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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회색지대</title>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 </link>
<description>cemogrim</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22 Feb 2005 04:26:5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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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emogrim</title>
<url>http://www.mediamob.co.kr/FDS/newBlogProfile/2010/0921/cemogrim/수련.jpg</url>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link>
<description>회색지대</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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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세계인문학포럼을 바라보며</title>
<description>드디어 부산에서 세계인문학포럼이 대규모로 열린 모양이다.
&lt;br&gt;&lt;br&gt;

다른 곳도 아니고 고향에서 이런 큰 학술대회가 열려서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lt;br&gt;&lt;br&gt;

정부에서 기획해서 밀어부치는 또하나의 전시행정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가 더 된다.
&lt;br&gt;&lt;br&gt;

날짜 잡고 불과 몇달전에 급하게 원고 모집요청이 왔다.
세계 혹은 전국 규모의 대회는 통상 1년 전에 원고 요청과 기획이 들어간다. 이렇게 촉박하게 원고를 모집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lt;br&gt;&lt;br&gt;
어지간하면 한번 가볼까도 생각해보았으나,
배당된 주제가 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과는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lt;br&gt;&lt;br&gt;
거의 사회과학적 마인드로 설정된 기획이었고,
요즘 한국연구재단의 지정과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부 국책사업과 관련된 혹은 실용주의 주제였다.
&lt;br&gt;&lt;br&gt;

전통적인 인문학 전공자로서는 잘 감당할 수 없는 소재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인문학이하는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듯해도, 아무곳에나 다 갖다 붙인다고 해당 전공자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개별 주제가 일반적인 인문학 전공자가 다룰 수있는 내용이 아니었으며 최근들어서 사회과학에서 주력하는 주제들이었다.
&lt;br&gt;&lt;br&gt;

약간의 사기를 쳐서 글을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갈 필요는 없었다.
&lt;br&gt;&lt;br&gt;

인문학 대회인데, 순수 인문학 전공자들이 쓸 수 있는 주제가 선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lt;br&gt;&lt;br&gt;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대규모로 국제 학술대회를 연다는 명분에 인문학을 갖다 붙여놓기만 했을 뿐이었다.

나야 고향이라 굳이 마음을 먹으면 못 갈 것도 없지만
전적으로 자비부담으로 원고를 써서 오라고 하는 것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lt;br&gt;&lt;br&gt;
세계 혹은 전국단위 대회가 일반적으로 그렇기는 하지만, 명성이 있는 곳이야 자발적으로 그러하겠지만, 처음 여는 대회를 그렇게 해서 과연 좋은 발표자를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lt;br&gt;&lt;br&gt;

요즘같이 원고청탁과 발표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자비로 며칠씩 생으로 원고를 써서 발표까지 해주러 지역으로 내려가라는 것은 상식 밖이었다.
&lt;br&gt;&lt;br&gt;

그리고 이게 외국인한테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굳이 여비가 필요하면 지원을 고려해 볼테니 요청하라는 안내도 있었으나 특별한 경우로 한정돼있었다. 


&lt;br&gt;&lt;br&gt;
요컨대 좋은 취지로 만들었을지 모르겠으나,
갈만한 사람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아니고,
유네스코 이름으로 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실적 올리려고 가는 일군의 사람들정도가 아닐까 했다.
&lt;br&gt;&lt;br&gt;

보통은 기타주제가 있어서 굳이 지정과제 아니더라도
다른 관련 발표도 가능한데, 여기는 그정도의 여지도 없는듯했다. 물론 실제 발표가 주제와 들어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lt;br&gt;&lt;br&gt;
인문학을 부양해주시겠다는데 참 고마운 마음은 들었지만, 다른 목적에 활용되고 있는 듯해서 씁쓸했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74526</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Tue, 08 Nov 2011 01:41:5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처음인 것처럼 선전하는 재번역들</title>
<description>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과거 인문 양서를 편찬하면서 성장한 대형 출판사들도 상업출판에 열을 올리는 일이 꽤 오래되었다.
&lt;br&gt;&lt;br&gt;

상업출판사에게 이윤 극대화를 어찌 말리겠는가만은,
이들은 과거 판형을 두배로 늘리거나 자간을 늘리고 분권을 하고, 하드카바로 바꾸어서 값을 서너배로 올리는 일부터 시작했었다.
&lt;br&gt;&lt;br&gt;

또한 다른 곳에서는 인류에게 남길 그레트북스를 만든다면서 대대적인 세계 인문서적의 번역에 돌입하여 전공자가 보기에도 당황스러운 오역 투성이 총서를 만들어온 것도 오래지 않은 일이다.
&lt;br&gt;
&lt;br&gt;
최근의 한곳은 이미 완역이 끝난 두 시리즈를 재번역하면서 최초 완역의 타이틀을 달았다.
&lt;br&gt;
&lt;br&gt;
하나는 &lt;&lt;로마제국 쇠망사&gt;&gt;이고, 다른 하나는 &lt;&lt;사기&gt;&gt;이다. 모두 수차례 편역과 재번역을 거쳐서 완역까지도 이루어진 바 있는 책들이다. 
&lt;br&gt;
&lt;br&gt;
완역의 정도를 가지고 얼마나 미세한 부분을 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처음하는 완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적이 의문이 든다.
&lt;br&gt;
&lt;br&gt;
유독 대형출판사에서만 번역 마케팅에 이정도의 공을 들이는지 알기 어렵다. 
&lt;br&gt;
&lt;br&gt;
이른바 기획출판을 통해서 될만한 텍스크, 검증이 끝난 주제만을 손쉽게 번역해서 판매하고자 하는 듯하다.
&lt;br&gt;
&lt;br&gt;
학술번역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인데,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lt;br&gt;
&lt;br&gt;
대형출판사의 마케팅 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lt;br&gt;
&lt;br&gt;
번역은 가급적 여러 차례, 그리고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그것이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맛을 살릴 수 있다.
&lt;br&gt;
&lt;br&gt;
그러나 초역을 인정하지 않고, 약간의 윤문이나 별반 다른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를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74307</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Sun, 30 Oct 2011 03:31:1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엉터리 자유주의 학문은 가라!</title>
<description>이미 수년 전부터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뉴라이트라는 것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대체로는 한나라당의 정치성향을 지는 이들에 해당한다. 
&lt;br&gt;&lt;br&gt;

이들은 학문의 자유주의나 보수의 가치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고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정통성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lt;br&gt;&lt;br&gt;

말인즉은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lt;br&gt;&lt;br&gt;

그러나 뉴라이트를 표방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치고, 위안부를 부정하며, 이승만 및 박정희 독재를 찬양하는 사람들을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지지할 수 있겠는가..

&lt;br&gt;&lt;br&gt;

건국절 제정운동을 하자며 미친 짓을 벌이더니,
최근에는 임시정부의 법통마저 부정하려고 한다.
광복절이 있는 것은 유구한 역사전통을 인정하는 개천절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별도로 건국절을 지낸단 말인가?
&lt;br&gt;&lt;br&gt;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독재자 이승만이나 친일파 박정희만의 것이 아니다.

&lt;br&gt;&lt;br&gt;

당시 북으로 가지 않고 남았던 남한의 정치가들이 모두 자유주의자요 보수주의자였으며, 이들이 세운 대한민국이 오늘날 우리의 조국이다.

&lt;br&gt;&lt;br&gt;
대한민국과 이승만을 동일시해서 이승만을 비판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어불성설을 타도되어야 한다. 

&lt;br&gt;&lt;br&gt;
카다피나 중동의 시위 상황을 보라. 이승만의 하야시기의 중학생들이 학살된 것과 무엇이 다르냐.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정권기 희생된 학생들과 무엇이 다른가.

&lt;br&gt;&lt;br&gt;
우리의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것은 오랜 독재정권과의 항쟁 속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lt;br&gt;&lt;br&gt;
그런데도 독재자를 미화하고 독재의 역사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다.

&lt;br&gt;&lt;br&gt;
자유는 본래 좋은 말이다. 그러나 &quot;자유&quot;를 붙이는 이들을 보면 자유당에서부터 자유총연맹, 자유청년모임 등등 하나 같이 문제적 집단들이다. 

