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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깃발없는 군대</title>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 </link>
<description>이윤석</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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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Date>Fri, 01 May 2009 10:13: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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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윤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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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깃발없는 군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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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1988년부터 번역 … “칸트는 자기 사상대로 살다간 巨人”</title>
<description>&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3 width=60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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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lass=view_t&gt;1988년부터 번역 … “칸트는 자기 사상대로 살다간 巨人” &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view_sub_t&gt;[인터뷰] 칸트 3大 비판서 완역한 백종현 서울대 교수(철학)&lt;/TD&gt;&lt;/TR&gt;
&lt;TR&gt;
&lt;TD height=5&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lef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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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top.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
&lt;TD bgColor=#efefef&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2009년 06월 15일 (월) 14:32:05&lt;/FONT&gt;&lt;/SPAN&gt;&lt;/TD&gt;
&lt;TD bgColor=#efefef align=righ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 FONT-SIZE: 8pt&quot;&gt;&lt;FONT color=#666666 face=돋움&gt;오주훈 기자&lt;/FONT&gt; &lt;A href=&quot;http://www.kyosu.net/news/mailto.html?mail=aporia@kyosu.net&quot;&gt;&lt;IMG border=0 src=&quot;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btn_sendmail.gif&quot;&gt; &lt;FONT color=#666666 face=arial&gt;aporia@kyosu.net&lt;/FONT&gt;&lt;/A&gt;&lt;/SPAN&gt;&lt;/TD&gt;
&lt;TD width=5&gt;&lt;IMG src=&quot;http://www.kyosu.net/image2006/default/newsdaybox_dn.gif&quot; width=11 height=25&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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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id=articleBody class=view_r&gt;
&lt;P&gt;
&lt;TABLE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320 align=righ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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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width=10&gt;&lt;FONT color=#800000&gt;&amp;nbsp;&lt;/FONT&gt;&lt;/TD&gt;
&lt;TD align=middle&gt;&lt;FONT color=#800000&gt;&lt;IMG border=1 alt=&quot;&quot; src=&quot;http://www.kyosu.net/news/photo/200906/18464_4700_3239.jpg&quot;&gt;&lt;/FONT&gt;&lt;/TD&gt;
&lt;TD width=10&gt;&lt;FONT color=#800000&gt;&amp;nbsp;&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10&gt;&lt;FONT color=#800000&gt;&amp;nbsp;&lt;/FONT&gt;&lt;/TD&gt;
&lt;TD&gt;&lt;FONT color=#800000&gt;백종현 서울대 교수&lt;/FONT&gt;&lt;/TD&gt;
&lt;TD width=10&gt;&lt;FONT color=#800000&gt;&amp;nbsp;&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color=#800000&gt;최근 백종현 서울대 교수(철학)가 칸트의 『판단력 비판』(아카넷, 2009)의 번역본을 선보였다. 이로써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에 이어 3대 비판서가 완역된 셈이다. 서양 철학사의 거목인 칸트의 주요 저서가 새롭게 번역이 됐다는 점에서, 이번 완역은 일종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mp;lt;교수신문&amp;gt;은 이번호에서 칸트의 3대 비판서의 새로운 번역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완수한 백종현 교수를 인터뷰했다. 백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칸트 철학의 무게와 원전 번역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봤다.&lt;/FONT&gt;&lt;/P&gt;
&lt;P&gt;&lt;FONT color=#800000&gt;&lt;/FONT&gt;&lt;/P&gt;
&lt;P&gt;&lt;STRONG&gt;△이번 판단력 비판 번역 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오랜 만에 언론에서 칸트의 이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칸트가 서양철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한국의 서양철학 연구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언급해주시죠.&lt;/STRONG&gt;&lt;/P&gt;
&lt;P&gt;&lt;BR&gt;““칸트(Immanuel Kant, 1724~1804)를 비판하거나 추종하면서 철학할 수는 있어도, 칸트를 모르고서는 철학할 수 없다”, “칸트는 철학사상계 중앙의 대저수지이다. 칸트 이전의 모든 사상들이 칸트 안에 모여 있고, 칸트 이후의 모든 사상은 칸트로부터 흘러나왔다.” 이러한 평가에서 보듯 서양철학사에서 칸트 사상의 중요성은 널리 인식돼 왔습니다. 오늘날 서양사상의 원류를 고대 그리스-로마 사상, 기독교 사상, 수학적 자연과학 사상 등 셋이라고 볼 때 칸트 철학이야말로 이 세 물줄기의 대(大)합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20세기 초에 칸트를 “근대 서양에 다시 태어난 공자(孔子)”라 평하면서, 그 친화성을 강조했고, 한국의 서양철학 수용사에서도 가장 오래고 가장 넓게 이루어진 것이 칸트연구입니다. 이정직(李定稷)이 쓴(1903?1910경) 「康氏[칸트]哲學說大略」은 한국 사람이 쓴 최초의 서양철학에 대한 글로 간주되고 있고,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칸트전공 박사만 해도 100명이 넘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한국철학계의 기본적인 철학 개념들이 칸트를 매개로 형성됐고, 그의 지식이론, 인간존엄 사상, 미학이론, 세계평화 사상, 자유와 평등의 법사상은 현대 한국 사회문화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칸트(Kant) 선대의 성 표기가 ‘Cant’이었던 점을 빗대어 “Kant는 Can&apos;t다’고 촌평하는 이들이 있듯이, 그리고 대개의 고전이 그러하듯이, 칸트는 시대와 문화 의식에 따라 언제나 새롭게 해석됨으로써만 그 생명력을 이어갈 것입니다. 한국어 역주 작업도 그 일환이라 봅니다.”&lt;/P&gt;
&lt;P&gt;&lt;BR&gt;&lt;STRONG&gt;△칸트 3대 비판서 각각의 핵심 테제와 상호 간의 관계가 궁금합니다.&lt;/STRONG&gt; &lt;/P&gt;
&lt;P&gt;“칸트 철학의 궁극적인 물음은 “인간은 무엇인가?”라 할 수 있습니다. 칸트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인간이 추구하는 眞·善·美·聖이라는 궁극적 가치의 의미를 밝혀냄으로써 얻고자 합니다. 그래서 칸트는 우선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세 물음을 제기하는데, 『순수이성비판』은 첫째 물음, 곧 진리 문제를 주제적으로 다루며 그 결실이 칸트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이라 하겠고,『실천이성비판』은 둘째 물음, 곧 善의 문제를 주제적으로 다루는바 그 결실이 그의 윤리학이고,『판단력비판』의 후반부는 다른 종교철학 저술과 함께 셋째 물음, 곧 최고선 및 聖의 문제를 다루는데 그 결실이 희망의 철학인 칸트의 이성종교론입니다. 이에 덧붙여 『판단력비판』의 전반부는 말하자면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 시도하고 있고, 그 결실이 그의 미학이론이라 할 것입니다.”&lt;/P&gt;
&lt;P&gt;&lt;BR&gt;&lt;STRONG&gt;△칸트의 3대 비판서를 비롯해, 칸트 저작 중 대표적인 기존 번역본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번역본들이 국내의 서양 철학 연구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군요.&lt;/STRONG&gt; &lt;/P&gt;
&lt;P&gt;&lt;BR&gt;“『순수이성비판』은 제 역서 이전에 이미 8종이, 『실천이성비판』은 2종, 『판단력비판』은 1종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제1, 2비판서는 최재희 선생님 번역판이, 제3비판서는 이석윤 교수님의 역서가 널리 읽혀온 것으로 압니다. 또한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형이상학서설』, 『윤리형이상학 정초』,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인간학강의』, 『형이상학강의』, 『교육학강의』, 기타 역사철학 관련 논저 등 『윤리형이상학』을 제외한 주요한 칸트 저술은 이미 한국어 역서가 있습니다. 이 역서들을 접하지 않은 한국의 철학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또한 1930년대부터 등장한 &amp;lt;철학개론&amp;gt; 유의 책 내용은 절반 이상이 칸트 철학으로 채워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졸저, 『독일철학과 20세기 한국의 철학』, 철학과현실사, 2000 참조), 칸트 철학은 한국인의 초기 서양철학 이해의 기초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최재희 선생님의 역서를 이용했는데, 그분의 『순수이성비판』의 각주 중에는 제가 붙인 것도 있고, 최재희 선생님의 『실천이성비판』 출판 때에는 제가 출판사 박영사 편집부에 직접 가서 전과정의 책임 교정을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35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학생시절에나 교수할 때나 세미나는 학자 양성 과정인 만큼 칸트 원서로 했고, 역서는 참고로만 활용했습니다.”&lt;/P&gt;
