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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끄적거림.. 흔적 남기기..</title>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 </link>
<description>aidster</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2 Aug 2004 08:51: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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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aidste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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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끄적거림.. 흔적 남기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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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012. 01. 04</title>
<description>&lt;P&gt;『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 을 읽다.&lt;BR&gt;&lt;BR&gt;&apos;권력 감정은 권력욕과는 좀 다르다. 막스 베버는 권력 감정을 &quot;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의식,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참여하고 잇다는 의식, 역사적으로는 중요한 사건의 신경 줄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는 감정&quot;이라고 정의하면서, ... 어쩌겠는가. 우리 인간이 권력을 사랑하고 권력에 약한 동물인 것을.&apos;&lt;BR&gt;&lt;/P&gt;
&lt;P&gt;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그러나 근대를 열어제친 수많은 지식인들은 그 자신이 그러했던 만큼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고, &apos;합리적인 개인&apos;이라는 이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개인들조차 주체할 수 없는 권력욕, 권력감정, 인정욕구 등을 억누르지 못하고, 스스럼없이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이들의 행태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lt;BR&gt;&lt;BR&gt;&apos;한국에 근대를 가져온 인물&apos;이라는 평가를 받은 &apos;근대인&apos; 강준만이 나타난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근대는 이상향에 머물러 있고, 그 이상향에 도달했다 여겨지는 곳 조차 여전히 모순에 가득찬 모습을 보이는 현실속에서, 그의 책 곳곳에 보이는 체념과 같은 구절들에 깊은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76383</link>
<category>독서일기</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Wed, 04 Jan 2012 12:11: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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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FTA</title>
<description>&lt;DIV class=hentry&gt;&lt;SPAN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copyright_entry title=FTA@@**@@http://aidster.egloos.com/4162906&gt;&lt;/SPAN&gt;
&lt;P&gt;&lt;A href=&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242137555&amp;amp;code=970100&quot; target=_blank sab=&quot;524&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담뱃갑에 경고그림 FTA로 어려워진다&lt;/SPAN&gt;&lt;/A&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1242137555&amp;amp;code=970100&quot; target=_blank sab=&quot;524&quot;&gt;&lt;SPAN style=&quot;COLOR: #52b4e1&quot;&gt;&lt;SPAN style=&quot;COLOR: #000000&quot;&gt;WHO “국제사회는 금연정책 공격한 담배회사에 맞서라”&lt;/SPAN&gt;&lt;/SPAN&gt;&lt;/A&gt;&lt;BR&gt;&lt;BR&gt;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존재한다. 그 대가를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 명명하고, 합리적 인간은 기회비용을 철저히 계산 후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기회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은 필연적이기에, 그것들이 모두 계산된 균형에 우리는 다다를 수 없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논의되는 균형이란 실제 우리네 인생에서는, 저 너머에 있는, 다다를 수 없는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고, 그렇기에 한 걸음 떨어져 냉철히 바라본 모두의 걸음걸이는 술취한이의 행보(Random Walk)와 다름없다. &lt;BR&gt;&lt;BR&gt;&lt;/P&gt;
&lt;P&gt;FTA를 둘러싼 소란을 지켜보며, 취한채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생을 마감했다고 입으로 입으로 전해오는 시인의 최후를 떠올린다. &lt;/P&gt;&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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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75163</link>
<category>메모</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Mon, 28 Nov 2011 21:24:0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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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G에게 2</title>