&lt;br&gt;&lt;br&gt;
또한 &apos;보수&apos; 역시 진보와 대응의 개념일 뿐 문제가 되는 용어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 이 단어를 쓰는 인간들의 행태는 마치 친일파나 매국노, 탈세자와 부정부패자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lt;br&gt;&lt;br&gt;
그래서 자유나 보수라는 말이 엉터리가 되어버렸다. 이런 이들을 먼저 정리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lt;br&gt;&lt;br&gt;
자국사에 대한 정체성이나 매국행위에 대한 반성도 없이 어떻게 마음대로 자유나 보수를 쓰며 우익행세를 하는 것인가. 어느 나라의 우익이 매국행위를 일삼는가?
&lt;br&gt;&lt;br&gt;

대한민국은 보다 큰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어떻게 특정 세력들 자신들이 정의한 극히 좁은 조국만을 기준으로 나머지 세력은 다 친북이나 종북세력으로 몰 수 있단 말인가. 빨갱이 낙인 찍기의 변종의 재현이 아니겠는가. 자기들과 견해가 다르면 모조리 친북좌익으로 모는 행위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마치 이승만집권기에 정의나 명분을 내세울 수 없던 놈들이 냉전이데올로기를 이용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lt;br&gt;&lt;br&gt;

스스로 자유나 보수를 언급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주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74264</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Fri, 28 Oct 2011 23:22:4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오랜만에 반가운 책을 만나다: 친일파는 살아있다</title>
<description>&lt;BR&gt;간만에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lt;BR&gt;&lt;BR&gt;&lt;BR&gt;다름이 아닌 정운현의 &amp;lt;친일파는 살아있다&amp;gt;&amp;gt;(책보세, 2011)이다.&lt;BR&gt;&lt;BR&gt;&lt;BR&gt;이 책은 친일파 미청산의 과정에 대해서 자료들을 다룬 글이다.&lt;BR&gt;정치한 연구서적은 아닐지라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크게 모지람이 없는 글이 아닐까 한다.&lt;BR&gt;아직도 청산하지 친일잔재와 보수를 위장한 엉터리 &quot;자유~&quot;주의자의 실체를 살필 수 있는 책으로 보인다.&lt;BR&gt;&lt;BR&gt;&lt;BR&gt;사실 이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들이고, 상식에 가까운데도 불구하고&lt;BR&gt;이 책이 반가운 것은 엉터리 책들이 친일파나 식민사학이라는 잣대를 내세워서&lt;BR&gt;자신들의 견해와 맞지 않거나 비판하는 이들을 친일파로 모는 어이없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lt;BR&gt;&lt;BR&gt;정작 이러한 행태를 보이는 류의 인간군상들은 위의 책에서 주장하는 오늘날 보수라 자칭하는 기득권층에 부합하여, 매스미디어의 지원을 받으며 책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lt;BR&gt;&lt;BR&gt;친일파에 대해서 깔려면 제대로 해야지, 엉터리로 자신의 반대진영은 모두 친일파로 매도하는 방식은 어이가 없을 정도이고 도를 지나친 레드 콤플렉스의 변종이다. &lt;BR&gt;&lt;BR&gt;식민사학을 청산하고자 한 이들을 모두 싸잡아서 강단사학자나 식민사학자로 몰면서 정작 친일의 거대세력이었던 보수신문들에 기대어서 돈을 버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lt;BR&gt;&lt;BR&gt;이 책을 토대로 제대로 친일파의 잔존형태를 알게 되면 최근 엉터리 교양서적을 만들어서 마치 친일파처럼 공격한 학자들이 기실 식민사학을 청산하고자 노력한 이들이라는 점을 알게 될 단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74216</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Thu, 27 Oct 2011 15:14:27 +0900</pubDate>
</item>

<item>
<title>노론사관? 이병도?</title>
<description>참 재미없는 책들이 수차례 나오고 있지만,
최근에는 더 자극적인 소재의 제목으로 출판되고있다.
&lt;br&gt;
&lt;br&gt;

본인의 심성이 노론이나 이병도 사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에 굳이 변론을 대신해줄 필요는 느끼지 못하지만 갈수록 사기꾼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잡필을 쓴다.
&lt;br&gt;
&lt;br&gt;

수년전에 &lt;&lt;도올논어 바로보기&gt;&gt;라는 허접한 글이 나온 적이 있다. 이 글은 이기동(유교학과)을 옹호하기 위해서 만든 글이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도올에게 더 득이 되었던,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 비판자들이 수준이하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도올이 못마땅하지만, 이런 사람들 덕분에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lt;br&gt;
&lt;br&gt;

익숙한 담론을 활용해서 책장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이덕일씨의 행태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에는 그팀에서 아예 비판을 해온 사람들을 다른 저격수를 내세워서 팀플레이를 하고 있다. 

&lt;br&gt;
&lt;br&gt;

&lt;&lt;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gt;&gt;이라는 책은 참 어이 없는 출판계의 비극이다. 딱히 이곳에서 공격당하는 분들과 학설상 동지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런 인신공격성 책이 출판된다는 것 자체도 참 비극이다.

&lt;br&gt;
&lt;br&gt;
특히, 이 매체에서 주장하는 이병도 사학이나 노론사관의 지배구조 등은 상당히 허구에 가까워서 실소를 금치 못할 지경이다.

&lt;br&gt;
&lt;br&gt;

이병도씨가 여러 모로 못마땅하기는 하지만, 그의 활동내역과 글들을 살펴보면 지금 이덕일이 베껴쓰는 소위 말하는 반주자학 담론, 윤휴나 박세당 위주의 탈주자학 마인드, 실학위주의 역사구상 이런게 바로 이병도 사학이었다.

&lt;br&gt;
&lt;br&gt;

이병도씨가 고대사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유교연구 등을 하면서 주로 요즘 이덕일이 써먹는 얘기의 원조를 쓴 양반이다. 민족문화추진회를 만든 사람이고 여기서 초기 번역이 들어간 박세당의 사변록 등을 선정한 사람이 바로 이병도다.

&lt;br&gt;
&lt;br&gt;

그리고 이러한 기조에 반발하고 1980년대 사회경제사  혹은 실학 위주의 담론에서 벗어나서 조선시대 사상사를 주도하는 정옥자, 최완수 이래의 간송미술관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학계 소수의 연구자들이 18세기 지식인들을 재발굴하고 주자학의 긍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lt;br&gt;
&lt;br&gt;
요지는 최근의 주장이고 소수 학설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대개 탈이병도사학을 부르짖는 사람들이다.
&lt;br&gt;
&lt;br&gt;

그런데 어떻게 반주자학 운동을 한 이병도 사학과 이들 연구자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lt;br&gt;
&lt;br&gt;
그리고 노론사관이라는게 학계 전부처럼 목표를 정하지만, 그런것 자체가 실체가 없을 뿐더러 여기서 거론한 사람은 소수학설로 존재해왔다. 

&lt;br&gt;
&lt;br&gt;
특히 몇몇은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들인데, 이들을 파시즘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본인들은 민주화 운동이라도 해보셨는가?
&lt;br&gt;
&lt;br&gt;

이덕일이 늘 학계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는 상대가 이들 소수학자들이고, 베껴써먹는 얘기들 상당수가 학계논문들이다. 이런 사기꾼은 참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알만한 이름을 거명하면서 호대게 까대면
다 통할 줄 아는가 보다. 

&lt;br&gt;
&lt;br&gt;
이병도씨 글이나 제대로 읽어보고 까댔으면 한다.
지금 이덕일의 얘기를 듣자면, 마치 맹목적으로 실학담론을 열창하던 사람들의 글에서 실학자들이 주자를 비판한 내용이라고 주장한 사료들의 원전을 찾아보면, 실제로는 주자의 어록에서 나온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병도의 견해로 이병도를 까는게 가능한 걸까? 주자의 말로 반주자학의 근거라고 하는게 가능한 걸까? 참으로 웃길 뿐이다.

&lt;br&gt;
&lt;br&gt;

본인과 의견이 다르면 다 노론이고 다 이병도 사학인가? 

마치 빨갱이로 몰 때의 논법이나 다를바가 없다.
이런 엉터리 책이 팔리는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lt;br&gt;
&lt;br&gt;

누구를 비판하고 싶다면 텍스트라도 읽어 보고 얘기를 해야지, 이병도를 이마니시의 제자라고 하지를 않나 찾아보면 다 틀리는 얘기를 뻔뻔하게도 해댄다.

&lt;br&gt;
&lt;br&gt;

마치 신념에 찬 사람인양 얘기를 하지만
거의 상상에 의지해서 자료도 안 찾아보고
그런 만용을 부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lt;br&gt;
&lt;br&gt;