&lt;P&gt;&lt;BR&gt;&lt;STRONG&gt;△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칸트 주요 저작의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셨는지요.&lt;/STRONG&gt; &lt;/P&gt;
&lt;P&gt;&lt;BR&gt;“제가 1985년 2학기부터 칸트 3비판서의 원서로 대학원 세미나를 매학기 이끌었는데, 그때 한 선배 교수님께서 저에게 독일에서 칸트를 연구한 첫 한글세대 교수이니 기왕이면 종래의 철학 용어들을 재검토하는 작업도 병행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셔서 1988년 10월 전국철학자대회(제1회) 자리에서 ‘칸트 철학 용어 再考’를 제안하는 주제 발표를 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번역작업을 했습니다. 칸트가 10년에 걸쳐 출간한 3비판서를 20년 넘게 역주 작업해 이제 겨우 초판을 펴냈습니다. 다행히 독자들이 꾸준히 있어 매년 1~2쇄씩 중간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부분적으로 수정 작업을 하고 있고, 맨 먼저(2002) 출간했던 『실천이성비판』은 출판사의 호의로 현재 완전 개정판 작업을 마쳐서 곧 재출간할 예정이며, 이어서 칸트 이성종교이론의 정수가 담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도 2년 쯤 후에는 출간하려고 한참 작업 중에 있습니다.“&lt;/P&gt;
&lt;P&gt;&lt;BR&gt;&lt;STRONG&gt;△또 기존 번역본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교수님의 새로운 번역본은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는지 알고 싶은데요.&lt;/STRONG&gt; &lt;/P&gt;
&lt;P&gt;&lt;BR&gt;“최재희, 이석윤 두 분 선생님의 역서는 사소한 오탈자를 제외하고는 놀라울 만큼 정확한 번역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간 35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베를린 학술원판 칸트 전집도 거의 다 간행됐고, 국내외 연구가들에 의해 수많은 논저와 주석서가 나와 그를 반영한 영미권과 일본의 새로운 칸트 전집도 나온 상황이라 제가 그 성과를 고려해서 새 우리말 칸트 역주서를 출간한 것이 어느 정도는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칸트철학계가 백가쟁명의 상태라 우리말 칸트 철학 용어 통일이 쉽지 않아서, 칸트가 3비판서에서 사용한 동일한 용어가 우리말로는 서로 다르게 번역돼 원서를 보지 않는 독자는 해독에 여간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칸트의 주요 저술들을 한 사람이 일관되게 번역하고, 또한 비교적 상세한 해제를 붙였을 뿐만 아니라, 관련되는 칸트의 다른 저술들과 강의록을 찾아내 주해에서 함께 비교 검토하고 있는 저의 역주서들이 원서 없이도 칸트를 읽는 분들에게는 칸트 사상에 이르는 하나의 그런대로 평탄한 길을 제공한 것으로 봅니다.”&lt;/P&gt;
&lt;P&gt;&lt;BR&gt;&lt;STRONG&gt;△서울대 철학과, 철학사상연구소 일에, 개인 연구까지 하시면서 번역까지 병행했으니, 쉽지 않으셨을텐데, 어떤 점이 개인적으로 어려웠는지, 보람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lt;/STRONG&gt;&lt;/P&gt;
&lt;P&gt;&lt;BR&gt;“외국어로 돼 있는 철학 저술을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할 뿐만 아니라 해당 외국어와 우리말이 일대일로 대응해야만 하고, 번역자가 또한 이 두 언어에 고루 정통해야 하는데, 이것들 모두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기껏해야 번역은 원전에 대한 역자의 이해와 언어 능력의 범위 내에서 두 언어 사이에 엄존하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있을 수 있는 비근한 말을 찾아 엮어 대응시키는 작업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역자라도 연륜에 따라 동일한 원전을 다르게 번역할 수도 있겠고, 세대가 바뀌면서 사용 어휘나 어감을 포함해서 언어생활에 변화가 생기면 그 또한 다른 번역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역주서도 이런 제한 아래서만 그나마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역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사상, 자기 글이 아닌 글이기 때문에 문체, 어휘, 어감을 가능한 한 원서를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원서가 수수하고 건조하게 쓰여 있는데 이를 화려하고 유려한 문체로 번역해 놓는 것도 원서의 훼손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 문단, 한 문장, 한 단어를 일일이 원서와 대조하면서 수차례 확인 작업을 해야 합니다. 칸트 저술의 경우 독일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달라 뒤바꾸는 것 또한 적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제 경우는 매년 칸트 원서를 대학원 세미나에서 학생들과 한줄한줄 읽어나가고 있고, 또 역서 출판에서는 저의 번역 초고를 저와 함께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원서와 대조하면서 재차 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공동작업의 결실입니다. 흔히들 과학 분야는 연구단이 연구를 수행하는데 반해 인문학은 학자 혼자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들 하는데, 저는 이제는 인문학도 연구단 수준에서 작업하지 않으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오히려 인문학이야 말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는 사람 사이의 학문’, 집단적 지혜가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함께 하는 작업이 바로 연찬이고 그 속에서 학풍이 조성되고 학파 학설이 형성될 것으로 봅니다. 주위에 탁월한 젊은 학도들이 다수 있는 것이 저의 복이고, 그래서 저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힘들지 않을 만큼만 조금씩 해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고전의 역주작업이란 고전의 향취 속에서 틈틈이 배움을 나눠 갖는 일이니까요.”&lt;/P&gt;
&lt;P&gt;&lt;BR&gt;&lt;STRONG&gt;△국내의 많은 철학자들은 번역에 크게 주안점을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유럽 철학 원전에 대한 번역이 더디고, 부족한 것도 잘 알려진 사정입니다.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국내의 철학 원전 번역의 실태와 전망에 대해 총체적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lt;/STRONG&gt;&lt;BR&gt;&lt;/P&gt;
&lt;P&gt;“저는 인문학의 경우는 80% 이상 인류 공동 자산의 전승이 그 과업이라고 봅니다. 플라톤이나 칸트, 주자나 율곡처럼 어쩌다 나타나는 탁월한 인사들만이 창작을 내 전승할 자산을 늘려주지요. 창작할 능력이 있는 이는 창작 업적을 내 그 본분을 다하고, 그럴 재주가 없는 이는 전승의 소임을 맡아 그간 공부하도록 지원해 준 사회에 보답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저도 더러 논문도 쓰고 저술도 냅니다만, 논문이든 저술이든 역서이든 인문학은 인간사회에 향취와 품격을 더하는 것이 그 의의인 만큼 그에 기여한 정도에서 평가하고 평가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경우는 그렇기에 고전의 역서가 [평범한] 저술에 비해 그 가치가 덜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칸트의 원저에 비할 때 그 역서는 미천한 것입니다만.) 저서이든 역서이든 출판되면 일정 부수가 팔릴 때 출판사가 계속 사업을 해나갈 수 있을 텐데,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학술서 판매는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당 기간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책값이 그 저작의 공력에 비례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두께에 따라 ?종이 값 산정 방식으로? 정해지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책은 출판되면서 이미 폐지로 활용할 때의 값이 매겨지는 셈입니다. 그림도 크기로 값을 매겨 사고파는 세상이기는 합니다만. &lt;BR&gt;&amp;nbsp; 현재 의미 있는 철학 원전은 한문을 포함해서 모두 외국어로 쓰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학 저술이 한국어로 쓰여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이후인데 아직 우리 자신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저술을 생산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전의 역주해는 철학 연구의 매우 중요한 기초 작업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역주해 작업은 연구가 아니라고 본다면 이는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다행히 최근에 한문, 그리스어, 라틴어 고전 등 의미 있는 역서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학술어 사용도 중구난방의 경우가 많은데 이 시기를 지나 의견이 대체로 모아지는 시점에서는 학회나 어떤 연구소 차원에서 주요 사상가의 전집(현재는 니체가 나왔고, 플라톤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출간도 기획될 것으로 기대합니다.&amp;nbsp;&amp;nbsp;&amp;nbsp; &lt;BR&gt;&lt;/P&gt;
&lt;P&gt;&lt;STRONG&gt;△철학 출판 시장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칸트는 물론이고, 여러 그리스 고전, 근대철학의 고전 등등 번역이 되지 않은 책이 많지만, 최근 철학자들의 책들만 집중적으로 번역 출간되는 현상이 그렇거든요. 학문적 깊이 보단 입맛을 추구하는 대중과 출판사가 문제인지, 아니면 그러한 대중의 입맛에 영합하고자 하는 일부 학자들이 문제인지, 아니면 나름대로 긍정성을 부여할 수 있는 현상인지….&lt;/STRONG&gt;&lt;/P&gt;
&lt;P&gt;&lt;BR&gt;“제 소견으로는 현재 우리 출판 사정은 어느 쪽도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므로 어느 쪽이든 우선 앞서 나갈 수 있는 쪽이 앞서 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세상일들이란 세월이 가면서 균형이 맞춰지지 않던가요. 다만 저 자신도 그다지 자신은 없습니다만, 정확성과 진정성을 결여한 책의 출판은 사회에 해독을 입히는 것입니다. 책의 출판 양이 증가하는 만큼 비평의 틀도 갖춰져 선량한 독자들을 부정확하고 불량한 책 더미로부터 보호하는 체제도 잘 수립되기를 희망하며, 우리 사회의 성숙도도 높아졌으니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lt;BR&gt;&lt;/P&gt;
