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

<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
<channel>
<title>달리는 포장마차</title>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 </link>
<description>나무처럼</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18 Nov 2004 18:33:31 +0900</pubDate>
<image>
<title>나무처럼</title>
<url>http://www.mediamob.co.kr/FDS/newBlogProfile/2008/0720/kg118152/k_DSC_0020.JPG</url>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link>
<description>달리는 포장마차</description>
</image>

<item>
<title>전의경들을 위한 변명</title>
<description>오래전 군대에서 휴가 나와 대학 캠퍼스로 가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lt;BR&gt;나는 그 시절말로 &apos;좆뺑이&apos;를 치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참 한가롭고 즐거운 일상을 만끽하고 있구나. 같은 잔디밭, 같은 술집에 앉아 있으면서도 왠지 나와 친구들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는 듯 했다. &lt;BR&gt;거리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전의경들과 눈빛이 마주칠 때면 문득 그때 내가 느꼈던 소외감, 박탈감 같은 게&amp;nbsp;느껴지고는 한다.&amp;nbsp;&lt;BR&gt;&amp;nbsp;&lt;BR&gt;꼬박 1년 만에 경찰폭력이 또 문제가 되고 있다. &lt;BR&gt;예전에 조폭 같은 두려움 많고 힘만 센 정권이 촛불을 너무 두려워해 과잉 폭력을 일삼는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는데, 경찰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lt;BR&gt;&lt;BR&gt;들리는 이야기로는 이 정부 들어 경찰 정보과의 위상이 대폭 추락하고 경비대, 기동대가 대접받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집회 주최측과 샤바샤바&amp;nbsp;하면서 적당히 대치하다가 적당히 해산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런 일을 했던 정보과. 적어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무리하지 않았던 정보과의 말은 경찰 내부에서 씨도 안 먹힌다는 거다. 단적인 예가 5월에 대전에서 열렸던 민주노총 집회였다고 한다. 이미 정보과와는 협조가 되어 행진을 했는데 경비과에서 독자적으로 진압을 해버렸다는.&lt;BR&gt;&lt;BR&gt;뭐 경찰 내부의 힘 관계에까지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거 같다. 하지만 경찰 기동대, 경비과, 경찰 수뇌부, 이런 데가 충성경쟁을 하는 사이 이른바 전의경이라고 불리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apos;신성한&apos; 국방의 의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부도덕한 정권을 지키고 시민을 폭행하는 살인무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amp;nbsp;&lt;BR&gt;&lt;BR&gt;요즘 집회에 나가보면 로보캅처럼 중무장한 전의경들, 특히 이번 사건을 일으킨 1001기동대(서울시경 제1기동대)는 정말 무섭다. 그들이 아무리 모욕을 당하고, 시위대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고 한들 시민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시민이 아니라 조중동이 말하는 전문 시위꾼, 또는 현행범, 범법자라 해도 그들이 비무장인 상태에서는 말이다. &lt;BR&gt;&lt;BR&gt;얼마 전 대한문 분향소 철거 사태에서 경찰 수뇌부는 처음에 일부 전의경들 짓이라며&amp;nbsp;책임을 미뤘다. 지난 해 군홧발로 여대생의 머리를 짓밟은 사건에서도 결국 해당 전의경만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일단락될 가능성이 크다. &lt;BR&gt;&lt;BR&gt;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lt;FONT color=#00ccff&gt;전의경 제도는 국제법 위반이다. 한국은 노예제와 강제노역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에 가입을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전의경제도 때문이다. 국가가 젊은이들을 국방의 의무로 불러 모아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치안유지라는 강제노역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lt;BR&gt;&lt;/FONT&gt;&lt;BR&gt;전의경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전의경 부상자들의 부모들에게 경찰과 정부는 그럼 전의경들이 하는 일을 누가 하냐? 돈이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경찰추산 2만명이 모인 집회에 왜 1만5천명의 전의경이 동원되어야 하는지,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에는 (뭐 그리 잘못한 게 많길래) 전의경들의 1년 365일, 24시간 경비를 서줘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또 날로 좋아지는 경찰의 진압장비는 도대체 무슨 돈으로 구입을 하는지, 연일 강력범죄가 벌어지는 이 나라에서 왜 경찰과 전의경은 한가롭게 정부시설이나 시청광장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지도. &lt;BR&gt;&lt;BR&gt;오랜 노력 끝에 폐지가 예정된 전의경제도가 이 정부 들어 번복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의경들, 정권안보를 위해 강제노역을 당하는 젊은이들이 분노를 키우며 거리에서 한잠을 자고 있다.(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해 촛불 때 어떤 전경부대는 전경버스와 경찰서 지하 강당바닥에서 한달이 넘게 잠을 자야 했다고 한다. 부대 내 구타사고, 자살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도 전의경 부대이다.) 그리고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는 재판을 받고 영창을 가고 전과자가 되고 있다.&amp;nbsp; &lt;BR&gt;&lt;BR&gt;결국 문제는 제도에 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P&gt;&amp;nbsp;&lt;/P&gt;
&lt;P&gt;[관련기사]&lt;A class=dotted_333 href=&quot;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5034&amp;amp;PAGE_CD=N0000&amp;amp;BLCK_NO=3&amp;amp;CMPT_CD=M0009&amp;amp;NEW_GB=&quot; target=_blank&gt;&lt;STRONG&gt;경찰, 이번엔 뭐라 변명할 건가?&lt;/STRONG&gt;&lt;/A&gt;&lt;BR&gt;[자료]&lt;A style=&quot;COLOR: rgb(0,0,255);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amnesty.tistory.com/102&quot; target=_blank&gt;&lt;STRONG&gt;촛불집회에서의 경찰력 사용에 관한 앰네스티 보고서 &lt;BR&gt;&lt;/STRONG&gt;&lt;/A&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rgb(51,51,153)&quot;&gt;&lt;BR&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lt;!--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gt;&lt;!-- 투표 기간 --&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35351</link>
<category>달리는 포장마차</category>
<category>경찰폭력</category><category>인권</category><category>전의경</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Sat, 13 Jun 2009 04:09: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전쟁이 나면?</title>
<description>&lt;P&gt;지난 주에 현대아산에 다니는 후배를 만났다.&amp;nbsp;&amp;nbsp;&lt;BR&gt;제집처럼 금강산을 드나들던 놈인데 두 가지 단언을 한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quot;다시 남북교류는 되겠지만 그 주체는 더 이상 &apos;현대&apos;는&amp;nbsp;아니다&quot;라는 것과&amp;nbsp;&lt;BR&gt;&quot;서해교전 형태의 국지전은 이미 기정사실&quot;이라는 것이었다. &lt;BR&gt;&lt;BR&gt;&lt;A class=dotted_333 href=&quot;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code=NBA&amp;amp;sch_key=key3&amp;amp;sch_word=박태견%20대표%20겸%20편집국장&amp;amp;seq=51320&quot; target=_blank&gt;&lt;STRONG&gt;아래 기사를&lt;/STRONG&gt;&lt;/A&gt; 보니 정말&amp;nbsp;평화가&amp;nbsp;전경 앞에 촛불이다.&lt;BR&gt;더 이상 &apos;코리아 디스카운트&apos;는 없다고 하지만&amp;nbsp;&lt;BR&gt;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날도&amp;nbsp;한국의 주가는&amp;nbsp;오르고 있을지 모른다.&amp;nbsp;&amp;nbsp;&amp;nbsp;&lt;BR&gt;저녁 대신으로 안동찜닭을 시켜먹으며 마눌님과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lt;BR&gt;마눌님 왈,&amp;nbsp;&lt;/P&gt;
&lt;P&gt;&lt;STRONG&gt;&quot;진짜 전쟁이 나면 우린 어떻하지? 부여로 가서 숨을까?&quot;&amp;nbsp;&lt;BR&gt;&lt;/STRONG&gt;(부여는 처가집이다.)&lt;BR&gt;&lt;STRONG&gt;&quot;나는&amp;nbsp;마흔이 아직 안 되어서 아마 징집영장이&amp;nbsp;나올껄&quot;&lt;BR&gt;&lt;/STRONG&gt;(몇 해 전에 전시에 어디로 모이라는 모의 영장을 받은 적이 있다.)&lt;BR&gt;&lt;STRONG&gt;&quot;그럼 갈꺼야? 도망가자. 부여는 금방 잡으러 올라나?&quot;&lt;BR&gt;&lt;/STRONG&gt;&lt;STRONG&gt;&quot;교통통제가 될 거니까 자전거나 스쿠터를 한 대 사놓을까?&quot;&lt;/STRONG&gt;&amp;nbsp;&lt;/P&gt;
&lt;P&gt;엿 같은 국가들의 전쟁에 총을 들고 참여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lt;BR&gt;그렇지만 병역 기피자 생활도 만만해보이지는 않는다. &lt;BR&gt;&lt;BR&gt;내일은 &lt;A class=dotted_333 href=&quot;http://www.kqcf.org/&quot; target=_blank&gt;&lt;STRONG&gt;퀴어퍼래이드&lt;/STRONG&gt;&lt;/A&gt;가 있는 날이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BR&gt;이 정부 들어서 두 번째이지만 경찰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안 된다.&amp;nbsp;&amp;nbsp;&lt;BR&gt;(집회신고는 불허되었다고 한다.)&lt;BR&gt;어쩌면 엠비 아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lt;BR&gt;거기에 들렸다가 어디 평화 캠페인 하는 곳이라도 찾아봐야 겠다. 젠장!!&lt;/P&gt;
&lt;P&gt;----------------------------&lt;/P&gt;
&lt;P&gt;&lt;SPAN class=head_title&gt;&lt;STRONG&gt;&lt;A class=dotted_333 href=&quot;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code=NBA&amp;amp;sch_key=key3&amp;amp;sch_word=박태견%20대표%20겸%20편집국장&amp;amp;seq=51320&quot; target=_blank&gt;어떤....정말....겁나는 &apos;한반도 음모론&apos;&lt;/A&gt;&amp;nbsp;&amp;nbsp;&lt;BR&gt;&lt;/STRONG&gt;&amp;lt;뷰스칼럼&amp;gt; &quot;한반도에서 전쟁 나면 전세계가 기립박수 칠 것&quot;&lt;/SPAN&gt;&lt;/P&gt;