이 대역전 사기극이 얼마나 지속될지 가히 궁금할 뿐이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73365</link>
<category>잡설</category>
<category>이덕일</category><category>이주한</category><category>노론</category><category>이병도</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Fri, 07 Oct 2011 00:31: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윤휴 띄우기의 허상</title>
<description>&lt;P&gt;공부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의 충격이 나를 온몸으로 지나쳐 갔다.&lt;BR&gt;&lt;BR&gt;그 하나는 유교망국론과 그의 연장에 있는 실학담론이었으며, &lt;BR&gt;&lt;BR&gt;다른 하나는 바로 여기에서 근원하는&amp;nbsp;주자학 대 반주자학의 구도였다.&lt;BR&gt;&lt;BR&gt;조선이 망하자 제기된 무수한 원인 분석 중에서&lt;BR&gt;&lt;BR&gt;주자학 일변도의 사상통제를 주요 근거로 들곤 했다.&lt;BR&gt;&lt;BR&gt;하지만 그 근거도 무색할 뿐더러 주자학 자체에 대한 몰이해는 차치하고서라도&lt;BR&gt;&lt;BR&gt;많은 개혁가나 비운의 학자로 조명된 담론이 과연 사실인가는 좀 다른 문제였다는데 충격이 컸다.&lt;BR&gt;&lt;BR&gt;&lt;BR&gt;가장 큰 충격은 주자학 일변도의 경향성의 비판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면서&lt;BR&gt;&lt;BR&gt;주자를 좀 제대로 까주겠다는 망상하에서 주자의 글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amp;nbsp;&lt;BR&gt;&lt;BR&gt;첫째는 일본인 경제학자들이 얼기설기 만들어놓은 주자학의 개념이 경학의 기본도 알지 못하면서 엉뚱하게도 사회구성체론과 접합하여서 도식화하여 원전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도출해냈다는 사실이며, &lt;BR&gt;&lt;BR&gt;둘째는 상당 부분 비판의 담론으로 생각해왔던 실학자들의 반주자학적 표현으로 소개된 인용문들이 실학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 다름 아닌 주자의 인용이었다는데 있었다. &lt;BR&gt;&lt;BR&gt;&lt;BR&gt;이는 우리가 규정한 주자와 그 본연이 전혀 달랐다는 사실 외에도,&lt;BR&gt;실학이라는 담론이 얼마나 유효한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던져주었다.&lt;BR&gt;&lt;BR&gt;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만들어놓은 담론이 허구의 역사상을 날조해내었다. &lt;BR&gt;&lt;BR&gt;이러한 지적은 2000년대 들어서 주자의 글들 전체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지면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오히려 대중적 역사인식은 실학의 재야성이나 개혁성에 맞추어져 있다.&lt;BR&gt;&lt;BR&gt;사실 실학 담론은 1900년대초반 조선광문회의 고서간행운동을 비롯하여 193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조선학운동에서 비롯되었다.&amp;nbsp;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망국이라는 엄연한 사실 속에서 고대사로 모두 눈을 돌려버리자, 조선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에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간행을 시도하면서 이루어졌다.&lt;BR&gt;&lt;BR&gt;&lt;BR&gt;그래서 그 전제는 망한 조선의 이유를 밝히고, 그러면서도 희망의 싹을 찾는데 있었다.&lt;BR&gt;그리고 그 대상이 전적으로 유배지에서 쓴 다산의 글이었으므로, 모든 초점은 등용되지 못하고 재야에서 썩은 개혁가의 이미지와 무능하여 망했다는 망국의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lt;BR&gt;&lt;BR&gt;&lt;BR&gt;정약용이 정조년간 등용되어 활약했다는 사실이나, 이전의 그의 선배들이 숙종, 영조년간에 적극 기용되었다는 것도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바로 당시의 현실을 설명하는데만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전제는 무능한 조선정부라는 시각이 통시대적으로 투영된 사례이며, 당쟁사관이 당연시되던 시기의 조선시대 역사인식이다.&lt;BR&gt;&lt;BR&gt;&lt;BR&gt;이러한 역사인식의 연장에서 광복이후 처음으로 윤휴의 문집이 발굴되면서&lt;BR&gt;주자학에 맞서 싸운 인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lt;BR&gt;그리고 그의 문집 곳곳의 고학풍의 글들이 재해석되고 송시열에 맞선 걸출한 인물로 이해되었다. &lt;BR&gt;&lt;BR&gt;&lt;BR&gt;주자의 글들에 이어서 처음으로 읽은 문집이 윤휴의 백호전서였다. &lt;BR&gt;주자의 글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거나 왜곡된데 비해서, 윤휴의 글을 읽는 내내 느끼는 심정은 그 반대였다. 해제의 내용과 실제 원문은 너무나도 다르기만 했다.&lt;BR&gt;&lt;BR&gt;예컨대 윤휴를 주례주의자로 보는 해제가 널리 나와있으나.&lt;BR&gt;해당 원글은 서경 주관의 해설서였으며, 짧은 독서기를 남겼을 뿐이었다.&lt;BR&gt;최초의 논문을 쓴 사람과 해제서가 오기로 된 것이 통설로 알려지기도 했다.&lt;BR&gt;윤휴는 일대의 학자로 볼 수 있으나 알려진 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lt;BR&gt;다시 말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잣대대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lt;BR&gt;&lt;BR&gt;&lt;BR&gt;그런 상황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연대기에 나타나는 윤휴의 발언들, 그리고 숙종의 대처방식이다. &lt;BR&gt;&lt;BR&gt;숙종년간까지 남인과 서인은 백중세에 있었다. 4차례 환국 모두가 각기 두차례의 승전보를 전하여 누구도 우월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각 붕당의 최대 명사였던 산림들이 모두 사약을 받았다.&lt;BR&gt;&lt;BR&gt;혹자는 윤휴만 제거되었다고 허황된 소리를 하지만, 송시열도 사약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lt;BR&gt;당대의 최고 명사 모두에게 사약을 내리고도 폭군으로 불리지 않은 유일한 군주, 그가 바로 숙종이었다. &lt;BR&gt;&lt;BR&gt;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야사류에서 우유부단하고 순박한 임금처럼 이미지가 조작되어,&lt;BR&gt;무서운 전율의 군주였다는 사실은 가리어져만 갔다.&lt;BR&gt;&lt;BR&gt;실각한 영남남인의 염원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 또한 노론계의 우수성을 증명하고자 하는 소수파의 의견도 여전하지만, 양자가 그렇게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 모두 결국 전통시대 왕정에서 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참 쉽게도 잊고만 있다. 마치 자신들의 선조들만 주인공으로 착각해서 역사를 재구성하니 이해하기 어렵게 꼬이고 만 것이다.&lt;BR&gt;&lt;BR&gt;이 시기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북벌론이 다시금 번져간다는 사실이다.&lt;BR&gt;효종대 실패한 북벌론이 왜 국왕이 아니라, 신료들에게서 그것도 붕당을 초월하여 대두하는가 하는 점이다.&lt;BR&gt;&lt;BR&gt;이는 망상론자들이 조정에 가득하여서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은 청 강희제가 집권하여 친정체제를 확립하고자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던 시기였다. &lt;BR&gt;&lt;BR&gt;조정 내의 오배세력의 제거, 삼번의 난을 주도한 오삼계와의 내전, 몽골의 준가르단의 공격, 대만 정씨세력의 남해안 침공, 러시아의 남하 등 수십년에 걸친 대규모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조선의 사신들은 정탐하고 있으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했다.&lt;BR&gt;&lt;BR&gt;&lt;BR&gt;조정에서는 이때야 말로 복수설치의 기회로 보고 있었다. 60대의 산림들은 대개 양란 이후 벼슬을 포기하고 산곡간에 묻혀 지내던 이들이었다. 이들의 북벌의지는 남달랐다.&lt;BR&gt;&lt;BR&gt;다만 한 사람만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10대의 소년군주 숙종만이 노성한 신료들을 잘 달래면서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손바닥 안에 노신들을 올려 놓고서 들어주는 척하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lt;BR&gt;&lt;BR&gt;&lt;BR&gt;숙종은 알고 있었다. 인조의 잘못된 선택이 조선을 전란으로 만들어놓았을 뿐만 아니라,&lt;BR&gt;왕권을 무력화시켰다고 보았다. 이제 다시 본인의 선택여하에 따라서 100년간의 조선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lt;BR&gt;&lt;BR&gt;우리역사상 중국과 가장 밀월관계에 있었던 시기가 역설적이게도 오랑캐라 멸시했던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한 바로 18세기-19세기 전반기였다. 이 시기 동아시아의 평화는 조청관계의 안정에서부터 비롯되었다.&lt;BR&gt;&lt;BR&gt;청의 칙사가 더 이상 무례한 요구를 하지 않고 전략적인 동반관계로 바뀐 시기가 바로 숙종대부터이다. 이후&amp;nbsp;더이상 오랑캐로 보지 않는 북학파의 인식은 반세기이상 지속된 평화에서 비롯되었다.&amp;nbsp;처음으로 청의 황제를 존경하는 표현이 국왕에게서 보이는 것도 정조이다. &lt;BR&gt;&lt;BR&gt;이 모든 기원은 바로 내전상태의 청에게 배후의 안전을 조선이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청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숙종의 선택이 강희제와의 끈끈한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lt;BR&gt;&lt;BR&gt;그런데 바로 이 시기 가장 선봉에 나서서 북벌론을 주장한 이가 윤휴였다. &lt;BR&gt;윤휴는 병거를 만들어서 대규모 북벌을 추진하자고 했다. 수천의 제작을 강력히 주장했다. &lt;BR&gt;&lt;BR&gt;이런 노신의 청을 숙종은 현실성이 낮다고 평가하면서도 우선 한대만 만들어서 테스트를 해보고 좋으면 다시 늘려가자고 설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amp;nbsp;&lt;BR&gt;&lt;BR&gt;&lt;BR&gt;과연 숙종의 선택이 옳았을까. 윤휴의 주장이 나았을까.&lt;BR&gt;&lt;BR&gt;우리는 광해군과 인조의 선택을 놓고 인조를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lt;BR&gt;&lt;BR&gt;그런데도 왜 윤휴에게 있어서는 달라지는 걸까?&lt;BR&gt;&lt;BR&gt;&lt;BR&gt;학계의 연구성과는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서 보다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lt;BR&gt;다면적인 평가와 입체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lt;BR&gt;대중서적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글들은 &lt;BR&gt;1900년대초반에 시작된 조선광문회가 주도한 유교망국론과 당쟁사관,&lt;BR&gt;그리고 1930년대 집대성되는 조선학운동의 실학담론에 여전히 머물러있다.&lt;BR&gt;&lt;BR&gt;이는 글을 쓰는 자가 대개 이 시기 연구자가 아니며, 더욱이 일제시대를 공부해왔던 당시의 시각으로 조선시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재밌는 책들이 될지언정 100년이 다 돼어가는 구태의연한 학설을 울거먹는 방식이 아직도 통용된다는 현실이 참 난감할 뿐이다. &lt;BR&gt;&lt;BR&gt;&lt;BR&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72466</link>
<category>잡설</category>
<category>이덕일</category><category>윤휴</category><category>숙종</category><category>송시열</category><category>실학</category><category>주자학</category><category>주자</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Thu, 08 Sep 2011 10:28: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학술없는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title>
<description>며칠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이 있었다.
&lt;br&gt;
&lt;br&gt;
매년 정부에서는 대한민국학술원과 문화관광체육부에서 학술도서를 지정하여 출판을 지원하고 있다.
&lt;br&gt;&lt;br&gt;