&lt;P&gt;&lt;STRONG&gt;△향후 어떤 연구 및 번역 계획이 있으신가요.&lt;/STRONG&gt;&lt;/P&gt;
&lt;P&gt;&lt;BR&gt;“고전 읽기는 영혼(독자)과 영혼(저자)의 대화입니다. 제가 칸트 읽기에 많은 세월을 보내는 것은 칸트에 공명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칸트의 사상을 합리적 이상주의라고 봅니다. 과학적 지식의 혁혁한 성과를 체험한 근대인들은 과학적 지식을 지식의 전형이라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무엇이든 그럴 듯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지식의 옷을 입히는 작업을 벌립니다. 이때 칸트의 이성비판이 하는 일은 참된 지식과 사이비 지식이 뒤섞이지 않도록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칸트는 지식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영역 또한 명확하게 한계를 짓습니다. 곧, 지식은 자연이 무엇이며 어떻게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에 국한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안에서 의식주를 구해 살면서도 理想 실현을 기획하고, 내가 자연스럽게 하는 짓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구별하고, 한 송이 장미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사악한 인간에게는 몸서리를 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에게는 경의를 표합니다. 이런 것들은 지식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지식 못지않게 인간의 삶에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참 지식의 가치 곧 진리뿐만 아니라, 참된 행위의 가치 곧 선, 그리고 참한 느낌의 가치 곧 미 역시 인간이 지향하는 궁극의 가치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섬세한 미감을 가진 이, 윤리적으로 올곧게 행위하는 이 또한 진정한 사람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칸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두루 존귀함을 그 까닭을 밝혀 설명하고, 그 자신이 그의 사상대로 살았습니다. 저는 많은 독자들 또한 저와 함께 칸트에 공명하기를 기대합니다. 교수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 이르러 있는 저는 이제 칸트 종교철학의 대표작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 대한 연구와 번역을 마저 마치고, 간간이 써나가고 있는 인간 문화의 본질에 관한 글을 좀 더 써보려 합니다. 남들과도 대화를 해 볼 수준이라고 스스로 판정이 되면 독자들을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의로써 대화에 응해 주실 독자에게 미리 감사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lt;/P&gt;
&lt;P&gt;오주훈 기자 &lt;A href=&quot;mailto:aporia@kyosu.net&quot;&gt;aporia@kyosu.net&lt;/A&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R&gt;**내용출처/교수신문&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8464&quot;&gt;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8464&lt;/A&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69000</link>
<category>남의 글</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Sat, 28 May 2011 00:31:0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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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자본주의가 군림하는 한 마르크스는 되돌아온다.</title>
<description>&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10/0308/icall7/%eb%a7%88%eb%a5%b4%ed%81%ac%ec%8a%a4%ec%9d%98%ec%9c%a0%eb%a0%b9%eb%93%a4.jpg&quot;&gt;&lt;BR&gt;&lt;BR&gt;2004년 타계한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저서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인용도 많이 된 책이다. 언어유희에 가까운 데리다의 난해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시간 제목 저자 내용 등 네 가지의 어긋남(out of joint)에서 발생한다. 이 책이 ‘햄릿’의 유명한 문구, ‘시간은 이음매에서 어긋나 있다(The time is out of joint)’에 대한 심오한 독해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lt;BR&gt;&lt;BR&gt;첫 번째 불일치는 그 반시대성에서 발생한다. 이 책은 1993년에 출간됐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가 선언된 시점이다. 구체적으론 자본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종언’으로 찬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 출간된 지 1년 뒤다. 그런 시점에서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소멸하지 않고 끊임없이 회귀할 것임을 주장했다. &lt;BR&gt;&lt;BR&gt;두 번째는 저자와 주제의 불협화음이다. 데리다는 좌파 전통이 강한 프랑스 지식사회에 있기는 했지만 마르크스의 철학이나 저작을 다룬 적이 없었다. 그의 주된 활동 영역은 서구 형이상학의 해체와 재구성이란 ‘이론’에 있었지 ‘실천’에 있지 않았다. 그런 그가 돌연 마르크스를 들고 나오며 ‘정의’와 ‘책임’의 문제를 제기했다. &lt;BR&gt;&lt;BR&gt;세 번째는 유물론자인 마르크스와 유령, 그것도 복수의 유령을 병치한 제목의 충돌이다. 이 제목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1848년 공산당선언 첫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거기서 유령은 일종의 반어법으로 사용된 것이었고 그것도 ‘공산주의’라는 단 하나의 유령만 지칭했다. &lt;BR&gt;&lt;BR&gt;네 번째는 그처럼 과학성을 강조해 온 마르크스주의를 역설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 위를 넘나드는 유령적 실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독특한 ‘유령론(hantologie)’으로 해체 및 재구성해 낸 파격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도구로서, 억압과 착취와 차별에 맞서는 해방운동의 대명사로서 어디선가 불러 대는 목소리가 있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망령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올 것이란 논리가 그것이다. 그래서 헤겔이 마르크스를 낳았다는 주장보다 셰익스피어가 마르크스를 낳았다는 주장이 더 강조된다. 따라서 데리다의 마르크스주의는 ‘이론’이 아닌 ‘운동’이며 정교한 ‘과학’보다 메시아주의에 기초한 ‘종교’에 가깝다. &lt;BR&gt;&lt;BR&gt;이 때문에 이 책은 가상과 환영, 유령과의 단절을 강조하며 과학적 이론을 표방해 온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하나 이상인 그것을/더 이상 하나 아닌 그것을’로 끝나는 서장의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그런 전통적 마르크시즘에 대한 전복을 함축한다. &lt;BR&gt;&lt;BR&gt;이 책은 1996년 한 차례 번역됐으나 절판됐다. 국내에서 번역된 데리다 저술에 대한 비판을 펼치던 진태원 박사가 직접 나선 이 책의 미덕은 데리다 철학의 까다로운 개념과 용어를 세심하게 안내한 점이다. 이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으로 맨 뒤에 실린 옮긴이의 ‘용어해설’부터 일독할 것을 권한다.(권재현 기자)&lt;BR&gt;&lt;BR&gt;07. 10. 09.&lt;BR&gt;&lt;BR&gt;**출처/동아일보 &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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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남의 글</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Mon, 08 Mar 2010 13:31: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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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블로그 이사합니다.</title>
<description>&lt;A href=&quot;http://icall7.egloos.com/&quot;&gt;http://icall7.egloos.com/&lt;/A&gt;&lt;BR&gt;&lt;BR&gt;별로 들르시는 분들은 없겠지만 참고하시길.....</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46600</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Mon, 01 Mar 2010 23:03:4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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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도쿄대첩? 또 그 잘나신 민족적 자긍심의 발현이 멀지 않았구나.....</title>
