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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미르기놀이방</title>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 </link>
<description>미르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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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Sun, 22 Aug 2004 08:47: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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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미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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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미르기놀이방</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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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술? 술... 그 오묘한 맛과 역사의 변주곡</title>
<description>&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7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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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line1&gt;
&lt;DIV align=right&gt;
&lt;P style=&quot;MARGIN-TOP: 5px&quo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 &lt;SPAN class=num_grey&gt;2004.04.22&lt;/SPAN&gt;&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text&gt;
&lt;P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30px&quot; align=justify&gt;&lt;IMG height=110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8/alcohl_head.gif&quot; width=578 border=0&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1.gif&quot; width=29 border=0&gt;&lt;BR&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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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ENTER&gt;
&lt;TABLE id=AutoNumber1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37%&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35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8/alcohl_01.jpg&quot; width=250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 align=left&gt;오래 전에 [외경]속에 있는 &apos;집회서&apos;를 아주 우연히 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lt;BR&gt;바로 이 구절을 읽고.&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gt;&lt;FONT color=#ff6600&gt;절제 있게 마시면 술은 사람에게 생기를 준다. &lt;BR&gt;술 없는 인생이 어떠하랴? &lt;BR&gt;술은 인생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lt;BR&gt;마셔야 할 때에 적절하게 마시면 &lt;BR&gt;술은 마음의 즐거움이요 영혼의 기쁨이다. &lt;/FONT&gt;&lt;/P&gt;
&lt;P&gt;술은 사람에게 생기를 주고, &apos;술 없는 인생은 대략 좋지 않다&apos;는 말. 충격이었다. 이 구절이 있는 집회서, 그리고 집회서가 있는 [외경(外經)].&lt;BR&gt;&lt;BR&gt;기독교 경전(經典)에는 [외경(外經)]이라는 것이 있다. 1546년에 열린 &apos;트렌트 공의회&apos;에서 현재의 성경을 확정했다. 여기서 확정된 &apos;정경&apos;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인데, 이 정경과 대비되는 외전(外典) - 경외경(經外經)이라 부르는 경전이 [외경]이다. &lt;/P&gt;
&lt;P&gt;가톨릭 학자들은 외경을 제2정경(正經:經典, deuterocanonical)이라고 부르며 거의 정경(正經)에 가까운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은 정경은 아니고 다만 종교적인 책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한다.&lt;/P&gt;
&lt;P&gt;어쨌든.... 그런 [외경]이란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apos;집회서&apos;가 있다. 이 &apos;집회서&apos;의 원래 이름은 &apos;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apos;라고 하는데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자들에게 이 책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이름도 &apos;교회의&apos; 책이라는 의미로 &apos;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apos;라고 부르기도 한다. &lt;BR&gt;&lt;BR&gt;이 &apos;집회서&apos;에 술이라는 항목이 있다니. 그리고 술은 사람에게 생기를 주고 술은 마음의 즐거움이요 영혼의 기쁨이라니. 술은 이렇게 종교적 의미를 안고 내게 다가 왔다.&lt;BR&gt;그러나 진정한 술의 세계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소주 하나만 하더라도...&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2.gif&quot; width=29 border=0&gt;&lt;/P&gt;
&lt;P&gt;술, 한자로는 &apos;酒&apos;라고 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대충 술 &apos;주(酒)&apos;의 옛글자는 유(酉)라고 한다. 유(酉)는 본래 뾰족한 항아리에서 나온 상형문자인데, 아마도 술을 이 항아리에서 발효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유(酉)는 술이라는 의미말고도 &apos;닭&apos;, &apos;별&apos;, &apos;서쪽&apos;, &apos;익는다&apos; 등의 의미로도 쓰게 되니까, 술을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물 수변을 옆에 붙여 술의 뜻을 가진 주(酒)가 나왔다고 추측한다. 술, &apos;酒&apos;라는 한문 어원은 대충 이렇다고 한다.. &lt;BR&gt;&lt;BR&gt;그런데 술이 꼭 &apos;酒&apos;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잘 마시는 소주는 분명 &apos;燒酒&apos; 이렇게 써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lt;BR&gt;&lt;BR&gt;&apos;소주(燒酎)&apos;&lt;/P&gt;
&lt;P&gt;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apos;燒酒&apos;가 아니라 &apos;燒酎&apos;다. 여기서부터 골치가 아파온다.&lt;BR&gt;우리 나라 전통주 &apos;이강주&apos;나 &apos;왕주&apos; 등등은 모두 &apos;주(酒)&apos;를 쓰는데, 안동소주는 ‘소주(燒酎)’라 하여 &apos;酎(진한술 주)&apos;를 쓴다. 왜 그렇게 쓸까. 궁금증은 끝이 없다.&lt;BR&gt;&lt;BR&gt;먼저, 한국정신문화원에서 만든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서는 분명 소주(燒酒)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진로회사 홈페이지에서는 &quot;燒酎의 [酎]자는 술주[酒]자를 쓰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酎]자가 맞는 것 같다.&quot;고 주장한다. 허나 진로 홈페이지에서 말하는 것처럼 희석식 소주가 마치 &apos;다른 잡물을 섞지 않은 순도 높은 술, 독한 술, 진한 술&apos;이며 &quot;희석식 소주는 곡물로 만든 양조주를 연속식증류기로 증류한 순수의 알코올(주정)을 마시기 좋게 물로 희석한 것이다. 무색, 무취, 담백한 맛이 있는 경쾌한 순수 음료이다. 세계에서 가장 순수한 술로써 맛이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quot;라는 주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희석식 소주, 그렇게 좋지 않다.(&lt;A href=&quot;http://www.jinro.co.kr/&quot;&gt;진로 홈페이지&lt;/A&gt; 참조)&lt;/P&gt;
&lt;DIV align=center&gt;
&lt;CENTER&gt;
&lt;TABLE id=AutoNumber2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34%&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455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8/alcohl_02.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gt;아무튼 소주, 왜 한문으로 다르게 쓰는지, 여전히 궁금증은 남아 있다. 그러나 최소한 &quot;주(酒)는 모든 술을 가리키는 말이고 더 순도 높은 술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apos;주(酎)&apos;를 쓴다&quot;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듯 하다. 희석식 소주가 전통적 소주 보다 &apos;순도&apos;가 높아서 소주(燒酎)라고 표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lt;BR&gt;이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소주의 원래 의미는 소줏고리로 증류해서 걸렀다고 하기 때문에 소주(燒酎)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마시시는 소주는 엄격한 의미로 희석식이기 때문에 소주(燒酒)다. 술 &apos;酒&apos;를 쓸 때 쓰는 유(酉)자는 술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고 그 옆에 마디 촌(寸)은 끓여서 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소주(燒酎)가 맞다는 것이다. &lt;BR&gt;&lt;BR&gt;그러나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의하면 어떤 왕자가 &quot;소주(燒酒)를 마시고 병이 나서 졸(卒)하였다.&quot;라고 하여 &apos;燒酒&apos;가 등장한다. 즉, &apos;燒酒&apos;는 실록 전체를 통해 흔하게 보이지만, &apos;燒酎&apos;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즉, 원래 소주가 소주(燒酎)는 아니다.&lt;BR&gt;&lt;BR&gt;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사전은 소주를 &apos;燒酒(담근 술을 증류하여 얻은 맑은 술)&apos;로 표기하고 있으며, &apos;소주내리다&apos;라는 용법도 소주(燒酒)라고 쓴다.&lt;BR&gt;&lt;BR&gt;그렇다면 어떤 표기가 맞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 사전이다. &lt;/P&gt;
&lt;P&gt;일본어 사전과 자전에 보면, &apos;燒酒&apos;는 &apos;중국 조선의 술의 일종. 곡류 등으로부터 양조한 술을 증류한 것&apos;이라고 하며 燒酎는 &apos;증류주의 일종. 곡류 등을 알콜 발효시켜 증류하여 만든 술&apos;이라고 한다. &apos;酎&apos;를 쓰는 것이 일본 고유의 용법이란 것이다. (네이버 지식 검색) 따라서 &apos;소주(燒酎)&apos;는 일본에서 나온 말이거나 아니면 관습적으로 &apos;燒酒&apos;와 &apos;燒酎&apos;가 함께 써왔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gt;일제 강점기에 소주의 기계식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구려하면 &apos;소주(燒酎)&apos;가 일본식 표현이라는 것도 설득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또 굳이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표기법 문제에 집착하는 것도 좀 그렇다. 다만 우리가 즐겨 마시는 소주, 그 표기는 술 주(酒)가 아니라 &apos;燒酎&apos;라는 것. 그것은 분명하다.&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3.gif&quot; width=29 border=0&gt;&lt;/P&gt;
&lt;P&gt;燒酒나 燒酎나 취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전통적 방식의 증류주 소주(燒酒)가 지금 우리가 마시는 소주(燒酎)는 아니다. 그리고 희석식 소주가 더 순도가 높으니 좋은 술은 절대 아니다. 왜 희석식 소주인가? 희석식 소주는 전통 소주와 무엇이 다른가?&lt;BR&gt;&lt;BR&gt;원래 소주는 곡류나 감자류 등을 원료로 하여 주정발효를 거쳐 숙성된 술밑을 증류하여 만든 술이다. 하지만 우리 주세법에 따르면 &quot;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설탕, 포도당, 구연산 등을 첨가한 술(희석식 소주)&quot; 역시 소주다.&lt;/P&gt;
&lt;DIV align=center&gt;
&lt;CENTER&gt;
&lt;TABLE id=AutoNumber3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25%&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73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8/alcohl_03.jpg&quot; width=280 border=0&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
&lt;P align=center&gt;전통 소주 - 안동소주&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gt;증류한 술 - 소주. 술의 증류법은 중세기 페르시아에서 발달하여 우리 나라에는 아라비아와 원나라를 전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소주와 같은 증류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arag)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 우리 나라 평안북도 지방에서는 &apos;아랑주&apos;, 개성지방에서는 &apos;아락주&apos;라고 부른단다. 평안도 지방과 개성 지방에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몽고군 주둔지역에서 소주가 발달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안동, 개성, 제주도, 진도, 법성포... 전통적으로 소주가 발달한 지역은 몽고 주둔과 관련이 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lt;/P&gt;
&lt;P&gt;원나라를 통해 들어 온 소주에 대해 [지붕유설]에서는 소주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많이 마시지 않고 작은 잔에 마셨고 따라서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서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만 마셨던 술인 듯 싶다. 그러다가 점차 일반서민층까지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마시게 되었다. 가정에서 소주를 만들었던 시대에는 지방에 따라 소주를 마시는 시기가 달랐다. 서울 5월부터 10월까지. 남부지방은 여름에만. 북부지방에서는 사계절 내내 마셨다고 한다. &lt;/P&gt;
&lt;P&gt;이후, 일제 강점기인 1919년 평양에 처음으로 알콜식 기계소주공장이 세워지고 재래식 누룩을 이용하여 대량 생산을 하게 되었고, 1952년 값싼 당밀을 수입하여 값싼 소주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lt;/P&gt;
&lt;P&gt;그러다가 1965년 식량정책의 일환으로 곡류의 사용을 금지하면서 증류식 순곡주는 사라지고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하여 만든 주정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게 된다. 이제 소주는 희석식만 남아 있게 된다. 희석식 소주는 어느 원료를 사용하거나 증류, 정제하기 하기 때문에 주정 함량만 다를 뿐 특징이 없다.&lt;/P&gt;
&lt;P&gt;국산 고구마주정(酒精)에 물을 타는 희석식 소주로 바뀌게 되면서 전통적인 술의 신비로움은 모두 사라지고 주정의 탈취과정에서 어떤 첨가물을 넣느냐에 따라 소주맛의 차이만 남게 되었다. 소주에 방부제가 들었다고 하여 마개를 딴 후 첫잔을 버리기도 하는 버릇이 나온 것도 이 시점이었다. &lt;BR&gt;&lt;BR&gt;그런데 문제는 소주의 원료인 주정에 있다. 고구마을 주 원료로 한 주정을 처음에는 국세청에서 공급했는데, 그 과정에 중앙정보부가 개입했다는 설(說)이 있다. (지금은 소주 원료인 주정을 대한주정판매(주)에서만 판매한다. &lt;A href=&quot;http://www.kasc.co.kr/sub/Product_introduce/Product_introduce_1.htm&quot; target=_blank&gt;참조&lt;/A&gt; )&lt;BR&gt;&lt;BR&gt;요즘도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세상은 항상 술을 권한다. 소주 소비는 늘었지만, 주정은 할당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할당량은 늘 모자랐다. 여기서 주정 할당량을 늘이기 위해 정치자금이 오고갔다는 설이다. 더 나아가 1960년대 중앙정보부가 운영했던 축구팀 &apos;양지&apos;의 운영자금이 주정을 공급하면서 만든 정치자금이었다는 주장도 있는 실정이다. &lt;BR&gt;&lt;BR&gt;실미도 부대를 창설하기 1년 전인 1967년 2월, 중앙정보부는 북한을 꺾기 위한 축구팀을 창설하는데 그게 &apos;양지&apos;팀이다.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은 8강에 올랐다. 북한과 체제 경쟁을 했던 당시, 북한을 이기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축구팀까지 운영하게 된 것이다. &lt;/P&gt;
&lt;P&gt;합숙장소는 당시 이문동에 있던 중앙정보부 청사 내 장교 숙소였는데 전국 유일의 천연잔디 구장이 있었다고 한다. 매일 갈비를 먹을 정도로 최상급 지원을 하였는데, 69년에는 서독 프랑스 스위스 등으로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유럽 전지훈련을 가기도 했다. &lt;/P&gt;
&lt;P&gt;이 비용이 소주 주정 배당을 통해 만든 자금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충분히 신빙성 있다. &lt;/P&gt;
&lt;P&gt;술에서조차 정치 이야기를 뺄 수 없던 시절이었다.&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4.gif&quot; width=29 border=0&gt;&lt;/P&gt;
&lt;P&gt;술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자의 기원, 우리 나라 소주, 그리고 술과 정치까지 와 버렸다. 어차피 딱히 어떤 주제가 있어 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술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니 그리 흠은 아닌듯하다. &lt;BR&gt;&lt;BR&gt;그런데 술을 의미하는 &apos;주(酒)&apos;란 글자가 그렇게 나왔다 치고 우리말 &apos;술&apos;을 어디서 왔을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 고문헌(古文獻)을 찾아 본 사람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lt;BR&gt;&lt;BR&gt;조선시대에는 술이 &apos;수블/수불&apos;이었다. 그래서 &quot;수블 &amp;gt; 수울 &amp;gt; 수을 &amp;gt; 술&quot;이라는 변화 과정을 거쳤다고 짐작한단다. &lt;BR&gt;&lt;BR&gt;그런데 그 ‘수블’은?&lt;/P&gt;
&lt;P&gt;&amp;nbsp;이 말은 술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본다. 술 만드는 과정은 대충 이렇다.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gt;&lt;FONT color=#ff6600&gt;첫째, 곡식을 쪄서 익힌다.&lt;BR&gt;둘째, 여기에 누룩과 주모(酒母 : 이스트 같은 그런 것이라고 한다)를 함께 버무려 넣고 일정양의 물을 부어 버무린다.(여기서는 &apos;빚는다&apos;로 한다.) &lt;BR&gt;셋째, 알맞은 온도에 시간이 흐르면 발효가 이루어진다. &lt;/FONT&gt;&lt;/P&gt;