&lt;P&gt;&quot;어떠한 작전을 수행할 의사가 있음을 암시할만한 북한군 동향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규모 병력 이동을 포함해 특정국가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정황은 없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매우 예측 불허이기 때문에 (보복 위협을) 상투적 수사로 치부하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닐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간과할 수 없고 예의주시해야 한다.&quot; &lt;BR&gt;&lt;BR&gt;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11일(현지시간) NATO국방장관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브뤼셀을 찾은 자리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 답이다. &lt;BR&gt;&lt;BR&gt;지금 당장 전쟁이 발발할 것 같지는 않으나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6.25 발발 58년만에 또다시 &apos;제2의 한국전&apos; 발발 가능성이 국제사회에서 공개리에 언급되기 시작한 심각한 상황전개다. &lt;BR&gt;&lt;BR&gt;&lt;STRONG&gt;재계에 나도는 &apos;겁나는 음모론&apos;&lt;/STRONG&gt; &lt;BR&gt;&lt;BR&gt;요즘 재계 사람들을 만나보면 &quot;뒤숭숭하다&quot;고 한다. 국내 정치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남북관계도 그렇고, 모든 게 불안하다는 거다. 특히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apos;남북관계&apos;다. 공개석상에서는 까놓고 얘기 못한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걱정들을 정말 많이 한다. &lt;BR&gt;&lt;BR&gt;&lt;FONT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quot; color=#00ccff&gt;한 대그룹 산하 경제연구소의 고위관계자는 &quot;남북간 긴장이 이렇게 높아지다가 정말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quot;며 &quot;그러다 잘못되면 외국계 바람대로 한국경제가 초토화될 수도 있는데 걱정&quot;이라고 했다.&lt;/FONT&gt; 그는 오래 전부터 재계 등지에 나돌아온 하나의 &apos;음모론&apos;을 소개했다. &lt;BR&gt;&lt;BR&gt;지금 세계경제는 준공황 상태다. 각국이 엄청난 재정을 쏟아붓고 제로금리 정책을 취해 간신히 공황적 붕괴 상황은 막았으나, &apos;과잉공급&apos; 문제는 거의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GM, 크라이슬러 등 간판기업들이 속속 쓰러지고, 일본의 IT기업 등도 극한 위기를 겪고 있다. 문제는 &apos;과잉공급&apos;이 빠른 시간내 해소될 가능성은 전무하며, 해소 과정도 대단히 고통스러울 것이란 점이다. 경제전문가들이 최악의 위기는 벗어났으나 U자형 또는 L자형 장기불황을 전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lt;BR&gt;&lt;BR&gt;그러다 보니, &lt;FONT color=#00ccff&gt;모두가 준공황 상태에서 하루바삐 벗어날 수 있는 &apos;절묘한 해법&apos;이 나타나기를 갈망한다. 가장 좋은 해법은 &apos;전쟁&apos;이다. 30년대 세계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lt;/FONT&gt; 루스벨트의 뉴딜은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을뿐, 2차 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공황 탈출은 힘들었을 것이란 게 경제사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lt;BR&gt;&lt;BR&gt;하지만 지금은 과거같은 세계대전은 꿈꿀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강대국끼리 붙었다간 곧바로 핵전쟁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apos;한반도&apos;가 위험하다는 게 경제연구소 관계자의 지적이었다. &lt;BR&gt;&lt;BR&gt;&lt;FONT color=#00ccff&gt;한국은 세계의 주요 &apos;생산기지&apos;중 하나다. 반도체는 세계최대 생산국이고, 조선도 그렇고, 자동차도 세계 빅5에 속한다. 만약 이들 한국 기간산업이 전쟁 발발로 초토화되거나 생산시설이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면, 그날부터 세계경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세계주가 역시 수직폭등할 것이다.&lt;/FONT&gt; &lt;BR&gt;&lt;BR&gt;이 관계자는 &quot;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월가를 비롯한 전세계가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칠 것&quot;이란 비유까지 썼다. &lt;BR&gt;&lt;BR&gt;&lt;STRONG&gt;재계 &quot;전쟁은 공멸&quot;&lt;/STRONG&gt; &lt;BR&gt;&lt;BR&gt;또다른 대기업의 임원도 마찬가지 우려를 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한 예로 경기도 기흥의 삼성전자 공장은 북한의 장사포 사정권 안에 놓여 있다&quot;며 &quot;장치 고장으로 생산라인이 잠시 멈춰도 반도체값이 폭등하는 마당에 전쟁이 발발해 삼성전자 공장이 타격을 입는다면 세계 반도체값은 수직폭등하며 미국,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한순간에 벌떡 일어설 것&quot;이라고 단언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재계가 평소 보수적인 것으로 보이나, 남북관계에 관한 한 기본생각은 절대 &apos;전쟁 불가&apos;&quot;라며 &quot;이는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 지난 수십년간 일궈온 기업과 국가의 모든 부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기 때문&quot;이라고 덧붙였다. &lt;BR&gt;&lt;BR&gt;&lt;STRONG&gt;&apos;기업 프렌들리&apos;의 위험한 &apos;전쟁 통일론&apos;&lt;/STRONG&gt; &lt;BR&gt;&lt;BR&gt;김문수 경기도 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quot;도발하면 즉시 북을 격퇴시키고 통일을 이룩하는 강력한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한다&quot;며 &quot;도발하면 북한은 망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quot;는 호전적 주장을 펴, 민주당으로부터 &quot;웬 북침통일 주장이냐&quot;고 융단폭격을 받은 바 있다. &lt;BR&gt;&lt;BR&gt;김 지사는 평소 기업활동에 저해가 되는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apos;기업 프렌들리&apos;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접한 대기업들은 펄쩍 뛰었다. 앞에서 말한 이유에서였다. &lt;BR&gt;&lt;BR&gt;재계의 한 관계자는 &quot;친기업적 입장을 표명해온 김 지사답지 않은 너무 위험한 발상&quot;이라며 &quot;그런 식으로 한번 붙자는 식으로 나가다간 전쟁 발발 며칠 사이에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나는 것은 물론, 기간산업이 치명타를 입으면서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해방후 항간에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아무도 믿지 말라는 얘기가 나돌았듯, 지금 상황은 &lt;FONT color=#00ccff&gt;그 어느 때보다 북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quot;라며 &quot;자칫 아차 실수했다간 주변강국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리면서 우리 기업과 민족의 존망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lt;/FONT&gt;&quot;이라고 우려했다. &lt;BR&gt;&lt;BR&gt;&lt;STRONG&gt;한 원로 외교관의 경고&lt;/STRONG&gt; &lt;BR&gt;&lt;BR&gt;수십년간 외교관 생활을 해온 한 외교전문가는 &quot;남북 모두 오바마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quot;오바마는 취임초부터 최우선 외교순위를 아프가니스탄에 두고 있다. 전투병력을 증파하고 있고, 한국 등 우방들에게도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lt;BR&gt;&lt;BR&gt;맨해튼 쌍둥이빌딩을 공격한 빈 라덴이 아프간에 숨어있기 때문일까. 한 요인은 되겠으나,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아프간은 탈레반이 80~90%를 장악한 상태다. 그냥 두면 곧 탈레반 수중에 들어갈 판이다. 아프간이 무너지면 다음 위험한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 내에 탈레반 지지기반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lt;BR&gt;&lt;BR&gt;문제는 파키스탄에 핵무기 200개가 있다는 점이다. 파키스탄이 무너지면 200개의 핵무기가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미국으로선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악몽이다. 오바마가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아프간 방어를 설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quot; &lt;BR&gt;&lt;BR&gt;그는 &quot;미국은 이처럼 핵무기에 관한 한, &apos;관용은 없다&apos;이다&quot;라며 &lt;FONT color=#00ccff&gt;&quot;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대미협상용이라면 대화를 할 것이나, &apos;핵 보유국&apos;을 지향하는 게 분명하다면 아무리 대화를 중시하는 오바마라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불사할 것&lt;/FONT&gt;&quot;이라고 단언했다. &lt;BR&gt;&lt;BR&gt;그는 &quot;벼랑끝 전술을 쓰는 북한은 이런 오바마의 생각을 잘 읽어야 하고, 전쟁이 나면 모든 게 잿더미가 될 우리도 감성에 흐르지 말고 전쟁을 막기 위한 고도의 이성적 외교전략을 구사해야 한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lt;STRONG&gt;험악해지는 상황...&apos;핫라인&apos; 부재&lt;/STRONG&gt; &lt;BR&gt;&lt;BR&gt;지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 임금을 4배 올리고 토지사용료는 31배를 올리라고 요구했다. 사실상의 공단 폐쇄 위기다. 마지막 남북 평화지대의 소멸이다. &lt;BR&gt;&lt;BR&gt;특히 큰 위기는 남북간 대화 창구가 꽉 막혀있다는 점이다. &lt;FONT color=#00ccff&gt;서해교전때는 양측 모두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나, 양국 지도자간 &apos;핫라인&apos;이 있어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그 무렵 자주 방북했던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회장은 얼마 전 사석에서 &quot;당시 우리군도 6명이 사망했지만 북한군은 200여명이나 죽어, 북한군부가 보복을 가하자고 강력주장했으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를 막았다&lt;/FONT&gt;&quot;고 증언하기도 했다. &lt;BR&gt;&lt;BR&gt;하지만 &lt;FONT color=#00ccff&gt;지금은 아무런 &apos;핫라인&apos;도 없어, 자그마한 충돌도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lt;/FONT&gt;. 남북 지도자 모두 민족적 관점, 역사적 관점에서 한반도의 위기를 관리하며, 특단의 &apos;대화 결단&apos;을 내릴 때다. &lt;/P&gt;&lt;!--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gt;&lt;!-- 투표 기간 --&gt;&lt;BR clear=all&gt;&lt;!-- 네이버 오픈 캐스트 위젯 --&gt;&lt;!-- 다음 블로거 뉴스 위젯 --&gt;&lt;!-- 테마 가이드 코멘트 --&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35349</link>
<category>취중진담</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Sat, 13 Jun 2009 04:07:3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알리바이라면 우리 모두 갖고 있다</title>
<description>&lt;P&gt;&lt;STRONG&gt;&lt;A class=c_layer_good href=&quot;http://www.aladdin.co.kr/shop/witem.aspx?ISBN=8930109365&quot; target=_blank&gt;&lt;IMG style=&quot;WIDTH: 127px; HEIGHT: 168px&quot; height=168 alt=&quot;&quot; src=&quot;http://image.aladdin.co.kr/coveretc/book/cover150/8930109365_1.jpg&quot; width=113 align=left border=0&gt;&lt;/A&gt;&lt;BR&gt;&lt;BR&gt;&lt;BR&gt;&quot;알리바이라면 우리 시대의&amp;nbsp;시민들도 모두 갖고 있다. (...) 1984년 7월 나는 몇 장의 사진을 찍어와 들여다보며 우리 시대의 이 완벽한 알리바이를 생각하고 또 그것을 슬퍼했다.&quot;&lt;/STRONG&gt;&amp;nbsp;&lt;BR&gt;&lt;BR&gt;소설가 조세희는 사북사태가 있은 지 몇 년 뒤 사북을 다녀와서 &amp;lt;침묵의 뿌리&amp;gt;에&amp;nbsp;이렇게 썼다. 그는 이 책에서 &quot;나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이땅에 사는 한 사람의 &apos;시민&apos;으로서 그동안 우리가 지어온 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quot;고 한다.&amp;nbsp;그는 우리 시대의 죄와 우리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amp;nbsp;&amp;nbsp;&lt;/P&gt;
&lt;P&gt;나치의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amp;nbsp;&apos;죄&apos;와 &apos;책임&apos;을&amp;nbsp;구별해야 된다고 한다. 그의 말에&amp;nbsp;따르면 &quot;우리 모두 죄가 있다&quot;라는 호소는 실제 죄를 지은 자를 무죄방면하는 데 일조할 뿐이기 때문이다.&amp;nbsp;또한&amp;nbsp;&apos;죄&apos;는 법적 개념이기에&amp;nbsp;(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인 또는 인류에게는) 그와 다르게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누구나 짊어져야 할 &apos;집단적 책임&apos;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경식&amp;lt;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amp;gt;)&lt;BR&gt;&lt;BR&gt;지난&amp;nbsp;노무현의 죽음에서 나는 어떤 집단적 죄의식과 그에 대한&amp;nbsp;속죄의 행렬을 본 듯 하다. 나 또한도 어느정도의 미안함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amp;nbsp;다만 그것이 또 다른 희생자, 이를테면 노무현이 &quot;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갔다&quot;고 선언했음에도 이미 죽어버린 한진중공업&amp;nbsp;김주익, 홍콩에서 자결한 농민 이경해, 이라크에서의 김선일, 대추리의 주민들, 부안과 새만금... 이런&amp;nbsp;이들에 대한&amp;nbsp;집단적 책임의식과 겹치면서&amp;nbsp;복잡한 심경이 되기도 했다. &lt;BR&gt;&lt;BR&gt;벌써 많이 잊혀진,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아직 장례조차 치루지 못한 용산참사, 대한통운 택배노동자 투쟁에서 목숨을 내놓은 박종태. 그리고 기륭전자와 쌍용자동차.&amp;nbsp;이런 사건에 대한&amp;nbsp;집단적 책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amp;nbsp;꽤나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소한 이 나라에서는.&amp;nbsp;&amp;nbsp;&lt;BR&gt;&lt;BR&gt;그 노력의 하나로&amp;nbsp;&lt;STRONG&gt;&amp;lt;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amp;gt;&lt;/STRONG&gt;을&amp;nbsp;읽어볼 참이다.&amp;nbsp;&lt;BR&gt;&lt;STRONG&gt;&quot;우리는 80년대에 또 어떤 진행을 맞게 될까? 당신은 아는가?&quot;&lt;/STRONG&gt;&amp;nbsp;&lt;BR&gt;1985년 나온 &amp;lt;침묵의 뿌리&amp;gt; 마지막 문장이다. &lt;BR&gt;우리는 이미 그 후 20년을 알고 있다. &lt;BR&gt;하지만 2009년, 그리고 다가올 2010년대&amp;nbsp;어떤 진행을 맞게 될지 알지 못한다. &lt;BR&gt;&apos;침묵의 뿌리&apos;를 찾아 캐내고 싶다. &amp;nbsp;&lt;/P&gt;