<description>&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10/0215/icall7/%eb%8f%84%ec%bf%84%eb%8c%80%ec%b2%a9.jpg&quot;&gt;&lt;BR&gt;&lt;BR&gt;&amp;nbsp;EBS 세계테마기행을 보다가 광고 시간에 무심코 채널을 돌렸더니, 방송 3사에서 일제히 교복을 입고 애국가를 부르는 여학생들, 한 줄로 나란히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선수들(대한민국이 병영국가인 것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인간은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열심히 태극기를 흔드는 ‘붉은 물결’ 따위의 풍경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스포츠 경기에는 원체 관심이 없어서 동아시아선수권대회 같은 건 하는지도 몰랐고, 몇 시간 뒤에 인터넷을 켜 보니 역시 언론의 환상적인 제목 뽑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한국 &apos;도쿄 대첩&apos; 설 축포”, “텃세 뚫고 연출한 ‘도쿄 대첩&apos;” 등등..... 2002 월드컵 이후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래서 이제는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집단적 양상인 ‘스포츠 경기를 통한 국가/민족적 자긍심 느끼기’가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듯 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임진왜란이 다시 시작되기라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대첩’ 운운할 정도로 일본에게 축구 좀 이긴 게 그렇게 자랑스러우냐고 묻는 것은 우문이다. 한국의 강한 민족주의적 정서의 상당 부분은 반일의식에서 기인하며, 그것은 2002 월드컵을 기점으로 “‘소비’의 아이콘”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게는 정말 지기 싫”은 감정 같은 건, 길게 말 안 해도 마땅히 공감되어야 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일본과의 스포츠 경기는 결코 스포츠 경기만일 수 없다. 그것은 일본의 식민 통치가 끝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21세기에도, 끊임없이 통쾌한 승리를 통한 한풀이가 요청되는 뒤집힌 나르시시즘의 장(場)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이라는 국가는 마치, 별로 해준 것도 없으면서 툭하면 술 먹고 들어와서 가족들에게 손찌검이나 해대는 못난 애비같은 존재이다. 피폐한 서민들의 삶과 각종 &apos;스펙 경쟁&apos;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의 모습, 그리고 공권력에 의한 과잉된 시위진압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무능한 애비도 가끔씩은 공돈이라도 생겨서 ‘기분이다’ 하고 선심 쓸 때도 있는 법이다.&amp;nbsp;스포츠 팬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이른바 &apos;스포츠 공화국&apos;이었던&amp;nbsp;5공화국 이후로&amp;nbsp;스포츠 경기는-비록 이제는 그 성격이 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지배권력의&amp;nbsp;&apos;선심&apos;의 의미를 지닌다. &lt;BR&gt;&lt;BR&gt;&amp;nbsp;별다른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미운 애비랑 억지로라도 살아야 되는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 줌 선심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얼빠진 가족들에게 구원받을 자격 같은 건 없을 게다. 지배권력이 월드컵 한 번 하면 국민들이 모두 바보가 되는 양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그나저나 지난 WBC 때도 경기를 경기로 즐기지 못하고&amp;nbsp;일본의 야구선수들을 모욕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올해 있을 남아공 월드컵 때는 또&amp;nbsp;못난 집단적 쾌감이나 충족시키려 하는 군상들의 추태를 얼마나 많이 봐야할까?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아까 본 EBS 세계테마기행에서는 출연자가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뉴질랜드 럭비팀의 하카(haka) 퍼포먼스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하카는 원래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우리족이 결전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추던 춤으로, 이것이 현대에 와서 뉴질랜드 럭비 경기 전에 선수들이 보이는 세레모니가 되었다. 원한감정과 뒤집힌 나르시시즘으로서의 스포츠 경기에 대한 열광.....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카 세레모니와 같은 창조적인 무언가가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일본 천황제 국가를 모델로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고, 이제는 과거의 침략자의 모습을 극복하지 못한 채 상당 부분 닮아버린 나라 한국. 침략자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바로 심연 속에서 구조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인’이기보다 ‘세계시민’이고 싶다. &lt;/SPAN&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46014</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도쿄대첩 좋아하시네</category><category>스포츠 민족주의</category><category>남아공 월드컵 기대되는구나</category><category>그 잘나신 민족적 자존심</category><category>한국인이기보다 세계시민이고 싶다</category><category>구조의 바깥</category><category>원한감정으로서의 민족의식</category><category>도쿄대첩</category><category>그 잘나신 한풀이</category><category>뒤집힌 나르시시즘</category><category>내 글도 너무 폭력적인가</category><category>익숙한 붉은 물결</category><category>못난 애비같은 국가 한국</category><category>못난 애비의 한 줌 선심</category><category>그 잘나신 집단적 쾌감</category><category>월드컵 때 너무 죽지 맙시다</category><category>언론의 환상적인 제목 뽑기</category><category>떼거리 근성</category><category>가축떼</category><category>한일 축구전</category><category>축구</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Mon, 15 Feb 2010 00:53:1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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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집단 동일성, 갈등과 불화, 사유하지 않음</title>
<description>&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10/0125/icall7/%ec%9b%94%eb%93%9c%ec%bb%b5%ea%b1%b0%eb%a6%ac%ec%9d%91%ec%9b%902.jpg&quot;&gt;&lt;BR&gt;&lt;BR&gt;&amp;nbsp;한국인들의 집단 동일성에 대한 집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에 대해 사례를 제시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넘쳐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거칠게 얘기해서, 한국인들은 ‘집단’ 없이는 거의 아무 것도 못하는 민족이다. 아마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보면, 떼로 몰려다니기 좋아하고 몰개성적으로 사는 데에 별다른 불만이 없는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모습은 곧 든든한 노예상(像)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집단 동일성의 문화 자체가 오랜 굴종의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집단 동일성에 대한 집착은 종종 갈등이나 불화를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자신이 속한 분야나 집단에 대한 불만은 그저 즉물적인 반응으로만 끝나야 한다. 한국에서는 불만을 부당함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시키는 대신에, ‘옛말에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어’와 같은 박정희 시대에나 통용되던 말이나 하면서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행동으로 인식된다. 심지어 그 타당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불만을 표출하는 행동이 그저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또는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욕구 불만으로밖에 치부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사회에서 무언가 본질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한국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밋밋한 노령기 지형만큼이나 늙은 나라이다. 나는 ‘반만 년 유구한 전통의 민족’이라는 언설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그 낡음은 반만 년쯤 되어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늙은 나라’라는 표현은, 날로 심각해지는 고령화 현상을 고려해 볼 때 지금 시점에서 단순히 비유적인 의미만 지니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그렇기 때문에, &apos;늙은 나라&apos;&amp;nbsp;한국에서는 지배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철벽을 두른 성채 속에서 무한한 안락함(?)을 누리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 어느 곳이든 &apos;계층 간 수직이동&apos;은&amp;nbsp;쉽지 않은 법이라 해도&amp;nbsp;한국의 지배계층은 별로 교양도 없고, 관용정신도 없고, 이악스럽기로 치면 하층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기득권 유지가 용이하다. ‘집단 동일성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국민들의 신분 상승에의 욕구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이것은 원래 갈등이나 불화에 결집되어야 할 힘을 경쟁에로 이끈다. 갈등과 불화는 비록 즉물적으로만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기는 해도, 시스템의 본질적인 변화를 모색해볼 기회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경쟁은 상호 견제를 유발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나는 우리가 진정으로 21세기로 넘어가기 위해서는-날짜는 저절로 넘어가지만, 시대는 거저 오지 않는다-&amp;nbsp;&apos;무엇을 위한 국가인가&apos;와 같은&amp;nbsp;질문이 충분히 제기되어야&amp;nbsp;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도 ‘국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와 같은 국가주의적 세계관을 충실히 내면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에,&amp;nbsp;그러한 질문은 아무래도 자신의 존재 자체를 포기해 보라는 뜻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사유하지 않는 자세가 사회적으로 아주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절대화한 가치와 대상들에 의해 어떠한 억압을 당한다고 해도 꼼짝 못하게끔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lt;/SPAN&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45276</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집단 동일성</category><category>갈등과 불화</category><category>사유하지 않음</category><category>무엇을 위한 국가인가</category><category>노예</category><category>생각 좀 하고 살자</category><category>늙은 나라</category><category>저항할 수 있는 여지</category><category>한국</category><category>이게 군대냐 국가냐</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Mon, 25 Jan 2010 16:08:54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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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quot;촛불의경&quot; 이길준씨와 &apos;노예의 나라&apos; 대한민국</title>