&lt;P&gt;그런데 발효 과정에서 곡식과 누룩, 물이 섞여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거품이 괴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 모양을 보고 수블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짐작한다. 우리 나라 사람은 술조차 의인화한다. 그래서 술도 자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민망해 할 것이라 생각한다. 술 익어가는 과정, 그것을 신비롭게 생각했다면 그 모습을 보고 이름을 정했다는 것, 그리 지나친 추측만은 아닐 듯 하다. &lt;/P&gt;
&lt;DIV align=center&gt;
&lt;CENTER&gt;
&lt;TABLE id=AutoNumber4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47%&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00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8/alcohl_04.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
&lt;P align=center&gt;전통주 빚는 과정 (사진출처 : &lt;A href=&quot;http://www.urisul.net/&quot; target=_blank&gt;전주 전통술 박물관&lt;/A&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gt;술이 자기가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민망해 할 것이라는 이 정서. 이것이야 말도 우리 나라 사람의 술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lt;BR&gt;&lt;BR&gt;술문화, 그것은 술을 담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5.gif&quot; width=29 border=0&gt;&lt;/P&gt;
&lt;P&gt;가장 최초로 술을 빚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라는 말이 있다. 원숭이가 어떤 으슥한 곳에 저장해 둔 발효된 것을 우연히 인간이 먹어보고 맛이 좋아 계속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 그것인데, 그래서 이 술을 일명 원주(猿酒)라고도 한다. &lt;/P&gt;
&lt;P&gt;어쨌거나 술의 원료는 곡식이 대부분이기는 한데, 곡식을 재배하지 않는 유목민에게는 젖술(乳酒)이 있다. 하지만 이런 술은 우리가 즐기는 술의 내력과는 길이 다르다. 해서 곡식을 원료로 하는 술, 그것이 술 이야기의 중심이다. &lt;BR&gt;&lt;BR&gt;우리가 언제부터 술을 먹었을까라는 질문에 &apos;농경을 시작하고부터&apos;라고 대답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농경 생활이 없고 채취생활도 없는, 또 목축 생활도 없는 에스키모, 그들에겐 술이 없다고 한다.&lt;/P&gt;
&lt;P&gt;그런데 생산량이 항상 부족하기만 그 옛날, 술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아마도 술은 제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곡물로 만들 술, 술의 원료 곡물. 곡물이 잘자라도록 하늘에 제사 지낼 때, 그 곡물로 만든 술을 바치게 된다. &lt;BR&gt;&lt;BR&gt;그런데 서구와 동양의 차이는 술의 시작에서도 나타난다. 그리스나 유대지방의 포도주는 신(神)과 관련이 있다. &apos;구약성서&apos;조차 포도주는 하느님이 노아에게 알려준다.&lt;BR&gt;&lt;BR&gt;그런데 동양에서 술은 사람이 만들어 신(神)에게 바친다. 중국 전설에 의하면 의적(儀狄)이란 사람이 하(夏)나라의 시조 우왕 때 처음 곡류로 술을 빚어 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의적을 주신(酒神)으로 여긴다. 8,000년 전 황하문명 유적 발굴에서 전체의 25% 정도 가 술을 발효시킬 때 사용하거나 술을 담아두던 용기였다고 한다. &lt;/P&gt;
&lt;P&gt;그렇게 술을 좋아한 중국인, 그러나 그들의 눈에 보인 우리 민족의 술은 그들에게도 경의 자체였나 보다. &lt;BR&gt;&lt;BR&gt;중국인 기록에 나와 있는 &apos;주야음주가무&apos;, &apos;연일음주가무&apos; - 이렇게 적어놓을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의 음주. 그것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술 한잔하면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 &lt;BR&gt;&lt;BR&gt;우리 민족의 술, 다음에는 그것을 한번 이야기 해 보자. &lt;BR&gt;　&lt;/P&gt;
&lt;P align=righ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lt;BR&gt;&lt;A class=cherry HREF=&quot;/kiml22&quot;&gt;http://www.mediamob.co.kr/kiml22&lt;/A&gt;&lt;BR&gt;&amp;nbsp;&lt;A class=cherry href=&quot;mailto:kiml22@netffic.com&quot;&gt;kiml22@netffic.com&lt;/A&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9696</link>
<category>감성</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Tue, 22 Mar 2005 16:22: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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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 땅에서 신선이 사라진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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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line1&gt;
&lt;DIV align=right&gt;
&lt;P style=&quot;MARGIN-TOP: 5px&quot;&gt;&lt;STRONG&gt;카오루, 최내현&lt;/STRONG&gt; &lt;SPAN class=num_grey&gt;2004.04.15&lt;/SPAN&gt;&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text&gt;
&lt;P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30px&quot; align=justify&gt;&amp;nbsp;&lt;IMG height=110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_head.gif&quot; width=578 border=0&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448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02.jpg&quot; width=300 border=0&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red size=3&gt;&lt;B&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1.gif&quot; width=29 align=absMiddle border=0&gt; 서론&lt;/B&gt;&lt;/FONT&gt;&lt;/P&gt;
&lt;P&gt;르지리시 8호에 &lt;A HREF=&quot;/zirasi/read_article.html?bC=zirasi&amp;amp;no=11936&quot;&gt;&amp;lt;술, 그 깊은 세계와 우리의 술문화&amp;gt;&lt;/A&gt;라는 글을 썼다. 단순히 술 이야기가 아니라, 죽어 있는 우리의 술 문화를 오늘에 되살려 21세기 정보 사회에 맞는 새로운 술 문화를 찾자는, 나름대로 거대한 프로젝트의 출발점 삼아 쓴 글이었다. &lt;/P&gt;
&lt;P&gt;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술 자체에 대한 탐미(耽味)며, 다른 하나는 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에 대한 분석이다. 술 자체에 대한 탐미는 &amp;lt;술은 셀프 시리즈&amp;gt;를 통해 진행되며 술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에 대한 분석은 본 &amp;lt;술문화 시리즈&amp;gt;를 통해 진행된다. &lt;/P&gt;
&lt;P&gt;전통은 계승 창조해야 진정한 전통이다. 어려운 말로 하면 &apos;계승과 창조&apos;란 &apos;오류의 폐기와 핵심의 보존&apos;이 &apos;역동적 평형상태&apos;로 존재해야 한다. 좀 쉬운 말로 하자면 &apos;전통적이니까&apos; 운운하면서 현재의 모순을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은 항상 새로운 문화 창조에 이바지해야 한다.&lt;/P&gt;
&lt;P&gt;어쨌거나, 술 이야기, 특히 전통과 술 이야기에서 꼭 나오는 단어가 주선(酒仙)이다. 명색이 술과 더불어 인생을 논하는 사람이 주선(酒仙)을 모르고 술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선(酒仙)을 어디 가면 찾을 수 있는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주선(酒仙)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는 신선(神仙)에서부터 막혀버린다. 주선, 즉 &apos;술의 신선&apos;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어느 때부터인가 이 땅에서 신선이 사라졌다는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주선(酒仙)보다 상위의 직업군(?)인 신선이 있어야 주선이 존재할 수 있을 것 아닌가.&lt;/P&gt;
&lt;TABLE cellSpacing=0 borderColorDark=white cellPadding=0 width=111 align=right borderColorLight=black&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11&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102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01.gif&quot; width=85 border=0&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그렇다면 과연 이 땅에서 신선은 왜 사라졌는가. 약간 곁가지이긴 하지만 오늘은 바로 신선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21세기를 사는 진정한 술꾼들(酒徒)이 추구하는 올바른 술 문화(酒道)를 말하기 위해서는 주선(酒仙), 신선(神仙)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거창하고 장황한 말을 서론 삼아 본론에 들어가도록 하겠다.&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red size=3&gt;&lt;B&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2.gif&quot; width=29 align=absMiddle border=0&gt; 신선의 역사&lt;/B&gt;&lt;/FONT&gt;&lt;/P&gt;
&lt;P&gt;신선이란 속세를 떠나서 선계에 살며 젊음을 유지한 채 장생불사하는 &apos;분&apos;이다. 오래 전부터 &apos;사람&apos;들은 그런 신선을 믿고 그 &apos;분&apos;처럼 살기를 바랬다. 반드시 늙어 죽게 마련인 사람이 그 운명에서 벗어나 젊게 오래 살기 바라는 마음이 불로장생을 갈구하는 신선사상으로 형상화되었다. 신선은 실제 존재하느냐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바라는 마음속의 고향과 같은 그런 존재일 것이다. &lt;/P&gt;
&lt;P&gt;그렇다고 해서 신선의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 신선은 우리 민족의 형성과 국가 창건의 단계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 땅에 사는 인간과 천계(天界)를 서로 맺어주는 존재다. 민족 전체로는 우리 민족 발전의 방향을 조정하는 존재이며, 개인적 차원으로는 개인 생활의 품위를 높이는 목표를 찾아내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등 민족 공동체의 향상발전에 기여해 왔다. 신선은 우리 역사에서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일부로 우리 민족에게 영향을 미쳐 온 것이다. 이는 제왕이나 제후 등 현세적인 권력과 쾌락의 영속을 바라는 계층에서만 신선을 갈구했던 중국과는 전혀 다르다.&lt;/P&gt;
&lt;P&gt;깊은 산 속 절에 가면 산신각(山神閣)이 있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지만,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하면서 불교 안에 편입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우리 민족을 보고&lt;FONT color=red&gt; &quot;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서 함부로 서로 간섭할 수 없다&quot;, &quot;범에게 제사 들여서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quot;&lt;/FONT&gt;고 묘사한 구절이 있다. 산악을 신성한 것으로 보아 믿음을 바치는 행위인 &apos;산악 숭배 신앙&apos;은 불교 전파 이전인 삼한 시절부터 이미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신각은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고 한다. &lt;/P&gt;
&lt;P&gt;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 신라나 고려 시대 사찰에서는 산신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산신각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차츰 나타나기 시작한다. 왜 신라 고려 사찰에서는 산신각이 없을까. 상식적으로는 오히려 더 옛날에 산신 신앙이나 산악 숭배 신앙은 더 했을것 같은데.&lt;/P&gt;
&lt;P&gt;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민족에게 신선은 우리 민족의 형성과 국가 창건의 단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창건 신화에서부터 신선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lt;/P&gt;
&lt;P&gt;단군 신화에 의하면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에서 태백산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만들었고, 단군은 신시에서 아사달로 천도하여 나라를 세운다. 단군 수명은 1908세, 혹은 일설에 의하면 신선이 되어 죽지 않았다고 한다. 또 전제의 태자인 해모수는 전제의 태자며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의 몸에 고주몽을 잉태시키고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주몽 역시 나중에 하늘로 승천한다. &lt;/P&gt;
&lt;P&gt;신라에서는 단군에 의하여 전해진 도를 계승하였다는 영랑을 비롯한 4선이 있고 (그들이 놀던 곳이 주로 강원도 영동지방이다) 그들이 선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최치원은 &lt;FONT color=red&gt;&quot;신라에는 현묘(玄妙)한 도가 있어 그것을 풍류(風流)라고 한다. 그 가르침을 마련한 근원은 선사(仙史, 선가의 역사를 다룬 책)에 있다&quot;&lt;/FONT&gt;고 했다. 이런 맥으로 본다면 화랑 = 풍류(현모지도) = 신선이 성립된다.&lt;/P&gt;
&lt;P&gt;현묘지도, 선풍(仙風) 혹은 선파(仙派)라고 부를 수 있는 맥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진다. 통일신라 말에 들어와서 고려조에 널리퍼진 풍수지리설은 산악신앙의 고려왕조적인 변형이라고도 한다. 구체적으로 예종은 1116년 5월 경진일에 내린 제서(制書)에서 신라 사선의 유적을 영광되게 받들 것과 국선, 즉 화랑의 일을 대관의 자손을 시켜 행할 것을 명하였다. 의종도 1168년 신령(神令)을 반포하고 선풍을 숭상하도록 명하였다. 강감찬 같은 경우도 문곡성의 현신이라느니 호환을 물리치는 방술을 지녔느니, 또 선도를 터득하여 대낮에 등선하였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84살까지 살았다. &lt;/P&gt;
&lt;P&gt;조선시대의 선파들은 당시 유가계통의 지신인들과는 판이한 역사관과 시국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세상 사람들은 공허한 글에 빠져 나약함에 익숙하여지고 자기의 도는 버리고 송유(宋儒)의 여타를 씹으며 자기의 임금 깎아내려 외국의 신복(臣僕)에 견주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당시 지도층의 사대주의적인 패배의식을 비판하였다.&lt;/P&gt;
&lt;P&gt;그렇지만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선풍(仙風)은 이단일 뿐이다. 선풍은 산으로 들어간다. 바로 이런 이유로 신선이 불가의 산신각(山神閣)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red size=3&gt;&lt;B&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3.gif&quot; width=29 align=absMiddle border=0&gt; 산신과 호랑이&lt;/B&gt;&lt;/FONT&gt;&lt;/P&gt;
&lt;P&gt;각설하고.&lt;/P&gt;
&lt;P&gt;산신각을 가보면 호랑이와 노인이 있다. 여기서 노인은 신선이다. 신선은 항상 옆에 호랑이를 끼고 있다. 자, 왜 신선은 호랑이를 끼고 있느냐,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86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04.jpg&quot; width=250 border=0&gt; &lt;IMG height=398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03.jpg&quot; width=230 border=0&gt;&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368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05.jpg&quot; width=280 border=0&gt;&lt;/P&gt;
&lt;P&gt;호랑이는 바로 신선의 기동력이었다. 이 산과 저 산으로 뛰어다니는 호랑이가 없다면.... 신선으로서는 끔찍할 것이다. 아무리 불로장생하는 신선이라지만 그래도 노인인데, 그 힘든 산을 혼자서 헉헉대며 걸어다녀야 한다면... 그래서 신선은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lt;/P&gt;
&lt;P&gt;여기서 또 의문은 남는다. 왜 산신은 기동력으로 호랑이를 택하게 되었을까. 곰도 아니고 살쾡이도 아니고, 선녀하고 중매 잘 서는 사슴도 아니고.... &lt;/P&gt;
&lt;P&gt;다시 우리 역사의 원류를 찾아보자. 산신이 처음 나온 기록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다.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5px; MARGIN-RIGHT: 25px&quot;&gt;&lt;FONT color=red&gt;&quot;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이 즉위한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장당경(藏唐京: 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quot;&lt;/FONT&gt;&lt;/P&gt;
&lt;P&gt;단군이 바로 산신의 시조였다. 그러니 곰이나 다른 그림이 산신각에 나올 리 없다. 특히 곰은 더욱 그렇다. 혈통으로 보아 자기 이모나 삼촌뻘 되는 이들을 산신이 타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은 아니라 해도 왜 호랑이여야 하는가. 이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단군, 그는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보는데서 출발한다. &lt;/P&gt;
&lt;P&gt;단군은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도 나오기는 하지만, 삼국유사가 더 앞선 기록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다고 설파한 유대지방 역사책(구약)처럼, 우리 나라에도 우리 민족 태초의 역사책이 있으니 그게 &apos;단군신화&apos;다. 참고로 신화(神話)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단군 신화를 우리 민족 태초의 역사라고 하는데는 그 까닭이 있다.&lt;/P&gt;
&lt;P&gt;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우리 민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을 친다. 삼칠일, 즉 21일 동안. 그리고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 잔치를 벌인다. 가만히 따지면 이게 다 단군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lt;/P&gt;
&lt;P&gt;사람이 되고파서 찾아온 곰과 호랑이에게 환웅은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 동안 있으면 사람이 된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곰은 삼칠일만에 사람이 된다. 여기서 백일이란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의 약속이고 삼칠일은 생물학적 인간이 된 시간이다. 그래서 삼칠일은 사람이되, 아직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 미완성인 사람을 위해 금줄을 쳐서 잡인의 출입을 막는다. 그러다 백일이 되면 사람다운 사람의 완성이라는 선언으로 다른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lt;/P&gt;