<description>강한 치아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는 인간에게 자연은 늘 매몰찼다. 그래서 인간은 오랜 세월동안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기에는 너무 큰 욕망을 가진 동물이기에 스스로 만들어낸 생태계에서도 늘 불안한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읽고 배우는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창조한 생태계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아마도 지혜로운 이라 불리는 이는 인간의 생태계가 인간의 생존 그 자체에는 적합하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느냐, 혹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내느냐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답해온 이들을 일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lt;BR&gt;&lt;BR&gt;이제 너는 그 물음에 치열히 고민하고, 답해야한다는 것을 다른 동료인간들에게 밝힐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또 조그만 자격도 주어졌다. 그런 길의 출발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해맑은 표정으로 축하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음이 슬프다. &lt;BR&gt;&lt;BR&gt;그래도, &lt;BR&gt;&lt;BR&gt;축하한다. &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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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74431</link>
<category>낙서장</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Thu, 03 Nov 2011 07:10: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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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생활</title>
<description>&lt;P&gt;미래는 어떻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고, 극도로 단순해진 생활을 이어나가는 지금의 생활은 한가롭지만, 그만큼 치열한 것이다. 새벽이면, 문을 열고 밝아져가는 세상을 관조하고, 해가 뜨면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논리로 무장한 문장들과 수식들이 어설픈 논리만으로 겨우겨우 이길을 달려온 나를 번개처럼 내려친다. 해가 넘어가면 윤동주의 시를 다시 꺼내어보면서 지나온 인생을 복습하며, 한평생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살아간 그의 인생과 슬픈 죽음을 애도한다. 그렇게 보낸 그 하루동안, 내 곁으로 무수한 삶과 죽음들이 지나쳐갔고, 그 사이사이에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책속을 탐험하는 동료들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겹쳐지며 서로에게 주어진 불꽃을 태운다.&lt;BR&gt;&lt;BR&gt;-----------------------------------------------------------------&lt;BR&gt;&lt;BR&gt;쉽게 쓰여진 시&lt;BR&gt;&lt;BR&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윤동주&lt;BR&gt;&lt;BR&gt;&lt;BR&gt;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lt;BR&gt;육첩방은 남의 나라.&lt;/P&gt;
&lt;P&gt;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lt;BR&gt;한 줄 시를 적어 볼까.&lt;/P&gt;
&lt;P&gt;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lt;BR&gt;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어&lt;/P&gt;
&lt;P&gt;대학 노트를 끼고&lt;BR&gt;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lt;/P&gt;
&lt;P&gt;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lt;BR&gt;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lt;/P&gt;
&lt;P&gt;나는 무얼 바라&lt;BR&gt;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lt;/P&gt;
&lt;P&gt;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lt;BR&gt;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lt;BR&gt;부끄러운 일이다.&lt;/P&gt;
&lt;P&gt;육첩방은 남의 나라&lt;BR&gt;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lt;/P&gt;
&lt;P&gt;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lt;BR&gt;시대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lt;/P&gt;
&lt;P&gt;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lt;BR&gt;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74397</link>
<category>메모</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Tue, 01 Nov 2011 19:02: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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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후쿠시마 원전 사태</title>
<description>100일이 지나가지만, 여전히 &lt;A href=&quot;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후쿠시마%20원자력%20발전소%20사고/6월%20경과&quot; target=_blank sab=&quot;524&quot;&gt;현재진행형&lt;/A&gt;이다.&lt;BR&gt;&amp;nbsp;&lt;BR&gt;원자력에 대해, 아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의 기반에 대해 &lt;BR&gt;&lt;BR&gt;철저한 반성이 필요한 그럴때이다. &lt;BR&gt;&lt;BR&gt;우리가 누리는 이&amp;nbsp;풍요로움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는가?</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69726</link>