<description>&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IMG hspace=1 vspace=1 src=&quot;http://img.khan.co.kr/news/2009/12/01/20091201.01200128000005.01M.jpg&quot;&gt;&lt;BR&gt;&lt;BR&gt;&amp;nbsp;작년에 촛불시위 진압에 반대하여 부대복귀를 거부한 이길준 의경이&amp;nbsp;지난 월요일에 출소했다(&amp;nbsp;&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3082419&amp;amp;section=03&quot;&g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203082419&amp;amp;section=03&lt;/A&gt;&amp;nbsp;). 원래 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감형과 가석방 결정으로 일찍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남북 분단으로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왔고, 수차례의 독재정권과 급속도의 경제성장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에게 ‘국가’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군대라는 집단이 어떠한 존재인지, 국방의 의무에 대해 저항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지의 사실일 것이므로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게다. 여기에 전.의경 집단의 엄청난 군기와 폭압적인 분위기가 그에게 중압감을 더했을 것이다. 고된 근무와 훈련, 구타와 가혹행위, 지나친 위계서열질서를 핑계로 얼마든지 ‘원치 않는 시위진압’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합리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유하지 않음’이 그 자체만으로 죄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물리력에 정면으로 맞섰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한국 사회는 자유인의 삶보다 노예적인 삶이 더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공간이므로, 원한감정에 차서 그를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릴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본다. 군대라는 집단은&amp;nbsp;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사병을 가리켜 ‘엘리트’라고 추켜세우곤 한다. 반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병은 가차없이 ‘고문관’으로 낙인찍어 구타와 기합, 가혹행위와 같은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그 사회에 끼워 맞추려 한다. 그게 바로 한국 사회가 작동하는 데 필요한 구성원들을 양산하는 핵심적인 사회화 과정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과정이 지향하는 인간상은, 비판적 이성은 철저히 배제할 줄 알고 오로지 자신의 이성을 도구화하는 것에 충실한 인간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무려 35개 방송국을 동원하여 자신의 담화를 내보내는, 전 국민을 무슨 영업사원 정도로나 보는 대통령의 출현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의경 부대에서 이루어지는 “의자에 몸을 붙이지 않고 앉은 자세로 서 있”는 등의 가혹행위와, ‘압박 면접’ 시험장의&amp;nbsp;면접관 입에서 나온 &quot;떨어지면 인물 때문인 줄 알라&quot;와 같은 폭언이 같은 사회적 토대에서 나온다고 하면 틀린 말일까? 이처럼 갖가지 종류의 미시적인 억압들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존재한다. 그러한 과정들을 착실히(?) 겪어가다 보면, 고생의 기억들은 무슨 훈장처럼&amp;nbsp;다른 사람들로부터&amp;nbsp;대접받기도 한다. 부대에 갓 들어온 신병들에게 ‘너희보다 고참인 우리들이 더 많이 고생했고, 우리 고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고생했다’고 말할 줄 아는 중간기수가 있다면, 그는 유능하다는 칭찬을 들을 것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서 대학원에 가는 젊은이들( &lt;A href=&quot;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amp;newsid=20091125151408250&amp;amp;p=moneytoday&quot;&gt;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amp;amp;newsid=20091125151408250&amp;amp;p=moneytoday&lt;/A&gt;&amp;nbsp;)을 보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침 뱉은 잔이라도 마셔야 한다’는 얘기나 하면서 혀를 끌끌&amp;nbsp;찬다. 더불어&amp;nbsp;그런 말은 조직생활 좀 해본 사람의 지혜가 담긴 충고로 대접받는다.&lt;BR&gt;&lt;BR&gt;&amp;nbsp;고생은 그 자체만으로는 비루하지만 그게 쌓이다 보면,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해서 고생스러운 매 순간마다 자신이 내린 판단이 쌓이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으로 결정(結晶)된다. 그렇게 해서 &apos;일상&apos;이라는 두터운 벽이 형성되고, 그것은 오늘날 지배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각종 억압들의 방어벽 역할을 하게 된다.&amp;nbsp;다시 말해서&amp;nbsp;부당한 것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굴종을 정당화하며 심지어 상찬하기까지 하는&amp;nbsp;평범한 사람들의&amp;nbsp;태도가, 수구적인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amp;nbsp;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amp;nbsp;것이다.&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BR&gt;&amp;nbsp;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자유인과 노예는 결코 존재값이 같지 않다. 일제강점기 시절처럼 이민족의 침략으로 온 백성들이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고, 정치군인들의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역시 또 노예가 되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선과 악이 분명하게 보이는 시대가 아닌 탓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아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서 말한 그 고생스러운 시절에도 지배권력에 저항을 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그 시절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식으로 삶을 흘려보낸 사람들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amp;nbsp;자아를 찾기 위해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혀를 끌끌 차대는 건 아닐까? 인간은 사회 구조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 힘든 과정을 꿋꿋이 견딘 이길준씨에게 박수를 보낸다.&lt;BR&gt;&lt;BR&gt;&amp;nbsp;**사진출처/경향신문&lt;/SPAN&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43388</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이길준</category><category>저항</category><category>상호작용</category><category>의경</category><category>미시적 억압</category><category>자유인과 노예</category><category>노예의 나라 대한민국</category><category>신성한 국방의 의무 좋아하시네</category><category>촛불의경</category><category>그 잘나신 고생의 기억</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Fri, 04 Dec 2009 00:11:5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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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박정희 30주기 추도식에 부쳐</title>
<description>&lt;!--StartFragment--&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
&lt;P&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9/1204/icall7/%eb%b0%95%ec%a0%95%ed%9d%ac3(1).jpg&quot;&gt;&lt;BR&gt;&lt;BR&gt;(이 글은 죽은 박정희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글이&amp;nbsp;아니며, 그와 그가 이룩한 잘난 경제발전을 거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한 바 있으므로 내가 내뱉는 ‘침’은 고인을 욕되게 하는&amp;nbsp;것이 아닌,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많은 한국인들이 ‘박정희’ 하면 떠올리는 생각은 ‘독재자’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말들로 압축될 수 있을 듯 하다.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대체로 민주주의는 후퇴시켰으나 경제발전은 이룩했다는 것이 박정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이란 나라가 드러내 보인 그 무지막지한 야만성은 차치하더라도, 여하튼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일견 타당성이 있는 얘기이다. 예컨대 영국이 아프리카를 제국주의적으로 착취하지 않았더라면 산업혁명이 가능했을까? 박정희 정권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면, 유신세대들은 으레 정신적인 가치란 어쨌든 배가 부른 다음에 논할 수 있기 마련이라고 쏘아붙인다.(물론 실제로는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훨씬 거칠고 무지막지한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간단하게 줄여서 얘기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비록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오는 산업현장 노동자들의 경우처럼 ‘반세기 만의 눈부신 경제 성장’의 열매를 나눠갖지 못하고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이 생겨났더라도, 어쨌든 당시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잘 먹고 잘 살았다. 