&lt;P&gt;결국 한 개체의 형성과정은 계통의 발생 과정을 반복한다는 진화론의 핵심 원리처럼 우리 민족 개개인의 형성과정은 우리 민족의 발생 과정을 정확히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lt;/P&gt;
&lt;P&gt;단군신화의 역사적 의미는 그렇다 하고. 아무튼 요즘말로 하면 곰과 호랑이는 인간학교 동기동창이라 할 수 있다. 인간학교에 입교한 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간다. 혼자 남은 곰. 아마도 외롭고 쓸쓸하지만 오로지 사람이 되고픈 일념 하나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가끔씩 먼동이 터 오는 동굴 밖 빛에 슬쩍 자신의 앞다리도 비춰봤겠지만, 여전히 새까만 털복숭이 그대로였다. &lt;/P&gt;
&lt;P&gt;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삼칠일 되는 날, 동굴 밖 먼동이 트는 것을 본 곰은 어제나 그제처럼 자신의 네 발은 여전히 털복숭이라고 생각하고는 동굴 입구에 나가서 자기 앞 발을 여명에 비춰보았다. 그런데....&lt;/P&gt;
&lt;P&gt;동굴 밖 여명에 비춰진 앞 발은 하얗고 뽀시시한 인간의 팔이었다. &lt;/P&gt;
&lt;P&gt;이리하여 곰은 사람이 되었고, 나중에는 환웅과 결혼했다(이승휴는 웅녀가 박달나무와 결혼했다 한다). 그리고는 단군을 낳았다. 웅녀는 아마도 고요한 새벽 여명의 빛에 사람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본 기억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그 느낌은 그대로 단군에게 이어져 단군은 환웅이 세운 신시(神市)에서 내려와 아사달에 도움을 정할 때 나라 이름은 고요한 아침, 조선(朝鮮)이라고 한 것은 아닐까.&lt;/P&gt;
&lt;P&gt;나라를 세운 단군은 훗날 산신이 되어 구월산에 들어간다. 산신이란 간단히 말하면 산에 사는 신선이다. 그런데 그 산에 바로 자신의 어머니 웅녀와 인간학교 동기동창인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lt;/P&gt;
&lt;P&gt;그렇다. 호랑이는 훌륭하게 큰 자기 동기동창의 아들을 봤다. 이 얼마나 기막힌 조우(遭遇)인가. 호랑이는 자신이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회한, 그리고 동기동창인 곰이 보고 싶은 그리움, 장성한 그리운 이의 자손.... 호랑이는 아주 묘하고 센치멘탈한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lt;/P&gt;
&lt;P&gt;그래서 호랑이는 바로 단군 신선의 기동력이 된다. 아주아주 즐거운 맘으로.&lt;/P&gt;
&lt;P&gt;여기까지는 헤피엔딩이다. 그런데 왜 산신령은 사라진 것일까. 이제 본격적인 결론을 내릴 차례가 되었다.&lt;/P&gt;
&lt;P&gt;　&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red size=3&gt;&lt;B&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4.gif&quot; width=29 align=absMiddle border=0&gt; 산신령이 사라진 이유&lt;/B&gt;&lt;/FONT&gt; &lt;/P&gt;
&lt;TABLE cellSpacing=0 borderColorDark=white cellPadding=0 width=196 align=right borderColorLight=black&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96&gt;
&lt;P align=right&gt;&lt;IMG height=307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10/ssr06.jpg&quot; width=180 border=0&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산신령이 사라진 이유는 간단하다. 결로부터 말하면 호랑이가 멸종됐기 때문이다. 일본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이 땅에 호랑이는 씨가 마른다. 그리고 호랑이가 사라지자 산신도 사리지기 시작했다. &lt;/P&gt;
&lt;P&gt;자, 생각해 보자. 산에 갔더니 어떤 하얀 수염에 하얀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가 뚜벅뚜벅 걸어서 내려온다. 70년대였으면 수상한 사람이라고 간첩신고 하거나 귀신인 줄 알고 기절했을 것이다. 산신 입장에서도 그렇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쪽팔려서’ 산에서 내려와 사람 앞에 나올 수가 없게 된다. 산신의 체면과 긍지가 있지, 돌부리 채여가면서 헉헉대며 산길을 오르내릴 수는 없다. 뭔가 멋있게, 바람같이 나타났다 바람같이 사라져야 하는 산신 입장에서, 기동력이 사라져 버리고 나니 쪽팔려서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나와 봤자 누가 산신으로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lt;/P&gt;
&lt;P&gt;이리하여 우리 산하에서는 산신이 사라지게 되었다. 신선이 사라지면서 주선(酒仙)도 더 이상 이 땅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lt;/P&gt;
&lt;P&gt;식민지와 전쟁.... 진정한 술꾼이라면 그것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그 식민지 시절 동족을 압삭하는데 앞장섰던 사람과 전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더욱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 술꾼들(酒徒)은 식민지 통치와 전쟁을 반대할 수밖에 없고, 평화를 사랑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는 것과 지나친 자본주의적 과잉개발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lt;/P&gt;
&lt;P&gt;올바른 술문화, 역시 올바른 역사인식과 사회인식을 갖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amp;nbsp; &lt;/P&gt;
&lt;P&gt;　&lt;/P&gt;
&lt;P align=righ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lt;BR&gt;&lt;A HREF=&quot;/kiml22&quot;&gt;http://www.mediamob.co.kr/kiml22&lt;/A&gt;&lt;BR&gt;&amp;nbsp;&lt;A class=cherry href=&quot;mailto:kiml22@netffic.com&quot;&gt;kiml22@netffic.com&lt;/A&gt;&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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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9695</link>
<category>낙서장</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Tue, 22 Mar 2005 16:19: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평화운동...</title>
<description>&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7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line1&gt;
&lt;DIV align=right&gt;
&lt;P style=&quot;MARGIN-TOP: 5px&quo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 &lt;SPAN class=num_grey&gt;2004.04.15&lt;/SPAN&gt;&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text&gt;
&lt;P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30px&quot; align=justify&gt;
&lt;P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30px&quot;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 10px 20px 30px&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gray&gt;오늘 어떤 모임을 가서 들었던 얘기. 정작 &apos;평화를 위한 평화운동은 없었다&apos;. 사실 그렇다. 우리나라의 사회운동단체들이 하는 평화/반전운동에는 크게 두 조류가 있는데 하나는 계급을 위한 평화운동, 반전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반미를 위한 평화운동, 반전운동이 있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있었다. 진정으로 평화를 위한 평화운동을 하려면 나 자신도 평화로와야되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평화로와야한다고... 어려운 얘기다. 그건 쉽지 않다. 아무튼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본래 목적을 속이고 다른 이슈를 내세우는 그런 짓은 그만 해야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알만큼 다 아는데 말이다...&lt;/FONT&gt; &lt;/P&gt;
&lt;P&gt;총선을 하루 앞두고 긴장과 초조 속에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lt;A href=&quot;/ulcaman&quot; target=_blank&gt;울카맨님의 블로그&lt;/A&gt;에서 이 글을 봤다.&lt;/P&gt;
&lt;P&gt;그동안 나는 대중이 참여하는 반전평화 운동이 실재(實在)한다는 사실만으로 감동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반전평화의 과제는 실체(實體)다. 그것도 매우 심각한 실체다. 그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따라서 있다는 사실로만 반전평화운동을 볼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반전평화를 어떻게 실현(實現)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실천(實踐)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그것을 새삼 깨달았다.&lt;/P&gt;
&lt;P&gt;월드컵 4강에 오르고 홍명보 선수는 자신의 생애에 월드컵 4강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십여 년 전에 그랬다. 대중이 참여하는 반전 평화 운동이 내 생애에 있을 수 있는지...&lt;/P&gt;
&lt;P&gt;그런데 반전평화 운동은 엄연히 ‘객관적’ 사실로 존재하며 우리 사회에서 시민 사회 운동의 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객관적 운동으로 존재한다면 당연히 운동의 목표와 운동의 주체, 그리고 운동의 방법이 정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 빠져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참여자’ 수준이나마 끝까지 유지한다는 다짐만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lt;/P&gt;
&lt;P&gt;다만 반전평화운동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숱한 역사적 좌절 속에서 조금씩 발전해 왔다는 사실, 그것은 밝혀보고 싶다. 그래서 반전평화 운동이 우리나라 운동사(運動史)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그 역사를 조심스럽게 짚어보고자 한다.&lt;/P&gt;
&lt;P&gt;&lt;/P&gt;
&lt;P&gt;&lt;FONT color=#ff6600&gt;&lt;B&gt;객관화&lt;/B&gt;&lt;/FONT&gt;&lt;/P&gt;
&lt;P&gt;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황석영씨의 소설 [무기의 그늘]에 &apos;객관화 단계&apos;라는 말이 나온다. 텍스트를 인용해야겠지만 그냥 기억나는 의미만 정리한다면 이렇다. 수십년 동안 베트콩이 미군을 상대로 유격전과 테러를 하면서 무엇이 남았냐는 질문에 베트콩 전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ff6600&gt;&quot;베트남인민해방전선’이라는 이름을 어린 아이들도 알 수 있게 했다.&quot;&lt;/FONT&gt;&lt;/P&gt;
&lt;P&gt;그게 객관화라고 한다. 조직의 이름, 조직의 이념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 운동의 역사는 객관화의 역사다. 이름만 알리는 것이 아니다. 대중들이 &apos;그들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말을 용기 있게 대신해 준다&apos;는 믿음을 함께 주어야 한다. 1987년 6월 항쟁이 있기까지 객관화 과정은 이렇다. 학생운동은 대중에게 &apos;우리가 할 말을 대신해 주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다.&apos;는 인식을 주었다. 또 민청련과 같은 재야 단체는 &apos;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apos;는 인식을 주었다. 그런 객관화 과정이 있기에 어떤 계기점을 통해 대중이 전면적으로 참여하는 항쟁이 가능하다.&lt;/P&gt;
&lt;P&gt;반전평화 운동이 아직 많은 대중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술적인 면이나 전술적인 면이 부족하다기보다는 &apos;객관화 과정&apos;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전평화 운동의 역사를 보는 것은 지금 반전평화 운동이 어떻게 객관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거울이 된다. &lt;/P&gt;
&lt;P&gt;이 글은 그 출발점에 불과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ff6600&gt;&lt;B&gt;분단이 가져온 평화에 대한 거부감&lt;/B&gt;&lt;/FONT&gt;&lt;/P&gt;
&lt;P&gt;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의 통일론은 &apos;북진통일&apos;이었다. 매우 희극적이지만 50년대에, 북진통일은 통일 세력이고 평화 통일은 반통일/분단세력으로 왜곡되었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승만을 꼭지로 존재한 반공세력에게 평화통일은 &apos;전쟁을 하지 않고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는가, 평화 통일? 그건 통일을 하지 말자는 소리&apos;에 불과하다. 그리고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평화통일을 주장한 조봉암 선생은 사형을 당해야했다. &lt;/P&gt;
&lt;P&gt;그러나 조봉암 선생의 평화통일론은 4월 혁명을 거치면서 &apos;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apos;가 된다. 박정희 군사독재조차 이젠 북진통일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혁명의 힘은 이렇게 위대하다. 4월 혁명이 &apos;의거&apos;가 아니라 혁명인 것은 통일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쟁에서 통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혁명이다.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통일 문제를 전쟁에서 평화로 바꾼 것은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래서 4월 혁명은 위대하다. &lt;/P&gt;
&lt;P&gt;그러나 여전히 평화는 &apos;절대적 가치&apos;가 아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에게 평화통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었다. 북진통일은 어쩔 수 없이 양보했지만, 전쟁자체는 양보할 수 없다. 그게 군사독재 세력의 본질이다. &lt;/P&gt;
&lt;P&gt;박정권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말하는 전쟁대비 논리는 곧 전쟁 준비 논리다. 전쟁을 전제로 하는 것일 뿐, 평화는 전쟁을 전제로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여전히 전쟁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존재로 남아 있다. 그들에게 평화는 전쟁의 반대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연장선에 존재한다.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 지켜야 하는 소극적 가치가 아니라 전쟁 자체를 부정하는 적극적 가치다. &lt;/P&gt;
&lt;P&gt;&apos;누군가가 평화를 깨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면&apos;이라는 전제는 허구다. 평화는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부정하는 매우 적극적 가치다. 이 문제는 또 기회가 되면 다시 이야기하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ff6600&gt;&lt;B&gt;진정한 반전평화 운동이 자리잡기 위한 전제, 민주주의와 민중&lt;/B&gt;&lt;/FONT&gt;&lt;/P&gt;
&lt;P&gt;박정희 정권에서 평화통일이 북진통일과 반대개념으로만 존재하고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대하지는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주의 부재에 있다. 그리고 반전평화 운동의 주체가 아직 형성되지 못한데 있다.&lt;/P&gt;
&lt;P&gt;그래서 평화통일이라는 패러다임은 확립됐지만, 전쟁 반대라는 개념으로서의 평화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4월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다. &lt;/P&gt;
&lt;P&gt;우리 나라는 전쟁을 겪은 분단 국가다. 민주주의는 없다. 전쟁은 민주주의의 부재를 외면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전쟁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되, 민주주의를 위해 전쟁을 반대할 수는 없다. &apos;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에&apos; - 이게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민주화 운동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였다. 때문에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과제는 &apos;전쟁&apos;이라는 과제를 뒤로 돌리게 했다. &lt;/P&gt;
&lt;P&gt;민주주의라는 이념은 보편적 가치인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박정희 군사독재 세력에게는 민주주의는 불편한 가치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못사는, 민주주의과 자신의 존재를 일치시킬 수밖에 없는 그런 세력이 필요하다. 그게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과제를 담당할 주체(主體)다. 즉, 민주화 운동의 주체다. 학생과 일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하다. &lt;/P&gt;
&lt;P&gt;이 상황에서 운동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민중(民衆)을 생각하게 한 사건이 터졌다. 전태일의 분신은 운동의 주체, 이 사회의 모순을 안고 있는 실질적 운동의 주체에 대해 눈을 뜨게 한 사건이었다.&lt;/P&gt;
&lt;P&gt;이제 민주주의라는 과제와 운동의 주체인 민중이 자리잡게 된다. 동학란이 동학혁명으로, 갑오농민전쟁으로 새로운 역사인식이 펼쳐진다. 문학에서도 이름 없는 민초(民草)가 주역으로 등장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ff6600&gt;&lt;B&gt;민족 문제, 반전평화 운동의 지평을 열다&lt;/B&gt;&lt;/FONT&gt;&lt;/P&gt;
&lt;P&gt;1980년 5월은 한국 현대사를 구분하는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 한국 현대사는 80년 5월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lt;/P&gt;
&lt;P&gt;80년 5월 이후 새롭게 시작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apos;민족문제&apos;였다. 60년대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 과정에서 민족문제가 부각되었지만,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60년대의 민족문제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즉자적(卽自的) 차원의 인식이었다면 80년 5월 이후의 민족문제는 대자적(對自的) 차원의 문제였다. 과거 역사 속에서 출발한 반일차원의 민족 개념이 현재 우리를 규정하는 요소로서 외세에 대한 인식으로 민족문제의 개념이 확대되었다.&lt;/P&gt;
&lt;P&gt;미국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우리 민족이 처한 본질적 상황을 인식하도록 했다. 그 속에 &apos;전쟁&apos;이 있었다. 전쟁 혹은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극복대상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했다.&lt;/P&gt;
&lt;P&gt;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전쟁을 전제로 하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 것이며, 전쟁을 전제로 하는 한, 우리가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의 극복, 거기에는 민족이 있었다. &lt;/P&gt;
