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여성만화의 이해 그 두번째.
사진은 본문중에 소녀에로만화의 대표로 소개된 오사카베 마신의 <노예> 표지 그림.
최근 일본여성만화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소녀의 섹스를 다룬 만화가 급속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만화인구의 전연령층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일본의 경우, 성인을 위한 만화들은 자연스럽게 섹스를 주요주제로 다루어 왔고, 특히 남성용 에로만화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섹스는 흔하게 다루어진 소재였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중고등학생을 위한 소녀만화(여기서야 말로 이 명칭이 적당할 듯)가 급속도로 섹스를 상당히 노골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이 만화들이 엄청난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여성용에로만화, 즉 주부용 에로만화는 훨씬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나, 독자층이 극도로 한정되므로 여기서는 제외하겠다) 즉, 소녀만화의 에로만화화가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녀에로만화가 주로 출판되는 곳은 <별책소녀코믹>계열의 만화들로서, <섹스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이 주된 테마가 되고 있다. 신조마유의 <쾌감 프레이즈>는 일반 만화팬들로부터는 "내용도 하나도 없이 자극적인 상황만 그려낸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나, 압도적인 판매부수를 얻었을 정도.
특히 내가 주목하는 작가는 이런 만화계열에서 한 극단인 오사카베 마신(刑部真芯)인데, 그녀의 <노예> <금단> 시리즈는 이름만 들어도 알수 있듯이, 갑부인 남자가, 부모를 잃은 어린 여자애(초경 이전의!)를 돈으로 매수해서, 성적으로 조련한다는 설정 자체가 지금까지의 소녀만화와는 동떨어져 있는 만화이다. (당근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다, 연령제한이 있는지는 잘모름) 당연히 설정 자체가 이러하니 섹스신이 안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섹스신 자체는 노골적이라기보다는 적절히 중요한 부분(?)은 숨기면서도 그 상황 전체를 묘사하는 식으로 그려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오히려 남성용 에로만화보다 더 에로틱하게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상황 자체는 더 엽기적이라고 해도 될 듯(죽은 부모의 무덤 앞에서... 베란다에서... 등등). 주인인 남자의 손만 닿아도 흥분하도록 조련한다, 는 설정 자체는 거의 남성용 에로만화를 방불케 하는데 딱 하나 차이라면, 항상 남주인공은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으면서도 여주인공의 마음을 자기가 갖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육체적으로 지배하려고 하고, 여주인공은 당연히 남주인공을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는데,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뭔가 설정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그 기조에 깔려 있다. 그리고 이 작가가 특히 로리타를 소재로 하면서, 그쪽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작품을 그리는 편인데, 이 정도 설정에는 못미치지만 섹스신 묘사 자체로는 이를 넘는 경우도 최근에는 꽤 많아지고 있다.
90년대 이후의, 이런 소녀용 에로만화의 등장의 원인으로 흔히 지적되는 것은, 흔히 원조교제, 성경험의 조기화 등 일본사회내의 성문화의 변화이다. 지금까지는 순수한 '소녀'만화에 만족했던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실제 자신의 첫경험을 겪게 되면서 육체적인 사랑을 포함하는 만화를 요구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서 약간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소녀들에 의해 소비되는 만화중 육체적 사랑을 주요테마로 하는 만화는 이미 80년대 전반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 주체가 남성들이라는 점이 달랐을 뿐. 즉, <야오이>로 불리는 남성간의 성애를 묘사하는 만화가 바로 그것인데, <야오이>란 명칭은 원래, <야마나시, 오치나시, 이미나시>의 세가지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줄거리에 별 내용이 없고, 의미도 없이 두 주인공 남자(주인공들은 남자여야만 한다)가 격렬한 섹스를 하는 만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주로 <소년점프> 등에 실리는 유명한 남성용 만화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원작에서는 <오래된 우정> 혹은 <숙명의 라이벌>로 표현되는 관계를 남남간의 애정관계로 패러디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구체적인 예로는 <슬램덩크> 및 <테니스의 왕자님>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야오이>=<보이즈러브>라는 인식이 있지만, 동인지계에서는 패러디가 아닌 오리지널의 경우, 그리고 특히 최근의 경쾌한 남남주인공의 만화는 <보이즈러브>라고 불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야오이>만화의 경우, 왜 <여성들이> 자신이 주체가 될수 없는 남성들의 성행위를 그려내고, 소비하는가 (거의 중독이 될만큼)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항시 제기되는데, 그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첫번째로는,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그라피라는 점. 멋진 두 남자의 관계를 보는 것이 시각적 쾌락을 제공한다는 점. 