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았다. 내리쬐는 햇볕이 강렬했다. 시청 앞 광장엔 여기저기 지친 행색의 사람들이 땡볕 아래 잠들어 있었다.
6월 1일 아침이었다. 효자동에서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고 첫 피의 진압이 이루어진 몇 시간 후, 여대생이 군화발에 밟히고 도망가는 시민들이 방패에 찍혀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몇 시간 후, 분위기는 격앙되어 있었다.
자는 사람들 옆에선, 불과 삼십 미터 앞에서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작은 용량의 앰프를 놓고 백여명이 흩어져 앉아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있었다. 경찰을 그냥 둘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과 끝장을 내자고 했다. 밤새 인터넷 중계를 보던 사람들 역시 끓어오르는 피를 식히며 그날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여느 일요일처럼 한적한 태평로에 무심한 차들이 지나갔지만, 전운이 감도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날 저녁의 집회는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얻어터지고 피 흘리고 고막 찢기고 끌려간 게 불과 24시간도 채 되기 전의 일이었음에도.
6월 29일 새벽은 처참했다. 경찰의 본격 진압이 시작되기 전, 이미 피흘리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의료진! 의료진!”을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 쉴새없이 드나드는 앰뷸런스, 양쪽으로 넘나드는 고압 물줄기, 버스 너머로부터 날아오는 콘크리트 덩어리, 버스 위에서 전경이 던지는 돌멩이,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한 어조의 확성녀, 물줄기를 맞고 나가떨어지는 사람, 소화기 분말을 뒤집어쓰고 실려오는 사람들, 허연 가루가 두텁게 쌓인 아스팔트 바닥, 분노한 시민들이 박살낸 전경 버스들, 전경 버스에서 옷이니 빵이니 전리품들을 꺼내오는 사람들, 시위대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는 진압봉, 하나씩 주워 도로 전경을 겨누고 던지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진압, 열을 맞춰 긴 몽둥이를 들고 뛰어오는 시커먼 옷의 전경 부대, 방패에 맞는 사람들, 몽둥이를 들고 저항하는 사람,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시민 의료진에 치료 받으러 오는 전경, 고립된 전경부대, 도와주러 갔다가 오히려 방패에 맞고 화내는 사람, 무장해제 시키자는 의견과 그냥 보내주자는 의견 사이에서 높아가는 언성들, 무기력감에 망연자실한 사람들, 끊임없이 내리는 비.
돌아온 사람들은 그 새벽에 분노로 떨리는 손을 추스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친 사람이 오죽 많으면 주변 응급실에 꽉 차서 치료해 줄 병원을 찾아 시민들이 거리를 전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경이 도발해 올 때를 대비해 최소한의 자위력은 갖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높았다. 전대협이 나왔으니 오월대도 나오라고도 했다. ‘파이’와 ‘꽃병’ 이야기가 나왔다. 전경이 아니라 전견이라고 했다. 비폭력은 이제 끝났다는 공감대가 높았다.
오후가 되었다. 격앙된 사람들이 시내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의 복수를 할 것만 같은 날이었지만 막상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돌파 시도조차 없었다. 전경이 오면 돌아가고 전경이 막으면 막혔다. 전경이 소화기를 살포할 필요조차 없는 하루였다.
누군가는 폭력 시위라 한다. 태평로 주변 어제 시위대에게 박살난 전경 버스를 경찰은 치우지 않고 그대로 전시해 두었다. 어릴 적 반공전시관에서 본 ‘북괴 인민군의 만행’을 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경찰이 도발하지 않으면 별다른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나리오처럼 매일 밤 반복되는 장면은, 시위대는 버스 벽에 가로막히고, 그러면 버스 위로 올라가거나 끌어내고, 확성녀가 나타나 여러분은 폭력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하고, 소화기와 물대포가 등장하고, 사람들은 격앙되고, 그러다 인원이 줄면 진압당하는 모습이다. 경찰은 항상 버스 위에 올라가거나 버스를 흔드는 모습을 '폭력'으로 간주하고, 그게 무슨 폭력이냐고 야유하고, 그러면 양측의 감정이 고조되며 일이 커진다.
버스 벽이 없으면, 혹은 확성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혹은 매캐한 소화기 가루를 사람들 얼굴에 뿌려대지 않으면, 집회는 비교적 평화롭게 지속되다 끝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연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 충돌이 많지는 않다. 금요일이 그랬고, 일요일이 그랬다.
(사실 버스를 끌어내거나 파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버스로 막는 한 어쩔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한다. 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순간 그것은 이동 수단인 버스가 아니라 시위 진압 용품이다. 비싼 바리케이트를 쳐 놓고 비싼 거 망가졌다고 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굳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싶으면 콘테이너 박스 등등 안 망가지거나 덜 비싼 장비를 써야 한다.)
우리 나라가 노상 이러고 사는 게 아니다. 두 달 동안 매일 밤 시위가 일어나고 언제 끝날지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은 이번이 사상초유이다. 일부의 말대로 ‘시위꾼’들이 문제라면 지금까지 늘 그랬어야 한다. 하지만 안 그렇지 않은가?
강경 진압이 없으면 강경대응도 없다. 시민이 먼저 몽둥이를 들고 전경을 패는 일은 이번 촛불시위에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