&lt;P&gt;민주화 운동은 이제 &apos;전쟁&apos;이라는 화두(話頭)를 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인식의 영역이고 실천의 영역은 아니었다. 역시 민주주의의 실현, 그것이 시급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실현 그리고 그 뒤에 민족 문제, 그리고 그 뒤에... 이 같은 단계적 사고는 거부되었다. &lt;/P&gt;
&lt;P&gt;이념적 과제로서 민주주의, 궁극적으로 도달할 과제로서 민족문제, 그리고 주체로서 민중. 80년대 중반 민주화 운동의 성장은 민주주의, 민족, 민중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 셋은 단순한 나열이었고, 실현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은 &apos;투쟁&apos; 차원으로 진화하였다. 민족을 먼저 내세운 세력과 민중을 먼저 내세운 세력은 서로 비난했다. 논쟁은 확대되었다. 하지만, 민족문제는 이제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분명하게 자리매김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ff6600&gt;&lt;B&gt;통일 문제로 형상화된 반전평화 운동&lt;/B&gt;&lt;/FONT&gt;&lt;/P&gt;
&lt;P&gt;그 과정에서 반전(反戰)과 평화(平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사건이 발생한다.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오는 반전반핵을 외치며 분신한다. 반전평화 운동의 &apos;극단적&apos; 객관화가 시작되었다. &lt;/P&gt;
&lt;P&gt;존재하는 것은 본질이 현상으로 외화(外化)된 결과다. 그렇지만 우리 인식은 거꾸로다. 즉, 현상을 통해 본질을 이해한다. 전두환 정권의 본질을 드러내고 민주화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는가를 여러 가지 방법이 제기 되었다. 반전평화 역시 전두환 정권의 본질을 드러내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등장하였다.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객관화 작업은 이렇게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딛고 성립된다.&lt;/P&gt;
&lt;P&gt;1987년 6월 항쟁은 또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통일과 반전(反戰)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을 달리하면서 반복된다. 4월 혁명이 평화통일을 될이킬 수 없는 대세로 만들었듯이 6월 항쟁은 평화통일이 전쟁의 반대 개념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다. &lt;/P&gt;
&lt;P&gt;1988년 미군철수와 올림픽 공동개최를 주장하며 조성만은 할복자살한다.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인 미국과 민족, 이 문제 제기는 이렇게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객관화되고 있었다.&lt;/P&gt;
&lt;P&gt;조성만의 할복자살 소식을 들은 문익환 목사는 방북을 결심한다.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족문제는 그 같은 극단적 문제제기 방식으로만 제시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목사는 더 이상 젊은이의 죽음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lt;/P&gt;
&lt;P&gt;반전과 평화는 이제 남북 문제 차원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남북문제 역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 객관화되기 마련이다.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 과제와 동시에 민족 문제라는 새로운 과제를 동시에 안고 9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다.&lt;/P&gt;
&lt;P&gt;90년대의 유사(類似) 민주주의 시대를 통해,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다양한 진단과 다양한 해결 방식이 제기 되었다. 그리고 실천을 통해 옳고 그름이 검증되었다. 집권 세력 역시 절차적 민주주의와 민족 문제에 대한 헤게모니를 갖기 위해 남북 화해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족 문제에 대해 집권 세력이 갖고 있는 한계는 금새 드러났다. 그 한계를 뚫고 남북문제, 민족문제, 그 속에 반전평화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는 정권 교체를 기다려야 했다.&lt;/P&gt;
&lt;P&gt;하지만 90년대 통일운동은 그 시대에 거쳐야 하는 반전평화 운동의 객관화 과정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ONT color=#ff6600&gt;&lt;B&gt;&apos;반전평화&apos;라는 이름으로&lt;/B&gt;&lt;/FONT&gt;&lt;/P&gt;
&lt;P&gt;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그동안 통일, 민족이라는 이름의 객관화 과정을 거쳐야 했던 반전평화는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정상회담 이후에는 오히려 남북 문제가 반전평화라는 이름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한미 관계의 평등성 실현과 함께 미국의 세계전략속에서 평화의 문제가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lt;/P&gt;
&lt;P&gt;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통일, 민족 문제는 이제 반전평화라는 대 명제 속의 한 구성 요소로 되었다.&lt;/P&gt;
&lt;P&gt;또 반전평화 운동의 주역 역시 소수의 활동가 아닌 대중이 실질적인 주역이 되었다. 6월 광장에 모인 이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게 된 것은 그 숱한 객관화 과정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반전평화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lt;/P&gt;
&lt;P&gt;대중 스스로 반전평화라는 이름으로 광장에 나설 수 있는 한, 어떤 의도 어떤 단체라 하더라도 반전평화라는 가치는 퇴색하지 않는다. 이제 반전평화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거대한 물줄기로 자리매김되었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FONT color=gray&gt;PS. 울카맨님.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리 &apos;본래 목적을 속이고 다른 이슈를 내세우는 그런 짓&apos;을 한다고 해도 반전평화라는 가치는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또 모든 것 속에 다 들어 있는 그런 가치니까요.&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align=righ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lt;BR&gt;&lt;A href=&quot;/kiml22&quot;&gt;http://www.mediamob.co.kr/kiml22&lt;/A&gt;&lt;BR&gt;&amp;nbsp;&lt;A class=cherry href=&quot;mailto:kiml22@netffic.com&quot;&gt;kiml22@netffic.com&lt;/A&gt;&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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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9694</link>
<category>낙서장</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Tue, 22 Mar 2005 16:15:3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작업의 전설...</title>
<description>&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7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line1&gt;
&lt;DIV align=right&gt;
&lt;P style=&quot;MARGIN-TOP: 5px&quo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 &lt;SPAN class=num_grey&gt;2004.04.28&lt;/SPAN&gt;&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text&gt;
&lt;P style=&quot;MARGIN-TOP: 10px; MARGIN-BOTTOM: 30px&quot; align=justify&gt;&lt;IMG height=110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9/orange_head.gif&quot; width=578 border=0&gt; 
&lt;P&gt;전설(傳說)과 설화(說話)...&lt;/P&gt;
&lt;DIV align=center&gt;
&lt;CENTER&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43%&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12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9/orange_01.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 align=justify&gt;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quot;다음 썰을 읽고 물음에 이빨까라...&quot;&lt;BR&gt;&lt;BR&gt;다들 웃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왜 웃냐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quot;왜, 썰 맞잖아? 전설(傳說), 설화(說話)...&quot;&lt;BR&gt;&lt;BR&gt;그랬다. 문제 풀기 위한 지문으로 전설과 설화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이었다.&lt;BR&gt;&lt;BR&gt;전설과 설화. 진정 전설과 설화는 썰의 한 &apos;갈래&apos;인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설과 설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전제로 읽게 된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없는 전설이나 설화는 조선일보 기사를 읽는 고통과도 같다. &lt;BR&gt;&lt;BR&gt;해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전설과 설화를 읽듯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서 전설과 설화를 새롭게 창조해 본다. 그렇다고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독립적인 A와 B라는 사실을 억지로 묶어서 C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지는 않겠다. 그건 조선일보나 할 짓이다. 이 글은 공동적 특성만을 뽑아내서 비교해야 한다는 &apos;비교&apos;와 &apos;대조&apos;라는 논증 방식으로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갖는 공통적 특성을 비교 분석하여 추론 결과 C를 이끌어내는 전설이다. &lt;BR&gt;&lt;BR&gt;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바로 글을 통해 이 주장이 갖는 논리적 타당성을 검증받고자 한다. 그럼 자, 시작이다.&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1.gif&quot; width=29 border=0&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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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ENTER&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55%&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00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9/orange_02.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 align=justify&gt;첨단 정보 사회에서 한 세대는 산부인과 병원에 버스 3대 지나갈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급변한다. 그러다 보니 &apos;쌍팔년도 시절&apos;조차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같은 느낌을 준다. 더구나 쌍팔년도도 아니고 쌍칠년도 분위기, 그건 거의 선사(先史)시대 이야기 수준이다. &lt;BR&gt;&lt;BR&gt;쌍칠년도는 아니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분위기가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소위 다방 안 풍경이다. 한잔의 커피 앞에 놓고 몇 시간 동안 자리만 차지하고는 괜히 유엔 팔각 성냥 한 곽을 작살내고 말았던 그런 시절... &lt;BR&gt;&lt;BR&gt;열혈 청년 학도 몇몇이 낮부터 마신 술에 얼굴 불그스래한 채 괜한 객기를 부리고는 한다. 뭔가를 쑥닥쑥닥하다가 크게 웃고는 한 명씩 순서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을 나간다. 술값 떼먹고 도망가는 것은 아니다. 열혈 청년들, 아예 학생증 맡기고 외상을 하면 했지, 술값 떼먹고 도망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lt;BR&gt;&lt;BR&gt;하나씩 나간 청년들, 시간이 되자 다시 하나씩 돌아온다.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혼자 들어오는 친구, 씩씩거리며 뭔가 분이 풀리지 않았듯이 앉자마자 한잔을 들이키는 친구. 그리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누군가 젊은 처자와 함께 들어와 좌중을 압도하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친구 등등.&lt;BR&gt;&lt;BR&gt;요즘말로 치면 바로 &apos;작업&apos;이다. &lt;BR&gt;&lt;BR&gt;결국 그들이 뭔가를 모의한 것은 5분 또는 10분 안에 젊은 처자 한 명을 데리고 오는 친구는 술값을 면제한다, 뭐 그런 쑥덕거림이었고 그 진행 과정이었다. 참으로 예[古]스런 풍경이다. &lt;BR&gt;&lt;BR&gt;물론 내가 그렇게 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일들이 주위에 있었다, 그런 이야기다. &lt;BR&gt;&lt;BR&gt;어쨌든, 그 ‘작업’의 방법 가운데 이런 것도 있다는 전설이 있다. &lt;BR&gt;&lt;BR&gt;자, 술집에서 나온 친구 한 명이 다방에 들어간다. 들어가서는 주위를 살피다가 저쪽 어떤 자리에 한 묘령의 여인이 혼자 음악을 듣고 있든지 아님 누구를 기다리고 있든지... 하여간 혼자 앉아 있는 여인네를 본다. &lt;/P&gt;
&lt;P align=justify&gt;그럼 그 여인네가 볼 수 있는 한 구석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학을 접는다. 그저 접는다. 아무 소리 없이. 다 접은 학을 들고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서 그 여인네 탁자에 놓는다. 그리고는 그냥 나간다. 아무 말도 없이.&lt;BR&gt;&lt;BR&gt;그 뒷 이야기를 하기 전에 당시 다방의 분위기를 스케치 할 필요가 있다. 당시 다방은 대부분 음악다방이다. 음악다방이란 디제이가 뮤직박스 속에 들어가 신청곡도 받고, 음악도 틀어주며 또 썰렁한 유머도 하는 그런 다방이다. 또 디제이가 하는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손님 찾는 전화를 소개하는 것이다. 집에 유선 전화 없는 사람도 많던 그런 시절이다. 다방을 통해 연락을 하던 그런 시절이다. 그래서 어떤 다방을 포스트로 하여 메모지도 남기고 혹은 전화도 하면서 연락을 취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가 주변 다방에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심심찮게 찾기도 했다. 학생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러.&lt;BR&gt;&lt;BR&gt;이런 상황에서 여인네 테이블에 학을 놓고 나온 그 친구는 다방 앞 공중전화를 든다. 그리고는 그 다방에 전화를 건다. 그 전화는 디제이가 받는다. 디제이 받으면...&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ff6600&gt;&quot;손에 학을 든 여인을 찾습니다&quot;(약간 낮게 깔린 음성으로 한단다.) &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전화를 받은 디제이는 무척 재미있어 한다. 안 그대로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판이다. 디제이는 전화를 받고 아주 친절하게 방송을 한다.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ff6600&gt;&quot;손에 학을 든 여인을 찾고 있습니다. 전화 받으세요&quot; &lt;/FONT&gt;&lt;/P&gt;
&lt;DIV align=center&gt;
&lt;CENTER&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43%&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11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9/orange_05.jpg&quot; width=250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 align=justify&gt;자, 이번에는 여인의 시점으로 가 보자.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gt;혼자 앉아 있는데 어떤 멀쩡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자기를 보고는 근처에 자리에 앉아버린다. 혹시 나한테 말이나 걸면 어쩌지? 귀찮게....&lt;/FONT&gt;&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gt;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학을 접더니 내가 앉고 있는 탁자 위에 놓고는 그냥 나가버린다. 그럼? 혹시나 학에 뭔가 적혀 있나 이리저리 살펴본다. 하지만, 아무 내용도 없다. 그저 학일 뿐이다. &apos;별 미친...&apos; 뭐 이런 생각하고 있을 순간에 방송이 나온다. &lt;/FONT&gt;&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 align=justify&gt;&lt;FONT color=#808080&gt;&apos;손에 학을 든 여인을 찾는다&apos;는...&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그 뒤의 이야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런 예스런 전설이 있을 따름이다. &lt;BR&gt;&lt;BR&gt;여기서 끝이라면 그저 쌍칠년도의 작업방식 설명에 불과하다. 진짜 전설은 여기서 시작된다.&lt;BR&gt;　&lt;/P&gt;
&lt;P align=center&gt;&lt;IMG height=29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img/02.gif&quot; width=29 border=0&gt;&lt;/P&gt;
&lt;P align=justify&gt;어쨌거나 세월이 흘러 학에 얽힌 작업 전설이 인구(人口)에 회자되면서 가끔씩 그 방법을 써먹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압구정동이라는 동네가 새롭게 뜨고 있었다. &lt;BR&gt;&lt;BR&gt;압구정동.&lt;/P&gt;
&lt;DIV align=center&gt;
&lt;CENTER&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53%&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22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9/orange_03.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
&lt;P align=center&gt;옛날 옛적 로데오거리 근처의 풍경&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 align=justify&gt;한명희의 정자 운운하는 내력의 고장이지만, 풍수지리적으로 본다면 압구정동은 &apos;배설구&apos;라고도 할 수 있다. 풍수지리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청계천은 서울의 내장이라고 한다. 서북쪽에서 북한산의 정기를 호흡하고 그 기운을 서울 곳곳에 전해준 청계천은 6가에 이르면 인체로 따지면 소장에 해당된다고 한다. 청계천 7가에 이르러서는 온갖 기운 다 뽑아 쓰고 혹시라도 남은 기운이 있을까 봐 마지막으로 거르는 곳이기에 예부터 고물상 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lt;/P&gt;
&lt;P align=justify&gt;즉 고물상이 청계천 7가에 있고 싶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어서 있게 된다는. &apos;믿거나 말거나&apos;지만 말은 된다.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서울 서북쪽은 외국계 대학이 들어서고 안으로 다져가는 동북쪽은 국학(國學) 바람이 있게 된다는 등등의 말들을 보면 결과론적 해석인지는 모르지만 말을 충분히 된다고 볼 수 있다.&lt;/P&gt;