<category>낙서장</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Sun, 19 Jun 2011 09:53: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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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2011. 05. 21</title>
<description>&lt;P&gt;『룸살롱 공화국』(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 을 읽다.&lt;BR&gt;&lt;BR&gt;은밀한 장소에서 부끄럼없이 펼쳐지는 유사 호혜의 경제(회사 선배와 후배, 그리고 거래처 직원들이 룸살롱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여자를 부르고, 당당하게 &apos;법인카드&apos;로 결제하는)는 가족주의 혹은 공동체 의식이 아니라 공범자의식을 키워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속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의 운명을 더더욱 회사에 맡기고 회사인으로 성장해간다. 공범자의식이 커질수록, 난잡한 쾌락에 몰두할수록, 그리고 진정 부끄러운 것에 대한&amp;nbsp;분별력이 흐릿해져갈수록, 생계를 제공해주는&amp;nbsp;회사와 공범으로서의 회사인의 정체성은 회사와는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가야할 우리의 삶을 옥죄어간다. &lt;BR&gt;&lt;BR&gt;일찍이 김광석은 노래하지 않았는가. 가볍게 사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얽어맬 것이라고.&lt;BR&gt;&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68840</link>
<category>독서일기</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Sat, 21 May 2011 17:02:53 +0900</pubDate>
</item>

<item>
<title>2011. 05. 02</title>
<description>『프리라이더』(선대인 지음, 더팩트) 를 읽다.&lt;BR&gt;&lt;BR&gt;저자가 밝히고 있는 이 난감하고, 암담한, 그리고 모두가 조금씩은 체념하고 있던 이 사실들은 도대체 어떻게&amp;nbsp;시작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apos;공짜 점심은 없다&apos;라는 격언이 어떤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치게 된다. 절대빈곤에서 탈출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과거, 우리는 우리 삶을 구성해왔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는 것을 당연시해왔고, 그러한 포기, 혹은 희생으로 유래없는 경제성장과 풍요라는 과실로 보상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강렬했던 경험은 우리들이 그것들을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해왔는가를 돌아보는것을 불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하나의 족쇄가 되어, 지금 우리가 딛고 서있는 것들을 당연시하며, 동시에 넘어야하는 것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그때와 똑같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심지어 그 희생을 감내하지 못하는 이들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절대 빈곤은 벗어났지만, 과거의 감옥에 같힌 이들. 그리고 그들을 기만한채 공짜 점심을 향유하는 이 프리라이더들은, 그들 스스로 열어젖힌 지옥속에서 행복할까? 발걸음을 아주 살짝 잘못 내딛어도 그들이 이루어온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무너지는 지금 구조에서, 몰락에의 공포는 모두에게 똑같은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이들은 그 영광이 마치 자기에게만 예비되었던 것처럼 여겼던 만큼, 그 공포도 자기에게만 다가올 것 처럼 여긴다. 그리고 이 지옥에서 &apos;홀로&apos; 도피하고자하는 열망은 일요일마다 대형교회 주차장을 가득 매우는 고급 차량들이 뿜어내는 노회한 열기로 승화된다. </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68120</link>
<category>독서일기</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Mon, 02 May 2011 08:38:55 +0900</pubDate>
</item>

<item>
<title>후생이 가외라</title>
<description>子曰 後生 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lt;BR&gt;&lt;BR&gt;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뒤에 나는 사람이 두렵다. 어찌 장래의 그들이 지금 나만하지 못하리오. 그러나 사십, 오십이 되어도 학문과 덕으로 이름을 들음이 없으면, 그런 자는 두려워할 것이 못되느니라. - 논어 자한편&lt;BR&gt;&lt;BR&gt;사람은 배우면서도 성장하지만 동시에 이끌어 나가면서도 배우고 성장해나간다. 그러므로 겨루는데 집착하는 이가 되어 상처뿐인 결과만을 얻는 것은 그저 허무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그런 이와의 관계 자체만으로도&amp;nbsp;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 허무한 관계속에서 우리는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고&amp;nbsp;그저 허우적거리다 생을 끝마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두려워할만한 후배가 40이되어서도 이름을 날리지 못하면 더이상 고려할만한 이가 아니라는 성현의 말씀은 겨루어 이기는데에만 집착하여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이를 반면교사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시장속에서 조금 더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겨룸의 일상속에서 그것에 최선을 다하고 &apos;결과에 승복&apos;하며, 동시에 큰 그림을 보고 그릴줄 아는 것. 그것이 군자는 겨루되 쟁(爭)하지 않는다는 성현의 또 다른 말씀의 속뜻일지도 모르겠다. &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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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67792</link>