학술도서의 선정은 척박한 학문토양에서 출판사들이 꺼려하는 연구서적들의 출판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lt;br&gt;
&lt;br&gt;
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되면 기관에서 책을 구매하여 도서관에 기증하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저자에게는 직접 지원이 없지만 출판사에게 출판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책을 구매해주고 공공도서관에도 학술서적이 비취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좋은 제도이다.
&lt;br&gt;
&lt;br&gt;
한동안은 두 기관의 사업 중복성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해서 요즘은 아예 방법을 전혀 다르게 하는 듯하다.
&lt;br&gt;&lt;br&gt;

예컨대 한 기관의 선정도서는 중복선정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한 다른 재정지원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기회를 얻지 못한 책들을 후원하기 위해서이다.
&lt;br&gt;
&lt;br&gt;
금년도의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는 며칠전 선정이 있었고
학술원의 발표도 내달 중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lt;br&gt;
&lt;br&gt;
전통적으로 학술원은 좀더 기초적이고 고난이도의 학술도서를 선정해왔고, 문광부는 편차가 매년 다른 듯하다. 
&lt;br&gt;
&lt;br&gt;
그러나 작년과 금년도만 놓고 보면 아무래도 상당히 덜 학술적인 책을 선정해오고 있다.
&lt;br&gt;
&lt;br&gt;
물론 우수학술도서는 전적으로 출판사가 신청한 책 중에서 선별하기 때문에 두 기관이 틀을 먼저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lt;br&gt;
&lt;br&gt;
하지만 적어도 두 기관이 보여온 이미지가 출판사들로 하여금 책을 나누어서 신청하게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lt;br&gt;
그런데 금년도 같은 경우는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lt;역사&gt;분야 책들은 다소 난감한 편이다.

&lt;br&gt;
눈에 띠는 몇몇 책들은 연구자들이 쓴 것이 맞지만,
사실상 대중서적을 목표로 편찬된 것들인데 이를 학술도서로 명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lt;br&gt;
&lt;br&gt;
특히, 문광부는 간행물윤리위원회를 통해서 교양도서의 출판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학술도서의 선정은 신중함이 더욱 필요하다. 
&lt;br&gt;
&lt;br&gt;

게다가 일부 책은 해당분야의 거의 문외한인 듯한 사람이 기존의 연구서적에서 수차례 정리된 내용을 짜깁기해서 자신의 방식을 재서술한데 불과한 책조차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어있다.
&lt;br&gt;
&lt;br&gt;
선정위원에 아무리 한국사 전공자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게 과한 선정방식이라고 생각된다. 
&lt;br&gt;
&lt;br&gt;
잇슈가 될만하고, 재밌어 보이는 제목을 달면,
우수학술도서의 반열에 들어갔다.
&lt;br&gt;
&lt;br&gt;
물론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으나,
목록만 봐도 서너종이 눈에 띤다.
&lt;br&gt;
&lt;br&gt;
모든 심사가 다수를 만족시키기는 어렵고
한둘 정도의 실수가 충분히 일어날 수도 있다.

&lt;br&gt;
&lt;br&gt;
그러나 조선시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사전 지식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관심사를 서술한 책조차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 책은 정가조차 출판사에서 학술서적의 두배가 넘는 가격을 책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국비를 지원해야 하는지 참 의문이다.