두번째로는,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경우 그 관계에 자신을 동일시 하게 되는데, 그 동일시가 싫기 때문에- 특히 SM계열 등- 일부러 남+남 관계를 선택함으로써, 제 3자라는 편안한 위치를 선택한다는 점. 세번째로는, 남녀관계의 육체적 관계는 너무 생생한데, 남+남관계는 어디까지나 상상속의 세계이므로 훨씬 담백하게 느껴진다는 점 등등. (야오이를 왜 여성들이 소비하는가, 라는 주제 자체가 너무나 다양한 분석이 가능한 주제이므로,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내가 여기서 흥미롭게 느끼는 부분은, 야오이 만화의 독자들 중 많은 수가, <남녀간의 육체관계>를 더럽고 너무 생생하게 느끼는 반면, <남남간의 육체관계>에 동경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육체적 관계를 맺고 나면 남녀간의 권력관계가 변화한다는 흔한 속설이 말해주는 것처럼, 남녀간의 육체관계는 사랑의 정점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랑의 퇴색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기본적으로 남남간의 관계는 사랑과는 다른, 변함없는 <우정>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게 되고, 이 감정은 육체관계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세계적으로 미화되어 온 <남성간의 우정>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야오이>라는 장르가 태동하게 된 한 원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핫) 그리고, 뿌리깊은 여성혐오(그 내용이 비록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져 주입된 것이라 할지라도)가 그 근원에 있다.
그러나 워낙 소재 자체가 특수하고 정식본이 아닌 패러디 위주이다 보니, 열성적인 만화팬들 위주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발생하게 되었고, 일반 소녀만화 독자들은 이런 팬들과는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다.
그렇다면, 최근의 소녀만화의 에로만화화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분명히, 과거에 비하여 더욱더 개방적이 된 일본여성의 성에 대한 태도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만화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섹스가 동경이든 체험이든 연애와 삶의 일부를 구성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문제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과거와 같이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게 아니라, 연애는 육체관계를 자연스럽게 동반하는 것이고, 때로는 정반대로 육체관계를 통하여 연애가 발생한다는 섹스에 대한 태도의 변화가 이런 만화의 독자층을 증가시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중고생들의 섹스경험에 대한 동경을 정확히 집어내 이용하는 만화들이라고 볼수 있을 듯)
동시에,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여성인 자신을 제외한 남남관계로만 섹스가 그려져왔던 과거에 비하여,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여주인공에 동일화시킬 수 있는 소녀만화가 점차 에로만화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주체화를 극도로 회피하는 방식인 에로만화로서의 <야오이>와, 결혼 이후의 주부들을 위한 성인용 여성만화 만이 존재하였던 과거에 비해, 여성만화의 주요한 독자층을 포섭하는 소녀만화중 일부가 섹스를 중요한 소재로 삼기 시작했고, 이런 만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과거와는 다른 <섹스를 중립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즐기는 세대>의 등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 세대들에게는 섹스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고, 여성이므로 성적 욕구를 부정해야 한다는 세계관 자체가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성적 판타지로서의 소녀만화라는,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여성만화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야오이>의 독자는 전부 여성성을 부정하고 있다 VS <소녀에로만화>의 독자는 여성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라는 황당한 이분법일 것이다. 후자가 긍정적인가, 라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많을 뿐더러, <야오이>가 대중화되어, <보이즈러브>가 된 지금 여성성에 대한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즐겁게 작품을 감상한는 독자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현재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가설은 이 두가지의 장르를 분리하여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처리하는 게 아니라, <야오이>의 성묘사가 소녀만화 전체에 영향을 준 결과가 소녀만화의 에로만화화, 라는 가설도 가능할 것이다. 즉, 남남관계에서 그릴 수 있는 걸 소녀만화에 적용해 보고, 그 결과가 비록 남남관계지만 성묘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도 어필하기 시작했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여하튼, <소녀만화>가 더이상 그저그런 연애담이라는 편견은 버리시기를. 별생각 없이 펼쳐본 여동생의 만화가 사실은 남성만화보다 몇배는 더 야한 만화였다는 상황이 이제는 하나도 드문 상황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남성에 비해서는 굴절된 형태로 나타나지만, 만화라는 매체도 이제는 여성의 성적 욕망에 걸렸던 빗장을 하나둘씩 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