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초고는 총선이 끝나자 마자 작성하였으나,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 그만 두었었다. 일단 쓴 것을 버리기도 그렇고, 재미로 보자는 건데 뭐 어떤가 싶기도 해서 조금 손질하여 다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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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났다. 이제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정리를 함으로써,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해 볼 시간이다. 전문가도 아니고 평론가도 아니니, 여기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자 한다. 왜? 그냥, 재미로.
총선 후 정세분석을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의원 수, 특히 선출직 의원의 수만으로 각 당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의 재편된 세력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는 하나, 각 당의 실질적인 지지기반, 즉 잠재되어 있는 힘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 그것은 선출직 의원의 당선이 당파성은 물론이고 지역정서, 선망하는 인물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총선에서 박사모는 친이 계열의 대표주자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통합민주당 후보와 연대를 하기도 하고 유시민, 심지어는 권영길과 강기갑에게 표를 던졌다.
따라서 각 당의 잠재력과 미래를 판단해 보기 위해서는 유권자 개인의 (순수한) 당파성에 따른 선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비례대표 투표율을 기준으로 하고, 이에 더하여 현재 각 당에 소속된 의원 수를 살펴보아야 하며, 그러할 때에야 보다 입체적으로 각 당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그리 거창한 분석은 아니다.)
37.48
대세는 물론 우파의 약진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한나라당의 위세는 총선돌입 초반의 기세에 비해서는 수그러든 편이나, 40퍼센트 가까운 지지를 기반으로 단독으로 과반의석을 점유함으로써 그 위력을 한껏 뽐냈다. 더불어 한나라당 재 입당을 천명하고 있는 친박연대와 한나라당 경향의 무소속 의원들을 고려하면, 한나라당 의원 수는 180명을 넘어 이른바 ‘절대과반’을 쉽게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제 대통령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추인될 조건이 갖추어졌다.
일부에서는 박근혜 계와 이명박 계의 다툼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모든 것에 있어 현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판이다. 한나라당의 다수를 점하게 된 것은 이명박계다. 사고방식도 크게 차이가 없을 뿐더러 세력에서도 밀린다. 따라서 명분만 잘 조정한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박근혜 계도 그리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라지 않던가. 이제 FTA든 대운하든 국민적 여론이 조성되지 않는 한 반대 목소리는 밀어붙이기 불도저의 굉음에 묻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13.18
친박연대와 친박계열의 무소속 의원들은 한나라당 재 입당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한나라당의 필요와 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요구로 결국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13.18퍼센트라는 정당지지율이다. 이것은 순수한 의미에서 박근혜(와 그 계파)에 대한 지지라고 할 수 있다. 친박이지만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을 사람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총 유효투표수의 50퍼센트를 상회하는 친 한나라당 지지표들 중 사분의 일이 넘는 비율이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 지지자 네 명 중 최소한 한 명은 박근혜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투표했다고 할 수 있다. 친박연대가 죽자 사자 박근혜 이름에 매달리고, 한나라당 후보들이 그의 지원유세를 학수고대하게끔 만든 힘의 원천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6.84
20석 가까운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자유선진당은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당의 실질적인 토대는 그리 탄탄하지 않다. 그것은 6.84퍼센트라는 정당지지율에서 알 수 있다. 이회창이라는 전국적인 인물과 노골적인 지역정당 표방에도 불구하고, 자유선진당은 급조 사조직당이라 할 수 있는 친박연대에 비해서도 절반 정도의 정당지지표를 받는데 그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충청도 전역을 석권하지도 못하여서, 충청남도와 대전에서 30퍼센트 이상의 정당지지표를 획득한 반면, 충청북도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훨씬 못 미치는 13퍼센트 선의 득표를 하고 있다. 즉 이 당은 충남과 대전지역에서 겨우 세를 보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 약화라는 점에서는 다행이고 자유선진당 입장에서는 불행하게도, 이러한 허약한 지지기반은 정세에 따른 타 당의 공략에 쉽게 무너진다. 김종필의 자민련이 보여준 캐스팅보트 역할은 이른바 충청도 지역정당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이며, 더불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다른 두 지역정당의 역학관계 속에서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이다.
25.17
통합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나름 선전한 당들 중 하나이다. 대선 직후 한나라당의 위세를 생각한다면, 80여 석이라는 숫자가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나쁜 성적인 것만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전라도 지역을 확실하게 석권함으로써, 이 지역 맹주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지역주의 정당이라는 이름을 다시 전면에 붙이게 되었지만, 지역기반이 곧 정치기반인 현재 한국정치구조에서, 전라도 지역에 대한 분명한 지배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재기의 발판을 굳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큰 소득들 중 하나이다.