&lt;P&gt;&lt;BR&gt;&amp;nbsp;&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35028</link>
<category>달리는 포장마차</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Mon, 08 Jun 2009 01:31:21 +0900</pubDate>
</item>

<item>
<title>대통령은 누구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나</title>
<description>&lt;P&gt;“쇼(SHOW)를 하라!&quot; &lt;BR&gt;이제는 식상한 이동통신사의 이 카피는 처음엔 꽤나 도발적이었고 그래서 신선했다. 쇼는 구경거리나 오락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일상에서는 스포츠 경기에서의 헐리우드 액션과 마찬가지로 과장된 몸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거나 현혹하는 의미로 더 많이 쓰였다. &lt;BR&gt;&lt;BR&gt;&lt;STRONG&gt;장애인을 모욕하는 대통령의 눈물 쇼&lt;/STRONG&gt; &lt;BR&gt;&lt;BR&gt;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4월19일. 방송사들은 저녁 뉴스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홀트 요양원을 찾아 장애인합창단의 &lt;SPAN&gt;&lt;SPAN&gt;&lt;A class=popup_link onmouseover=&quot;javascript:KL_show_clk_pop(&apos;%B3%EB%B7%A1&apos;,&apos;1&apos;,&apos;&apos;)&quot;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mediatoday2_web&amp;amp;is_click=yes&amp;amp;keyword=%B3%EB%B7%A1&quot; target=_blank&gt;노래&lt;/A&gt;&lt;/SPAN&gt;&lt;/SPAN&gt;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과 “여러분들을 위로하러 왔는데 우리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quot;는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뿌리깊은 차별에 맞서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온 장애인들이 순식간에 위로 받아야 할 불우이웃이 되어버렸다. &lt;BR&gt;&lt;BR&gt;‘눈물 쇼&apos;는 전임 대통령이 원조라며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원죄가 있다. 2002년 당시 서울시장 후보였던 그는 지하철역 &lt;SPAN&gt;&lt;SPAN&gt;&lt;A class=popup_link onmouseover=&quot;javascript:KL_show_clk_pop(&apos;%B8%AE%C7%C1%C6%AE&apos;,&apos;4&apos;,&apos;&apos;)&quot;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mediatoday2_web&amp;amp;is_click=yes&amp;amp;keyword=%B8%AE%C7%C1%C6%AE&quot; target=_blank&gt;리프트&lt;/A&gt;&lt;/SPAN&gt;&lt;/SPAN&gt;에서 추락사한 장애인의 빈소를 찾아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했다. 하지만 그가 당선된 뒤 장애인 관련 예산은 매년 감소했고 위 사건에 대해서 서울시는 계속 책임을 회피하다가 사법부의 판결이 나고서야 제대로 된 손해배상을 했다. 또한 고속버스터미널역, 이수역, 서울역, 동대문운동장역 등 지하철역에서의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는 끊이지 않았지만 신규 &lt;SPAN&gt;&lt;SPAN&gt;&lt;A class=popup_link onmouseover=&quot;javascript:KL_show_clk_pop(&apos;%BF%AA%BB%E7&apos;,&apos;3&apos;,&apos;&apos;)&quot;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mediatoday2_web&amp;amp;is_click=yes&amp;amp;keyword=%BF%AA%BB%E7&quot; target=_blank&gt;역사&lt;/A&gt;&lt;/SPAN&gt;&lt;/SPAN&gt;를 제외한 지하철역 &lt;SPAN&gt;&lt;SPAN&gt;&lt;A class=popup_link onmouseover=&quot;javascript:KL_show_clk_pop(&apos;%BF%A4%B8%AE%BA%A3%C0%CC%C5%CD&apos;,&apos;2&apos;,&apos;&apos;)&quot;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mediatoday2_web&amp;amp;is_click=yes&amp;amp;keyword=%BF%A4%B8%AE%BA%A3%C0%CC%C5%CD&quot; target=_blank&gt;엘리베이터&lt;/A&gt;&lt;/SPAN&gt;&lt;/SPAN&gt; 설치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lt;BR&gt;&lt;BR&gt;2006년 4월에는 40여 일 동안 노숙농성을 한 중증장애인들이 6시간 넘게 한강대교를 휠체어도 없이 기어가며 시위를 벌인 일도 있다. 그때 서울시는 7천억 원 규모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과 2천억 원이 들어가는 시청사 증개축을 추진하고 있었고, 이명박 당시 시장이 즐겨 찾는 실내테니스장 &lt;SPAN&gt;&lt;SPAN&gt;&lt;A class=popup_link onmouseover=&quot;javascript:KL_show_clk_pop(&apos;%B0%C7%C3%E0&apos;,&apos;0&apos;,&apos;&apos;)&quot;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javascript:clear_pop_show_delay()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afd=mediatoday2_web&amp;amp;is_click=yes&amp;amp;keyword=%B0%C7%C3%E0&quot; target=_blank&gt;건축&lt;/A&gt;&lt;/SPAN&gt;&lt;/SPAN&gt;에 무려 42억 원을 지원했음에도 예산부족을 이유로 3억원도 채 안되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제도화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lt;BR&gt;&lt;BR&gt;지금 정부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대선 후보시절 장애인 예산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지만 예산은 실질적으로는 감소했고, 400만 장애인 중에 59만 명이 절대 빈곤층임에도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까지 삭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으로 이 업무를 담당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반 토막이 났고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증진과의 축소 방안은 곧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lt;BR&gt;&lt;BR&gt;대통령의 눈물 쇼가 있은 다음날인 4월20일, 거리에 나선 장애인들은 위로가 아니라 생존권을 요구했다. 장애인은 리프트에서만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충북 옥천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는 정신 장애인이 직원에 의해 목 졸라 죽임을 당했다. 어떤 지적장애인은 시설에 나가려다 맞아죽고 한 자폐아동은 정신병원에서 향정신성 의약품 과다복용으로 죽었다. 2006년 김포의 한 시설에서는 몇 년에 걸쳐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으며 같은 해 경남 함안군에서는 한 장애인이 자기 집에서 얼어죽었다. &lt;BR&gt;&lt;BR&gt;&lt;STRONG&gt;장애인은 위로가 아니라 권리를 요구한다 &lt;BR&gt;&lt;/STRONG&gt;&lt;BR&gt;죽지 않고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한 장애인 운동단체 활동가는 검찰로부터 480만 원의 벌금폭탄을 맞았다. 전액을 기부한다는 이명박 대통령 월급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1급이 한 달에 받는 35만 원의 열 배가 넘는 거액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15일 수감생활로 75만 원을 충당하고 나머지는 정식재판을 청구한 뒤 풀려난 그는 4월20일 동대문에서 기습시위를 벌이다 또 다시 연행되었다. 대통령은 그 앞에서 눈물은커녕 눈이라도 깜박할 것인가. &lt;BR&gt;쇼는 오락프로그램만으로도 족하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amp;lt;미디어오늘&amp;gt; 미디어바로미터에 기고한 글&lt;!--DCM_ CONTENT_END--&gt;&lt;/P&gt;&lt;!--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gt;&lt;!-- 투표 기간 --&gt;&lt;BR clear=all&gt;&lt;!-- 네이버 오픈 캐스트 위젯 --&gt;&lt;!-- 다음 블로거 뉴스 위젯 --&gt;&lt;BR clear=all&gt;
&lt;TABLE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32269</link>
<category>달리는 포장마차</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Tue, 21 Apr 2009 22:12: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리뷰] 내 마음에 망루-여기 사람이 있다(삶이보이는 창)</title>
<description>&lt;P&gt;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직후 한 게슈타포 장교가 피카소에게 “당신이 &amp;lt;게르니카&amp;gt;를 그렸나?”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피카소의 답은 “아니, 당신들이 그렸지”였다.&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이 책의 지은이 또한 이 정부를 비롯한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분명하다. 아파트 공화국, 개발지상주의자들과 건설자본과 재개발 이익의 단물에 흠뻑 취한 한국사회에서 개발 잔혹사는&amp;nbsp;멈추지&amp;nbsp;않는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집을 빼앗긴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우리의 이웃에게까지 숱한 싸움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1월 20일 용산 참사가 있었다.&amp;nbsp;&amp;nbsp;&lt;/P&gt;
&lt;P&gt;용산구청은 이들을 가리켜 재개발 지역에서 보상금이나 몇 푼 더 바라고 떼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경찰은 전문 시위꾼들이며 외부 세력이라고 했다. 정부 여당은 도심 한 복판에서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진 이들은 분명 테러리스트가 틀림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찰은 이들이 스스로 신나를 붓고 화염병을 던져 죽음을 선택했다고 했다.&amp;nbsp;&amp;nbsp;&lt;/P&gt;
&lt;P&gt;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죽은 이들의 유족은 벌써 석 달이 넘게 진상규명과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체포되고 구속되고 수배를 당하면서도 이들의 죽음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amp;nbsp;&amp;nbsp;&lt;/P&gt;
&lt;P&gt;전국철거민연합.&amp;nbsp;과연 이들은 누구인가.&amp;nbsp;&amp;nbsp;&lt;/P&gt;
&lt;P&gt;왜 이들은 부서진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짓고,&amp;nbsp;거기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amp;nbsp;&amp;nbsp;&lt;/P&gt;
&lt;P&gt;또 왜 경찰은 이들의 화염병이 실제로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1차 진압에서 불이 났음에도 소방차 대신 경찰특공대를 올려보내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 명의 경찰특공대를 죽게 했을까. 왜 불에 타 죽었다는 시신에서 지갑과 신분증이 고스란히 남았는데 서둘러 유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부검을 실시했고 검찰은 아무런 과학적 단서도 찾지 못한 채로 이들이 스스로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발표를 했을까.&amp;nbsp;&amp;nbsp;&lt;/P&gt;
&lt;P&gt;이 책은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 당시 망루에 있었던 사람들과 그 밖에서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애타게 울부짖던 유족들, 그리고 전국철거민연합 회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재개발 통지서가 날아들지 전까지 화훼농장의 주인이었고 호프집 사장님이었으며 민물장어집을 하며 아이를 키우던 가장이었다. 그러던 이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삼성이나 두산, SH공사 등 개발업체와&amp;nbsp;조합, 그리고 용역깡패에게 몰리면서 철거민이 되어가고 결국&amp;nbsp;화염병을 갖고 망루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amp;nbsp;&amp;nbsp;&lt;/P&gt;
&lt;P&gt;이 책에서 어떤 이는 &quot;집 평수를 넓히려는 사람들의 욕망 속에 폭력이 있다&quot;고 이야기한다.&amp;nbsp;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amp;nbsp;위태롭고 불안한 이&amp;nbsp;한국사회에서,&amp;nbsp;가진 자만을 위한 정책들이 서슴치 않고 추진되는 이 정부 아래서 이 욕망에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이렇게 무참하게 짓발아도 되는 것일까. 이렇게 이들의 죽음을 모욕해도 되는 것일까.&amp;nbsp;&amp;nbsp;&lt;/P&gt;