&lt;P align=justify&gt;어쨌거나 풍수지리에 의하면 청계천 6, 7가부터 형성된 중고서적 판매상들이나 황학동 고물상 등등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풍수지리에 의하면 청계천과 중량천이 만나서 한강으로 빠지는 지금의 성수대교쯤은 서울의 배설구에 해당되는 것이고 그 배설을 그대로 받는 곳이 압구정동 쯤 된다는 것이다.&lt;/P&gt;
&lt;P align=justify&gt;한명회가 정권의 단맛을 다 빨아먹다 잠시 물러나서 다시 호시탐담 정권을 탐하던 압구정. 인간의 욕망을 배설하는 그런 배설장. 그럴싸한 주장이기도 하다. &lt;BR&gt;&lt;BR&gt;잘 알지 못하는 풍수지리는 여기서 접고... &lt;/P&gt;
&lt;P align=justify&gt;압구정동이 새롭게 등장한 80년대 후반, 어느 날. 어떤 친구가 압구정동의 한 까페에 갔다. 거기서 예쁜 여인네를 만났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전부터 들었던 전설이 있어, 그것을 써먹어보고자 했는데, 학을 접을 줄 몰랐다. 그래서 학 대신 손에 잡은 것이 당시 수입 자유화로 유행타기 시작한 생과일 주스용 오렌지였다. 그리고 그 오렌지를 여인네의 테이블에 올려 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lt;/P&gt;
&lt;P align=justify&gt;결과는 모르지만, 그 때부터 학 대신에 오렌지를 줌으로써 작업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시작되었다. &lt;BR&gt;생과일 주스가 아니라 분말 가루 주스조차 마시기 힘들던 시절 청춘 남녀의 정은 과일이 아니라 종이학이었으나, 분말 주스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생과일은 오렌지를 주고받는 풍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80년대 초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고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수입 자유화가 확대되면서 미국의 압력에 의해서든, 아님 정통성 없는 정권이 택한 국민적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든 간에 필연적으로 확대된 개방화는 학(鶴)으로 전달되던 청춘남녀의 정(情)을 수입산 오렌지로 변화시켰다.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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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ENTER&gt;
&lt;TABLE style=&quot;BORDER-COLLAPSE: collapse&quot; borderColor=#111111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56%&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height=300 src=&quot;http://mediamob.co.kr/editor/zirashi/09/orange_04.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lt;/DIV&gt;
&lt;P align=justify&gt;오렌지족, 그것은 학(鶴)과 학접기 방법을 잊어버린 &apos;메멘토&apos;에서 나온 아주 비극적인 전설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청춘 남녀의 정을 전달하던 매개물의 변화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lt;BR&gt;&lt;BR&gt;그런데 최근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경(詩經),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에 이런 시가 있다는 것이다. 여인네들이 맘에 드는 남정네를 보면 과일을 던졌다고. 그래서 자기가 던진 과일을 그 사람이 받으면 거의 기절할 정도로 좋았다고. &lt;/P&gt;
&lt;P style=&quot;MARGIN-LEFT: 20px; MARGIN-RIGHT: 20px&quot; align=center&gt;&lt;FONT color=#ff6600&gt;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lt;BR&gt;보답이 아니라 뜻깊은 만남을 위해서라오. &lt;BR&gt;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lt;BR&gt;보답이 아니라 변함 없는 우정을 위해서라오. &lt;BR&gt;나에게 오얏을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lt;BR&gt;보답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라오.&lt;/FONT&gt;&lt;/P&gt;
&lt;P align=justify&gt;물론 유학자들은 이 시, 민요(民謠)에서 남정네는 군자(君子)니 주공(主公)이고 그 과일을 뭐 충성이나 열망의 상징 뭐 그렇게 해석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오래 전에도 선남선녀가 눈이 맞으면 과일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즉, 학에서 비롯되었든 아니든. 오렌지의 전설은 지극히 동양적 남녀 상열지사의 또 다른 한 외연(外延)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lt;BR&gt;&lt;BR&gt;어떤 사건이나 관습, 뭐 하나 필연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우연적으로 드러나는 듯한 모든 일은 존재해야 할 필연성이 있으며,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우연성 속에 감춰진 필연성을 찾아야 한다. &lt;BR&gt;　&lt;/P&gt;
&lt;P align=right&gt;&lt;STRONG&gt;미르기&lt;/STRONG&gt;&lt;BR&gt;&lt;A HREF=&quot;/kiml22&quot;&gt;http://www.mediamob.co.kr/kiml22&lt;/A&gt;&lt;BR&gt;&amp;nbsp;&lt;A class=cherry href=&quot;mailto:kiml22@netffic.com&quot;&gt;kiml22@netffic.com&lt;/A&gt;&lt;BR&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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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9693</link>
<category>감성</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Tue, 22 Mar 2005 16:12:32 +0900</pubDate>
</item>

<item>
<title>다시 생각하는</title>
<description>&lt;IMG src=&quot;/FDS/BlogData/kiml22/862.JPG&quot;&gt;&lt;BR&gt;&lt;BR&gt;&apos;떠남&apos; &lt;BR&gt;&lt;BR&gt;이 말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길을 가다 어떤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 정답게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산에 꽃이 피고 물가에 붕어 있으면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그곳에 쉬어갈 수도 있고…. &lt;BR&gt;어쨌든 이 땅의 흙 냄새라면 아무데라도 좋겠다. &lt;BR&gt;&lt;BR&gt;하지만 그 떠남이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다가다 지치면 다시 돌아온다는 전제.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 그 어떤 품이 있다는 전제. 이광조가 부른 &apos;나들이&apos;가 생각난다. &lt;BR&gt;&lt;BR&gt;러시아의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lt;BR&gt;&quot;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랑조차 자유를 위해서라면 포기할 수 있다&quot;고. &lt;BR&gt;&lt;BR&gt;목숨과 사랑 그것을 포기하더라도 빼앗길 수 없다는 자유, 그 자유는 그렇게 스무 살에 떠남으로 내게 찾아 왔다. &lt;BR&gt;&lt;BR&gt;&lt;BR&gt;80년 7월, 나는 왜 하필 그 때 &apos;떠남&apos;을 택했는지…. &lt;BR&gt;그 때부터 내 여행의 키워드는 &quot;서러움과 애틋함&quot;이 되었다. 그 해 여름의 경험이. &lt;BR&gt;&lt;BR&gt;나의 첫 떠남은 그렇게 왔다. &lt;BR&gt;어디어디라는 계획도 없이 그저 배낭에 쌀과 버너 그리고 고추장과 약간의 속옷을 넣고. 아, 그때 나는 갓 스무 살이었다. &lt;BR&gt;&lt;BR&gt;............. &lt;BR&gt;&lt;BR&gt;1. 첫 번째 만난 아름다운 사람. &lt;BR&gt;&lt;BR&gt;경전선. &lt;BR&gt;목포에서 출발한 기차는 부산에 도착한다. 섬진강을 사이로 기차 안에서 들리는 사투리가 바뀐다고 한다. 남도 끝자락에 산다는 어떤 중년 아저씨의 말이었다. &lt;BR&gt;&lt;BR&gt;기차에서 소주를 팔 던 시절, 섬진강을 사이로 하동쪽으로 무학, 광양쪽으로는 보해를 팔았다고 한다. &lt;BR&gt;&lt;BR&gt;짙은 주름만 기억나는 그 아저씨의 구수한 이야기속에서 섬진강을 사이에 둔 두 지역 사람의 갈등을 읽기에는 스무 살 나이가 아직은 어렸다. &lt;BR&gt;하지만 웃으면 눈이 안보였던 그 아저씨가 풀어주던 경전선에 얽힌 이야기는 &apos;떠남&apos;이 없이는 어디서도 배울 수 없던 삶이었다. 그 아저씨에게는 기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스무 살 처음 집을 떠난 나조차도. &lt;BR&gt;&lt;BR&gt;밤 기차는 섬진강 철교를 향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쉬워했다. 그 좋은 자기 고장을 나에게 보여줄 수 없음을. 하지만, 나는 그 아저씨의 눈에 비춰진 남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미 보았다. 그 풍경은 나중에 남도를 갈 때마다 그대로 있었다. &lt;BR&gt;&lt;BR&gt;뒤에 배낭에 넣었던 유일한 책인 이청준의 &apos;당신들의 천국&apos;을 읽으며 &apos;당신들의 천국&apos;과 &apos;우리들의 천국&apos;을 생각했다. 그 아저씨가 보여주고 싶었던 아저씨의 고향은 &apos;당신들의 천국&apos;이었을까, &apos;우리들의 천국&apos;이었을까. &lt;BR&gt;&lt;BR&gt;&lt;BR&gt;2. 두 번째 만난 이들, 슬픔조차 가질 수 없던…. &lt;BR&gt;&lt;BR&gt;아저씨는 내렸다. 기차 안에 있던 모든 알던 이들과 헤어지면서 또 새롭게 &apos;이미&apos; 알고 있던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다시 혼자였다. 아저씨의 구수한 이야기에 듣지 못했던 왁자지껄한 완행 열차의 소요스러움이 새로웠다. 야간 완행 열차의 소요스러움을 즐기며 책을 꺼냈다. &lt;BR&gt;책을 펼치고 몇 줄이나 읽었을까, 완행 열차는 다시 멈췄다. &lt;BR&gt;순간적인 부자연스런 고요함이 기차를 덮쳤다. 책을 접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휴식시간의 왁자지껄임이 순간적으로 꺼진 뒤, 아무런 일도 없음을 확인하고 모두 &apos;와~&apos;하고 웃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경험대로 곧 소요스러움이 다시 시작되리라. 하지만 고요함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주위를 두리번 하던 나는 입구 쪽을 봤다. &lt;BR&gt;발자국 소리조차 선명하게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특전사 장교와 하사관 두 셋이 걸어오고 있다. &apos;뚜벅뚜벅&apos; 훈련받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기차 안의 침묵을 더 강요하는 듯 했다. 짧지만 아주 긴 시간이었다. 그들은 저쪽 문을 열고 나갔다. . &lt;BR&gt;기차 안은 이전의 소란스러움으로 되돌아 왔다. 그 때, 어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 &lt;BR&gt;&lt;BR&gt;&quot;오메, 경상도는 가까워지고, 공수부대는 겁주고, 죽겠구만라잉~&quot; &lt;BR&gt;&lt;BR&gt;난 모르는 척 책만 봤다. 하지만, 글씨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80년 7월이었다. &lt;BR&gt;&lt;BR&gt;기차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어느 곳이 장날이었는지, 장보러 가는 사람들로 기차는 북적거렸다. 큰 짐을 들고 탄 어떤 사람이 내 배낭 옆에 짐을 올리면서 진한 전라도 말도 이렇게 내뱄었습니다. &lt;BR&gt;&lt;BR&gt;&quot;어떤 놈은 시방 이럴 상황에서 팔자 좋아 놀러다니기도 하네잉~&quot; &lt;BR&gt;&lt;BR&gt;그 소리를 듣고 또 난 책만 봤다. 아니 책만 보는 척 해야 했다. 80년 7월, 섬진강 철교를 건너기 직전의 전라도였다. &lt;BR&gt;&lt;BR&gt;&lt;BR&gt;3. 세 번째 만남. 만나지 않아도 만나는 사람 &lt;BR&gt;&lt;BR&gt;경전선을 타고 부산으로, 다시 경전선을 타고 영산포에 갔다. 한 여름인데도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영산포 내렸다. 버스가 몇 대 기다리고 있다. &lt;BR&gt;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가 진도를 가기로 했다. 그러나 진도행 버스는 없었다. 일단 해남으로 갔다. 잠이 들고 얼마나 지났을까. 해남에 도착했다. 해남 버스터미널은 아침이었다. 시골 버스 정류장이 늘 그렇듯, 거기도 어느 장터를 찾아 떠나려는 장꾼들이 많았다. &lt;BR&gt;&lt;BR&gt;그 장꾼들 사이에 한 여인이 혼자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 여인을 보니까, 부산에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3-4일. 그 짧은 시간 혼자 다니면서 느꼈던 많은 일들을 마구 지껄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lt;BR&gt;그러나 그저 충동뿐이었다. 나는 낡은 의자에 배낭을 놓고 기대고 있었고, 그녀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그런데 뭔가 떠들고 싶은 절박함은 그녀가 출발한 다음에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 왔다. 아쉬움, 아련함, 애틋함….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한편으로는 견딜 수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느낌 자체에 희열을 느꼈다. 분열인가. 하지만 그 뒤로 유혹처럼 오는 그런 느낌은 그 뒤의 것들이고, 그 때는 그냥 의자에 앉아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그저 자는 척만 했다. 만날 것도 없고 헤어질 것도 없는 만남과 헤어짐조차 가슴을 아리게 하던 80년 스무 살의 여름이었다. &lt;BR&gt;&lt;BR&gt;&lt;BR&gt;4. 네 번째 만남. 사랑이 곧 슬픔인 사람 &lt;BR&gt;&lt;BR&gt;그래도 진도에 갔다. 다리가 생기 전 진도는 버스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그렇게 진도에 도착했지만, 갈 길은 멀었다. 두 어 시간을 걷고 선배 집에 도착했다. 그 선배 집에선가 아니면 다른 집이었나. 아무튼 그 선배한테는 동생뻘 되는 친척이 있는데, 어려서 크게 다쳐 장애인이 된 뒤로 20여 년을 거의 집밖에조차 나가지 못했다는 여인네가 있었다. &lt;BR&gt;&lt;BR&gt;하는 일이라고는 술먹는 일만 있던 어느 날, 여전히 선배와 짜디짠 열무김지 한 보시기를 놓고 막소주 댓 병을 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선배는 동생 이야기를 했다. &lt;BR&gt;&lt;BR&gt;&quot;갸도 몸은 그렇지만, 마음은 여자가 아니것냐, 동네 어떤 청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근데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이여, 아니 할 수 없는 것이겠제. 그래도 오빠라고 나한테 울면서 말하더만.. 근디 내가 뭐라 할 수 있것냐. 엠병~&quot; &lt;BR&gt;&lt;BR&gt;&apos;그라스&apos;에 가득 담긴 막소주를 한 숨에 입에 털어 넣고는 짜디짠 열무김치를 한 주먹 입에 넣었다. &apos;나&apos; 말고 다른 사람 역시 사랑하고 슬퍼한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짜디짠 소금기로 다가 왔다. &lt;BR&gt;&lt;BR&gt;5. 다섯 번째 만남. 우동 한 그릇, 처음 만난 대구 사람. &lt;BR&gt;&lt;BR&gt;진도에서 나온 뒤로 이번에는 목포를 갔다. 다시 기차를 탔다. 말 그대로 발 길 따라서 걷다보니 영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고추장조차 다 떨어지고 돈은 동전 몇 닙 수준이다. 선택은 두 가지다. 서울 집으로 가느냐 아님 마산에 있는 형한테 가느냐. 그런데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는 서울도 마산도 갈 수 없다. 지금 돈으로는 어디로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참 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뭐든 할 수밖에 없구나, 외지에서 돈이 떨어지고 뭐든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lt;BR&gt;아, 그러고 보니 그 때는 스무 살이었다. &lt;BR&gt;&lt;BR&gt;지금 있는 영동에서 뭐든 해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괜히 실실 웃음이 나오는데....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대구행&amp;nbsp;열차라고 한다. 무조건 탔다. 마산이 아닌 대구까지 차비는 &apos;충분&apos;했다. &lt;BR&gt;기차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배낭, 오랜 &apos;객지&apos; 생활로 말이 아닌 몰골. 옆 사람들이 혼자냐고 묻는다. 몇몇이 &apos;좋을 때&apos;라고 한다. 어떻게 혼자 다니냐, 이럴 때나 혼자 나니지 않겠냐, 젊음이 좋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심심하지 않게 대구에 내렸다. 자, 이제 대구다. 한 여름이지만 어둠은 벌써 플랫홈을 지나고 있다. 이제는 내려서 뭘 할지…. &lt;BR&gt;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로 가는 데, 아까 옆 자리 있던 사람이 내게 묻는다. &lt;BR&gt;&lt;BR&gt;&apos;저녁은 먹었냐?&apos; &lt;BR&gt;&apos;....&apos; &lt;BR&gt;&apos;그렇게 다니면서 끼니는 제대로 먹겠냐. 저기 가서 우동이나 한 그릇 먹자&apos; &lt;BR&gt;&apos;....&apos;&amp;nbsp;&lt;BR&gt;&lt;BR&gt;내게 대구는 아직도 그렇게 남아있다. &lt;BR&gt;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우동, 그건 대구역 구내에서 파는 우동이다. 나에게는 지금도 대구 역 구내에서 우동 파는 곳이 있다. 아마도 8과 1/2 플랫홈 옆자리쯤은 아닐까... &lt;BR&gt;&lt;BR&gt;......................................... &lt;BR&gt;&lt;BR&gt;사람들은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다 변한다고.. &lt;BR&gt;나는&amp;nbsp;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 먹어 보인다.&amp;nbsp;&lt;BR&gt;&lt;BR&gt;&lt;BR&gt;&apos;어, 너는 왜 그렇게 안 변했어? 옛날이나 똑같네&apos; &lt;BR&gt;&lt;BR&gt;변한 것은 &apos;옛날과 똑같다&apos;, &apos;변하지 않았다&apos;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lt;BR&gt;오히려 변하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한테 변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닐까. &lt;BR&gt;&lt;BR&gt;변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apos;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자 하는 연어&apos;고, 변했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apos;흐르는 강물에 자신을 맡겨 놓고 사는&apos; 사람이다. &lt;BR&gt;끊임없이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한, 그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변하지 않고 정체한 사람, 그 사람은 예전과 다른 &apos;변화한&apos; 사람이다. 생명의 존재 가치는 변화와 새로움이다. &lt;BR&gt;&lt;BR&gt;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한, 나는 여전히 내가 스무 살 여행에서 만난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변화와 새로움을 무서워하는 순간, 나에게 내 스무 살의 기억은 사라질 것이다.&amp;nbsp;&lt;BR&gt;&lt;BR&gt;결국 &amp;nbsp;&apos;떠남&apos;이란 &apos;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不踰矩)&apos;, 무엇이든 하고 싶은 데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amp;nbsp;길을 가기 위한 떠남은 아닌지..&lt;BR&gt;그런 떠남은 아직도 나를 기다린다.&amp;nbsp;&lt;BR&gt;&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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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079</link>