긴급조치가 헌법보다 우선시되는 폭압적인 지배권력 하에서 노예처럼 살아간들, 적어도 요즘처럼 극심한 실업난이나 취업난 같은 게 없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저 유명한 경구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를 상기해 보노라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국인들에게 경제 발전이란 분명 지고지순의 가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박정희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야만스럽게 민주주의를 희생시켜 가면서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면, ‘반세기 만의 눈부신 경제성장’은&amp;nbsp;아마 이루어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에 이미 가난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세계 여러 곳에서 증명된 바 있기 때문이다.&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BR&gt;&amp;nbsp;그렇다면 이제 먹고 살만해진 한국인들은 교양 있는 민주시민으로 발전하였는가? 지난 2007 대선에서 막판까지 비리 의혹이 불거져 나왔고 속물적인 욕망을 부채질하는데 탁월함을 보이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 외신들은 ‘빵(경제)으로 윤리문제를 잠재웠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과거로의 회귀’라는 음울한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는 이명박 정권의 온갖 억압적인 행태들-미국산 쇠고기 파동, 용산 참사, 미디어법, 4대강 정비사업 등등-에 대해, 이 글에서까지 일일이 떠들어대는 것은 너무도 진부한 일이다. IMF 구조조정이나 한미 FTA 타결, 새만금 간척사업 등의&amp;nbsp;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소위 말하는 김대중-노무현 민주화세력이 보여준 10년 간의 정치 역시 소외받는 소수자들을 구조적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억압했다. 이 점에서 이른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으로 불리는 양대 정치세력은 실내용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으며, 심지어는 ‘적대적 공범 관계’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이른바 &apos;조국 근대화&apos;는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결코 의심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목표였고, 2009년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는 가히 초현실적인 풍경들은 바로 그러한 노정(路程)의 종착지를 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누가 뭐래도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박정희는 근대화의 화신이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토록 억압했던 그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복제하고 싶은 대통령”에 박정희가 뽑혔을 때, 이명박이 선글라스를 끼고 박정희 흉내를 내면서 유세를 했을 때, 박정희의 유령은 되풀이되어 나타나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얼마 전에 TV에서 콩고에 수입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방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콩고에 돌아와 새마을 지도자가 되었다는 어느 흑인 아저씨가 한국말로 ‘빨리 콩고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콩고 아이들이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착잡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한국은 이들에게 무엇을&amp;nbsp;안겨준 것일까? TV에 나온 콩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축복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부패시켜버릴 썩은 과일과 같은 저주일까? 앞서 내가 말했듯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답은 다르게 나올 터이므로, 이 글에서 굳이 이에 대해 가타부타 평을 내리지는 않을 생각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다만 나에게 있어서&amp;nbsp;분명한 사실은, 사유(思惟)는 절대적인 것을 참지 못하는 정신작용이라는 것이다. 반공주의와 내셔널리즘이 종교화되어 기승을 부리고, 산 하나를 다 까서 없애는 무자비한 경제발전이 결코 딴죽을 걸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지되던 시절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아니, 열심히 공부하는 것조차도 한낱 자신의 이성을 도구화하여 어떤 집단이나 조직에 끼워 맞추는 과정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현실은, 한국인들이 아직도 과거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말해준다. 내가 절대적인 것을 참지 못한다면, 시스템이 나란 존재를 참지 못하게끔 살아주는 수밖에 없을 게다. 그것만이 박정희를 진정으로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lt;BR&gt;&lt;/SPAN&gt;&lt;/P&gt;
&lt;P&gt;&lt;BR&gt;&lt;/SPAN&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BR&gt;&amp;nbsp;**사진출처/네이버&lt;/SPAN&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41385</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박정희</category><category>경제발전</category><category>근대화의 화신</category><category>박정희를 벗어나기</category><category>절대적인 것을 상대화하기</category><category>과거의 영향력</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Tue, 27 Oct 2009 03:02:3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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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apos;현재&apos;를 강렬하게 만들기 혹은 &apos;미래&apos; 찾기-애니메이션 &quot;시간을 달리는 소녀&quot;를 보고</title>
<description>&lt;P&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9/0721/icall7/%ec%8b%9c%ea%b0%84%ec%9d%84%eb%8b%ac%eb%a6%ac%eb%8a%94%ec%86%8c%eb%85%80.jpg&quo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현대인은 누구나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죽기 전에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apos;좀 더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apos;, &apos;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잘해 줄 수 있었을 텐데&apos; 하는 식의 아쉬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더러는 “조금만 일찍 일어나는 건데”&amp;nbsp;라고 후회하면서 죽는&amp;nbsp;경우도 생길지 모르겠다. 만약 오늘이 “최악의 날”이었음을 잊어버렸다면,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서 지하철에 치여 죽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은 어찌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얘기하는 “나이스한 날”이나 “혈액형 점” 따위에 신경 쓰면서 시간의 눈치나 보며 살아가는 모양인가 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애니메이션 &quot;시간을 달리는 소녀&quot;의 주인공 마코토는&amp;nbsp;시간의 지배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학교 수업시간에 “턱걸이”로 간신히 지각을 면하고, 그걸 놓고는 운이 좋다고 자부하다가 예기치 못한 쪽지시험을 망치고, 요리 시간에 잘못해서 불을 낸 탓에 앞머리를 그슬리기도 하는 그녀에게 어느 날 “타임 리프”라는 신기한 능력이 생기게 된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Time waits for no one.)&amp;nbsp;하지만 이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오늘이 “최악의 날”이었음을 잊어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가다가, 분명히 브레이크 고장으로&amp;nbsp;나는 지하철에 치여 죽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몇 분 전으로 돌아와서 지하철에 치인 게 아니라 지나가던 아주머니를 치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마지 이모로부터 그것이 “타임 리프”임을 듣게 된 마코토는 본격적으로 “시간을 달리”는 신나는 생활을 시작한다. 동생이 먹어버린 푸딩도 되찾고, 학교 수업시간에 “턱걸이”로 간신히 지각을 면했던 것도 여유있게 등교한 것으로 만들고, 망친 쪽지시험도 잘 본 것으로 되게 하고, 요리 시간에 불을 내는 것도 사전에 조를 바꿔서 자신이 아닌 남이 불을 내는&amp;nbsp;것으로 만든다. 같이 야구를 하며 친하게 지내는 남학생 치아키가 어느 날 고백을 했을 때도, 부담을 느낀 그녀는 몇 번씩 타임 리프를 써서 치아키의 고백을 피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요리 시간에 조를 바꾼 남학생 타카세는 불을 낸 데다가 소화기를 잘못 다룬 탓에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그것 때문에 다른 남학생들로부터 이지메를 당한다. 고통에 겨워 타카세가 난동을 부리느라 던져진 소화기는 마코토를 향해 날아가는데, 치아키가 그 앞을 막아선다. 그녀는 타임 리프를 써서 치아키를 구해내지만 대신 치아키를 좋아하는 다른&amp;nbsp;여학생 유리가 소화기에 맞게 되고, 그 일을 계기로 엉뚱하게 치아키는 유리와 사귀게 된다. 급기야는 같이 야구를 하는 또 다른 남학생 코스케와 그의 여자친구 카호가 마코토의 고장난 자전거를 타다가, 마코토가 전에 죽었던 자리에서 지하철에 치여 죽는 일이 발생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그 때 치아키가 나타나고 시간은 갑자기 멈춰진다. 알고 보니 치아키는 타임 리프를 통해 미래로부터 온 소년이었다! 그간 마코토가 발휘한 타임 리프 능력은 바로 치아키로부터 비롯되었던 것. 