&lt;P&gt;서부영화에서 인디언은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는 야만인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인디언은 사람 머릿가죽을 벗겼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준 것은&amp;nbsp;다름아닌 백인이었다. 하지만 서부영화는 백인이 백인을 위해 만든 영화였기에 왜 인디언이 사람 머릿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는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지는&amp;nbsp;설명하지 않는다.&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gt;정부나 가진 자들, 지배자들은 용사 참사를 테러로, 범죄로 기록하고 처벌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수많은 학살들이 단죄되었듯 이 참사 또한 저들의 기록에 그저 묻혀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권력이 동원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지은 망루를 허물 수는 있을지언정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서 건져올린 이야기들로 쌓아올린 이&amp;nbsp;망루는 결코 허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lt;/P&gt;&lt;!--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gt;&lt;!-- 투표 기간 --&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31053</link>
<category>책과 영화 읽기</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Wed, 01 Apr 2009 16:31:3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자유에 대하여</title>
<description>&lt;P&gt;경찰이 아고라에서 여론조작을 했다고 수사에 들어갔다는&amp;nbsp;소식을 들었다.&amp;nbsp;&amp;nbsp;이유는 한 가지다. 반정부적 행위라는 것.&amp;nbsp;또한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대해 헌법소원을 한 법무관 2명을 파면시켰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 사상, 양심의 자유가 절멸되는 듯하다. &lt;/P&gt;
&lt;P&gt;책장에서 몇 달 전에 읽은 &apos;자유에 대하여&apos;(존 스튜어트 밀, 필맥)를 끄집어냈다. 한번쯤은 들어봤지만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amp;nbsp;당췌&amp;nbsp;1800년대에 써졌다고 믿기지 않는 책.&amp;nbsp;&amp;nbsp;&lt;/P&gt;
&lt;P&gt;존 스튜어트 밀은 &quot;이른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quot;에 대해 말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이는 &quot;개인에 대해 사회가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격과 한계&quot;라고 그는 말한다.(책 11p)&amp;nbsp;다시 말해 그는 권력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고 이 한계설정이 바로 &apos;자유&apos;라는 것이다.&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gt;그는 또 말한다. &quot;신에 대한 도발은 신이 알아서 할 일&quot;이라고.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의 도발은 인터넷이 알아서 할 일이고 네티즌의 도발은 네티즌들이 알아서 할 일&amp;nbsp;아닌가.&amp;nbsp;&amp;nbsp;&lt;/P&gt;
&lt;P&gt;이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amp;nbsp;이 책의 발끝만이라도 그들이&amp;nbsp;따라간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너무 많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amp;nbsp;&lt;/P&gt;
&lt;P&gt;끝으로 이 책에 따르면&amp;nbsp;자유의 암흑기였던 중세, 가장 관용적이지 않은&amp;nbsp;가톨릭 교회에서도 &apos;악마의 대변자&apos;라는 사람을 임명하여 성인을&amp;nbsp;인정할 때 성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주장하게 했다고 한다. 이 정부에게 그조차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apos;악마의 대변자&apos;는 언제나, 그리고 지금 더더욱&amp;nbsp;필요하다.&amp;nbsp;&amp;nbsp;&amp;nbsp;&lt;BR&gt;참고로 밑줄 그어 놓은 몇 군데를 옮겨본다.(강조는 내가!)&amp;nbsp;&lt;/P&gt;
&lt;P&gt;- 인민의 의지라는 것의 실제 의미는 인민 가운데 가장 수가 많거나 가장 적극적인 부분의 의지, 다시 말해 다수파 또는&lt;STRONG&gt;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다수파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lt;/STRONG&gt;의 의지였다.(16p)&amp;nbsp;&lt;/P&gt;
&lt;P&gt;- &lt;STRONG&gt;오직 한 사람 말고는 인류 모두가&amp;nbsp;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한 사람이 인류를 침묵하게 만들 권력을&amp;nbsp;갖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만큼이나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lt;/STRONG&gt; (...) 만약 그 의견이 올바른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를 진리로 바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반대로 그 의견이 그릇된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를 진리로 바꾸는 것과 거의 같은 정도로 커다란 이익이 되는 것, 즉 진리와 오류의 충돌을 통해 셩겨나는, 진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과 보다 생생한 인상을 얻지 못하게 된다. (37p)&amp;nbsp;&amp;nbsp;&lt;/P&gt;
&lt;P&gt;- 어떤 문제를 자기의 입장에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71p)&amp;nbsp;&lt;/P&gt;
&lt;P&gt;- 삶이 하나의 유형으로 획일화될 때까지도 저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유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모두 다 불경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극악무도하고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139p)&amp;nbsp;&lt;/P&gt;
&lt;P&gt;- 해악은 정부가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과 힘을 불러일으키는 대신에 자신의 활동으로 그들의 활동을 대체할 때, 그리고 &lt;STRONG&gt;정부가 그들에게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하고 때로는 반박을 하는 대신에 그들로 하여금 속박속에서 일을 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비켜서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들의 일을 대신 나서서 할 때&lt;/STRONG&gt; 시작된다. (209p)&amp;nbsp;&lt;/P&gt;&lt;!-- 투표하기/포토리뷰/밑줄긋기/마이리스트 --&gt;&lt;!-- 투표 기간 --&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30275</link>
<category>달리는 포장마차</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Wed, 18 Mar 2009 23:59:0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청와대 앞에 솥단지를 걸어야 혀</title>
<description>&lt;DIV id=news-view-content&gt;풍년이라고 한다. 올해는 태풍도 한 번 지나지 않았고 일조량도 넉넉했던 덕분이라는데 어쩐 일인지 나락을 베는 농민들의 마음은 흉흉하기 짝이 없다. 어떻게 된 까닭일까. 어쩌면 농업이 산업으로, 먹거리가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바뀐 뒤부터 아닐까.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그 돈이 반 토막 나버린 뒤숭숭한 요 몇 달 사이에도 농민의 노동의 결과는 고스란히 돈이 되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234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3/3/35_69.JPG&quot; width=35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BR&gt;&lt;BR&gt;늦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던 9월 중순 무렵부터 농민들이 출하거부 투쟁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 지은 농토를 갈아엎고 관공서 앞에 쌀가마니를 쌓는 광경이야 이미 낯설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출하거부라면 노동자들로 치면 총파업인 셈이다. 그만큼 벼랑 끝으로 내몰린 농민들을 만나러 전남 영광을 처음 찾은 것은 이제 막 추수가 시작될 무렵인 10월 초순이었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농민, 총파업에 찬성표를 던지다&lt;/B&gt;&lt;BR&gt;&lt;BR&gt;&lt;BR&gt;“지난 8월 26일에 농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나락 40kg 한 가마니에 수매가 6만 원, 정부 보조금 1만 원해서 7만 원이 되지 않으면 출하거부 찬반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죠. 그리고 쌀 유통구조 문제가 워낙 심각하니까 생산유통조정위원회를 만들자는 요구도 있었고. 바로 다음날 영광 대마면에서 비상총회를 했어요. 쌀농사 짓는 170개 농가가 모여서 투표를 했는데 찬성 164대 반대 6으로 출하거부 투쟁을 하기로 결정했죠.”&lt;BR&gt;&lt;BR&gt;&lt;BR&gt;영광군 농민회 나운림 총무부장은 벽보 한 장을 펼쳐 보인다. 거기에는 “공공비축미 수매 전면 거부”, “농협이나 시중 출하 절대 금지”라는 행동지침과 함께 8월 27일 대마면을 시작으로 9월 24일까지 진행된 찬반투표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영광군 8개 읍면에서 적게는 93.9%부터 많게는 97.3%까지 찬성표가 나왔다. 이 투표결과를 갖고 농민회는 9월 26일 농협, 영광군청 등 관계기관과 간담회를 가졌고 현재 영광군 농협은 면지부별로 수매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lt;BR&gt;&lt;BR&gt;&lt;BR&gt;“영광군은 전체 인구가 6만 정도고 쌀농사를 짓는 사람이 7천명쯤 되는데 그중에 5천6백명이 투표해서 95% 이상 찬성이 나온 거니까 거의 압도적 찬성인 셈이죠.” &lt;BR&gt;&lt;BR&gt;&lt;BR&gt;총무부장은 벽보를 말아들고는 염산면 이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으니 같이 가잔다. 직접 목소리를 들어보라는 얘기다. &lt;BR&gt;&lt;BR&gt;&lt;BR&gt;“여기 벽보는 마을 회관에 붙이십쇼. 농협이 나락 값 6만 원 요구를 받을지 말지 내일까지 이사회를 거쳐서 결정을 한다고 허니 기다려보면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만약 부결되면 비상대의원총회라도 요구해야 허고. 거기서도 부결되면 농협 틀어막는 거고. 그리 알고 이장님들은 그전에 마을에서 수매하는 일이 없도록 해줘야 해요.”&lt;BR&gt;“투표한 사람들이야 다 그렇게끔 허겄지만 돈 급한 노인 분들이 팔겄다고 그러면 뭔 수로 막아야?”&lt;BR&gt;“수탁제도도 있으니까 돈이 급하면 일단 농협에서 돈을 받아쓰고 출하거부는 계속하면 되여. 어렵게 생각하면 안 돼. 절대 쌀은 내지 마시고. 농협에서도 그 정도는 협조를 해줘야지 않겠어?”&lt;BR&gt;“농협이 앞장서서 나락 값을 내리려고 하는 놈들인데…. 농협이 농민편이 아니고 지들 흑자 보려고 하잖어. 농협이 농민 등쳐먹는 데 아닌가.”&lt;BR&gt;“돈은 없지. 마방 기다리는 게 한계가 있지. 쉬운 일이 아니여. 빚 갚을 데는 이자가 차곡차곡 쌓일 텐데.”&lt;BR&gt;“그러니까 늘 쌀값이 정부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거고 맨날 농민들만 손해 보는 거여.”&lt;BR&gt;“아니, 우리 동네는 전부 다 안내기로 했다니깐. 일단 하기로 했으면 해야제. 이번에 우리가 나락을 아예 안 내버려야 정부에서 쌀값을 좌지우지 못하지.”&lt;BR&gt;&lt;BR&gt;&lt;BR&gt;어느 한 구석 끼어들 새도 없이 농협과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잠시 회의장을 나와 담배를 태우던 염산면 두리1구 박완진 이장(66)은 “이거는 앞으로 농사짓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입을 연다. &lt;BR&gt;&lt;BR&gt;&lt;BR&gt;“비료 값이 20kg 한 포대에 5천 원 하던 것이 2만 원을 넘어섰고, 기름 값은 작년에 700원 하던 것이 1,300원이 됐고, 사료 값은 재작년부터 여덟 차례나 올라서 거의 100% 인상됐어. 그런데 쌀값은 10년 전에 비해서 오히려 내렸다니께. 6만 원 하던 것이 4만8천 원으로 떨어진 것이 언제여?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 오를 생각을 안 해. 농사를 지어서 한 해 5천만 원 벌면 빚이 1억이여. 농사를 짓는 만큼 빚이 늘어. 시골에 사람이 점점 주니까 이젠 아예 사람 못 살 곳으로 만드는 거여, 뭐여?” &lt;BR&gt;&lt;BR&gt;&lt;BR&gt;옆에 있던 염산면 농민회 강상호 씨(45)는 “사태가 이런데 정부가 앞장서서 올해는 대풍이라고 언론플레이를 하며 벌써부터 쌀값을 잡으려” 하는데 농민들이 더욱 분개한다고 거든다. 지난 추석을 며칠 앞두고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나서서 농산물 가격을 40% 인하하겠다는 호언장담을 했고 추석 연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배 값 폭락에 비관한 나주의 한 농민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가지수 1순위가 쌀이라고 하니 이 정부에서 서민경제 안정을 빌미로 시장에 물량을 쏟아내면서 “어떻게든 쌀값을 때려잡으려고 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 강 씨의 말이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돈도 빽도 없는데 쪽수마저 줄고&lt;/B&gt;&lt;BR&gt;&lt;BR&gt;&lt;BR&gt;영광읍에 있는 농민회 사무실로 돌아와 전국농민회총연맹 회의에 참석하고 온 주경채 농민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올해는 특별한 해!”