<category>감성</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Fri, 23 Apr 2004 12:47:25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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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복원해야 할 것은 청계천만이 아니다</title>
<description>&lt;img src=&apos;http://www.mediamob.co.kr/FDS/BlogData/kiml22/861.JPG&apos;&gt;&lt;br&gt;&lt;br&gt;한량(閑良), 나는 이 개념을 복원하고 싶습니다.&lt;br&gt;&lt;br&gt;뜬금 없이 한량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lt;br&gt;왜 갑자기 한량이냐구요?&lt;br&gt;&lt;br&gt;&lt;br&gt;며칠 전 &amp;#39;TV, 책을 말하다&amp;#39;라는 프로그램에서 도올은 말합니다. 서구에서 말하는 근대적 인간이란 이성적 인간이며, 이 때 이성이란 (고등) 수학적 대가리를 갖은 인간이라고.&lt;br&gt;&lt;br&gt;90년대 인문학의 화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었다고 봅니다. 아, 사회과학쪽도 그랬죠.&lt;br&gt;나는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amp;#39;포스트&amp;#39;를 생각할 때인가 하구요, 근대성, 그것은 아직도 실현 과제일 뿐이지, 극복의 대상은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치지 않았거든요. 즉, 우리는 아직도 합리(合理)와 비합리의 대결구조에서 싸우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죠.&lt;br&gt;&lt;br&gt;그렇지만, 내가 뭐 당대 석학들의 논쟁에 어떤 명함을 내밀 처지도 아니고...그저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능력 없다고, 문제 의식까지 없지는 않았습니다.&lt;br&gt;&lt;br&gt;서구에서 근대성을 극복할 그 무엇을 찾는다면, 그 전제는 근대성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직 근대성을 실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해도, 근대성이 갖고 있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갖추면서 근대성을 실현할 수 있는, 서구의 근대성의 실현과정과는 다른 그 어떤 내용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lt;br&gt;&lt;br&gt;이것이 내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lt;br&gt;&lt;br&gt;그러나 그 때 도올의 말을 들으면서 이 문제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lt;br&gt;근대성, 그 개념말고 우리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lt;br&gt;&lt;br&gt;그리고 최근 집회의 집회 문화, 어떻게 보면 대립적 관계인 &amp;#39;다양성&amp;#39;과 &amp;#39;통합성&amp;#39;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등의 문제 의식까지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lt;br&gt;&lt;br&gt;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나갔던 시청앞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가는 광화문, 그 시간적 차이만큼 문화적 차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 차이, 그것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 그것도 고민이 되니까요.&lt;br&gt;&lt;br&gt;그래서 평소에 생각했던, 농담삼아 괜히 폼잡으면서 이야기하고는 했던, 한량을 다시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한량(閑良)....&lt;br&gt;용비어천가를 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lt;br&gt;&amp;#39;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들을 한량이라 속칭한다.&amp;#39;라고.&lt;br&gt;&lt;br&gt;그러니까 조선 초에는 한량은 이랬다는 것이죠. &lt;br&gt;첫째, 관직을 가졌다가 그만뒀다. &lt;br&gt;둘째, 향촌에서 특별한 직업 없이 산다.&lt;br&gt;&lt;br&gt;&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&lt;br&gt;여기까지 본다면 4월15일 이후 한민당의원의 대다수는 그렇게 되겠죠. 그렇다면 그들이 한량? 그렇다면 아에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또 직업이 없이 산다는 말에 홍싸데기의 말을 떠올릴까봐 걱정도 됩니다만, 결코 그런 잡설하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lt;br&gt;&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amp;#39;&lt;br&gt;&lt;br&gt;이같은 조선 초기 그런 한량이라는 규정은 점차 바뀌게 됩니다.&lt;br&gt;뒤에는 벼슬도 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하여 아무런 소속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무예를 잘 하여 무과에 응시하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네요.&lt;br&gt;&lt;br&gt;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한량, 그러면 직업이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부유한 계층이라 돈 잘 쓰고 만판 놀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됐나 봅니다. 다만 부유하고 직업과 속처가 없는 유한층이되, 관직이나 학생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으로 봐서는 배운 놈이라는 것도 한량의 또 다른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lt;br&gt;&lt;br&gt;그러니까 정조 이후에는 무과 응시자 혹은 무반 출신자를 한량이라고 불렀다고는 하는데, 어쨌든 조선시대 한량이라고 한다면,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쉽지 않습니다만, 재산도 있고 유학과 무예도 어느 정도 익힌 사족이나 평민의 자제들로 학교에 있지도, 군역도 지고 않는 부류, 이렇게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습니다. &lt;br&gt;&lt;br&gt;그런데 한량이 그냥 돈 잘 쓰고 놀기만 한 것은 배운 놈이 아니라는 것이, 진주 지방에서 전해지는 한량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량이란 &amp;#39;벼슬에 오르지 못한 호반(虎班)을 일컫는 말로서 풍류를 알고 호협(豪俠)한 사나이의 별명&amp;#39;으로 본다는 것이죠.&lt;br&gt;&lt;br&gt;바로 이것이 내가 한량에 주목하게 된 이유입니다.&lt;br&gt;&lt;br&gt;풍류(風流)를 알고 호협(豪俠)한 사나이….&lt;br&gt;물론 남존여비 사상에서 인간이란 곧 남자를 지칭하는 당시라, 여기서 &amp;#39;남자&amp;#39;는 &amp;#39;사람&amp;#39;이라 하는 것이 옳겠죠.&lt;br&gt;&lt;br&gt;자, 뭔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lt;br&gt;풍류를 알고 호협한 데다가 무예까지 익히다니.&lt;br&gt;네 그렇습니다. &lt;br&gt;&lt;br&gt;결국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 의지와 여유,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것이 한량의 본질이더군요.&lt;br&gt;&lt;br&gt;이제 그 한량이 왜 21세기에 복원하고자 하는가, 그 이유를 밝힐 차례이군요.&lt;br&gt;&lt;br&gt;21세기에 한량(閑良)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즉, 이 문제 의식은 이렇습니다. &lt;br&gt;&lt;br&gt;&amp;quot;과연 배운 사람한테 관료 진출이 유일한 돌파구였던 농업 사회에서 등장한 한량은 21세기 정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의미한가.&amp;quot;&lt;br&gt;&lt;br&gt;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lt;br&gt;&lt;br&gt;&amp;quot;그렇다&amp;quot;&lt;br&gt;&lt;br&gt;&lt;br&gt;한량의 생명은 거침이 없는 자유자재(自由自在)입니다. 풍류(風流)입니다. 그리고 호협(豪俠:호방함과 의협심)입니다.&lt;br&gt;&lt;br&gt;자유자재와 풍류 그리고 호협. 아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lt;br&gt;어쩌면 21세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릅니다.&lt;br&gt;&lt;br&gt;80년대 이후 우리의 역사는 어쩌면 바로 이 세 가지 코드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 시대 그토록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고 슬퍼했던 것은 21세기가 그토록 그것들을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자유자재와 풍류, 그리고 호협을..&lt;br&gt;&lt;br&gt;자유자재. &lt;br&gt;어떤 거침이 없음입니다. 자유자재는 한량의 내적 규정을 이야기합니다. 나 스스로 어떤 거침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이는 한량을 한량이라 할 수 있는 정체성 확인의 출발입니다. 스스로 그러하지 못한 이들은 한량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얽매임.. 그것은 한량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출발선입니다. 얽매임 없이 스스로 무엇을 하든 거침이 없는 사회, 21세기가 간절히 바라는 사회입니다. &lt;br&gt;&lt;br&gt;자유자재는 &amp;#39;자유로운 의지를 바탕으로 거리낌없는 소통&amp;#39;을 필요로 하는 정보사회에서 막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것을 막고자 하는 정보통신에 관한 법률(?) 뭐 그 딴 것들은 오히려 &amp;#39;21세기의 적&amp;#39;입니다. &lt;br&gt;&lt;br&gt;풍류(風流), &lt;br&gt;바람 풍에 물흐름 유. 그렇다고 풍류가 단순한 바람과 물흐름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말입니다. 신라 시대 최치원은 말합니다. &amp;quot;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다,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lt;br&gt;&lt;br&gt;풍류에 대한 더 깊은 내용은 다른 기회에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인간과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자연이라는 것, 따라서 자연을 배제한 풍류는 있을 수 없다는 것, 해서 자연이나 환경이란 키워드는 한량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무너지고 되돌릴 수 없이 파괴된 자연은 한량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21세기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전제로 한다면 한량은 가장 완벽한 21세기형 인간입니다. &lt;br&gt;&lt;br&gt;그리고 호협(豪俠).&lt;br&gt;호협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누구도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생활 공간은 혼자라 하더라도 삶의 공간은 혼자 일 수 없습니다. 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호협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자신에게 오는 불편함은 호탕함으로 이겨내고 남에게 가해지는 불편함이나 사람들의 자유자재를 억누르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의협심을 발휘합니다. 이 얼마나 우리가 추구하던 21세기형 인간입니까. &lt;br&gt;&lt;br&gt;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온라인에서 넷티즌은 일어섰습니다. 그들이 바로 호협한 인간입니다. &lt;br&gt;&lt;br&gt;호협이 없다면, 네티즌은 그저 스스로 익명성에 묻혀 버린 인격성을 상실한 그저 부정적 의미의 &amp;#39;폐인&amp;#39;일 뿐입니다. 호협이 있기에 온라인 소통은 21세기의 역사성과 시대성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lt;br&gt;&lt;br&gt;그래서 21세기에 복원된 한량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의 속박뿐 아니라 사회적인 속박을 거부합니다.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적극적인 거부,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거침이 없도록 합니다.&lt;br&gt;&lt;br&gt;&lt;br&gt;이렇듯 자유자재, 풍류, 호협.&lt;br&gt;이는 한량 스스로의 의지이자, 자연과 자신의 관계이자, 자신과 타인의 관계입니다.&lt;br&gt;&lt;br&gt;&lt;br&gt;...참고로.. 그래서 딴지일보 관광청에는 노매드 한량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&lt;br&gt;&lt;br&gt;&lt;br&gt;&lt;br&gt;&lt;br&gt;각설하고..&lt;br&gt;&lt;br&gt;우리의 지난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lt;br&gt;&lt;br&gt;우리는 &lt;br&gt;즐거워해야 할 때 두려워했으며, &lt;br&gt;슬퍼해야 할 때 좌절했으며,&lt;br&gt;분노해야 할 때 자학했습니다.&lt;br&gt;&lt;br&gt;지난 수 십 년의 우리 역사가 그랬습니다.&lt;br&gt;&lt;br&gt;그렇기에 한량은 &lt;br&gt;즐거워해야 할 때 즐거워 할 줄 알고, &lt;br&gt;슬플 때 슬퍼할 줄 알며, &lt;br&gt;분노를 느꼈을 때 분노할 줄 압니다.&lt;br&gt;&lt;br&gt;2002년 6월의 광화문에서 우리는 즐거워했으며, 그 해 겨울 광화문에서는 효순이와 미선이를 생각하며 슬퍼할 줄 알았고, 2004년 3월 역시 광화문에서 우리는 분노할 때 분노할 줄 알았습니다. &lt;br&gt;&lt;br&gt;이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lt;br&gt;&lt;br&gt;자유 의지와 여유, 자신에 대한 믿음, 그것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lt;br&gt;&lt;br&gt;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습니다.&lt;br&gt;한량은 그 즐거움, 슬픔, 그리고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까요.&lt;br&gt;&lt;br&gt;이는 21세기든 15세기든 한량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말, 바로 &amp;#39;놀이&amp;#39;에서 찾아야 합니다. 놀이가 없는 한량은 한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lt;br&gt;&lt;br&gt;&lt;br&gt;따라서 우리가 한량을 알고자 한다면 진정한 놀이를 아는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lt;br&gt;&lt;br&gt;우리가 즐겨 찾는 커뮤니티, 혹은 블러그. &lt;br&gt;나는 그 말을 굳이 우리말로 바꾼다면 그것은 &amp;#39;놀이마당&amp;#39; 혹은 &amp;#39;놀이패&amp;#39;가 적절하다고 봅니다. &lt;br&gt;놀이마당, 혹은 놀이패라고 한다면 마당극이나 학교 동아리 가운데 하나인 사물놀이패나 농악패 등등을 떠올리겠지만 아니올시다. &lt;br&gt;&lt;br&gt;집회를 축제로 승화시킨 힘, 그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lt;br&gt;&lt;br&gt;21세기 한량은 즐거워해야 할 때, 슬퍼해야 할 때, 그리고 분노해야 할 때, 그 즐거움, 슬픔, 분노를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lt;br&gt;&lt;br&gt;놀이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 활동과 &amp;#39;일&amp;#39;에 해당되는 활동을 제외한 몸과 생각으로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lt;br&gt;먹고 자고 싸는 생존 활동은 놀이가 아닙니다. &amp;#39;인류의 원초적 본능인 먹고 싸는 문제에 대한 철학적 고찰&amp;#39;은 놀이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생존의 영역입니다.&lt;br&gt;또 어떤 목적을 위하여 고통을 참고 제약된 상황 아래 참여하는 활동은 &amp;#39;일&amp;#39;이라 합니다. 뭐 어려운 게 아니죠. &lt;br&gt;&lt;br&gt;따라서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21세기 지금 광화문에서 펼쳐지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다.&lt;br&gt;그런데 아직도 그 때의 운동방식이나 틀을 갖고 오늘의 광화문을 재단하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인 것입니다.&lt;br&gt;&lt;br&gt;놀이는 첫째, 생활상의 이해를 떠나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폼나는 말로 무목적(無目的)적 활동이라 할 수 있겠죠. 여기서 무목적적 활동은 생존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대비된 개념입니다. &lt;br&gt;&lt;br&gt;그리고 놀이는 &amp;#39;즐거움과 흥겨움을 동반하는 가장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활동&amp;#39;입니다. &lt;br&gt;&lt;br&gt;그래서 광화문에서 펼쳐진 공간은 생활상의 이해를 떠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합니다. 이를 한민당 친구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리고는 떠듭니다. &amp;#39;생업에 종사하면서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라고. 고건 대행이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amp;#39;. 참 한심한 친구들입니다.&lt;br&gt;&lt;br&gt;하여간 그래서 지금의 광화문은 즐거움과 흥겨움이 있는 해방된 인간 활동의 공간이 된 셈입니다.&lt;br&gt;&lt;br&gt;분명한 것은 내가 그렇다고 해서가 아니라,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몸으로 놀이의 참 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즐거움과 흥겨움, 자유로움을 가로막는 사람에게 항의합니다.&lt;br&gt;이런 허접한 글이 주는 규정 이전에 먼저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lt;br&gt;&lt;br&gt;어쨌든 ........&lt;br&gt;놀이는 막연한 휴식은 아닙니다. 놀이는 몸과 생각을 써서 정서적 공감력과 정신적 만족감을 얻고자 이루어지는 활동입니다. 곧 사람이 사람으로서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즐기고자 하는 의지적인 활동입니다. &lt;br&gt;&lt;br&gt;그러므로 놀이는 일차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공감하여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놀이는 자발적인 참여, 모든 제약으로 해방이라는 자유스러움에서 출발합니다. &lt;br&gt;놀이, 그거 만만한 것이 아니더군요. 물론 놀이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놀이의 의미 등등이....&lt;br&gt;&lt;br&gt;놀이이 갖는 다양성과 통합성의 통일, 그것은 집회에서 집중과 분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양성과 통합성,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이제 본격적으로 그것을 고민해 봐야겠습니다만, 그것까지는 조금은 더 정리를 더 해봐야 할 듯 싶네요.&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078</link>
