는 지.&lt;BR&gt;&lt;BR&gt;그 이후로 항상 착각에 빠진다.&lt;BR&gt;브레히트의 &apos;서정시가 쓰기 힘든 시대&apos;라는 시는 그가 쓴 거라고...&lt;BR&gt;&lt;BR&gt;오늘은&amp;nbsp;그의 서정시가 그립다. &lt;BR&gt;&lt;BR&gt;안치환의 노래말로도 잘 알려진 시.&lt;BR&gt;&lt;SPAN&gt;
&lt;P&gt;&lt;STRONG&gt;&lt;BR&gt;물 따라 나도 가면서 &lt;/STRONG&gt;- 김남주&lt;BR&gt;&lt;BR&gt;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lt;BR&gt;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lt;BR&gt;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lt;BR&gt;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lt;BR&gt;겨우내 낀 개구쟁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lt;BR&gt;&lt;BR&gt;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lt;BR&gt;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lt;BR&gt;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lt;BR&gt;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lt;BR&gt;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lt;BR&gt;&lt;BR&gt;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lt;BR&gt;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lt;BR&gt;동산에 반달이 떴으니 낼 모래가 추석이라&lt;BR&gt;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lt;BR&gt;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lt;BR&gt;&lt;BR&gt;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lt;BR&gt;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lt;BR&gt;봄 따라 여름 가고 가을도 깊었으니&lt;BR&gt;나도 &amp;nbsp;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lt;BR&gt;어디 따뜻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amp;nbsp;&amp;nbsp;&lt;/P&gt;&lt;/SPAN&gt;덤으로..&lt;BR&gt;&lt;BR&gt;&lt;STRONG&gt;&lt;BR&gt;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lt;/STRONG&gt;- 브레히트&lt;BR&gt;&lt;BR&gt;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lt;BR&gt;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lt;BR&gt;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생겼다. &lt;BR&gt;&lt;BR&gt;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lt;BR&gt;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lt;BR&gt;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레 나무를 &lt;BR&gt;못생겼다 욕한다. &lt;BR&gt;&lt;BR&gt;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lt;BR&gt;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lt;BR&gt;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lt;BR&gt;왜 나는 자꾸 &lt;BR&gt;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lt;BR&gt;처녀들의 젖가슴은 &lt;BR&gt;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lt;BR&gt;&lt;BR&gt;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lt;BR&gt;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lt;BR&gt;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lt;BR&gt;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lt;BR&gt;나의 가슴 속에서 다투고 있다. &lt;BR&gt;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lt;BR&gt;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amp;nbsp;&lt;BR&gt;
&lt;P&gt;&amp;nbsp;*&amp;nbsp;엉터리&amp;nbsp;화가&amp;nbsp;-&amp;nbsp;청소년&amp;nbsp;시절에&amp;nbsp;화가를&amp;nbsp;지망했던&amp;nbsp;히틀러&amp;nbsp;&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jhvof/blog.aspx?id=133579</link>
<category>내가 사는 모습</category>
<category>김남주</category><category>서정시</category>
<author>보프</author>
<pubDate>Tue, 13 Feb 2007 20:00: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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