&lt;br&gt;
&lt;br&gt;
우수학술도서는 출판후 판매가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 연구서적의 출판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lt;br&gt;
&lt;br&gt;
그런데 연구자들이 대중을 타겟으로 판매율을 높히려고 풀이해서 쓴 반대중서적까지 전문학술서적으로서 지원해야 하는지 의문이며, 일반인이 자기관심사를 엉성하게 쓴 책조차 학술도서의 칭호를 주고 국비를 지원하는게 타당한지 알기 어렵다.
&lt;br&gt;
&lt;br&gt;
심사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68830</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Sat, 21 May 2011 11:34: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쯔다는 식민사학자인가? 쯔다 소기치를 위한 변명</title>
<description>&lt;br&gt;
&lt;br&gt;
&lt;br&gt;
전부터 있어온 내용이지만
최근에서야 몇몇 다큐들과 칼럼 들을 살펴보게되는데
이종욱, 이덕일 류의 고대사에 대한 내용들을 보게 되면 당황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lt;br&gt;
&lt;br&gt;
&lt;br&gt;
과연 식민사학의 정의는 무엇일까?
우리 안의 식민사학은 무엇일까?
&lt;br&gt;
&lt;br&gt;
&lt;br&gt;
자타가 공인하는 식민사학자 그룹은 익히 알려진 대로 동경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들과 그 제자들이다.
&lt;br&gt;
&lt;br&gt;
&lt;br&gt;
(1)일선동조론을 만들어서 조선의 식민화를 정당화하고,
(2) 만선사관을 청나라와 독립운동가들에게 빌려와서 만주 괴뢰국 건설과 만주-조선-일본 하나라는 논리로 제국주의를 정당화 해 낸다. 만주가 한반도와 연결되면서 한반도의 역사는 만주에 종속되므로 (3)반도적 특성론과 (4)타율성론이 제기되었다. 이와는 다소 다른 경지에서 경제학자들은 당시 조선은 일본의 고대 촌락사회정도에 머무르는 (5)정체된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식민지 근대화를 해주겠단다. 아울러 조선 망국의 원인을 붕당에서 찾아서 (6)당쟁사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lt;br&gt;
&lt;br&gt;
&lt;br&gt;
광복이후 우리 역사학계는 위에서 제시된 무수한 식민사관을 타파하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여왔다. 때로는 반론을 위한 반론으로 다소 모호한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당시로서는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lt;br&gt;
&lt;br&gt;
&lt;br&gt;
고대사에서부터 시작된 식민사학 극복 노력은 경제분야에서는 6,70년대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정치사에서는 붕당정치론으로 80년대가 되면 기초적인 극복이 이루어지고 90년대 18세기 르네상스 시대로 이해되면서 대부분의 복권이 이루어졌다.
&lt;br&gt;
&lt;br&gt;
&lt;br&gt;
그런데 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quot;식민사관&quot;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 신빙과 불신론이라는 논쟁이 식민사학논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lt;br&gt;
&lt;br&gt;
&lt;br&gt;
서강대 이종욱은 &lt;&lt;삼국사기&gt;&gt; 초기기록을 신뢰할 수 있고 따라서 기원전부터 강력한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 반면에, 주보돈을 위사한 절대다수의 고대사 전공자들은 &lt;&lt;삼국사기&gt;&gt; 초기기록에 대해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lt;br&gt;
&lt;br&gt;
&lt;br&gt;
양자의 견해는 기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점차로 이종욱의 입지가 줄어줄면서 논쟁이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것을 식민사관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졸지에 학계의 고대사 전공자 다수가 식민사학자가 되었다. 이는 예전에 레드 콤플렉스를 활용하는 낙인찍기와 별반 다름 없는 행태이다. 차라리 빨갱이라고 하지.
&lt;br&gt;
&lt;br&gt;
&lt;br&gt;
논지는 이렇다.
일본의 쯔다 소기치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처음 제창했으며, 이것이 식민사학자들에게 채택되었다. 이병도는 시점을 올려잡으려고 노력했으나, 이 학설을 비판적으로 계승했을 뿐 기본적으로 삼국사기 비판적 관점은 동일하다. 이후 고대사 전공자는 모두 이병도의 제자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들 모두 쯔다의 제자요, 식민사학에 세례된 이들이다. 최근의 이덕일의 주장은 이것을 그대로 따른데 불과하다. 이종욱은 미국 유학파이다. 그래서 본인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lt;br&gt;
&lt;br&gt;
&lt;br&gt;
그런데 문제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로 몰린 그룹들이 바로 광복이후 반세기 넘게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핵심 연구자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광복후 한국의 역사학을 구축하면서 반식민사학 이론을 만드는데 공헌한 사람들에게 편리하게 유학을 다녀온 사람의 비아냥치고는 지나치게 무례한 것이었다. 
&lt;br&gt;
&lt;br&gt;
&lt;br&gt;
가장 최근의 이종욱의 발언 중에는 이기백의 &lt;&lt;한국사신론&gt;&gt;조차 식민사학에 물든 책으로 sbs 역사전쟁 다큐에서 설명했다. 가장 폭력적이고 야비한 방법이다.
&lt;br&gt;
&lt;br&gt;
&lt;br&gt;
이 책은 주지하다시피 광복이후 식민사학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한국사 개설서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학설과 맞지 않는다고 식민사학이라고 비아냥 거린다는 것은 상식이하이다.
&lt;br&gt;
&lt;br&gt;
&lt;br&gt;
계보관계 역시 난감하다. 이병도는 쯔다의 제자이지만, 그의 학설은 비판했던 인물이고, 일제식민사학자의 이론 중 상당 부분을 비판하고 바꾼 인물이다. 현행 국사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위만조선의 동이족설, 다카마쓰 벽화, 최근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등이 실제 이병도의 학설이다. 한문고전의 국역사업 추진 등도 그의 작품이다. 
&lt;br&gt;
&lt;br&gt;
&lt;br&gt;
별로 존경하고 싶은 역사학자는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친일파라거나 식민사학자로 매도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lt;br&gt;
&lt;br&gt;
&lt;br&gt;
특히 그를 경성제대 교수 이마니시의 제자로 설정하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다. 이마니스 류는 동경제대 출신으로 새로 만든 경성제대의 교수가 되어 조선사편수회를 이끌면서 식민사학의 핵심이론가가 되었다. 조선에 와서 와세다 출신의 이병도의 학설발표를 조직적으로 방해하여 이병도와는 앙숙과도 같은 인물이다. 이병도가 진단학회를 만든 것은 일인 학자들의 간섭에서 자유로이 논문을 실고 싶어서였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집까지 저당 잡히고, 조선어학회 사건 등과 엮이어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를 이미니시와 같은 부류로 놓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lt;br&gt;
&lt;br&gt;
&lt;br&gt;
해방후 그가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된 것을 일제시대 경성제대 이마니시와 엮는 것은 이상한 논리이다.
&lt;br&gt;
&lt;br&gt;
&lt;br&gt;
주지하다시피 경성제대가 대한제국이 만들어놓은 관립학교들을 통폐합해서 만들었듯이, 광복후 미군정에서는 서울에 있는 국공립학교 일체를 모아서 국립서울대학교를 만들었다. 수원농대를 필두로, 사범학교 등 수도권 일대의 국공립학교가 모두 포괄되었다. 
&lt;br&gt;
&lt;br&gt;
&lt;br&gt;
여기에 경성제국대학의 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경성제대는 기본적으로 일본인 학교이다. 여기에 2-3%정도의 조선인의 입학이 허가되었을 뿐이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 교수진과 학생들은 모두 귀국해버렸다. 극소수의 한국인 학생이 서울대로 왔지만, 실제 서울대를 구성하는 교수진과 학생들은 본래의 수도권의 학교의 구성원이었고, 일본 유학후 귀국한 이들이었다. 
&lt;br&gt;
&lt;br&gt;
&lt;br&gt;
따라서 경성제국대학 교수진들의 식민사학 주도를 평가할 수는 있지만, 광북후 한국인들이 만든 서울대학교의 식민사학 계승을 연결하기는 어렵다.
&lt;br&gt;
&lt;br&gt;
&lt;br&gt;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병도의 계승성을 연결하는 쯔다 소기치(津田左右吉) 문제이다. 최근의 많은 식민사학 계보 논쟁에 이병도와 쯔다가 있다. 
&lt;br&gt;
&lt;br&gt;
&lt;br&gt;
요즘의 고대사학자들은 자신을 이병도의 제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학설 중 계승되는 것도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연결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이병도 자신도 쯔다의 학설을 계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lt;br&gt;
&lt;br&gt;
&lt;br&gt;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쯔다를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문제는 그의 행보가 대단히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lt;br&gt;
&lt;br&gt;
&lt;br&gt;
쯔다 소기치는 와세다 출신으로 와세다 강사를 거쳐서 와세다의 교수가 되었다. 원래는 중국 사상사가 전공이였지만, 당시 동경제국대학을 주축으로 해서 황국사관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정국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lt;br&gt;
&lt;br&gt;
&lt;br&gt;