<category>감성</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Mon, 29 Mar 2004 12:50:2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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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title>
<description>&lt;img src=&apos;http://www.mediamob.co.kr/FDS/BlogData/kiml22/860.JPG&apos;&gt;&lt;br&gt;&lt;br&gt;&amp;quot;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lt;br&gt;&amp;#39;어머니 울지 마세요&amp;#39;가 아닐까.....&amp;quot; &lt;br&gt;&lt;br&gt;한국일보에서 연재하는 만화, &amp;#39;호두나무 왼쪽길로&amp;#39;에 나오는 2월 16일자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lt;br&gt;&lt;br&gt;맞다. &lt;br&gt;&amp;#39;어머니 울지 마세요&amp;#39;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다. &lt;br&gt;&lt;br&gt;지난 80년 대, 데모하다 끌려가서 거의 한 달이 지나 이루어진 면회에서 어머니를 만난 자식의 첫 마디는 &amp;quot;어머니, 울지 마세요&amp;quot;였다. 그 시절 자식한테 &amp;#39;울지 마세요&amp;#39;라는 말을 들을 만큼 많은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lt;br&gt;&lt;br&gt;영화에서도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lt;br&gt;피난 길, 아무것도 해주지 안고 있던 국가는 자식을 둘씩이나 끌고 갔다. 어머니는 땅을 치며 울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lt;br&gt;&lt;br&gt;벙어리. &lt;br&gt;어머니가 벙어리라는 영화 속의 설정은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영화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lt;br&gt;우리는 조국을 다른 말로 모국(母國)이라고 한다. 어머니 나라라고 한다. &lt;br&gt;어머니 나라. 그런데 그 어머니는 벙어리다. 말을 할 수 없다. &lt;br&gt;어머니는 아들이 끌려가도 말을 할 수 없다. &lt;br&gt;세월이 지나 한 아들은 돌아오지 않고 다른 아들은 다리를 절며 돌아와도 어머니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다. &lt;br&gt;&lt;br&gt;말 못하는 어머니. &lt;br&gt;이는 말 못하는 조국이며 말 못하는 우리 민족이다. &lt;br&gt;아니, 형제가 갈라져 싸우는, 점령지 주민을 입대시키는 그 희한한 전쟁을 보며 조국이나 민족은 설사 말을 할 수 있어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lt;br&gt;&lt;br&gt;영화속의 어머니는 벙어리다. &lt;br&gt;그리고 영화 끝에 그 말못하는 어머니에게 돌아 온 아들은 다리를 절고 있다. &lt;br&gt;파행(跛行), &lt;br&gt;전쟁은 끝났지만 우리는 파행을 걷고 있다. &lt;br&gt;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다리 하나는 절고 있다. &lt;br&gt;&lt;br&gt;&lt;br&gt;&amp;#39;태극기 휘날리며&amp;#39;는 그 하나만으로도 영화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셈이다. &lt;br&gt;&lt;br&gt;쉬리와 JSA가 파행을 걷고 있는 우리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면 태휘는 파행을 걷게 된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lt;br&gt;이젠 절름발이로 걷고 있는 우리가 왜 절름발이로 걷을 수밖에 없는지, &amp;#39;태극기 휘날리며&amp;#39;는 묻는다. &lt;br&gt;&lt;br&gt;&lt;br&gt;&amp;#39;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amp;#39; 첫 권이 나온 다음에 어떤 사람들은 말했다. &lt;br&gt;&amp;quot;경복궁? 자금성에 비하면 화장실이다.&amp;quot; &lt;br&gt;&amp;quot;경주 고분? 피라밋에 비해봐라&amp;quot; &lt;br&gt;...... &lt;br&gt;세계에서 각 분야별 가장 최고(最古), 최고(最高)를 인정받는 유적과 우리 유적을 비교한다. &lt;br&gt;&lt;br&gt;사람들은 태극기 휘날리며를 갖고 라일구나 BOB를 비교한다. 아니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lt;br&gt;그야 맞는 말이다. &lt;br&gt;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라일구나 BOB의 배경인 2차 세계대전과 태휘의 배경은 한국 전쟁, 그 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lt;br&gt;&lt;br&gt;우리는 결코 두 전쟁을 갖은 시각으로 볼 수 없다. &lt;br&gt;두 전쟁을 같은 수준에 놓고 그 전쟁을 묘사한 영화 역시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 없다. &lt;br&gt;한국전쟁은 &amp;#39;실미도&amp;#39;나 &amp;#39;JSA&amp;#39;처럼 현재 진행형인 전쟁이다. 한국전쟁이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은 선언적 의미가 아니다. 실미도 감독을 국가보안법으로 고발하는 것 역시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lt;br&gt;어머니는 아직 말을 못하고 우리는 아직도 파행(跛行)을 걷고 있다. &lt;br&gt;&lt;br&gt;영화가 끝날 때 무척 슬펐다. &lt;br&gt;장민호 선생의 &amp;#39;형&amp;#39;이라는 대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lt;br&gt;우리 역사, 우리 민족, 아니 그냥 &amp;#39;우리&amp;#39;가 참 슬펐다. &lt;br&gt;우리, 참 슬프게 살았구나, 아니 아직도 우리는 참 슬프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lt;br&gt;&lt;br&gt;지난 토요일. &lt;br&gt;아시아 아시아에서 취재진의 통역을 맡고 계신 할아버지. &lt;br&gt;연해주에 살던 아버지는 누나를 할머니께 맡겨두고 자신만을 데리고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60여년이 흘렀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은 누나를 찾으라는 말이었단다. &lt;br&gt;그러나 주소도 모르고.... &lt;br&gt;어찌어찌하여 충북 단양, 아버지의 고향에 왔었더란다. 그런데 누이도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몇 개월 전에 다녀가셨더란다. 그 할아버지는 여전히 누이 소식은 모른다. &lt;br&gt;&lt;br&gt;더런 놈의 역사다. 남북의 정부다. &lt;br&gt;여전히 조국, 민족은 말을 할 수 없다. 벙어리 조국, 벙어리 민족이다. &lt;br&gt;&lt;br&gt;한국전쟁,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lt;br&gt;계속되는 전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야 진짜 한국전쟁을 다룬 최초의 영화를 갖게 된 셈이다. &lt;br&gt;&lt;br&gt;CG? &lt;br&gt;그 완성도는 잘 모르겠다. &lt;br&gt;다만 인민군도 모두 철모를 쓰고 전쟁했다는 그 당연한 사실을 알면서도 제작비 때문에 딱 4개의 인민군 철모만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전쟁을 다룬 최초의 영화일뿐, 최대나 최고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lt;br&gt;하지만 여기 온 성과, 그것조차 외면하거나 무시하지는 말자. &lt;br&gt;라일구나 BOB를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CG의 완성도나 연기, 전쟁묘사 등을 이야기 하지 말자. 서양인이 한국전쟁을 묘사한 영화를 보듯이 우리도 그렇게 영화를 보면 안 된다고 본다. &lt;br&gt;그래도 기술적 완성도, 그거 대단하다. 1300만 달러 갖고 세계 어느 나라도 그 정도의 영화 못 만든다. 그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수준이나 만들뿐이다. 돈 들어간 티 하나도 안나는. &lt;br&gt;&lt;br&gt;2002년 6월. &lt;br&gt;선수들은 이기려고 뛰는 데, 말께나 한다는 사람은 16강에 못들어도 혹은 설사 지더라도 비난하지 말자는 맹물 같은 말만하고 있었다. &lt;br&gt;우리가 4강에 올라도 우리 실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러지 말고 우리 영화가 이룬 기술적 완성도, 있는 그대로도 보자. &lt;br&gt;그냥 그렇게...&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077</link>
<category>감성</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Wed, 10 Mar 2004 22:47:5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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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그래도 찢어진 깃발이나마 들고 일어서자</title>
<description>탄핵됐다.&lt;br&gt;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받았다.&lt;br&gt;&lt;br&gt;광주 학살의 주역과, 쓰러진 광주의 혼을 팔아 자신의 영달을 꾀했던 자들이 모여,&lt;br&gt;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을 탄핵했다.&lt;br&gt;&lt;br&gt;그러나, 정몽준이 배신한 그날 밤, 새벽을 기다리며 아파트 입구마다 무더기로 쌓여 있는 &amp;#39;정몽준도 노무현을 버렸다&amp;#39;고 외친 조선일보를 주우러 다니다 투표소로 향해 조심스럽게,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노무현을 찍었던 국민이 노무현을 탄핵한 것이 아니다.&lt;br&gt;국민은 노무현을 탄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제 이 나라 수구 보수, 수 십년 이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짖밟았던 그들을 탄핵하는 대장정에 들어섰다.&lt;br&gt;&lt;br&gt;어쩌면 이번 탄핵은 진정한 정권 교체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지도 모른다.&lt;br&gt;70%에 가까운 탄핵 반대 국민과 70%를 넘는 탄핵 찬성 국회의원.&lt;br&gt;&lt;br&gt;그렇다. &lt;br&gt;그동안 국회는 &amp;#39;민의의 전당&amp;#39;이 아니었던 것이다. &lt;br&gt;국회뿐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기득권 세력은 국민의 의사를 꺼꾸로 반영한, 20-30%의 대변자일 뿐이였다.&lt;br&gt;&lt;br&gt;이제 진정한 70-80% 국민이 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 역사의 주인, 스스로 역사의 전면에 자신을 드러내는 주인으로 일어서고 있다.&lt;br&gt;&lt;br&gt;박관용이 두들긴 탄핵 통과 의사봉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는 의사봉 소리가 아니다.&lt;br&gt;비록 지금 그 소리는 우리에게 피울음을 나오게 하는 저주의 소리지만, &lt;br&gt;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이 새로 등장해야 한다는 필연적 당위성을 일깨워주는 역사의 소리다.&lt;br&gt;&lt;br&gt;그 소리는 그동안 거꾸로 진행되어 왔던,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되 그 소수가 다수인 듯 왜곡했던 역사를 진정으로 바로 새워야 한다는 일깨움의 소리다.&lt;br&gt;&lt;br&gt;목숨을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해 새벽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쳐 종소리는 냈던 까마귀처럼&lt;br&gt;이제 어두운 질곡의 역사는 끝장내야 한다는, 새벽을 대신하여 울리는 험난한 민주주주이 여정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의 소리다.&lt;br&gt;&lt;br&gt;&lt;br&gt;그들은 지금 웃고 있을지 모르나, 그들은 역사를 모른다.&lt;br&gt;하지만 우리에게는 역사가 있다.&lt;br&gt;&lt;br&gt;형식적 정권교체가 아니라 진정한 &amp;#39;역사&amp;#39;의 정권교체를 위해 힘찬 출발을 해야 할 시점이다.&lt;br&gt;&lt;br&gt;&lt;br&gt;&lt;br&gt;하지만...&lt;br&gt;&lt;br&gt;그 뜨거웠던 그해 6월의 광장과 따뜻했던 12월의 촛불로 밝혀 놓았던 그해 겨울 우리 스스로 만든,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 &amp;#39;노무현&amp;#39;이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놓은, 국민이 만든 정부라는 일반명사 &amp;#39;노무현&amp;#39; 대통령이 탄핵됐다.&lt;br&gt;&lt;br&gt;그것도 광주학살의 주역과 광주를 팔아먹은 그들이 잡은 손에 의해....&lt;br&gt;지금, 그들에 의해 2002년 12월 국민이 스스로 만든 &amp;#39;노무현&amp;#39; 깃발을 찢어졌다.&lt;br&gt;&lt;br&gt;&lt;br&gt;그러나 우리는 비록 찢어진 짓발이나마 다시 보듬고 나가야 한다.&lt;br&gt;&lt;br&gt;여기서 좌절하기엔 지나온 슬프디 슬픈 우리 역사가 너무나 불쌍하기에...&lt;br&gt;주저 앉아 눈물만 흘리기에는 너와 내가 너무나 억울하기에...&lt;br&gt;&lt;br&gt;오늘 더러운 한줌의 무리에게 찢어진 우리가 만든 깃발..&lt;br&gt;이제는 그 깃발을 들고 다시 시작하자.&lt;br&gt;&lt;br&gt;어차피 이 조국은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076</link>
<category>철학</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Fri, 12 Mar 2004 13:13:0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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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년전에 썼던 글이 현실로 되다니..</title>
<description>&lt;img src=&apos;http://www.mediamob.co.kr/FDS/BlogData/kiml22/859.JPG&apos;&gt;&lt;br&gt;&lt;br&gt;꼭 작년 이맘 때 딴지일보에 썼던 글이다. &lt;br&gt;그게 현실로 되다니...더럽고 슬픈 일이다.&lt;br&gt;&lt;br&gt;[논평] 색깔론이 아니라 쿠데타다 &lt;br&gt;&lt;br&gt;2003.4.29.화요일&lt;br&gt;딴지 정치부 &lt;br&gt;&lt;br&gt; &lt;br&gt;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린다&lt;br&gt;&lt;br&gt;최루탄 가스를 소독하는데는 소주가 최고라고 믿던 시절, 연일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우연히 아주 우연히 텔레비전 영화를 봤다. 술 안 마시고 텔레비전을 본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 들게 한 영화가 &lt;파리는 안개에 젖어&gt; 같은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lt;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린다&gt;라는 영화였다. &lt;br&gt;&lt;br&gt;쿠데타라는 말이 뭐 그렇게 낯선 낱말이 아니고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지던 그 시절, 군부의 쿠데타로 민간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방영되다니, 처음에는 뭔지 모를 짜릿함이 온 몸에 전율을 느끼게 했다. &lt;br&gt;&lt;br&gt;하지만.....&lt;br&gt;&lt;br&gt;영화 말미에 쿠데타 군에 맞서 해외망명을 거부한 채, 철모를 쓰고 카스트로가 선물한 소총을 들고 있는 아엔데 대통령을 보는 순간 영화를 보던 나는 비처럼 내리는 눈물에 젖고 말았다. &lt;br&gt;&lt;br&gt;아엔데 정권은 19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대통령 후보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후보직을 사퇴하고 살바도르 아엔데를 진보 진영 단일후보로 내세워 승리하면서 탄생하게 된다. 세계 최초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lt;br&gt;&lt;br&gt;하지만 1973년 9월11일 아침,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의 육, 해, 공군과 경찰과 피노체트 육군 최고사령관의 군사평의회가 일으킨 쿠데타에 의해 아엔데 정권은 무너지고야 만다. 전폭기와 탱크를 앞세우고 밀려오는 쿠데타 군을 향해 총을 든 대통령, 그가 바로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엔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amp;#39;머리가 갈라지고 뇌 속의 것들이 바닥과 벽에 튄&amp;#39; 채 죽음을 맞이하였다.&lt;br&gt;&lt;br&gt;영화 &lt;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린다&gt;는 오랜 시간 머리 속에 남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쿠데타라는 낱말이 생소하게 되는 것과 비례해서.&lt;br&gt;&lt;br&gt;2003년 4월 &lt;br&gt;&lt;br&gt;4월이 되면서 모두들 제 색을 찾고 있다.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그리고 냉전 수구 세력은 수구세력대로 제 색을 찾고 있다. 그러나 꽃과 풀은 자신의 색을 뽐내지만, 냉전 수구 세력은 남들을 붉게 물이면서 자신을 뽐낸다. &lt;br&gt;&lt;br&gt;한국전쟁 이후 색깔론이 없던 해가 없었지만, 올 4월에 피는 색깔론은 유난히도 세상을 빨강과 파랑으로만 구분한다. 그래서 파란색이 아닌 색 모두 빨간색이어야만 있는 나라. 색깔론이 펼쳐지고 있는 이 나라의 4월은 회색 잿빛이다.&lt;br&gt;&lt;br&gt;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 교장이 자살한 당일부터 시작된 전교조 때리기.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언론 장악 음모라고 외치며 주무장관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 제출 &amp;#39;협박&amp;#39;. 마침내 정현주 KBS 사장과 고영구 국정원장 임명을 계기로 불거져 나온 노무현 대통령 탄핵 운운.&lt;br&gt;&lt;br&gt;전교조 때리기라는 것, 뭐 예전에도 한 두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까닭에 그저 그렇게 지나칠 수 있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그저 오만과 편견이 판치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그게 다였을 뿐이다(관련기사 보기). 그조차 시바스럽게 보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lt;br&gt;&lt;br&gt;하여간 이창동 장관 해임 권고안이 거론될 때만 해도 &amp;#39;다수 의식을 가진 야당의 몽니&amp;#39; 정도로만 봤다. 그런데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 청문회, 정현주 KBS 사장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lt;br&gt;&lt;br&gt;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이후, 국회 정보위원회는 청문회 결과 전문을 통해 고영구 후보자가 &amp;#39;부적절&amp;#39;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첫째, 정보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는 비전문가라는 점과, 둘째 국가보안법 완전폐지 활동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 셋째로 간첩 김낙중을 평화주의자라며 석방운동을 전개했다는 것과, 넷째로 한총련 수배자 해제를 요구했다는 점, 그리고 다섯째로 한통련 관련자 구명운동과 같은 활동이력을 가진 것으로 봐서 사상적 이념적 편향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그리고 &amp;#39;정보업무에 경험이 전무하여, 국가정보원의 정무직 공무원으로서의 자질이 부적합한 민간인 서동만을 국가정보원 조직개선 운영에 관한 태스크포스팀을 실질적으로 주도시키고 국가정보원 업무보고 청취시 배석시키며, 향후 국가정보원 인사시 정무직 공무원으로 제청하려고 하는 점&amp;#39;까지 지적하고 있다.&lt;br&gt;&lt;br&gt;냉전 수구 세력은 또 정연주 KBS사장에게는 &amp;#39;공화국 대변인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친북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이념적으로 편향된 인사&amp;#39;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노대통령에게는 &amp;#39;튼튼한 안보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국시와 정체성을 굳건히 지킬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amp;#39;고 말하기도 했다.