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 보고 소진해버리는 영화가 있는 반면, 몇 번을 보고 곱씹으며 되새기는 영화가 있다. <천년학>은 바로 후자의 영화이다. <천년학>을 첫 번째 봤을 때는 수려한 영상에 마음이 쏠렸고, 두 번째는 판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보았고, 세 번째 볼 때는 내용과 소리가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유봉이 소리를 하는 <흥보가>의 박을 타자 재물 쏟아지는 부분은 가난하고 팍팍한 소리꾼들의 염원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동호와 송화가 끊임없이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송화가 부르는 <춘향가>의 이별 장면은 둘의 마음을 절절이 들려주었다. 특히 제주도 오름에서 중동으로 간다는 동호에게 들려주는 송화의 소리,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을 따라가고 싶다는 춘향의 하소연은 그 무엇보다 송화의 심정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천년학>에서는 한 사람을 사이에 둔 두 사람의 대비가 자주 나타나는데, 송화를 사이에 둔 동호와 용택, 동호를 사이에 둔 송화와 단심이 그것이다. 처음 <천년학>을 볼 때는 동호와 송화가 먼저 보였는데, 볼수록 용택과 단심도 눈에 들어온다.
사랑(송화)을 찾아다니는 자, 동호에 대비되어 하염없이 기다리는 자, 용택은 언제나 송화를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처음 소리하는 어린 송화를 볼 때도, 마지막에 동호와 송화가 함께 소리하고 북을 치는 장면을 볼 때도 그렇다.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송화를 들쳐업고 절룩이는 다리로 달렸음에도 송화의 등을 어루만지던 그는 유봉에 의해 밀쳐지며, 유봉의 유골을 들고 찾아온 송화에게 더운 세숫물을 따라주던 그가 잠시 잡았던 송화의 손은 매정하게 그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단심은 또 어떤가. 살을 섞고 살았음에도 동호의 마음은 얻지 못했고, 송화를 위해 지어진 집을 구경하며 "나도 눈이 멀어 이 집에 살고 싶다"고 처연하게 읖조리던 그녀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 보면 서로에겐 그토록 애틋한 송호와 동화도 꽤나 무정한 사람들이다.
동호와 송화는 서로 소리를 하고 북을 치기로 운명적으로 맺어졌음에도, 영화 내내 그들이 서로 박자를 맞추는 장면은 의외로 거의 없다. 그나마 나오는 장면도 정식으로 소리를 하고 북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절의 풍경을 소리에 맞춰 치거나, 제주도에서 송화의 춘향가에 맞춰 동호가 무릎을 치는 것 정도이다.
그래서 마지막, 비록 환상 속에서나마 그 둘이 정식으로 소리를 하고 북을 치는 장면은 더욱더 애절하게 마음에 남는다.
사랑을 찾아다니는 동호와 소리를 쫓는 송화가 만나 어우러지는 자리를 용택이 지그시 바라본다. 공교롭게도 어린 송화를 처음 바라보며 매혹된 곳과 같은 장소(뒷간^^;;)이다.
송화만을 바라보던 그가, 어우러지는 동호와 송화를 모두 보며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면서 사랑이 완성되고, 영화도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조재현이란 배우에 대한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출연진 모두 고루 호연을 펼쳤지만, 극을 이끄는 주체로서 그는 풀 숏의 걸음걸이를 통해서도, 클로즈업의 눈빛을 통해서도 송화를 향한 미묘한 감정을 딱 알맞게 표현해내고 있다.
또한 북 치는 장면을 몇 달의 연습만으로 이렇게 실감나게 보여주다니, 배우란 어때야 하는가를 나타내주는 산증인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정식 판소리에 치는 북보다 되는 대로 살던 시절 술자리 장단에 맞추는 북이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의 배우로서의 자유로움이 반영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