라고 한다. &lt;BR&gt;&lt;BR&gt;&lt;BR&gt;“전농이 자체 계산해보니까 쌀 생산비가 15% 올랐는데 농수산부는 딱 절반인 7.5% 상승했다고 발표했어요. 그럼 쌀값을 15%가 아니라 7.5%만큼이라도 올려라. 그렇게 않으면 우리는 쌀을 안 내놓겠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농민들이 오른 생산비만큼 제값을 받겠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도 있어요. 왜 생산비가 올랐습니까. 유가 상승과 기후변화 때문이잖아요.” &lt;BR&gt;지난 2년간 세계 주요 곡물가격이 많게는 500%까지 폭등했다. 기후변화로 곡물생산량이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바이오에너지 개발로 식량은 줄어든 반면 WTO와 FTA 등으로 각국의 농업기반이 급속도로 허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주요 쌀 생산국들은 자국의 식량부족을 우려해서 쌀 판매 규제를 시작했고 식량 부족으로 세계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 &lt;BR&gt;“식량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나라가 무려 37개국이라고 합니다. 필리핀의 농업이 붕괴된 것을 봐요. 식량 자급률 25%,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고작 5%인 한국도 농업정책이 이대로 간다면 5년 내에 식량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부는 해외 식량기지 운운하고 있는데 이것은 군대 없애고 용병 쓰자는 거나 다름없는, 식량주권을 아예 포기하자는 거지요.”&lt;BR&gt;&lt;BR&gt;&lt;BR&gt;한편 주경채 회장은 “전농이 수입개방 저지에 온 힘을 기울이느라 기름 없이는 농사를 짓지 못하는 구조의 개혁, 생태농업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농업은 그 국가의 기초이기에 준 사회주의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 주식을 확보하고 수급을 안정화하는 것”이 농민회의 가장 큰 과제일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에 정부는 농민의 숫자는 물론 농토도 점차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이 농지의 50%만을 경작하도록 하면서 나머지 50%를 정부의 지원 속에서 예비농지로 두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lt;BR&gt;대마면으로 들어가는 영광군 농민회 이석하 교육부장을 따라 나섰다. 대마면은 영광군에서 소농이 제일 많은 지역으로 “다들 어려운 살림에도 추수가 끝나면 꼭 쌀 한가마 씩은 농민회 투쟁기금으로 비축을 하는 마을”이란다. &lt;BR&gt;&lt;BR&gt;&lt;BR&gt;“출하거부 찬반투표는 하반기 사업계획을 잡다가 나왔어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니까. 투쟁방법은 농민들 입에서 다 나와요. ‘쌀을 아예 내놓지 말아야 한다.’ 협상이 잘 안 되면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은 영업방해가 되니까 못해도 농협 RPC는 물리력을 써서라도 막아야겠죠. 농민들이 먼저 그래요. ‘어디를 콱 막아버려야 한다.’ (웃음) 지난 몇 년간 농민투쟁의 교훈이라면 목표를 세우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농민들이 주체로 결정 내려야 된다는 거. 그래야 계속 싸울 수 있고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거죠.”&lt;BR&gt;&lt;BR&gt;&lt;BR&gt;그 교훈이 곧 출하거부 찬반투표라는 방식이다. 다른 군의 경우 200여 차례의 간담회를 진행하는 데도 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출하거부 투표에서 찬성이 95%를 넘긴 이유가 치솟는 생산비와 낮은 쌀값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비료 값이 오른 것도 문제였지만 비료가 제때 공급되지 않았어요. 농사에는 다 때가 있어서 비료를 줘야 할 때 줘야 하는데” 비료회사가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공급시기를 늦췄다는 말이다. &lt;BR&gt;&lt;BR&gt;&lt;BR&gt;“그때 농협에서 국제적으로 유가가 어떻고 하면서 비료 값 오른 것을 농민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다녔어요. 아니 그러면 지금 쌀값도 농협이 나서서 소비자한테 생산비가 이렇게 올랐으니 어쩔 수 없다고 설득해야 맞는 거죠.” &lt;BR&gt;&lt;BR&gt;&lt;BR&gt;농협도 정부도 지자체도 농민들 편이 아니고 “농민이 기댈 곳이라고는 서로들밖에 없어서 그나마 아직 농촌 인심이 남아 있는 것”이라던 한 여성농민회 간부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석하 부장의 말마따나 “20년 전에 1천만 농민이라 그랬는데 어느덧 500만 되고 금세 350만 되고. 가진 것도 없고 빽도 없는데 쪽수마저 줄고 있으니”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234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3/3/35_73.JPG&quot; width=35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BR&gt;&lt;BR&gt;대마면에서 영농회장을 맡고 있는 신태욱 씨(69)가 이 부장을 보고는 대뜸 “저 광우병 촛불집회 모양으로 청와대 앞에 솥단지 걸고 몇날 며칠을 싸워야 혀.”라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장사해서 돈 벌 줄이나 알았지 농민들 이야기는 콧구녕으로도 안 들을 정부가 이명박 정부”일 것이니 말이다. 이석하 부장은 정말 텐트라도 쳐야겠다고 장단을 맞추는데 아무래도 농민회 회의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성싶다. &lt;BR&gt;&lt;BR&gt;&lt;BR&gt;“젊은이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노인들이 가서 데모를 해야 경찰들도 함부로 못 허지. 우리 같은 노인네야 지들이 잡아다가 뭐할 것이여.” &lt;BR&gt;&lt;BR&gt;&lt;BR&gt;마을 이장들이 쇳소리를 내가며 정부를 성토하고 일흔을 앞둔 농사꾼이 풍찬노숙의 싸움을 다짐하는데 길을 나서자니 해질 녘 들판은 온통 황금빛이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더 멍들 가슴이라도 남았을까&lt;/B&gt;&lt;BR&gt;&lt;BR&gt;&lt;BR&gt;10월 중순 다시 영광을 찾았을 때 정치권이며 언론은 온통 쌀 직불금 부정수령 파문으로 들끓고 있었다. 농협중앙회가 올 상반기 3천3백억 원의 순이익 감소에도 6백억 원의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것이 언론을 통해 밝혀진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농민의 가슴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는 일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영광에 도착해서 만난 농민들은 가을걷이에 화낼 겨를조차 없는지 그래봤자 달라질 게 없으리란 체념 탓인지 그저 논 귀퉁이 벼를 베어 콤바인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고 누운 볏짚을 묶어세우고 국도변에 나락을 널뿐이다. &lt;BR&gt;&lt;BR&gt;&lt;BR&gt;“뭐, 하루 이틀 된 문젠가. 여기 남의 땅 붙이는 사람들 다 땅주인 무서워서 냉가슴 앓고, 이장도 어쩌지 못해 맘고생들 하고. 그런 거 아는 사람은 다 알지. 그래도 정치하는 놈들, 무슨 장관인가 차관인가, 그런 양반들까지 그 돈 타먹는 줄은 몰랐네.”&lt;BR&gt;&lt;BR&gt;&lt;BR&gt;볕드는 시간에 맞춰 나락을 널러 나온 영광읍 신월리 이용기 씨(74)도 먼 산 보듯 하더니 “직불금이나마나 나 같은 늙은이야 곧 가겠지만서두 앞으로 농사 더 지어야 할 사람은 큰일”이라며 탄식한다. &lt;BR&gt;&lt;BR&gt;&lt;BR&gt;“애들이 넷인데 지금이야 다 키워서 시집장가 보냈지. 쉴 틈 없이 일했어. 담배도 하고 고추도 하고. 시간나면 노가다도 하러 댕기고. 그렇게 벌었으니까 애들 학비라도 댔지. 이제는 농사 일체 짓지 말어야 돼. 내가 아직도 한 열 마지기, 2천 평쯤 짓는데 트랙터로 로타리 치면 한 마지기에 10만 원이야. 열 마지기면 100만 원. 또 한마지기에 거름이 세 포대는 들어가. 그것도 다 하면 100만 원 돈 되지. 그런데 여기서 8만 원에 사간 쌀 40kg 한 포대가 서울 가면 22만 원이더라구.” &lt;BR&gt;&lt;BR&gt;&lt;BR&gt;옆에서 한참 듣고만 있던 아주머니도 거든다. 올 봄에는 현지에서 10kg에 3천 원 받는 오이가 마트에서 3개에 2천 원에 팔리더란다. 10kg면 오이가 50개. “그 오이가 겨울 내내 하우스에서 한 드럼에 20만 원, 30만 원 기름을 먹고 자란 오이”라니 직불금에 멍들 농민의 가슴이 한 마디라도 남아있을까 싶다. &lt;BR&gt;&lt;BR&gt;&lt;BR&gt;대마면 가는 길에 만난 안주영 씨(43)는 고등학생 하나, 중학생 하나, 초등학생 하나에 재작년에 늦둥이까지 본 어머니다. 남편이 콤바인으로 벼를 베면 트럭을 콤바인 옆에 붙여서 나락을 옮겨 싣는 게 그이의 일이다. &lt;BR&gt;&lt;BR&gt;&lt;BR&gt;“농사 지어가지고는 못 살아요. 애들 학비도 그렇고 도시만큼은 아니어도 학원도 보내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데 올해 물가가 너무 뛰어가지고. 기계 고장 나면 수리비에 인건비, 부품비까지 안 뛴 게 없어요.”&lt;BR&gt;&lt;BR&gt;&lt;BR&gt;농기계 구입하느라 농협에서 받은 융자를 아직 다 갚지 못한 탓에 당장 돈 빌릴 구멍도 없다. 또 기름 값은 뛰었는데 이웃에서 농기계를 쓰자고 하면 안 빌려줄 수도 없고 오른 기름 값만큼 올려 받지도 못해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lt;BR&gt;&lt;BR&gt;&lt;BR&gt;“저 같은 경우는 딸기 하죠. 하우스에서. 그게 수입은 좀 괜찮은데 수확 철이 되면 하루라도 안 따면 물러서 버려야 돼요. 다른 과일이랑 달라서 손이 많이 가니까. 요새 농촌은 농번기 같은 거 따로 없어요. 먹고 살려면 추수 끝나고 모종 키워야지. 하우스에 심고 2월부터 5월까지 매달려야지. 또 금세 모내기해야지.”&lt;BR&gt;&lt;BR&gt;&lt;BR&gt;특히 하우스 농사는 일손이 많이 드는데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인력사무소를 통해서 사람을 써야 하는데 농번기에는 일당이 7만 원에서 10만 원까지도 간다. “올해는 고추농사도 조금 했는데 초반에 약을 못 줘서 망쳤어요. 하우스에 설비를 해서 농약을 치자니 설치비가 만만치 않고, 사람을 사서 일일이 하자니 그것도 벅차고. 하우스 파이프 값도 6개월 사이에 세 번이나 올랐거든요. 세 살 된 딸애가 남편이랑 하는 소리를 언제 들었는지 하루는 ‘죽겄다’ 그러데요. 정말 그 말이 절로 나와요.” &lt;BR&gt;&lt;BR&gt;&lt;BR&gt;어려서부터 농사일을 거들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농사를 지었다는 임우택 씨(64)는 농사일이 싫어서 열아홉 때 서울 있는 공장에서 2년간 일을 했다. &lt;BR&gt;&lt;BR&gt;&lt;BR&gt;“그때는 잠도 안 재우고 일을 시키더구만. 난 원래 잠이 없어서 좋았지. 거기서 모은 돈으로 낙농을 했는데 3년째에 폭삭 망했어. 그때 빚이 지금까정 이어지네.”&lt;BR&gt;&lt;BR&gt;&lt;BR&gt;그래도 예전에는 농사짓기가 나았다. 공무원 하다가 농사짓는 친구도 있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호시절인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추진되면서 급속도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lt;BR&gt;&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258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3/3/35_35__75.jpg&quot; width=5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BR&gt;“농사지으면서 밭떼기 한번 갈아엎지 않은 사람 없을 거여. 그 심정이야 말로 못하지. 자식 농사라고 농사가 애 키우는 거랑 하나 안 달러. 벼는 농사꾼 발자국 소리 듣고 큰다고 안 혀? 고렇코롬 키운 걸 갈아엎어 봐. 소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여. 예전에는 소 한 마리면 300만 원 넘던 시절도 있었는디. 요새는 사료 값이 하도 올라서 아침저녁으로 풀 베는 것이 일이여. 이 볏짚도 한 달 안 돼서 먹어치울 걸.”&lt;BR&gt;&lt;BR&gt;&lt;BR&gt;먹고 사는 게 바빠서 우루과이 라운드 반대 데모는 열심히 못했다는 임씨. “지금은 농민회에서 뭐 하자 그러면 다 혀지. 여든 먹은 노인네들도 다 나갈 거여. 지금은 정부에서 하자는대로 하는 사람 없으니께.”라며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한 10년만 지나면 농사지을 사람도 데모할 사람도 다 없어지지 않을까 몰라.” 하며 다시 허리를 숙이고 볏짚을 끌어 모은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gt;우리에게 농촌은, 땅은 무엇인가&lt;/B&gt;&lt;BR&gt;&lt;BR&gt;&lt;BR&gt;10년. 2013년부터 보리수매가 중단되고 그 다음해부터는 농업용 면세유 지원제도도 없어진다. 그리고 2015년은 쌀이 전면 개방되는 해이다. 지난 20년 만에 농지 25%가 사라졌다. 직불금 문제를 담은 그 문제의 감사원 보고서에서는 직불금 제도개선과 함께 우리나라 농지를 더 줄여야 한다는 권고도 들어있다고 한다. &lt;BR&gt;&lt;BR&gt;&lt;BR&gt;취재를 마치고 올라오려다 이석하 부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는 광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농사를 지으려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보기 드문 젊은 농사꾼이다. 영광에서 굴비 다음으로 쳐준다는 대합조개 한 접시에 소주 한 병을 놓고 마주 앉았다. &lt;BR&gt;&lt;BR&gt;&lt;BR&gt;“농민운동 할 생각은 없었어요. 89년에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학생운동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농민회는 내려와서 우리 마을에 골프장이다, 쓰레기 처리장이다, 그런 거 반대하면서. 그리고 쌀값 문제 심각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도와주다가 한발 한발 빠져든 거죠. 