쯔다의 행적 중 주목되는 부분은 남만주철도주식회사 부설로 운영한 만선지리역사조사실의 경력이다. 마치 이병도가 조선사 편수회 무급인턴을 지낸 것이 문제가 되는 것과 같다.
&lt;br&gt;
&lt;br&gt;
&lt;br&gt;
전자에서 쯔다는 공부의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그곳의 학설과 정반대가 되는 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곳의 경력은 문제가 안 될 것 같다. 이병도의 경우도 실제로 조선사 편수회를 주도한 경성제대 교수들에게 핍박을 당한 고로 이곳의 역할은 살펴보기 어렵다. 이곳에서 그가 얻은 혜택은 규장각도서의 열람권이었다. 
&lt;br&gt;
&lt;br&gt;
&lt;br&gt;
쯔다는 당시 동경제대 교수들이 집필한 황국사관의 바이블 &lt;&lt;國史眼&gt;&gt;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이 책은 &lt;&lt;일본서기&gt;&gt;의 기록을 중심으로 천황제를 옹호하고 한반도 남부 통치의 정당성을 임나일본부를 통해 내세우고 있다.
&lt;br&gt;
&lt;br&gt;
&lt;br&gt;
쯔다는 무려 4책에 달하는 고대사 연구서적을 통해서 이 학설들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lt;&lt;일본서기&gt;&gt;는 허구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일본의 당시 문부성에서 기소하여 재판에 넘겨지게 되고 책은 금서로 지정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집행유예를 받았으나 와세다 교수직을 사임해야 했고 폐전할 때까지 은거해야 했다.
&lt;br&gt;
&lt;br&gt;
&lt;br&gt;
그러므로 그를 황국사관의 대변자로 설명하는 것은 당시 상황과 맞지 않다. 이병도는 당시로서는 이러한 반체제 인사의 제자였다. 와세다가 사립이 아니었으면 애시당초 발표 자체가 안 되었을 법한 일들이었다. 이병도와 수학한 김상기 역시 동학난으로 와세다 졸업논문을 썼으니, 동학을 원수처럼 여기던 일제치하에서 와세다가 얼마나 자유로운 학풍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lt;br&gt;
&lt;br&gt;
&lt;br&gt;
그리고 전쟁후 미군정의 영향권 하에서 황국사관은 종말을 맞이하고 당시 서슬퍼른 군부와 맞서 싸웠던 쯔다는 영웅이 되었다. 물론 복권되었으며 곧이어 문화훈장을 받았다. 이조차도 모 다큐에서는 황국사관의 공로로 받았다고 한다. 이는 일본의 전쟁전과 전쟁후의 분위기를 전혀 모르는데서 온 설명 방식이다. 해방후 일본 내에서 쯔다의 입지는 절대적이었다. 극우 군국주의 세력과는 처절하게 맞서싸웠지만, 이후 막시즘의 광풍 속에서도 온건한 보수를 대변하는 인물로 쯔다는 일정한 좌표가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막시즘의 중심이었던 동경대와는 늘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lt;br&gt;
&lt;br&gt;
&lt;br&gt;
하지만 문제는 쯔다가, 자국사인 &lt;&lt;일본서기&gt;&gt;를 허구로 보는 그가, &lt;&lt;삼국사기&gt;&gt; 역시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는 점이다. 당대 기록이 아닌 고려시대 만들어진 삼국의 역사가 얼마든지 재편집될 수 있다고 보고 초기기록을 불신한 것이다. 이 학설에 이병도는 반박하면서 최대한 올려잡으려고 노력했고 그 덕에 불신을 받는 기록부분은 축소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쯔다가 세워놓은 의심의 시각은 고대사 연구에서 쉽게 배제되지 못했다.
&lt;br&gt;
&lt;br&gt;
&lt;br&gt;
특히, 일제 식민사학자 그룹들은 이 학설을 충분히 활용하고 싶어했다. 이마니시 류는 동경제대 출신의 경성제대 교수로서 쯔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지만, 쯔다의 삼국사기 불신론을 활용했다. 따라서 쯔다의 일본 국내의 황국사관과의 투쟁과는 무관하게 한국 내에서는 이마니시 때문에 나쁜 학자로 찍혀있는 셈이다. 
&lt;br&gt;
&lt;br&gt;
&lt;br&gt;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쯔다의 학설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의 학자적 삶은 폄하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한다. 
&lt;br&gt;
&lt;br&gt;
&lt;br&gt;
하지만 이덕일 등은 이러한 정황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이 쯔다나 이마니시류를 내세워 이병도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 전체를 식민사학자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lt;b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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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gt;
재야의 고대사 학설은 늘 흥미진지하지만, 고대사전공자들이 바보들도 아니고 평생 그것으로 업을 삼고 있는데 아마추어들이 이렇게 쉽게 맹목적인 비판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lt;br&gt;
&lt;br&gt;
&lt;br&gt;
재밌는 것은 이종욱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주장하는 사람인데 식민사학을 언급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학계에서는 화랑세기 신빙주장 때문에 완전히 재야로 분류되고 있다. 그래서 자신과 제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별도의 학회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상황이다. 학계와의 소통이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극단을 치닫는 것으로 생각된다.
&lt;br&gt;
&lt;br&gt;
&lt;br&gt;
이덕일은 일제시대 만주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인물로 대부분의 시각이 이 시기 독립운동가의 고대사나 조선시대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작년에는 실록 재번역사업에 대한 불필요성도 주장했다. 그가 번역본의 애독자라는 점에는 참 이상한 발언이었다. 조선전기 실록중 오역률이 높은 것은 40%에 달한다. 초기 국역사업에 역사학자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중요한 역사용어 번역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 인명조차 번역하기도 했다. 현재 번역상태는 퍽 좋은 편이 아니다. 원문자료와 대조를 할 수 있는 연구자라면 재번역을 반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각종 방송매체의 조선시대 전문가임내 하며 나오는 사람 치고는 이상한 주장이다. 
&lt;br&gt;
&lt;br&gt;
&lt;br&gt;
이런데도 기존 학계 비판은 늘 잇슈가 되는 현실이 참 난감할 뿐이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66817</link>
<category>잡설</category>
<category>이덕일</category><category>쯔다 소기치</category><category>이병도</category><category>식민사관</category><category>이종욱</category><category>경성제대</category><category>조선사편수회</category><category>고대사</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Sun, 27 Mar 2011 18:48:2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사이버대학의 첫학기</title>
<description>거의 초창기부터 사이버대학의 운영에 관심이 많아서 &lt;BR&gt;지난 10여년간&amp;nbsp;눈팅만해서 관찰해오던 여러 사이버대학들 중에서&lt;BR&gt;한 곳에 실제 입학을 해서 한 학기를 보내보았다.&lt;BR&gt;&lt;BR&gt;&lt;BR&gt;사실은 아주 간단한 계산 때문에 시도한 것인데,&lt;BR&gt;외국어 공부는 해야 하고, 학원을 다닐 경우의 2년간 비용과&lt;BR&gt;사이버대학을 편입하여 다닐 경우 2년간의 학비 중 후자가 싸다는 단순한 계산 때문이었다.&lt;BR&gt;&lt;BR&gt;&lt;BR&gt;3개국의 연수를 마치면 이제는 더이상 안 해도 될줄 알았더니, &lt;BR&gt;이놈에 외국어 공부는 끝이 없다.&lt;BR&gt;&lt;BR&gt;&lt;BR&gt;얼마간 외국에 체재한 경험들은 있지만, 요즘 요구되는 수준은 대화정도가 아니라,&lt;BR&gt;우리분야에서는 학술적인 토론과 강의가 가능한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에,&lt;BR&gt;먹고 살자니 다시 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lt;BR&gt;&lt;BR&gt;&lt;BR&gt;&lt;BR&gt;그러나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참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lt;BR&gt;일과 강의, 연구, 잡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부까지 하려니 참 난망하였다.&lt;BR&gt;&lt;BR&gt;&lt;BR&gt;어제는 학점이 공개되었는데,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lt;BR&gt;생애 첫 B0도 받아보았다(참 재수 없는 얘기겠다).&lt;BR&gt;&lt;BR&gt;&lt;BR&gt;마음가짐이 역시 쉽지 않은거 같다.&lt;BR&gt;살림이 궁핍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했을 때는 학점에 목숨걸고 다녔는데&lt;BR&gt;(그덕에 대학원도 수석으로 졸업했었다. 별 의미는 없지만).&lt;BR&gt;이제 내 돈으로 다니니깐 학점에 큰 뜻을 두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lt;BR&gt;&lt;BR&gt;&lt;BR&gt;학점 문의를 해봐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lt;BR&gt;왜냐면 한 과목 공부했는데 그것만 점수가 낮아서이다.&lt;BR&gt;&lt;BR&gt;온라인 시험들이라 채점표 확인이 가능해서 확인해보니, &lt;BR&gt;대부분 맞추기는 했지만 맞춘것은 배점이 낮은 거고 틀린 것은 배점이 높은거여서&lt;BR&gt;성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단념했다.&lt;BR&gt;사이버대학은 중간 중간의 성적공개가 참 투명하다는 인상을 받았다.&lt;BR&gt;채점표까지 바로 알 수 있고, 정답도 시험직후 공개되었다.&lt;BR&gt;&lt;BR&gt;&lt;BR&gt;공교롭게도 오늘부터는 내가 강의한 학생들이 성적을 확인하고 문의가 와서&lt;BR&gt;답변해주느라 참 느낌이 묘했다.&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사이버대학의 학생들 연령층은 참 다양했다. 20대 초반에서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분들이 다녔고, 걔 중에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꽤 있었다.