하지만 치아키가 코스케와 카호를 구하느라 충전해놓은 타임 리프 능력을 다 써버려서, 이제 그는 미래로 돌아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과거 시대의 사람에게 타임 리프 능력을 들켜버린 탓에&amp;nbsp;치아키는, 마코토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치아키의 돌연한 자퇴로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던 중 다시 타임 리프 능력이 생기게 된 마코토는, 한달음에 과거로 달려가 치아키로부터 미래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듣고 그와 작별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타임 리프는,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해서 원하는 부분만 반복적으로 볼 수 있는 것 마냥&amp;nbsp;시간이 가진 그 본래적 속성, 즉 비가역성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마코토가 타임 리프를 경험하게 된 이유는 &apos;앞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apos;, 즉 앞으로 뭐가 될 거냐는 질문에 “호텔왕”, “석유왕” 따위의 진지하지 못한 답 밖에 할 수 없는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닐까. 미래가 없으면 현재는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현대인들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시간의 흐름 자체가 나와는 별 상관이 없으므로, 미래는 사실 나의 미래가 아니다. 치아키가 살다 온 미래의 세계는 강도 흐르지 않고, 하늘도 넓지 않고, 자전거와 야구도 없는 삭막한 세계인 것이다. 하지만 ‘강렬해진 현재’ 속에서, 마코토는 치아키를 통해 기어이 시간을 건너서 다다러야 할 미래를 부여받는다. 이제 타임 리프 능력은 사라졌지만 “구름보다 더 자유”롭게 된 마코토. 반면에 “의대생”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 코스케는 타임 리프 같은 건 인지하지 못한다. &lt;!--StartFragme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amp;nbsp;치아키가 실수로 호두알처럼 생긴 타임 리프 장치를 떨어뜨리고 그로 인해 마코토가 타임 리프 능력을 부여받은 과학 실험실 앞에서, 그녀는 칠판에 쓰여진 “Time waits for no one.&quot;(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응시한다. 시간은 비가역적이지만, 이제 그에 대한 반동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 즉 현재를 강렬하게 만드는 능력이 생기게 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삶이 아름다운 건 바로 한계성 때문이다.&amp;nbsp;&lt;BR&gt;&lt;BR&gt;&amp;nbsp;**그림출처/네이버&lt;BR&gt;&lt;BR&gt;&amp;nbsp;(먼저번에 올린 글을 약간 수정하였음.)&lt;/SPAN&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37088</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시간을 달리는 소녀</category><category>시간의 지배</category><category>강렬해진 현재</category><category>미래</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Tue, 21 Jul 2009 01:00:19 +0900</pubDate>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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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군대이야기</title>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gt;&lt;!--StartFragment--&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IMG src=&quot;http://cbingoimage.naver.com/data2/bingo_65/imgbingo_97/tigere1005/18185/tigere1005_21.jpg&quot; width=278 height=340&gt;&lt;!--StartFragment--&gt;&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lt;FONT face=Arial&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lt;SPAN style=&quo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소대에 있을 때,&lt;/SPAN&gt;&amp;nbsp;나는 졸병 시절을 소위 말하는 ‘고문관’으로 보냈다. 일 못하고 ‘어리버리’ 댄다고 밤낮 갈굼을 당했어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참이 되어가면서 하급기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지켜야 할 어떤 최소한의 소신이나 양심을 그렇게 헌신짝처럼 내버릴 수가 없었다. &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나는 의경출신이다. 줄곧 서울 지역 기동대에서 복무했다. 경찰서나 기동대 앞에 가면 군대처럼 위병 근무를 서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보통 ‘자경’(‘자체경비’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김포 쪽에 3개 진압중대가 모여있는 지구대가 하나 있는데, 상경(의경은 육군과 달리 계급을 이경, 일경, 상경, 수경으로 구분한다.) 시절에 나는 지구대 관리반에서 이 자경 근무를 했다. &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상급기수들의 폭력이야 군대에서는 너무도 일반상식적인 일이니, 그저 무기력하게 구타와 갈굼을 감내하는 데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 못하면 군 생활을 할 수가 없다. 군대는 말 그대로 일상생활 자체가 원자화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항상 맹종만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amp;nbsp;김포 지구대에 있을 때 상급기수들의 폭력이 너무 심했던 적이 있었다. 사이코패스같은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거의 매일같이 점호가 끝나면 아무 이유없이 집합해서 두들겨 맞았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다른 고참들은 그 녀석의 폭력을 묵인하고 있었다. 그때 같은 중대에 있다가 내 말을 듣고 관리반에 새로 내려온 하급기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신참으로 와서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당장 내가 두들겨 맞는 건 고사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하급기수들끼리 의논해서 내가 대표로 서울지방경찰청에 찌르기로 했다. &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종이와 펜을 들고 다니며 대원들 한 명 한 명의 진술을 수집했고, 논리적으로 글을 써서 서울지방경찰청 전경관리계에 이메일을 보냈다. 경찰청에도 하나 보낸다는 게 실수로 청와대에 가게 되었고, 그 때문에 기동대장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를 괴롭히던 상급기수 네 명 모두가 다른 중대로 날아가게 된 것이다. 보통 자체사고가 터지게 되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 같이 날아간다. 고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도 섣불리 찌를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찌르고 날아가게 되면 새로 배정받은 중대에서 그것 때문에 또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건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날아가지 않았다. 그 뒤로는 말 그대로 태평한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근무 서면서 하급기수들과 같이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때로는 초소나 취사반에 짱박혀서 술 파티도 벌이곤 했다. 그러나 기동대 감찰반이 아닌 서울지방경찰청에 찌른 것 때문에, 그리고 청와대에 이메일이 간 것 때문에 나는 기동대장의 눈 밖에 나게 되었고, 그게 화근이 되었다.&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상경 시절이 끝나갈 무렵, 관리계장으로부터 ‘개혁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려는 것 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어느 날 내 근무시간에 감찰반 차량이 와서 근무일지를 달라고 하더니 이것저것 트집을 잡았다. 그 때부터 상부의 지시로 자경근무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자경근무는 정문 근무와 부대 뒤쪽의 무기고 근무로 나누어지는데, 무기고 쪽 자경 초소를 아예 없애고 뻗치기 근무를 시켰다. 정문 근무도 원래는 밤에 초소에 들어가서 근무를 서게 되어 있었는데, 밤에도 밖에 나와서 근무를 서야 했다. 한 번은 새벽에 근무를 서고 있는데 저만치서 누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감찰반장이었다. 보통 차를 타고 들어오지만 이번에는 내가 근무를 제대로 서는지 보기 위해 저만치서부터 걸어들어온 것이었다. &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그러던 중에 자체사고가 터지게 되었다. 나는 상급기수들을 찌를 때, 쓸데없이 하급기수들을 갈구거나 때리지 않기로 다짐했고 실제로 그걸 실천했다. 근무시간도 칼같이 지켰다. 내가 겪었던 상급기수들처럼 부당하게 하급기수들을 착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밑에 녀석들 몇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자신의 고참들이 그랬던 것처럼 군기를 잡고 좀 더 편하게 지내기를 원했다. 어느 날 점호가 끝나고 한 녀석이 내무반 침상 위에 하급기수들을 집합시켜놓고 때리기 시작했다. 가서 뜯어말리고는 화를 냈다. 또 다른 녀석이 나에게 어이없다는 듯이 “애들 좀 때리는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라고 묻자, 나는 너희들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 불길한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구타를 한 녀석들은(나중에 감찰반 조사를 통해서 내가 목격한 내무반 구타 외에도 몇 건이 더 드러났다.) 말할 것도 없고, 감찰반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던 나는 내 동기 한 녀석과 함께 후임들의 구타를 지휘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lt;/SPAN&gt;&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face=Arial&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지휘관에게 보고를 하게 되면 후임들은 징계를 받고 날아가게 될 것이다.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나를 괴롭혔던 고참들의 모습을 닮지 않는 데 성공했더라도, 결과적으로 나는 하급기수들의 고통을 묵인한 꼴이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고참들이 날아간 뒤로 가급적이면 하급기수들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군대는 의사소통 구조가 극도로 굴절되어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성격에 따라서 단순히 상급기수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느낄 수가 있다. 