<category>메모</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Fri, 22 Apr 2011 17:12:2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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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2011. 04. 04</title>
<description>&lt;P&gt;『꿈꾸는 인큐베이터』(박완서 지음, 가람기획)&amp;nbsp;를 읽다.&lt;BR&gt;&lt;BR&gt;&apos;정말이지 나는 그들 앞에서 더는 여자 노릇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들 생각만 하면 나는 겁날 게 없었다. 아들은 나에게 있어서 후천적인 남성 성기였다. 그러나 남자가 된 느낌이 고작 남을 해치고 싶은 충동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유난히 시어머니하고 시누이를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공범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apos;&lt;/P&gt;
&lt;P&gt;체계는 필연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일정부분의 희생을 요구한다. 그래서 체계내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요구당하는 인질이자 &apos;공범자&apos;로 서로에게 다가선다.(그래서 소통은 언제나 불통의 외형으로 나타난다.) 낯선 사내가 주인공에게 대면하게 한 것은, 잊혀진줄만 알았던, 끔찍했던 낙태의 기억이 아니라 체계 내부의 부조리한 요구에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기에, 거기에 더욱 동조해온 주인공의 서글픈 맨 얼굴이었다.&lt;/P&gt;
&lt;P&gt;그 맨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주인공에 감정이입이 되어버린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남아선호사상은 옅어졌지만, 생존을 위해 주류 가치를 맹종하는 경향은 여전한 이 시대에, 고인의 작품은 그래서 더 문제적이다.&lt;/P&gt;</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67090</link>
<category>독서일기</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Mon, 04 Apr 2011 17:45: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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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학생부군신위</title>
<description>영원, 혹은 무한이라는 개념은 끝내 머리속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개념이다. 불행히도 영원을 떠올릴 수 있는 인간의 삶은 고작 백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인데, 그런만큼 동료 인간의 죽음을 견뎌내는 것은 살아남은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 &amp;lt;학생부군신위&amp;gt;에서 보여주는 시끌벅적한 상가의 모습, 또 그 장례의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물어본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철학자 김영민의 지적대로, 우리는 그 의식을 통해 망자를 우리 삶에서 내다버리는 것이다.&lt;BR&gt;&lt;BR&gt;영화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특히 이복동생 팔봉과) 바우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바우는 극중에서 유일하게 박노인의 자장에 놓여 있던 인물이었다. 이미 다른 이들은 박노인의 자장에서 독립하여,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그들이 애도하는 것은, 그저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박노인의 부재 그 자체일 뿐, 그 부재 자체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여동생은 그 애도의 장소에서도 집안 친척들에게 보험을 팔고, 팔봉은 그의 출세를 자랑하기 여념이 없으며, 그 모든 풍경을 찬우는 영화로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우가 상가에서 벌이는 일련의 소동들은, 이미 박노인으로부터 충분히 독립한 다른 이들의 &apos;축제&apos;에 어깃장을 놓는 것으로, 그래서&amp;nbsp;그러한 심술은 결국 바우가 또 다른 자장, 즉 어머니의 자장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맺을 수 있었다.(바우의 나이가 충분히 들었다면, 박노인의 죽음은 그의 가출로 연결되지 않았을까?)&lt;BR&gt;&lt;BR&gt;언젠가 조문간 상가 입구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해했던 적이 있었다. 겨우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섰지만, 슬픈 기색보다 조문객을 맞이하는 노동에 지친 상주의 환대에서 느낀 편안함에 한동안 당혹해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야말로 망자를 보내 버리고 다시 일상의 굴레로 들어가는 어른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컨대 독립, 즉 홀로서기란 어떤 관계가 끝장난 후에도 그 관계가 마치 없었던 것인양,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때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듯하다. 그래서 그것을 이루어낸 이들이 끝나버린, 더 이상 나와는 상관없는 인연, 혹은 시신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서로가 서로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이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영위해나가는 풍경은 애처롭지 않고 단단한 일상의 한 풍경으로 지나쳐갈뿐이다.</description>
<link>http://www.mediamob.co.kr/aidster/blog.aspx?id=266951</link>
<category>낙서장</category>
<category>영화</category>
<author>aidster</author>
<pubDate>Thu, 31 Mar 2011 17:32: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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