&amp;nbsp;자기 전공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이 언어 등 특정 영역을 보완하기 위해서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혹은 아예 20대 초반에 학위과정을 다니기 위해서 온 경우도 있었고, 이직을 위한 사람들도 보였다. 대개 나보다 몇배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lt;BR&gt;&lt;BR&gt;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공부할지를 걱정하는데, &lt;BR&gt;나는 언제 업무를 마치고 출석을 채울까 고민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lt;BR&gt;&lt;BR&gt;&lt;BR&gt;&lt;BR&gt;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선생님과 수업조교들을 존중해준다는 사실이었다. &lt;BR&gt;&lt;BR&gt;이제 갓 석사학위를 딴 강사들과 대학원생 수업조교들인지라 참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하였는데 괜한 고민이었다.&amp;nbsp;내 학교에서는 나의 수업을 듣는&amp;nbsp;학생들정도가 되지만 엄연히 학교도 다르고 이 분야에서는 그저 난 학부생일뿐인데 말이다.&lt;BR&gt;&lt;BR&gt;참 사람이 겸손해지기는 어려운 것 같다.&lt;BR&gt;&lt;BR&gt;&lt;BR&gt;사이버대학을 한 학기동안 다녀본 소감은 나름대로 좋았다는 평을 할 수 있겠는데,&lt;BR&gt;&lt;BR&gt;또한 상당히 직장인을 배려해 주고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lt;BR&gt;&lt;BR&gt;그래도 일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하기에는 참 어렵기는 마찬가지로 생각된다.&lt;BR&gt;&lt;BR&gt;예전 처럼 공부만 할 수 있을 때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lt;BR&gt;&lt;BR&gt;&lt;BR&gt;&lt;BR&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36231</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Tue, 30 Jun 2009 21:48: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진화하는 정년기념논총, 교양서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기</title>
<description>&lt;P&gt;광복이후 역사학계의 2세대들도 이제 정년을 맞이하여 최근 10여년간은 정년논총이 상당히 많이 산출되었다.&lt;BR&gt;&lt;BR&gt;&amp;lt;~교수 정년기념논총&amp;gt;이라하면 보통 학술지에나 실을법한 전문적인 글들을 모아서 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글들이 전공자들 외에는 읽지 않을 뿐더러 특별히 간행하는 것이기에 쉽게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한계가 있었다.&lt;BR&gt;&lt;BR&gt;이에 최근의 경향은 지도교수의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이 관련 전공내용을 쉽게 풀이해서 일반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글을 만드는데 노력하고 있다. 아래의 3종은 처음부터 학부생과 일반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교양도서의 편찬을 목표로 기획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lt;BR&gt;&lt;BR&gt;&lt;BR&gt;&lt;BR&gt;(1) 한영우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편, &amp;lt;&amp;lt;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 인물열전&amp;gt;&amp;gt;(전3책, 63명참여, 돌베게, 2003)&lt;BR&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9/0614/cemogrim/L11.jpg&quot;&gt;&lt;BR&gt;&lt;SPAN class=more_contents style=&quot;DISPLAY: none&quot; oldblock=&quot;inline&quot;&gt;&lt;B&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lt;BR&gt;1권&lt;/B&gt;&lt;BR&gt;단군 : 국가의 시조, 민족의 시조&lt;BR&gt;위만 : 고조선을 고대의 정복 국가로 중흥시킨 왕&lt;BR&gt;주몽 : 새 하늘, 새 땅의 꿈을 현실로 만든 영웅&lt;BR&gt;김유신 : 삼국 통일에 평생을 바친 지용 겸비의 명장&lt;BR&gt;원효 : 영원한 새벽&lt;BR&gt;의상 : 보통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원융한 사회&lt;BR&gt;대흠무 : 발해를 만든 제왕&lt;BR&gt;김헌창 : 신라를 부정한 개혁가&lt;BR&gt;김부식 : 주체성을 상실한 사대주의자인가, 합리성을 중시한 현실주의자인가&lt;BR&gt;송유인 : 시세에 민감했던 무신정권 초기의 권세가&lt;BR&gt;정서 : 불우한 유배 속에 피어난 고려가요의 향기&lt;BR&gt;김방경 :삼별초 평정과 일본 정벌을 이끈 고려군 최고 지휘관&lt;BR&gt;최해 : 역경 속에서 피워올린 창작의 불꽃&lt;BR&gt;이제현 : 시대를 증언하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다&lt;BR&gt;정도전 : 청년 정도전의 새로운 자아 정체성 형성에의 길&lt;BR&gt;조준 : 조선국가 경제제도의 밑그림을 그린 현실적의적 경세가&lt;BR&gt;하륜 : 태종대의 개혁을 이끈 보수적 정치가&lt;BR&gt;김시습 : 도의정치 구현을 꿈꾼 선각자&lt;BR&gt;김일손 : 역사 정신을 구현한 사관&lt;BR&gt;조광조 : 사람정치 개혁의 이상&lt;BR&gt;이문건 : 일기를 통해 본 16세기 한 사대부의 삶&lt;BR&gt;&lt;BR&gt;&lt;/SPAN&gt;&lt;SPAN class=more_contents&gt;&lt;STRONG&gt;1권&lt;BR&gt;&lt;/STRONG&gt;단군 : 국가의 시조, 민족의 시조&lt;BR&gt;위만 : 고조선을 고대의 정복 국가로 중흥시킨 왕&lt;BR&gt;주몽 : 새 하늘, 새 땅의 꿈을 현실로 만든 영웅&lt;BR&gt;김유신 : 삼국 통일에 평생을 바친 지용 겸비의 명장&lt;BR&gt;원효 : 영원한 새벽&lt;BR&gt;의상 : 보통 사람들과 함께 만드는 원융한 사회&lt;BR&gt;대흠무 : 발해를 만든 제왕&lt;BR&gt;김헌창 : 신라를 부정한 개혁가&lt;BR&gt;김부식 : 주체성을 상실한 사대주의자인가, 합리성을 중시한 현실주의자인가&lt;BR&gt;송유인 : 시세에 민감했던 무신정권 초기의 권세가&lt;BR&gt;정서 : 불우한 유배 속에 피어난 고려가요의 향기&lt;BR&gt;김방경 :삼별초 평정과 일본 정벌을 이끈 고려군 최고 지휘관&lt;BR&gt;최해 : 역경 속에서 피워올린 창작의 불꽃&lt;BR&gt;이제현 : 시대를 증언하나,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다&lt;BR&gt;정도전 : 청년 정도전의 새로운 자아 정체성 형성에의 길&lt;BR&gt;조준 : 조선국가 경제제도의 밑그림을 그린 현실적의적 경세가&lt;BR&gt;하륜 : 태종대의 개혁을 이끈 보수적 정치가&lt;BR&gt;김시습 : 도의정치 구현을 꿈꾼 선각자&lt;BR&gt;김일손 : 역사 정신을 구현한 사관&lt;BR&gt;조광조 : 사람정치 개혁의 이상&lt;BR&gt;이문건 : 일기를 통해 본 16세기 한 사대부의 삶&lt;BR&gt;&lt;STRONG&gt;&lt;BR&gt;2권&lt;/STRONG&gt;&lt;BR&gt;유희춘 : 선조대 성리학 연구와 학술 진흥에 기여한 호남 사림&lt;BR&gt;이지함 : 기인인가, 실학의 선구자인가&lt;BR&gt;이이 : 율곡 이이의 구체제 혁신론&lt;BR&gt;허준 : 조선 의학의 완성&lt;BR&gt;김효원 : 동서 분당의 발단이 된 신진 사림의 영수&lt;BR&gt;선조 : 목릉성세의 중흥군주&lt;BR&gt;한교 : 조선의 병학을 정립한 성리학자&lt;BR&gt;강홍립 : 명청 교체의 격랑 속에서 고투한 경계인&lt;BR&gt;김육 : 고집과 끈기로 백성을 편안하게 한 정세가&lt;BR&gt;송시열 : 이상사회를 실현한 개혁자&lt;BR&gt;강후진 : 민초가 대변한 우리 역사의 성찰&lt;BR&gt;이중환 : 굴곡 있는 삶, 시대를 앞선 사유&lt;BR&gt;영조 : 조선성리학의 의리론을 주도한 군사&lt;BR&gt;신경준 : 기술과 실용을 중시한 국학자&lt;BR&gt;서명응 : 영, 정조대 학문 정책의 실무책임자&lt;BR&gt;채제공 : 영조, 정조 연간 실시된 탕평정국의 큰 기둥을 받친 남인 관료 정치가&lt;BR&gt;홍양호 : 18세기 후반의 참보수&lt;BR&gt;서호수 : 천문학과 농학을 겸전한 전문가&lt;BR&gt;정조 : 조선의 문예부흥을 이룩한 학자 군주&lt;BR&gt;이서구 : 비운의 사림청론 정치가&lt;BR&gt;유신환 : 산림을 벗어나고자 했던 산림학자&lt;BR&gt;&lt;BR&gt;&lt;B&gt;3권&lt;/B&gt;&lt;BR&gt;박규수 : 개화사상의 아버지&lt;BR&gt;김병욱 : 사회 개혁을 향한 꿈과 실천&lt;BR&gt;박주종 : 조선 후기 백과전서학의 발전과 지방 지식인&lt;BR&gt;명성황후 : 수구본당인가, 개화의 선각자인가&lt;BR&gt;유길준 : 갑오개혁의 이론가로 개혁을 주도한 최초의 일본 및 미국 유학생&lt;BR&gt;남궁억 :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나라와 겨레 사랑을 실천한 민족주의자&lt;BR&gt;서재필 : 개혁 정신의 실천과 기독교 신앙&lt;BR&gt;김백선 : 명성왕후 지지, 개화파 반대 활동을 했던 평민 의병장&lt;BR&gt;이승만 : 반공 건국과 분단 독재의 카리스마&lt;BR&gt;한상룡 : 민족을 비월한 사이비 근대인&lt;BR&gt;신채호 : 절대적 자유를 꿈꾼 영원한 혁명가&lt;BR&gt;김규식 : 김규식과 항일통일전선, 좌우합작운동&lt;BR&gt;홍명희 : 혁명적이며 민족적이고자 했던 중간 길 지식인의 문학과 정치적 선택&lt;BR&gt;안재홍 : 민족운동과 신민족주의의 이론가&lt;BR&gt;우장춘 : 국적의 아들에서 홍농의 아버지가 된 세계적인 육종학자&lt;BR&gt;윤보선 : 꺽이지 않는, 그러나 시류에 흔들린 야당의 지도자&lt;BR&gt;김진구 : 김옥균 숭배자의 혼미와 허망&lt;BR&gt;손진태 : 민속학자에서 역사학자로&lt;BR&gt;이종률 : 민족혁명운동에 일생을 바친 정치학도&lt;BR&gt;박정희 : 한국의 1960-70년대를 독점한 인물&lt;BR&gt;장준하 : 계몽과 저항의 생애&lt;/SPAN&gt;&lt;BR&gt;&lt;BR&gt;&lt;BR&gt;&lt;BR&gt;(2) 허승일 외, &amp;lt;&amp;lt;인물로 보는 서양고대사&amp;gt;&amp;gt;(허승일교수 정년기념논총, 31명참여, 길, 2006)&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9/0614/cemogrim/L.jpg&quot;&gt;&lt;BR&gt;&lt;BR&gt;&lt;BR&gt;&lt;SPAN class=more_contents&gt;머리말&lt;BR&gt;&lt;BR&gt;&lt;B&gt;제1부 