그냥 나는 농촌에 살아야겠다, 농사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는 정말 여기를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고등학교를 광주로 가니까 도시에서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대학 다니면서도 항상 졸업하면 농사지으러 가야지 했죠.”&lt;BR&gt;&lt;BR&gt;&lt;BR&gt;농사를 짓던 어머니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읍내에서 약재사를 하던 큰 형도 극구 말렸다. 결국 형과는 몇 년 동안 말도 안 하는 지경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그는 아버지로부터 통장까지 넘겨받고 어엿한 전업농이 되었다. &lt;BR&gt;&lt;BR&gt;&lt;BR&gt;“농사일 힘든 거야, 그만큼도 땀 안 흘리고 먹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땀 흘리면서 일하고 일 마치고 함께 술 한 잔 하는 게 사는 맛이죠. 또 곡식 여무는 거 바라볼 적에, 추수할 때 뿌듯하고. 그런데 부모 마음이 다 자식 잘 되었으면 하듯이 농사지으면서 요개 잘 됐으면 하는데 만원 받을 게 천원 받으면 왠지 뭐 잘못 한 거 같고, 그게 마음이 아프죠.” &lt;BR&gt;&lt;BR&gt;&lt;BR&gt;현실이 암울하고 미래가 어둡다지만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는 게 세상이치”라는 그 믿음이 그를 지탱하는 힘인 듯하다. “SF영화에서처럼 하루에 요만한 알약 하나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같은 별을 발견해서 거기서 식량이 쏟아지지만 않는다면야” 농사짓는 일은 없어질 수는 없고 농사를 짓는 한 “농민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게 농민운동”이라니 말이다.&lt;BR&gt;&lt;BR&gt;&lt;BR&gt;술자리가 무르익어 흰소리도 나올 무렵 영광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그의 선배가 합석을 하게 되었고 3년을 끌어온 끝에 내년 2월 폐교하기로 결정이 났다는 대마서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오면서 화제는 자연스레 농촌의 아이들로 번져갔다. 국제 결혼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IMF에 직격탄을 맞아 가정이 깨지고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들. 한 편에서는 학생 수가 모자라 문을 닫는 학교가 생기고 다른 한 편에서는 전혀 새로운 성장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학교로 밀려들고 있다. &lt;BR&gt;&lt;BR&gt;&lt;BR&gt;“농촌은 도시 사람들 먹거리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에요. 이 아이들이 그나마 공동체가 남아있는 여기가 아니었다면 다 어디로 갔겠어요.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들마저도 돌아가시고 나면 걱정이죠. 별로 먼 이야기도 아니에요.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인데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아무런 뒷받침도 되지 않는 농촌에서 이 문제는 그저 방치되고 있어요.”&lt;BR&gt;&lt;BR&gt;&lt;BR&gt;5년 뒤 식량폭동을 우려하는 농민운동가처럼 선생님은 5년 뒤에 우리사회와 교육현장이 마주해야 할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석하 부장은 “이거야 말로 르포꺼리 아니에요?”하며 취재방향을 돌리라고 농담을 건네는데 내게는 취기가 싹 가시는 얘기다. 취재를 하며 나 또한 농촌을 식량이 생산되는 거대한 공장쯤으로 여겼던 것은 아닌가. &lt;BR&gt;&lt;BR&gt;&lt;BR&gt;삶의 현장이 투자의 대상, 무엇을 투입하면 그 무엇 이상의 성과가 나와야 하는 공간으로 되는 순간 쌀 직불금 파문도, 그 근본원인으로 지목되는 부재지주의 문제도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에 식량이 부족하면 다른 나라 땅에 식량기지를 세우면 된다는 생각, 석유도 그랬으니 식량 때문이라면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른다. 주식과 펀드가 반 토막이 나기 전부터 노동의 대가가 절반으로 줄어버린, 그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마저도 절반이 되어버린 농민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 이름만 달리하는 반쪽짜리들이 얼마나 더 쓰러 넘어져야 이 파렴치한 욕망의 수레바퀴가 멈출 것인지 누가 귓뜸이라도 해줬으면 싶다.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448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3/3/35_76.JPG&quot; width=3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448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3/3/35_77.JPG&quot; width=3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DIV&gt;&lt;!-- 본문 끝 --&gt;
&lt;DIV id=news-view-name&gt;&lt;A href=&quot;javascript:pageScrollToTop()&quot;&gt;&lt;/A&gt;&amp;nbsp;&lt;A href=&quot;http://esaram.org/&quot;&gt;&lt;/A&gt;&amp;nbsp;&lt;A href=&quot;http://www.esaram.org/2008/webbs/list.php?board=esaram_39&amp;amp;page=&quot;&gt;&lt;/A&gt;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35호 (2008년 11-12월)&lt;/DIV&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24546</link>
<category>세상을두드리는사람</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Sun, 21 Dec 2008 23:21: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세상이 깜박한 사람들, 광장에 서다</title>
<description>&lt;DIV id=news-view-subtitle&gt;세상이 깜박한 사람들, 광장에 서다 &lt;BR&gt;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만난 10대 청소년들 &lt;BR&gt;&lt;BR&gt;
&lt;DIV id=news-view-content&gt;‘촛불의 사회학’, ‘촛불의 정치학’이라 불릴만한 이야기들이 책 몇 권은 될 법한 분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집회현장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지면을 넘어 온오프의 경계를 허물고 광장을 뒤흔든다. 관련된 영상들로 독립영화제를 열어도 넉넉할 것이고, 촛불이 못마땅한 이들의 헛다리짚기를 소재로 개그콘서트를 열어도 몇 회 분량은 거뜬할 것이다.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267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1/1/po002.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BR&gt;그 중 단연 주목받는 주인공을 꼽으라면 역시 10대 청소년들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 5월 2일 이후 각종 언론은 10대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기에 여념이 없었다. 누구는 이들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웹2.0에 비유해 ‘2.0세대’라 호명했고, 어떤 이는 인터넷으로 의식화하고 휴대전화 문자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며 감격했다. 앞으로도 한동안 각종 분석과 진단이 난무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 아리송한 것은 이른바 보수든 진보든 매한가지 아닐까? 한 청소년은 지금의 현상을 보고 “기성세대가 안쓰럽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마이크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해온 기성세대에게 돌려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지난 6월 5일 72시간 연속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첫날 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lt;BR&gt;&lt;BR&gt;&lt;B&gt;깜박한 인간에서 촛불소녀로&lt;/B&gt;&lt;BR&gt;&lt;BR&gt;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세계가 ‘깜박’한 인간”이었다.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조치에 대해서도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정작 그들의 의사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본고사가 학력고사로 바뀔 때도, 학력고사가 수능시험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복이 없어질 때도, 다시 부활했다며 입으라고 할 때도 당사자의 의견 따위는 없었다. 묵살된 것이 아니라 의견자체가 있을 수 없는 집단이 학생이고 또 10대 청소년이었다. &lt;BR&gt;&lt;BR&gt;그러나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는 10대들은 당돌하고 거침이 없는데다가 재기발랄하기까지 하다.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는 그들의 얼굴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 넘쳐난다. 그 활력이 “이명박은 땅 파지 말고 귀를 파라!”라거나 경찰 살수차가 뿜어내는 물대포에 대항해 “이왕이면 온수를!”이란 발칙한 구호들을 만들어낸다. 이날 느닷없이 등장한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협회’가 시청광장에서 ‘북파공작 특수임무 전사자 추모제’ 전야행사를 여는 바람에 촛불집회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광장에 스스로 갇힌 사람들과 광장에서 나와 거리를 광장으로 만든 사람들. 저녁 8시쯤 시작된 본행사가 마무리되자 사람들은 여느 날처럼 행진에 나섰고 10시가 가까워지자 명동에서 종로를 지난 대열이 다시 광화문 사거리로 모여들었다. 다음날이 공휴일이어서인지 예상보다 많은 청소년이 집회에 참여했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었다.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267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1/1/po003.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지난 5월 2일 첫 집회부터 참여했다는 조한영(가명, 고1)양은 스스로가, 그리고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어요. 완전 감동이었죠. 나중에 첫 번째 거리 행진 때도 있었는데 조금 놀랐지만 재미있었어요.” 서울 영등포에서 학교를 다니는 차경민(가명, 고1)군은 기성세대가 너무 무관심하다고 성토한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다 무관심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죠. 인생도 오래 남았고 제일 먼저 학교급식에 나올 거고.” 경민 군의 친구는 옆에서 이 정부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영어몰입 어쩌고 하더니 번역도 잘못하고. 잘못한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협상 끝나니까 예전에 반대하던 농수산부(농림수산식품부)인가랑 조중동이랑 다 잘했다고 그러는데 정말…. 저 군복 아저씨들(특수임무수행자협회)도 불쌍하죠. 근데 이명박이 진짜 시켜서 저런 거예요?” &lt;BR&gt;&lt;BR&gt;어느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인터넷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며 의식화된 이들에게 나이와 세대 구분은 무의미할 것 같다. 정보와 인식의 힘은 놀랍다.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세력의 대응 역시 실수라기보다는 인식의 한계이지 싶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진출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삼삼오오 달려가는 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꽤나 눈에 띈다. &lt;BR&gt;&lt;BR&gt;“누가 배후조종 한다고 그게 되겠어요? 우리를 정말 너무 모른다는 거죠.” 오늘 소풍을 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김성연(가명, 고3)양은 특히 5월 31일 경찰의 물대포와 특공대 투입은 “열 받을 대로 받은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은 꼴”이라며 분개했다. &lt;BR&gt;&lt;BR&gt;아는 게 없어서 인터뷰를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정작 인터뷰가 시작되자 말문이 터진 성연 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봤다. “공부는 고3의 숙명이죠.” 우문현답에 옆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아침 7시에 집을 나가 12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는 성연 양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너무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인간인데 아프거나 피곤하면 쉬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빠질 수 있는 쿠폰을 학기 초에 나눠주는데 그게 딱 한 장인 거예요. 너무 하지 않아요?” 정부도 정부지만 학교도 문제가 많지 않느냐는 유도질문에는 “교장실 앞에 건의함이 있는데 어디 형광등이 나갔다 그런 거 적으면 바로 바꿔주죠. 그 정도에 만족하며 다녀야죠.”라며 이번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lt;BR&gt;&lt;BR&gt;부천에서 왔다는 조성훈(가명, 고3)군의 하루도 다르지 않다. 고3이 되자 야간자율학습이 너무 심하다며 특히 잠을 많이 못 자는 게 가장 힘들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는 구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한 학생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답답하다. “학교를 그만둔다면 모를까, 안 그러면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찍어내듯 창의력은 완전 무시하고 공부만 시키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래도 살려면 학교 다녀야 하고 선생 말 들어야 하고 그렇죠.” &lt;BR&gt;&lt;BR&gt;성훈 군의 친구는 고등학교 올라와서 학교폭력을 경험했다.