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이 난리가 아니다. 특히 돈선거를 가지고 떠든다. 즉 대의원들에게 선거 전에 돈을 돌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쪽도 그리 깨끗지 못하다. 길자연 현 회장당선자를 인정 못한다는 이광선 전회장 또한 나도 금권선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내가 속한 교단은 한기총의 멤버는 아니지만(의외로 한기총에 가입하지 않은 기성교단들이 있다.) 돈문제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문제가 우글댄다. 결국 작금의 교회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는 현실이다. 자본주의의 문제는 그저 돈 문제가 아니고, 그 돈을 둘러싼 이권다툼, 권력다툼으로 냄새나는 것들이 그 안에서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교단들에 문제가 생기면 한쪽에서는 회개한다고 모이고 울고 하는 모습이 또 연출된다. 이것을 구태여 폄하할 이유는 없다. 아무래도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90%의 긍정적인 면이 있어도 10%의 부정적인 면이 있다면 그 회개모임이니 금식이니 떠드는 것을 다시금 돌이켜 보고 참회개를 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에도 한기총 문제로 고신측이 "하나님, 한국교회를 살려주옵소서"를 주제로 회개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아래가 그 기사이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07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바른 선택이지만 저 표어는 잘못되었다고 본다. 한국교회를 살려주옵소서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해야 말이 맞는다. 예전에 왕앞에 죄를 지었으면, 살려주옵소서 보다는 죽여주시옵소서라고 했다. 그래야 왕이 겨우 살릴까 말까하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교회여 살 생각 말고 죽어라!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뭔 문제가 나면 회개한다고 금식한다고 교회가 난리도 아니다. 불교적 용어로 야단법석이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과연 무엇을 회개한다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때로 기특한 기도제목이 나오기도 한다. "물질적인 것을 추구했던 것", "대형화를 추구했던 것",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던 것", "권력을 잡으려 했던 것"... 기도 내용으로만 보면 진짜 교회가 정화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러나!! 회개는 그렇게 큰 제목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단체로 회개한다는 것에서 나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본다. 단체로 하는 것은 성서에 이미 모범이 있긴 하다. 그때는 국가적 범죄 때문에 회개와 금식을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회개는 모임의 과시이다. 나 원, 회개도 과시를 하는가. 죄 지은 놈이 "나 죄지었소, 하지만 회개하오" 하면서 사방에 자신을 과시하는 족속은, 상처흔적과 문신을 보이며 위협하는 조폭무리들 밖에 없다.
교회가 지금 할 회개는 구체적이어야만 한다. 즉 "내 아들에게 만명되는 이 교회를 세습한 걸 회개합니다."라고 하는 내용 같은 것 말이다. 이걸 회개한다면 바르게 고쳐야 되니 기도한 다음에는 아들을 당회장 자리에서 당장 떨궈내야 한다. 물론 애비 손으로 직접. 또 어떤 내용이 있을까. "총회장되려고 헌금 000원을 유용하였습니다. 우리교회 재정장로도 같이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뱉어내야 한다. "교회개축한다면서, 혹은 주차장을 만든다고 하면서 옆집 가난한 김씨네를 헐값에 쫒아냈습니다." 이런 회개기도도 해야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에게 응분의 값을 치뤄주고 더 얹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단언코 그런 회개기도하는 교회나 교단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말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회개는 공염불이다. 하늘에 올라가지 못한다. 구체적이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알다시피 진심도 사그라들었다. 겉으로는 울고 짜고 하나 이는 단지 자신들의 세과시와 다음 회기를 준비하는 정치모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성서의 말씀을 스스로 이루게 하고 있다. 성서는 또한 말한다. 죽은 자들에게 독수리가 날아든다. 교회의 이러한 대내외적 고통은 스스로 시체의 썩은 냄새를 풍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다. 제 탓이거늘 누구를 한탄할까.