고대 그리스&lt;/B&gt;&lt;BR&gt;약사_ 고대 그리스의 궤적&lt;BR&gt;테세우스_ 신화와 역사 사이&lt;BR&gt;리쿠르고스_ 스파르타의 입법자&lt;BR&gt;헤시오도스_ 서양 최초의 &apos;정의&apos;의 제창자&lt;BR&gt;솔론_ 채무를 말소한 현자&lt;BR&gt;페이시스트라토스_ 정치개혁보다 문화를 장려한 선동정치가&lt;BR&gt;클레이스테네스_ 베일 속에 가려진 정치가&lt;BR&gt;테미스토클레스_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lt;BR&gt;페리클레스_ 민주정치의 완성인가, 독재의 가면인가&lt;BR&gt;이소크라테스_ 아테네의 실천적 지식인&lt;BR&gt;데모스테네스_ 수사의 전설&lt;BR&gt;알렉산드로스_ 헬레니즘 문명의 창시자&lt;BR&gt;갈레노스_ 고대의학의 완성자&lt;BR&gt;&lt;BR&gt;&lt;B&gt;제2부 로마 공화정&lt;/B&gt;&lt;BR&gt;약사_ 로마 공화정기 지중해 세계를 풍미한 인물들&lt;BR&gt;로물루스_ 로마 최초의 CEO&lt;BR&gt;한니발 바르카_ 로마가 만든 신화, 카르타고의 명장&lt;BR&gt;노 카토_ 국가를 위해 자신과 타인에게 엄격했던 정치가&lt;BR&gt;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_ 로마를 구한 비운의 영웅&lt;BR&gt;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_ 로마 평민의 참대변인&lt;BR&gt;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_ 로마 혁명이 시작되다&lt;BR&gt;가이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투스_ &apos;형만한 아우 있다&apos;&lt;BR&gt;가이우스 마리우스_ 영원한 군인, 로마의 1인자&lt;BR&gt;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_ 공화국보다 권력을 더 사랑한 공화주의자&lt;BR&gt;카틸리나_ 콘술 자리를 노린 음모인가, 인민의 대변자인가&lt;BR&gt;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_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apos;대부&apos;&lt;BR&gt;폼페이우스 마그누스_ 떠오르는 태양, 지는 태양&lt;BR&gt;카이사르_ 왕이 되고자 열망하다가 죽어서 신이 되다&lt;BR&gt;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_ 최초로 곡물 무상배급한 귀족 출신 호민관&lt;BR&gt;안토니우스_ 권력도 사랑도 잃은 로마인&lt;BR&gt;&lt;BR&gt;&lt;B&gt;제3부 로마 제정&lt;/B&gt;&lt;BR&gt;약사_ 팍스 로마나의 인간과 역사&lt;BR&gt;아우구스투스_ 로마 제국의 일인자가 된 옥타비아누스 이야기&lt;BR&gt;네로_ 절대권력을 꿈끈 예술가 황제&lt;BR&gt;베스파시아누스_ 로마 최초의 기사 신분 황제&lt;BR&gt;디오클레티아누스_ 쓰러져가는 로마 제국의 구원자&lt;BR&gt;콘스탄티누스_ 서구 세계를 기독교 문화로 개종시키다&lt;BR&gt;율리아누스_ 최후의 이교 황제&lt;BR&gt;오도아케르_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중세의 시작?&lt;BR&gt;헤로데 대왕_ 심장은 이두메인, 정신은 로마인&lt;BR&gt;퀸틸리아누스_ 고전수사학의 완성자&lt;BR&gt;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_ 고대 건축의 금자탑을 쌓은 건축의 아버지&lt;BR&gt;호라티우스_ 사비눔에서의 우정과 행복&lt;BR&gt;성 아우구스티누스_ 하나님의 진리를 향한 열정&lt;BR&gt;&lt;BR&gt;용어해설&lt;BR&gt;&lt;BR&gt;&lt;BR&gt;(3) 이태진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편, &amp;lt;&amp;lt;문화로 보는 한국사&amp;gt;&amp;gt;(76명참여, 전5권, 태학사, 2009)&lt;BR&gt;&lt;BR&gt;&lt;BR&gt;&lt;IMG src=&quot;http://www.mediamob.co.kr/FDS/newBlogContent/2009/0614/cemogrim/x9788959663040.jpg&quot;&gt;&lt;BR&gt;&lt;B&gt;&lt;BR&gt;&lt;BR&gt;&lt;BR&gt;1권 사회적 네트워크와 공간&lt;/B&gt;&lt;BR&gt;간행사&lt;BR&gt;제1부 교유의 일상성과 사회적 네트워크&lt;BR&gt;채웅석 고려시대 과거(科擧)를 통한 인간관계망 형성과 확장 &lt;BR&gt;이병희 고려시대 불교계의 네트워크&lt;BR&gt;권기석 15~17세기 족보 간행 참여계층의 확대와 그 성격&lt;BR&gt;심재우 호적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사람들&lt;BR&gt;고영진 양반관료 류희춘의 관계망&lt;BR&gt;장동표 조선중기 재지사족의 삶과 향촌사회&lt;BR&gt;김준형 19세기 경남 서부 지역 유림들의 당파적 입장과 교유 양상&lt;BR&gt;남지대 신분제의 틀과 변동의 줄기&lt;BR&gt;&lt;BR&gt;제2부 도시 공간과 지역 &lt;BR&gt;전덕재 신라 왕경의 성립과 변천&lt;BR&gt;김창석 고대의 영서 지역과 춘천맥국설&lt;BR&gt;박종진 고려왕조의 수도 개경의 경관&lt;BR&gt;윤경진 고려 무신집권기 공신 관향의 승격과 그 향방&lt;BR&gt;전우용 대한제국기 서울의 공공시설과 공중&lt;BR&gt;고석규 전남의 관문, 목포가 만난 근대&lt;BR&gt;홍순권 일제시기 동래의 도시화 과정과 ‘주민대회’ &lt;BR&gt;반병률 러시아 연해주 13도의군 창설지 문제&lt;BR&gt;찾아보기&lt;BR&gt;필자 소개&lt;BR&gt;&lt;BR&gt;&lt;B&gt;2권 물질문화와 농민의 삶&lt;/B&gt;&lt;BR&gt;간행사&lt;BR&gt;제1부 물질문화, 욕망과 몸&lt;BR&gt;김종일 한국 청동기시대 남성 몸의 형성과 상징구조&lt;BR&gt;노중국 백제의 의?약 기술의 발전과 사찰의 의료활동&lt;BR&gt;윤선태 한국 고대 목간(木簡)의 세계&lt;BR&gt;권영국 고려시대 소금의 생산과 유통&lt;BR&gt;정연식 조선시대의 주식과 부식&lt;BR&gt;고동환 조선시대 얼음의 문화사&lt;BR&gt;김 호 ‘조선후기적 조건’의 탄생과 욕망의 대두&lt;BR&gt;신동원 조선후기 신체?장부에 관한 담론의 성격&lt;BR&gt;허태구 조선시대의 궁중(宮中) 불꽃놀이&lt;BR&gt;노영구 태권도 전사(前史)로서 조선시대 도수무예의 전개&lt;BR&gt;&lt;BR&gt;제2부 농민의 삶과 경제&lt;BR&gt;김경숙 조선시대 노비의 기물(己物)과 기상(記上)&lt;BR&gt;염정섭 조선후기 농력(農曆)의 세 가지 양상&lt;BR&gt;윤용출 조선후기 산성의 축조와 승역(僧役)&lt;BR&gt;송찬섭 1862년 농민항쟁의 지도자들&lt;BR&gt;강석화 기행문에 보이는 19세기 함경도 육진(六鎭) 지역의 생활상&lt;BR&gt;김민수 19세기 물가 변동의 추이와 원인&lt;BR&gt;찾아보기&lt;BR&gt;필자 소개&lt;BR&gt;&lt;BR&gt;&lt;B&gt;3권 시대와 인물, 그리고 사회의식&lt;/B&gt;&lt;BR&gt;간행사&lt;BR&gt;제1부 시대와 인물&lt;BR&gt;이민웅 이순신과 원균의 생애와 평가 비교&lt;BR&gt;윤대원 동학의 초기 조직과 이필제&lt;BR&gt;김정인 천도교 민족주의와 손병희&lt;BR&gt;이영호 동학과 기독교의 조우&lt;BR&gt;정숭교 근대전환기 최한기와 안확의 인식론과 실천론&lt;BR&gt;한보람 1880년대 조선정부의 개화정책과 유길준&lt;BR&gt;김현영 안중근 공판기록 관련 자료&lt;BR&gt;김희곤 한 순간도 꺾이지 않은 항일투쟁의 길, 김시현의 삶&lt;BR&gt;이호룡 아나키스트 이회영의 삶과 사상&lt;BR&gt;&lt;BR&gt;제2부 사회의식과 윤리&lt;BR&gt;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사생관&lt;BR&gt;김훈식 조선초기 유교적 여성윤리의 확립&lt;BR&gt;박현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훈(遺訓)&lt;BR&gt;김영심 ‘사씨남정기’를 통해 본 조선후기 양반사대부의 가문의식&lt;BR&gt;오수창 조선후기 야담과 소설에 담긴 사회적 갈등과 신분인식&lt;BR&gt;유현재 조선후기 장애인에 대한 시선의 변화&lt;BR&gt;찾아보기&lt;BR&gt;필자소개&lt;BR&gt;&lt;BR&gt;&lt;B&gt;4권 국왕, 의례, 정치&lt;/B&gt;&lt;BR&gt;간행사&lt;BR&gt;제1부 국왕과 의례&lt;BR&gt;주보돈 김춘추의 정치지향과 유학&lt;BR&gt;김재명 고려의 산직내시(散職內侍)와 왕권&lt;BR&gt;김용흠 조선후기의 왕권과 제도정비&lt;BR&gt;김백철 조선후기 영조대 ‘민국’ 논의와 변화된 왕정상&lt;BR&gt;김성윤 만천명월주인옹, 계몽군주 정조&lt;BR&gt;김지영 조선후기 경험된 권력&lt;BR&gt;김세은 철종 3년(1852) 국왕의 가례 거행&lt;BR&gt;김문식 1902년 고종황제의 기로소 입소&lt;BR&gt;&lt;BR&gt;제2부 정치세력과 정치론&lt;BR&gt;임기환 연개소문과 그 정권의 성격&lt;BR&gt;최이돈 조선초기 공치론(共治論)의 형성과 변화&lt;BR&gt;설석규 조선중기 학파의 붕당화와 당론&lt;BR&gt;한상권 정조의 군사론과 형정관&lt;BR&gt;김 돈 조선시대의 문묘종사 인물 논의&lt;BR&gt;정재훈 졸기(卒記)를 통해 본 인물평의 변화&lt;BR&gt;찾아보기&lt;BR&gt;필자소개&lt;BR&gt;&lt;BR&gt;&lt;B&gt;5권 세계 속의 한국사&lt;/B&gt;&lt;BR&gt;간행사&lt;BR&gt;제1부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와 한국&lt;BR&gt;이인철 고구려의 국가적 성격&lt;BR&gt;강종훈 고분을 통해 본 삼국과 왜&lt;BR&gt;최연식 일전 문헌과 한국 불교사상사의 재인식&lt;BR&gt;안병우 원 단사관(斷事官)과 고려의 사법권&lt;BR&gt;김경록 조선시대 국제질서와 조?명 관계&lt;BR&gt;오타 히데하루 전쟁과 교류&lt;BR&gt;이화자 백두산 정계 문제와 조?청 관계&lt;BR&gt;나가모리 미츠노부 근세 조선 표류민과 동아시아 해역&lt;BR&gt;하우봉 시볼트?조선 표류민?나가사키&lt;BR&gt;&lt;BR&gt;제2부 한국의 자기인식과 타자인식&lt;BR&gt;원재연 다블뤼 주교의 조선 인식&lt;BR&gt;조재곤 한 조선관료의 눈에 비친 세계와 근대문화&lt;BR&gt;김태웅 근대 개혁기 고종정부의 서구 전장(典章) 탐색과 만국사 서적 보급&lt;BR&gt;정연태 식민지 근대화론의 한국농업 인식과 이중의 과장&lt;BR&gt;안종철 미국 제도권 한국학의 탄생과 미국의 대한인식&lt;BR&gt;박태균 1950년대 지식인들의 세계정세 인식&lt;BR&gt;&lt;BR&gt;이태진 교수의 학문편력&lt;BR&gt;스위 퍼였나?-5개 연구과제로 보내 40년&lt;BR&gt;주요 학력 및 경력&lt;BR&gt;저술활동&lt;BR&gt;국제학술활동&lt;BR&gt;찾아보기&lt;BR&gt;필자소개&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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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cemogrim/blog.aspx?id=235424</link>
<category>잡설</category>

<author>cemogrim</author>
<pubDate>Sun, 14 Jun 2009 11:59:4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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