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전학 갈까 생각도 했지만 도망치는 거 같아서 참았어요. 지금은 그런 애들 보면 그냥 불쌍해요. 나중에 깡패 밖에 더 되겠어요?” 그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동안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lt;BR&gt;&lt;BR&gt;&lt;B&gt;“공부는 숙명!”&lt;/B&gt;&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400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1/1/po004.jpg&quot; width=267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BR&gt;자정이 가까워오자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울시청 광장까지는 거대한 놀이판으로 바뀌었다. 한홍구 교수 말마따나 ‘국민M.T.’답게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기차놀이를 하는 사람들. 드문드문 텐트까지 쳐있는 것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풍물놀이 판이 차려지고 통기타와 바이올린, 트럼펫이 모여 시민악단 공연이 즉석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또 수십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소규모 자유발언대가 마련되어 열변을 토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의 통일성인지 획일성인지가 왠지 두렵고 못마땅했던 사람으로서 이 난장판이 반갑기 그지없다. &lt;BR&gt;&lt;BR&gt;“평화로운 거 같아요. 자유롭구요.” 상대적으로 호젓한 청계광장에서 커플로 보이는 한 쌍의 청소년에게 다가갔다. 오늘 처음 나왔다는 김아람(고2)군은 인터넷이나 TV에서는 못 보던 모습이라 더욱 신기하고 인상적이라며 “재협상이든 뭐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뭔가 될 것”이라고 희망한다. 아람 군의 여자친구인 이소연(고2)양은 오늘이 세 번째로 자기가 아람 군에게 ‘짱’이라며 가보자고 꼬셨단다. “여기서는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도 서로서로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우리들도 존중을 해주는 거 같아요. 여기 왔다가 집에 가거나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 만나면 좀 이상하죠.” &lt;BR&gt;&lt;BR&gt;“이렇게 모이면 반드시 정부가 재협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낙관하며 “또 열 받는 일이 생기면 꼭 다시 거리로 나오겠다.”고 다짐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없는, 그저 대학과 사회로 가기 전에 지나야 하는 마지막 터널일 뿐이다.&lt;BR&gt;&lt;BR&gt;&lt;B&gt;“아무도 꿈을 키우라 말하지 않죠”&lt;/B&gt;&lt;BR&gt;&lt;BR&gt;다시 광화문 사거리. 밤이 깊어 제법 쌀쌀해졌는데도 대학생들이 둘러앉아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하며 쥐잡기 놀이에 열중이다. 그 한 편에서 광화문 쪽을 등지고 휴대전화기로 기념 촬영을 하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에서 중학교를 다닌다는 그들(중3)도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일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다 된다. “고등학교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버텨야죠, 뭐.”라고 답하는 그들에게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돈도 잘 벌 거 같고 일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어떤 대기업인지,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빈 칸으로 남아있다. “경찰이 되어서 범죄를 줄이고 싶어요. 흉악범이 너무 많아요. 특히 청소년 성범죄.” 경찰이 됐다가 촛불시위 막으러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시위 막는 경찰은 안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경찰이나 군인은 시키면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하자 혼자 생각에 잠기는 눈치다. &lt;BR&gt;&lt;BR&gt;자리를 옮겨 서대문 방향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컵라면을 먹는 이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니 슬그머니 캔 맥주를 감추며 겸연쩍은 웃음을 보인다. 부천에서 정보산업고를 다니는 김윤성(가명, 고2)군은 “인터넷에서 보니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나오는 거 보고 부끄러워서” 나오게 되었다. 실업계이니만큼 공부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인문계 간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정보산업고 다닌다고 그러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죠.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한식 요리사가 꿈인 윤성 군은 언젠가는 대학을 갈 생각이다. “집안 형편도 그렇고 해서 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 갈 생각은 없어요. 요리사 되고 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내 돈으로 가려구요.” 시선이 대학을 넘어 사회에 가 있기 때문일까. 고민은 현실적이고 깊이가 있다. &lt;BR&gt;&lt;BR&gt;지난해부터 하이테크 특성화 학교가 된 이후 갑자기 두발단속이 시작되었다는 윤성 군의 친구는 “학교가 좋아지는 거는 좋지만 학생들 의견을 무시하는 거는 열 받는다.”라며 요즘 학교 다니기가 점점 싫어진다고 한다. “선생님이, 항의를 하려거든 학부모들에게 해라.”라는 말에 할 말이 없다. “결국 참고 다니든가 때려치우든가 둘 중 하나인데 알아서 해라라는 거죠.” 그의 꿈은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것. “돈은 뭐든 하면서 벌고 그걸로 여행 다니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어요. 모르죠. 나중에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부모님을 보면 점점 한국이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267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1/1/po005.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시시때때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지만 벗어날 용기도 없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 그냥 무기력하게 견디는 거죠.” 조민주(가명, 고2)양은 촛불집회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비를 털어 음료수 봉사를 하고 그런 것에 감동을 받는다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냥 친하게 수다는 떨지만 그걸로 끝이죠. 다들 대학가면 지금보다 자유로워지니까 그거 하나 보고 다니는 거예요.” 민주 양의 꿈은 한비야와 같은 세계적인 자원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것이다. “저는 제 꿈을 꼭 이루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요. 비현실적이래요. 누구도 네 꿈이 뭐냐? 꿈을 키우고 이루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옆에 있던 김민경(고3)양은 보컬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서 실용음악과에 갈 생각이다.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직원 같은 안정된 직업이 인기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을 거 같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대학 가면 현실적이 되어서 바뀔지도 모르죠.”라며 여운을 남긴다. &lt;BR&gt;&lt;BR&gt;&lt;B&gt;“학교는 죽었다”&lt;/B&gt;&lt;BR&gt;&lt;BR&gt;세상 기준으로 보면 좀 특별한 10대들도 촛불집회에 열성적인 참여자다. 지난 5월 17일 등교를 거부하자는 문자가 퍼지면서 학교 안팎의 ‘어르신네들’을 잔뜩 긴장시킨 ‘5.17 청소년공동행동의 날’ 집회. 그날 사회를 본 한지혜(17세)양은 지난 4월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청소년이다. “해금 연주자가 되고 싶어서 해금을 배우고 있었는데 담임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저질 예술가가 된대요. 나는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싶은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설득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도 학교 그만두려고 한 적 있는데 그때 그만뒀으면 배추장사나 하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lt;BR&gt;&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300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1/1/po006.jpg&quot; width=400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지혜 양은 중학교 때부터 한 청소년 교육공동체의 인문학 교실에 나가기도 하고 인권캠프에도 참여하면서 학교 밖 세상을 엿보게 된 드문 경우다. “학교 밖에서는 인권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 안에 들어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일단 머리부터, 두발부터 다 하나하나 통제를 받는 거잖아요. 학교에 있으면서 매순간순간 하나하나 내가 인권침해 당하는 일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느껴왔는데 뭘 할 수 있을까… 학교 밖에 나가면 다른 거,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다니는 게 정말 싫었어요.” 지혜 양은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 청소년 인권단체 회원들과 일요일에 학교에 가서 두발자유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이런 데 더 많은 친구들이 나오고, 학교를 안 견디고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그냥 참으면 안 돼!’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너무 쉽지 않다는 거 알기 때문에.” 그러나 그 쉽지 않은 결정에 부모님의 지지까지 있으니 지혜 양은 매우 “복 받은” 경우가 아닐 수 없다. &lt;BR&gt;&lt;BR&gt;한편 5월 17일 집회에서 지혜 양과 함께 사회를 받던 또또(별칭, 18세)군은 좀 더 단호하다.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교사가 체벌하는 거는 정말 끔직한 짓인데도 교사나 학생들이 같이 웃으며 즐기는 분위기죠. 그건 미친 거죠. 공부를 잘 해서 학교 다니기가 즐겁다는 애들도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애들이 있다면 그것도 미친 거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대학 가려는 목표 아래서 다 같이 미친 채로 살아가는 데가 학교 아닌가요?” &lt;BR&gt;&lt;BR&gt;중학교 도서반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된 한겨레21, 거기서 만나게 된 평택 대추리. 또또 군은 직접 대추리를 방문해 지킴이 활동을 한 ‘행동파’다. 그런 그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또래 친구들 사이의 성적 농담이나 성희롱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희 국어 선생님이 젊은 여선생님이었는데 되게 많이 성희롱을 당하셨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되게 노골적이었고 선생님은 그냥 참는 거죠. 남자애들이 주로 놀려먹기 좋아하는 여자선생님 스타일이 결혼 안 하고, 엄하기 보다는 잘해주시고,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서 학생들에게 그나마 잘 해주고 존중해주는 선생님들이죠.” 그런 학생들, 두발자유나 인권에 관련된 이슈에는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이렇게 촛불을 들게 된 까닭은 그에게도 풀어야 할 숙제다. “솔직히 정확한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학교자율화 문제도 컸을 거고 미디어의 힘도 있을 거고. 어쨌든 마음대로 청소년을 해석하는 거 보면 기성세대들이 솔직히 안쓰러워요. 집회하면 퇴학도 가능하도록 교칙에 되어있고, 밤10시 넘으면 귀가하라고 떠들고. 그런 기성세대들의 보호주의나 미성년자니까 빨리 석방하라고 하는 범국민대책위나 비슷하죠. 애들이 뭘 안다고 잡아 가냐, 하는 거랑 니들이 뭐 안다고 촛불을 드냐, 하는 거랑 같은 태도잖아요.” 한 번은 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을 참여했는데 사회자가 청소년들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나쁜 법인지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다는 말에 정말 황당했다고 하며 청소년 뒤에 ‘군’과 ‘양’을 붙이는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lt;BR&gt;&lt;BR&gt;&lt;B&gt;체념과 무기력의 벽 앞에서&lt;/B&gt;&lt;BR&gt;&lt;BR&gt;10대 청소년을 학생과 탈학교 청소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비행과 선행 청소년으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턱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10대에게 학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엇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학교는 미쳤다는 탈학교 청소년의 말에 학교에 있는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lt;BR&gt;&lt;BR&gt;“안 나오면 양심에 걸릴 거 같아서” 자주 나온다는 최미솔(고2)양은 “미쳤다기보다는 죽은 거 같은 데요”라며 더 많은 친구들이 집회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학교에서의 분위기는 정말 다르다고 한다. “솔직히 여기 나오는 애들은 아주 소수예요. 