(한나라당 4월28일자 대변인 논평)&lt;br&gt;&lt;br&gt;이런 내용에 따르자면, 국정원장은 정형근 의원과 같이 과거의 공안 검사나 안기부에서 일했던 사람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형근과 가장 반대 편에 있는 사람은 국정원장에 임명될 수도 없으며 국정원장을 보좌할 수도 없는 사람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는 정형근이 사상과 이념의 중심이다. &lt;br&gt;&lt;br&gt;그 기준을 무시했다가는? 의회 과반수가 넘는 정당 의원 총회에서 결국 대통령탄핵까지 거론되기에 이른다. &lt;br&gt;&lt;br&gt;색깔론 - 서울에도 비가 내릴지 모른다&lt;br&gt;&lt;br&gt;이미 오래전 과거의 빛바랜 사진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던 &lt;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gt;는 영화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03년 4월 회색 잿빛을 보면서.&lt;br&gt;&lt;br&gt;그래도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쿠데타에 과감히 맞선 아엔데와 그렇지 못했던 우리 나라의 현실이 대비되었다면, 지금은 선거로 집권하여 정통성을 갖고 있는 정권에게 행해지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서 아엔데 정권의 실패가 오버랩되고 있다는 것이 다르겠지만.&lt;br&gt;&lt;br&gt;4월에 이루어졌던 전교조 때리기. 이창동 장관 해임안 제출 논란, 국정원장과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색깔론. 이것은 각각의 사건이 아니다. 대통령의 사상과 이념이 의심스럽다는 전제하에서 일관되게 꿰어지고 있는 구슬들인 것이다.&lt;br&gt;&lt;br&gt;과거 김영삼 정권 때 불었던 색깔론이 해당 인사 개인들에 관한 문제였다면 김대중 정부부터의 색깔론은 당사자가 아닌 정권의 문제로 발전했으며 이제는 출범한지 두 달이 안된 정권의 탄핵이 운운될 정도로 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lt;br&gt;&lt;br&gt;냉전 수구 세력이 국정원장과 KBS 사장에게 친북인사라는 색깔을 입히는 것은, 국정원장과 KBS 사장의 임명권이 대통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젠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이야기까지 불거지고 있다.&lt;br&gt;&lt;br&gt;이런 상황에 대해 길게 이야기 할 것도 없다. 온갖 꽃이 어우러지는 4월에 엉뚱한 색으로 세상을 덧칠하려는 이 색깔론은 다름 아닌 쿠데타다. &lt;br&gt;&lt;br&gt;두산대백과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쿠데타는 &amp;quot;동일 체제 내에서 지배자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며, 혁명과는 달리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amp;quot; 그리고 &amp;quot;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파의 체포 ·탄압, 정부요인의 불법납치 ·감금 ·암살, 군사력의 강압 등을 배경으로 하거나, 의회를 강점하고 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 ·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amp;quot;라고 한다.&lt;br&gt;&lt;br&gt;무엇이 다른가?&lt;br&gt;&lt;br&gt;지금 냉전 수구 세력들은 지배자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면서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은밀하게 기습적으로, 의회 다수를 배경으로 &amp;quot;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 ·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amp;quot;을 동원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lt;br&gt;&lt;br&gt;앞의 정의에 따르면 쿠데타라는 말은 &amp;#39;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amp;#39;라는 뜻으로, 영어의 &amp;#39;stroke of state&amp;#39;, &amp;#39;blow of state&amp;#39;에 해당한다고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냉전 수구 세력의 총공세, 이것을 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라고 보는 것이 무리인가? &lt;br&gt;&lt;br&gt;그들이 이야기하는 색깔론은 이제 21세기형 쿠데타라 명명해야 한다. 바로 여의도 발(發) 쿠데타다. 그리고 그 쿠데타가 언론 장악부터 시작된다면 지금 진행중인 쿠데타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된 셈이다. &lt;br&gt;&lt;br&gt;두 개의 방패를 한 개의 방패로&lt;br&gt;&lt;br&gt;그러나 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 길을 쉽게 찾을 수는 없다. 냉전 수구 세력에 맞설 평화 개혁 세력은 특검제와 파병 문제로 분열되어 있다. 단순 분열이 아니라 파병 반대 집회에서는 노무현지지 철회, 극단적으로는 - 일부이기는 하지만 - 퇴진 주장까지도 나왔다.&lt;br&gt;&lt;br&gt;그렇다면 결국 노무현 정권은 자신을 지지했던 진보적 평화 세력 일부에게도 방패를 들어야 하고 수구 냉전 세력에게도 방패를 들어야 한다. 평화 개혁 세력 자신들도 특검제와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내부를 향한 방패과 수구 냉전 세력을 향한 방패, 두 개를 들어야 했다.&lt;br&gt;&lt;br&gt;특검제에 대해 여기서 다시 논하기는 그렇다. 다만 특검제가 국민의 알권리, 투명한 남북 관계를 빙자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잘못이다. 국민은 알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모를 &amp;#39;권리&amp;#39;도 있다. 무슨 양 비됴 사건만 터지면 스포츠 찌라시는 난리가 난다. 그리고 그 추악한 저널리즘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대는 것 역시 &amp;#39;국민의 알 권리&amp;#39;였지 않았던가?&lt;br&gt;&lt;br&gt;남북 관계 - 그것은 기본적으로 비정상적 상황을 전제로 출발한다. &amp;#39;정부를 참칭하고&amp;#39;라는 국가보안법 규정이 있는 한, 남북 관계는 비정상적 상황에 놓인 비정상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냉전 수구 세력들이 노는 꼬라지 또한 여전히 저 모양인 상황에서, 투명한 남북 관계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lt;br&gt;&lt;br&gt;그리고, 구한말 일본이 조선에서 비밀거래를 통해 철도부설권을 얻었을 때, 분노와 항의의 주체는 조선국민이지 일본국민들은 아니었다. 일본국민들이야 과정은 어찌 되었든 잘됐다고 걍 넘어가는 거 아닌가. 근데 우리는 그게 바뀌었다. 남북 관계의 정치적 상황은 별개로 하고 일개 기업만을 전제로 한다고 해도, 아니 수십 년간 독점적 권리를 가졌다는데, 그리고 그런 권리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해서 추진했다는데, 뭐가 문제라는 건지 참 복잡하게도 생각들 한다.&lt;br&gt;&lt;br&gt;남북 정상회담 이후 상봉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이산가족들은 특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은 헤아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lt;br&gt;&lt;br&gt;어쨌거나 특검제가 수구 냉전 세력과 맞서 싸우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선 시급한 것은 그들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진다면 특검제를 초래한 남북 관계마저도 수포로 돌아간다. 돈을 풀어서라도 이루어야 할 최소한의 남북 교류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것이다.&lt;br&gt;&lt;br&gt;다음 파병 문제 - 수구 냉전 세력을 제외한 평화 개혁 세력들은 모두 파병을 반대했다. 아니 반대 여부가 평화 개혁 세력인가 아닌가를 가름하는 척도일 수도 있었다. &lt;br&gt;&lt;br&gt;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파병반대와 노무현 정권지지 철회를 왜 일직선상에서 놓고 봐야 하는가? 파병을 주장했다고 해서 왜 노무현이 김용갑과 같이 취급당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lt;br&gt;&lt;br&gt;&amp;quot;행정부 수반으로서 그런 결정을 하는데 고뇌와 아픔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amp;quot;고 말한 뒤 &amp;quot;대신 입법부인 국회에서 파병 동의안을 부결시킨다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을 수 있을 것&amp;quot;이라고 말한 김근태 의원의 유연한 시각이 필요하다. &amp;quot;행정수반으로서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겪었을 고뇌를 이해한다. 그 행간에 자못 비애감마저 느껴진다.&amp;quot;는 김근태 의원의 말에서, 평화개혁세력들이 김근태를 통해 노무현을 봐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lt;br&gt;&lt;br&gt;아무튼, 파병 문제가 노무현 정권과 평화 개혁 세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는 것 역시 막아야 한다. &amp;quot;두 개의 방패를 들고 싸울 수는 없다. 이제는 두 개의 방패를 접고 하나의 방패를 들어야 한다.&amp;quot;&lt;br&gt;&lt;br&gt;이것이 색깔론 속에 감춰진 쿠데타 음모, 그것을 막을 유일한 길이다. &lt;br&gt;&lt;br&gt;서울에 비가 내리게 할 수는 없다.&lt;br&gt;&lt;br&gt;딴지 정치부 논설우원&lt;br&gt;미르기 (kiml22@netffice.com) &lt;br&gt; &lt;br&gt;&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075</link>
<category>철학</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Wed, 10 Mar 2004 22:25:4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조명희 시인을 생각하며...</title>
<description>&lt;img src=&apos;http://www.mediamob.co.kr/FDS/BlogData/kiml22/858.jpg&apos;&gt;&lt;br&gt;&lt;br&gt;오래전이다. 프랑스 월드컵 예선 때, 아&amp;nbsp;우리는 동경대첩으로&amp;nbsp;더 잘&amp;nbsp;기억할 수 있는 그 때,.&amp;nbsp;&lt;BR&gt; 그때 우즈베키스탄, 카자하스탄이라는 나라와 한 조였다는 사실을 아련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많겠다. &lt;BR&gt;&lt;BR&gt;우즈베키스탄과 카자하스탄 현지에서 예선 경기라 열릴 때,&amp;nbsp;우리는 그들 나라에 사는 수 십만의 고려인이 있고, 그들이 그 때 경기장에 &amp;#39;고려인&amp;#39;으로는 제대로 응원할 수 없었던 사실은 모른다. &lt;BR&gt;&lt;BR&gt;다민족 국가라 민족 간의 갈등을 가장 두려워하는 그 나라에서 자기 국민, 일부 민족이 특정 국가의 깃발을 들고 집단적으로 경기장에 오는 것을 두려할 수밖에 없었다.&amp;nbsp;&lt;br&gt;
그래서&amp;nbsp;&amp;#39;고려인&amp;#39;(까레이시키)이 태극기를 들고 경기 관람을 하는 것부터 아예 고려인의 경기 관람을 막고자 했던 그 때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amp;nbsp;&lt;BR&gt;&lt;BR&gt;오늘, 아니 내일 새벽에 열릴 올림픽 8강전을 앞두고, 또 과거사 진상규명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지금,&amp;nbsp;중앙아시아에 사는 우리 민족이 우리 국가 대표팀의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amp;nbsp;아니 어쩌면 내 고백일지도 모르겠다.&lt;br&gt;
&amp;nbsp;&lt;BR&gt;먼저 다음 소개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amp;nbsp; &lt;BR&gt;&lt;BR&gt;호 포석(抱石). 충북 진천(鎭川) 출생.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요[東洋]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문학활동은 《김영일의 사(死)》(1921) 《파사(婆娑)》(1923) 등 현실과 인간성의 문제를 다룬 희곡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이어 《영혼의 한쪽 기행》 등 서정시를 쓰다가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 1927년 대표작 《낙동강》을 발표하였다. 1928년 소련으로 망명, 니콜스크에 살면서 대작 《만주의 빨치산》을 썼다. &lt;U&gt;1937년 소련 헌병에게 끌려가 1938년 하바로프스크 감옥에서 총살된 것으로 전한다. &lt;/U&gt;시집 《봄잔디 위에서》, 소설집 《땅 속으로》가 있다. (이상은 야후 검색 내용) &lt;BR&gt;&lt;BR&gt;이 시인을 알고 계십니까? &lt;br&gt;
이 시인이 바로 조명희라는 시인이다. 아, 이렇게 설명해 보자.&lt;BR&gt;&lt;br&gt;
9~10년 전 SBS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를 방영할 때, 같은 시간에 MBC에서는 &amp;#39;까레이스키(맞나? 아마 맞을 것이다)&amp;#39;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lt;BR&gt;&lt;BR&gt;그때, 나는 까레이스키를 봐야 한다는 &amp;#39;당위&amp;#39;와 재미라는 &amp;#39;현실&amp;#39; 속에서 모래시계를 보면서 &amp;#39;까레이스키&amp;#39;에 대해 죄스러움을 갖곤 했다. &lt;br&gt;
그 까레이스키라는 드라마에서 문성근 씨가 맡은 역할이 바로 조명희 시인이었다. 아 그 드라마에는 차인표도 나왔다. 어떤 역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lt;BR&gt;&lt;BR&gt;&amp;#39;까레이스키&amp;#39;라는 드라마는 자유시 사변부터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독립군의 후손, 조선인(까레이스키는 고려인이라는 뜻이다)의 삶을 그린 대하 드라마였다.&amp;nbsp; &lt;BR&gt;&lt;BR&gt;모레시계 드라마를 보면서도 가끔은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끔씩 봤던 그 드라마에서 조명희(문성근 역) 시인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한 겨울 옷을 벗긴 채 야외에서 매달리는 고문을 당하면서 조국해방을 외친다. &lt;br&gt;
그 때는 그저 그런 독립군의 한 모습, 이외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lt;br&gt;
&amp;nbsp;&amp;#39;당시에는 누구나 그랬으니까&amp;#39;하는 정도였다. &lt;BR&gt;&lt;BR&gt;그리고 몇 년년이 흘렀다. 아마 재작년이나 되었을 것으로 기억하는데.... &lt;BR&gt;&lt;BR&gt;어떤 프로에서 조명희 선생의 딸을 보게되었다. &lt;br&gt;
아니 조명희 선생의 따님 소식을 듣게 되었다. &lt;br&gt;
&lt;BR&gt;아마 1920년대 출생하셨으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lt;br&gt;
그 조명희 선생의 따님 이름이&amp;nbsp;...... 바로 &amp;#39;선아&amp;#39;였습니다. &lt;br&gt;
&amp;nbsp;&lt;br&gt;
조명희 선생은 딸 이름을 부를 때, 반드시 성과 함께 불렀다고 한다. &lt;br&gt;
&amp;#39;조선아~&amp;#39; &lt;br&gt;
이렇게.&lt;br&gt;
&amp;nbsp;&lt;br&gt;
&amp;#39;조선아∼&amp;#39;. &lt;br&gt;
사무치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자기 딸 이름을 부르면서 달랬던 시인..&lt;br&gt;
그 시인이 조명희 시인이었다. &lt;BR&gt;&lt;BR&gt;아 그 프로는 성공시대였나 보다.&amp;nbsp;&lt;br&gt;
미국에 사는 어떤 교포가 사업에 실패하고 좌절할 때, 중앙아시아를 방문해서 그 분을 뵈었다고 한다.&amp;nbsp;그 때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랬단다. &lt;BR&gt;&lt;BR&gt;&amp;quot;울 아바이가 내 이름을 선아라 지었지. 그래서 이렇게 부르는거야 &amp;#39;조선아~&amp;#39;, &amp;#39;조선아~&amp;#39; 하구 말이지. 조국이 엄청나게 그립고 하면 내 이름을 부른거야. 그렇게 조국이 없을 때도 열심히 살았는데, 조국이 있는 지금 뭐가 어렵다고....&amp;quot; (대충 이런 기억이었는데, 거의 맞을 것이다. 그 때 받았던 충격은 여전히 내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으니까)&lt;BR&gt;&lt;BR&gt;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은 힘을 내었단다.&amp;nbsp; &lt;BR&gt;&lt;BR&gt;그런데 난 그 말을 듣고 그냥 울기만 했다. &lt;BR&gt;정말 엄청나게 울었다. &lt;br&gt;
아버님 돌아가실 때 울 것보다 아마 더 울지 않았나 싶다.&amp;nbsp;&lt;br&gt;
&amp;nbsp;&lt;br&gt;
그 시인이 딸을 &amp;#39;조선아~&amp;#39;하고 부르면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달랬던 것만 슬펐던 것은 아니다. 그건 아주 사소한 슬픔이었다.&lt;BR&gt;&lt;BR&gt;문제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그 할머니는 조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최소한 그때까지는.&lt;br&gt;
그리고 그 시인과 그 따님의 이야기도 우리는 몰랐다. 최소한 그때까지는.&lt;br&gt;
&amp;nbsp;&lt;BR&gt;그리고 그로부터 50여년이 흘러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하스탄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이 방문했을 때도 못난 조국은 그들이 태극기를 들고 경기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지 못했다. &lt;br&gt;
&amp;nbsp;&lt;br&gt;
다민족 국가에서 특정 민족이 외국 깃발을 흔들고 경기장에 참석할 수 없다는 해당 국가의 방침을 그저 지켜만 보고 말았다. &lt;br&gt;
&amp;nbsp;&lt;br&gt;
충분히 이해한다. 다민족 구성원을 갖고 있는 그 나라의 고민과 외교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의 한계 등등을.&lt;BR&gt;&lt;BR&gt;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lt;br&gt;
그렇게 그리워하던 조국은 그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고, 서럽고....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lt;BR&gt;&lt;BR&gt;&lt;br&gt;
얼마전까지도 우리 문학사에는 조명희라는 사람이 없었다. &lt;br&gt;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우다, &amp;#51922;겨가다 그 오지에서, 고문 속에서 조국 해방을 외치다 죽은 시인을 우리는 알 수 없었다. &lt;br&gt;
&lt;BR&gt;이게 그가 그토록 그리워 한 조국이었다.&lt;br&gt;
&amp;nbsp;&lt;br&gt;
그래서 이 글이 고백일 수밖에 없다.&lt;br&gt;
조명희 시인,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조국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나는&amp;nbsp;그때서야&amp;nbsp;새삼 부끄러운 우리 역사와 현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을 위해 난 아무런 한 일이 없다는 것을....&amp;nbsp;&lt;BR&gt;&lt;BR&gt;일제 강점기에 조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달래보고자 했던 한 시인의 아픔을 생각하며, 그리고 여전히 그 어린 딸이 할머니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저 슬퍼만할 뿐, 일제 강점기에 부역한 자들을 여전히&amp;nbsp;어쩌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이 해방된 조국의 지도자 된 현실을 생각하며 과거사 진상규명을 생각한다.&amp;nbsp;&lt;br&gt;
&amp;nbsp;&lt;br&gt;
그토록 시인이 그리워했던&amp;nbsp;&amp;#39;조국&amp;#39;을 생각하면서.&amp;nbsp;&lt;BR&gt;&lt;br&gt;
&amp;nbsp;&lt;BR&gt;&lt;BR&gt;&lt;BR&gt;&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iml22/blog.aspx?id=3074</link>
<category>낙서장</category>

<author>미르기</author>
<pubDate>Sat, 21 Aug 2004 18:29: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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