그래서 무관심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체사고가 터지고 나서 감찰반에서 나를 그야말로 탈탈 털어보려고 안달을 했다는 것이다. 감찰반에 가서 조사를 받은 후임들의 전언에 의하면, 다른 건 조사하려 하지도 않고 내가 대원들을 갈구거나 때리지 않는지 집요하게 캐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녀석이 나는 원체 말이 없는 편이라고 얘기해 주었다고 한다. 나중에 감찰반에서 나를 인정해 주었고, 비교적 분위기가 괜찮은 중대로 보내 주었다. 마침 수경(육군으로 치면 병장)으로 진급했기 때문에 나는 남은 군 생활을 소대에서 아주 편하게 잘 보내고 나왔다. 지휘관이고 대원들이고 간에, 자체사고로 인해 날아왔으니 나에게 많은 걸 안 바라고 그저 조용히 있다가 제대해 주기를 원할 뿐이었다. &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 lang=EN-US&gt;&lt;FONT face=Arial&gt;나는 군 생활을 하면서 부당하게 주어진 권력을 거부했고, 보상 심리를 극복했다. 그러나 구할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 뿐이었다. 내가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lt;BR&gt;&lt;BR&gt;&amp;nbsp;군대에서의 그 폭압적인 순치의 시간들을 상기하노라면, 나는 ‘불의에 저항한다’는 간드러진 말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오곤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보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데, 이러한 무딘 감수성으로 대체 뭘 제대로 바꿀 수가 있단 말인가. 사상이나 이념에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한국 남자들에게 있어서&amp;nbsp;병역의 의무는 여전히 필수적인 사회화 과정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순응적인 걸 편리하고 요긴한 것으로 여긴다. 차이와 다름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불화를 용인해야 한다. 정치인의 입에서 걸핏하면 &apos;국민 통합&apos;이라는 말이 발화되고 통일성이나 일체감 따위가 무슨 지고지순의 가치라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는, 단언컨대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소위 말하는 &apos;사회정의&apos;를 얘기한다는 사람들도&amp;nbsp;이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amp;nbsp;지금도 기억난다. 하극상이라고 하면 눈이 희번득해져서 미친 듯이 흥분하던 고참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오늘도 사회 한켠에서 착실하게 재현되고 있다. &lt;BR&gt;&lt;BR&gt;&amp;nbsp;**그림출처/네이버&lt;/FONT&gt;&lt;/SPAN&gt;&lt;/P&gt;&lt;/SPAN&gt;&lt;/FONT&gt;&lt;/SPAN&gt;&lt;/SPAN&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36366</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군대</category><category>의무경찰</category><category>기동대</category><category>자체사고</category><category>구타</category><category>갈굼</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Fri, 03 Jul 2009 00:42:1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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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방송통신대, 학벌</title>
<description>&lt;P&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A style=&quot;CURSOR: hand&quot; onxclick=&quot;javascript:window.open(&apos;/slide/image_view.php?image_id=1105882&apos;, &apos;&apos;, &apos;scrollbars=yes&apos;);&quot;&gt;&lt;IMG src=&quot;http://dicimg.naver.com/100/400/82/1105882.jpg&quot;&gt;&lt;/A&gt;&lt;/SPAN&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lt;BR&gt;&lt;BR&gt;&amp;nbsp;나는 올해 방송통신대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흔히 방송대라고 하면,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뭔가 더 공부하기 위해 입학하는 평생교육기관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나는 학사학위가 없다. 제대하고 나서 전에 다니던 학과를 그냥 때려치워버렸다. 그 후 몇 년 뒤에 인문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번에 불문학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가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끝내 수능을 보지 않았고, 이렇게 방송대 학생이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lt;BR&gt;&lt;BR&gt;&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amp;nbsp;첫 번째 이유는 수능시험이 너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12년 동안 학교에서 찍기 연습만 했는데 나이 먹고 다시 그 짓거리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게 구역질이 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방송대는 학기말에 보는 객관식 시험이 학점의 70%를 차지하므로, 결국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 되었다.&lt;/SPAN&gt; &lt;/P&gt;
&lt;P&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두 번째 이유는 각 대학들의 등록금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사립대학의 경우 평균적으로 일 년에 대략 1,000만원 꼴이니, 도대체 공부를 하라는 건지 돈을 벌라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많이 받아먹는 만큼 학교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소 닭 보듯 대하는 사실이야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커리큘럼이 그렇게 좋다고 보기도 힘들다. 명문대에 진학했을 경우, 돈을 주고 사회적인 인지도를 사는 것이니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세 번째 이유는, 혼자서 자유로이 이 책 저 책 들여다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말인지 가급적이면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내 스스로 필요한 지식과 학문을 결정하고 싶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몰라도,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주체성이라는 걸 가지기가 죽기보다 힘든 것 같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학문을 전공하지 못하는 현실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게 일종의 사치인 건지도 모르겠다. 맥락 바깥에서 놓고 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걸 공부하겠다는 말은 전혀 문제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기 때문에 이런 발상은 종종 ‘내 멋대로 사는 태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 어려운 시기에, 그리고 나이 들어서 백수로 놀고 있는 주제에 돈 안 되기로 악명(?)높은 인문학 따위나 전공하겠다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온전히 용납될 수 있을까. (하기는 나이가 어릴 때도 멀쩡히 공부 잘 하는 학생이라면 일반적으로 인문학을 전공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게다.) &lt;BR&gt;&lt;BR&gt;&amp;nbsp;남의 일이라면 별 생각 없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이나 배우자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여하튼 사회라는 게 실제로는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너무도 많은 것이 개인이 부담할 비용으로 환원된다. 나쁜 짓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문학을 전공해서 그걸로 지식 노동을 하며 밥을 벌겠다는 건데 참으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노라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SPAN style=&quot;mso-fareast-font-family: 바탕&quot;&gt;방송대에 다니고는 있지만, 편입학을 생각 안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도주한다고 해서 학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 시간 강사라도 해 보려고 해도 출신 학교를 따질 게다. 분야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말 그대로 개인의 후천적인 노력 여부와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심지어 사회 정의를 생각한다는 좌파 혹은 진보주의자들마저도 학벌을 중요시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이는 한국 사회에 좌익이냐 우익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절박하게 요구되는 가치가 바로 ‘유동성’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조지훈의 &apos;지조론&apos;을 읽어보면&amp;nbsp;광해군의 난정 때 청빈하게 살아가던 선비들의 고사가 나온다. 선비들 중 누군가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자 다른 선비가 그걸 이제 알았느냐고 야유했다. 그 뒤 탄식을 했던 선비는 권력에 팔려서 관직에 나아갔다가 반정(反正) 때 죽게 되었다. 수능시험을 안 보고 방송통신대에 간 마지막 이유는, 인문학을 하겠다는 놈이 무슨 학벌 따위에 연연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학벌의 영향력이 어떻다는 둥,&amp;nbsp;지식 노동으로 밥을 못 벌어먹는다는 둥 넋두리나 늘어놓았으니 결과적으로 꼴사나운 글이 된 것 같다.&lt;BR&gt;&lt;/SPAN&gt;&lt;BR&gt;&amp;nbsp;**사진출처/ 네이버&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icall7/blog.aspx?id=236264</link>
<category>나의 글</category>
<category>방송통신대</category><category>학벌</category>
<author>이윤석</author>
<pubDate>Wed, 01 Jul 2009 09:49: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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