한 반에 대여섯 명 정도. 다른 친구들은 별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더라도 왜 그런데 가냐? 그런다고 뭐가 바뀔 거 같냐? 그런 애들이 더 많죠.” 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같이 나온 보이저(닉네임, 고2)양도 “우리 세대가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별로 안 해요. 이명박이 0교시 부활시키고, 우열반 만들고 그러면 열 받고 촛불 들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걸 막을 수 있을 지는 자신이 없다고 한다. &lt;BR&gt;&lt;BR&gt;5월 2일 첫 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후 지금은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에 가입해서 활동을 막 시작한 엠건(고3)양도 비관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폭력을 가르치고 억압을 가르치고. 학교가 그러니까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폭력적이 되는 게 아닐까요? 괴롭히는 애들은 소수예요. 소수인데 나머지가 방관하니까 그게 더 문제죠. 밖에 나오면 막 이러고 있다가도 학교만 가면 에너지가 뚝뚝 떨어져서 축…. 그런 거 같아요. 담임선생님은 체력이 달릴 때라고 그러는데 제 생각에는 체력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지금의 학교라면 없어지는 게 낫겠죠, 차라리. 다 뜯어고쳐야 되는데 엄두가 안 나고.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청소년은 위치가 약자거든요. 하지만 이번 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걸 통해서 우리들의 권리의식을 높이고 그러면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또또 군도 “한계는 있지만 그냥 복종만 하지는 않는다는 거를 보여주는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희망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다. “장학사가 나와서 감시를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오는 청소년이 있잖아요. 시스템이 청소년을 다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요? 소수이지만 그래도 촛불집회에 왔다 간 청소년들이 수만 명은 될 거예요. 적은 수는 아니죠.” &lt;BR&gt;&lt;BR&gt;맞는 얘기다. 하지만 자꾸 청소년들 스스로의 입에서 자주 등장했던 ‘무기력’이란 낱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것이 결국은 강한 사람들, 구조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10대들의 학교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꾸 학교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학교는 땡땡이를 쳐도 잡으러 오지는 않는다. 다음날이면 제 발로 돌아와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학교는 더 거대한 감옥이고 이 사회는 또 하나의 학교가 아닐까. &lt;BR&gt;
&lt;DIV&gt;
&lt;DIV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quot; align=center&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2 align=center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quot;100%&quot;&gt;&lt;IMG style=&quot;BORDER-TOP-WIDTH: 1px; BORDER-LEFT-WIDTH: 1px; BORDER-LEFT-COLOR: #000000; BORDER-BOTTOM-WIDTH: 1px; MARGIN-BOTTOM: 5px; BORDER-BOTTOM-COLOR: #000000; BORDER-TOP-COLOR: #000000; BORDER-RIGHT-WIDTH: 1px; BORDER-RIGHT-COLOR: #000000&quot; height=400 src=&quot;http://esaram.org/webbs/data/esaram_39/photo/1/1/po008.jpg&quot; width=267 border=0&gt;&lt;/TD&gt;&lt;/TR&gt;&lt;!--
	&lt;TR&gt;
		&lt;TD valign=&quot;top&quot; align=&quot;left&quot; width=&quot;100%-11&quot; style=&quot;font-family:굴림,바탕,돋움;font-size:9pt;color:#333333;line-height:150%;text-align:justify;text-decoration:none&quot;&gt;&lt;IMG src=&quot;http://esaram.org/2008/webbs/skin/_photo/transparent_border/up_arrow.gif&quot; border=&quot;0&quot;&gt;&lt;/TD&gt;
	&lt;/TR&gt;
	--&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한 중년의 남자는 거리에서 “촛불을 처음 들었던 우리 학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끝까지 비폭력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편 불과 며칠 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주최한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보고’ 토론회는 그들이 ‘노동’과 ‘인권’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무색한 상황에서 그저 ‘일하는 기계’로 취급당하고 있음을 증언했다. 또 한편 ‘공부하는 기계’, 우리나라 중고생 중 20%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며, 실제 하루에 한 명 꼴로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lt;BR&gt;&lt;BR&gt;거리에서의 10대와 일터에서의 10대 그리고 학교에서의 10대 청소년들은 다른 이들이 아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너무나 판이하다. 새로운 주체라며 마냥 희망할 수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약자라며 절망할 수도 없는 갈림길에 10대들이 서있다. 2008년 촛불집회가 가능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듯 그들도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짊어진 채 광장이 되어버린 거리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촛불은 아직 켜지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lt;BR&gt;&lt;BR&gt;- 격월간 &amp;lt;세상을 두드리는 사람&amp;gt; 33호 | 2008년 7-8월호&lt;/DIV&gt;&lt;!-- 본문 끝 --&gt;&lt;/DIV&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13252</link>
<category>세상을두드리는사람</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Sun, 20 Jul 2008 18:53: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경제적인 글쓰기?</title>
<description>경제적인 글쓰기? 
&lt;DIV id=news-view-subtitle&gt;이오덕의 『우리 문장 쓰기』(한길사, 1992)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8/0720/kg118152/l9788935600083.jpg&quot;&gt;&lt;BR&gt;&lt;BR&gt;
&lt;DIV id=news-view-content&gt;내 글쓰기 수업에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을 꼽고 싶다. 잘난 척, 고상한 척 하는 글이 아니라 정직한 글, 쉬운 글이 진짜라는 선생의 지론은 『우리글 바로쓰기』와 『우리 문장 쓰기』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우리 문장 쓰기』의 ‘남의 글 고치기’라는 부분에서 선생은 대부분의 잘못은 남의 글을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저지른다고 일침을 놓았다. &lt;BR&gt;&lt;BR&gt;지난 대선 와중에 소설가 이외수도 남의 글에 잘못 손을 댔다가 곤욕을 치렀다. 고치기는 잘 고쳤는데 고쳤다는 자체가 문제가 된 모양이다. 한글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신다”며 이명박 당시 후보가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lt;B&gt;“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lt;/B&gt;란 글귀를 교정을 봐서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발끈한 이명박 지지자들이 이외수의 외모와 사생활까지 거론하며 인신공격에 나섰고 이외수는 급기야 “내가 영어가 아닌 한글로 써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모양”이라며 탄식했다. 몇 달이 지나 내가 가끔 기웃거리는 진보넷 블로그에서도 논쟁이 붙었는데, 한 블로거가 이명박이 싫어도 이런 식은 아니라는 글(htt p://blog.jinbo.net/taiji0920/?pid=1345)을 썼고 거기에 찬반 댓글이 마흔 개가 넘게 달린 것이다. &lt;BR&gt;&lt;BR&gt;젊어서는 산업역군으로 뛰어다니고 늙어서는 국가발전에 헌신하느라 맞춤법에 소홀한 이명박이 아니라 다 영어로 하자면서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는 이명박에게 이외수는 화를 낸 것이고, 초딩들과 븅신, 븅딱하며 채팅질하는 소설가 이외수가 아니라 꼰대처럼 맞춤법 틀렸다고 사람 무시한 문인 이외수에게 그 블로거는 화난 것이니 내보기에는 둘 다 그럴 만하다. &lt;BR&gt;&lt;BR&gt;오히려 나는 &lt;B&gt;“받치겠읍니다”&lt;/B&gt;보다 &lt;B&gt;“모든것”&lt;/B&gt;이 눈에 확 들어오면서, 이 성가신 띄어쓰기를 세종대왕님의 창제정신에 맞춰 아예 무시해버리면 지면도 잉크도 절약이지 않은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든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든, 경 제 만 살 리 면 된 다 니 까 말 이 다. &lt;/DIV&gt;&lt;!-- 본문 끝 --&gt;&lt;/DIV&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13250</link>
<category>달리는 포장마차</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Sun, 20 Jul 2008 18:48:4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책꽂이에 잘못 꽂힌 책</title>
<description>책꽂이에 잘못 꽂힌 책 
&lt;DIV id=news-view-subtitle&gt;리차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의 『미국의 송어낚시』(김상곤 옮김, 비체) &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8/0720/kg118152/l9788992036245.jpg&quot;&gt;&lt;BR&gt;&lt;BR&gt;
&lt;DIV id=news-view-content&gt;월간 &amp;lt;말&amp;gt;지를 경마잡지로 착각했다는 우스개가 있고, 실제로 내 친구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집을 사오라고 동생에게 시켰더니 요리책 코너에서 한참 헤매다 결국 빈손으로 왔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다. 1967년 미국에서 나와 68혁명세대에게 경전처럼 읽혔던 리차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도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서점 낚시 코너에 꽂혔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책이다. 절판되었던 그의 또 다른 작품 『워터멜론 슈가에서』도 얼마 전에 재출간 되었는데, 물론 이 책도 요리책이 아니다. &lt;BR&gt;&lt;BR&gt;당연히 『미국의 송어낚시』는 송어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화자는 송어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송어가 뛰놀던 강을 찾지만, 강은 이미 폐선장으로 변해 있다. 화자는 그 강에서 혹이 달린 12인치나 되는 무지개 송어 한 마리를 낚아 저녁 끼니를 때우고 녹색의 끈적거리는 것들과 죽은 물고기가 둥둥 뜬 온천수에서 질외 사정을 한다. &lt;BR&gt;&lt;BR&gt;미국사회와 현대문명을 콜라쥬 기법으로 풍자한 이 작품은 당시 충만하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과 이상의 묵시록으로 읽히는데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무수한 미국적 은유와 상징으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미국의 송어낚시 읽는 법’이란 글까지 있겠는가.) 브라우티건의 삶도 녹녹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배고픔에 교도소라도 들어가려고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질 만큼 가난했고 결국 1984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의 시신은 한참 뒤에야 발견됐다. &lt;BR&gt;&lt;BR&gt;이제 부양가족도 생기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어 우울한 새해. 왠지 그의 생애와 함께 68혁명의 이상과 꿈도 어쩐지 잘못된 책꽂이에 놓인 책 같아 더 쓸쓸하다. &lt;/DIV&gt;&lt;!-- 본문 끝 --&gt;&lt;/DIV&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kg118152/blog.aspx?id=213249</link>
<category>달리는 포장마차</category>

<author>나무처럼</author>
<pubDate>Sun, 20 Jul 2008 18:47:25 +0900</pubDate>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