지역주의 정당체제의 확립은 한국정치발전이라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면이나, 민주당 (그리고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기회가 주어지면 중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고정되고 확실한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결코 버릴 수 없는 보물이다.
25.17퍼센트라는 정당지지율은 민주당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민주당을 지지할 절대지지 층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즉, 적어도 적극적 투표인 4명 중 1명은 민주당에 대한 절대적 지지자라는 말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중 다수는 지역주의에 근거한 당파성을 가진 유권자들일 것이다.
2.59
그 외로 살펴볼 흥미 있는 정당으로 기독당이 있다. 개신교만도 1000만 신도를 자랑하는 한국 기독교를 생각할 때 기독당 정당지지율인 2.59퍼센트는 예상 외로 낮은 수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로 대통령이니, 고소영 인맥이니 하는 말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정치엘리트들 중 다수는 종교 엘리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기독당이라는 종교정당의 필요성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유권자들이 정치와 종교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생각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글쎄, 개인적으로는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 한국정치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기독당의 미래는 그리 밝다고 할 수 없다.
대세는 우파, 현재의 성공은 여전히 지역주의
이번 총선은 한국 사회의 주류는 우파이며, 우파가 지배하는 한국정치구조의 근간은 지역주의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을 포함한 우파 정당들이 이번 총선에서 얻은 표는 총 유효득표수의 90퍼센트를 넘는다. 좌파의 앞날은 여전히 순탄치 않다.
지역주의 또한 해결되지 않았으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두 당이 거대정당으로 지배하는 체제가 굳어져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악화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두 당이 지배하는 한국정치구조 속에서 지역주의 청산은 요원한 일이 되었다.
한가지 긍정적인 면으로는 지역주의의 종속요소이긴 하지만, 일종의 정책대결이 하나의 중요한 변수로서 부각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민주화 시기 이전까지 한국 정치가 지역주의와 이념(반공/독재 대 민주화)의 틀 속에서 움직였다면, 김대중 정권 이래로는 지역주의와 정책대결(대표적으로, 경제 살리기) 구도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5.68
이번 총선에서 좌파 3당(진보신당, 민주노동당, 한국사회당)은 다 합하여 채 10퍼센트가 안 되는 정당지지표를 획득하였다. 이것이 좌파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 민주노동당은 예상외의 선전을 하였다. 비례대표 3명은 물론이고 선출직에서 2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것은 이 당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아 수도권 지역에서의 득표율은 그리 높지 않으며, 전라도와 경상남도, 그리고 울산과 같은 특별한 지역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또한 대도시 보다는 그 밖의 지역에서 얻은 표가 더 많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민주노동당의 주요 지지계층이 있는 곳은 대도시보다는 지방, 수도권보다는 수도권 외 지역, 그리고 몇몇 특정 노동자 밀집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민노총과 전농 등 민노당 내 주요 지지세력의 근거지와 일치하는 결과이며, 더불어, 앞으로 민노당의 정책방향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2.94
선출직에서는 물론이고 비례대표에서도 진보신당은 아깝게 원내진출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그리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짧은 유세기간과 좌파 정당에 대한 일반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감안할 때 수도권 지역에서 경합을 벌일 수 있었다는 것과 3퍼센트 가까운 정당 지지율은 그리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결과이다.
정당지지율을 보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민주노동당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서, 지방보다는 수도권 지역, 지역보다는 대도시에서 보다 많은 표를 얻고 있다. 진보신당이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사항이라 할 수 있겠다.
0.20
안타깝게도 한국사회당은 더 이상 당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임을 드러내었다. 필요하고 충분히 의미 있는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이 뿌리를 내리기에는 한국 정치토양이 여전히 매우 척박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선거였다.
대안을 심각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자리잡는 좌파, 앞으로의 성공은 정책
전반적으로 보아 이번 총선에서 좌파가 거둔 성과를 비관적으로만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지난 총선에서 얻은 지지율에 비해 지지 층이 눈에 띄게 감소하였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성장위주 경제정책, 이른바 ‘진보정권’ 심판론 등을 감안할 때 9퍼센트 정도의 득표율은 확실한 좌파지지 층으로 생각할 수 있는 수치이다.
유권자 10명 중 1명, 많지 않다. 하지만 좌파가 다시금 도약을 하는 밑거름으로는 충분하다. 9퍼센트라는 판돈을 어떻게 굴려서 더 불릴 것인가 하는 것이 좌파정당들 앞에 놓여있는 과제이다. 이들이 이 수치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구조가 지역주의 구조에서 계급이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쉽지 않은 험난한 길이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의 종속변수이기는 하나 정책대결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정치의 구조적 변화가능성을 보여주는 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름길은 없다. 보다 쉽고 보다 유익하며 보다 다가서는 정책, 즉 정면 돌파만이 좌파정당들이 가야하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